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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wave 1

시청자에서 투자자로
콘텐츠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

‘펀더풀’ 윤성욱 대표 인터뷰

글 조영신(Ph.D)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펀더풀’은 드라마, 영화 등의 문화 콘텐츠를 증권화해 투자자들을 모집하고, 이 과정을 통해 모인 자본을 제작사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K-콘텐츠 투자 플랫폼이다. 콘텐츠 소비자는 새로운 방식으로 콘텐츠를 바라볼 수 있고, 제작자는 자본 확보의 새 길이 열릴 수 있다. 펀더풀의 윤성욱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콘텐츠 투자의 정보 비대칭 문제에서 출발하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이 단순한 명제가 사업하는 이의 머릿속에선 ‘돈을 융통할 수 있다’란 문장으로 재규정된다. 사업은 자기 자본만으로 가능하지 않기에 어떤 식으로든 남의 돈을 융통할 수 있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어떻게 융통할 것인가’란 질문으로 이어진다.

사업을 안정적으로 키워온 사람들은 자기 신용으로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자본을 늘려 자금을 융통한다. 상장되지 못했고, 회사채를 발행할 정도의 신용을 확보할 수도 없는 이들은 지인 네트워크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사업의 불확실성이 높아 투자받기 어려운 사업자도 있는 법이다. 영화, 드라마 같은 문화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돈을 융통하기가 쉽지 않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콘텐츠는 매 순간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것처럼 하늘의 별을 따야 하는 작업이다.

이 어려운 일을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이가 있다. 바로 윤성욱이다. 윤성욱의 인생사에는 쇼이스트, 기업은행, 와디즈란 세 회사가 굵직하게 박혀있다. 영화 시사회 진행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올드보이>를 제작한 쇼이스트에 입사해 뮤지컬과 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당시 45억짜리 영화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20여 개의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하나의 영화를 제작하는 데 다양한 투자원으로부터 자금을 끌어모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기업은행 콘텐츠 투자 금융 부서가 처음 설립될 때도 그 자리에 있었다. 콘텐츠 시장을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시장이라고 하지만 투자사들은 하이리스크의 시장으로만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투자 대상을 평가하고 등급을 매기고 거기에 따라 신용을 부여해야 금융 자본이 움직여요. 이런 절차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돈은 흐르지 않아요.”

미국이나 영국 등 자본 시장이 활발한 곳에서는 금융 기관의 도움을 받아 스튜디오 사업자나 제작 사업자들이 개별 콘텐츠 기반의 PF(project financing)를 조성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규모 있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콘텐츠에 어떻게 투자금을 공급하고 회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와디즈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잡스법1)이 도입되어 스타트업들이 벤처기업의 자금을 보다 용이하게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2016년에 국내에서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지분형(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이 가능해졌고, 와디즈 등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윤 대표는 기회를 보았고, 와디즈로 자리를 옮겼다. 증권 형태의 금융 서비스에 온라인이라는 특성이 덧붙여지면 콘텐츠 투자 및 수익 배분 시에 발생하는 정보 비대칭 문제가 보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영화에 투자할 때 감독, 배우, 줄거리는 알지만 완성도나 세부 연출은 어떤지, 핵심 인력이 바뀌어 차질이 생기는건 아닌지는 잘 모르잖아요. 온라인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활발히 얘기 나누며 정보를 교환하리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기대와 현실은 달랐다. 정보 비대칭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와 수익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수익이 확정되는 여러 상품을 선보일 필요가 있었다.

쇼이스트에서는 공통 투자란 형식을, 기업은행에서는 돈이 흐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그리고 와디즈에서는 정보 비대칭이란 문제를 확인했다. 이 경험들이 누적된 결과물이 바로 펀더풀(Funderful)이다. ‘펀(Fun)’과 ‘원더풀(Wonderful)’의 결합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보다는 ‘펀드(Fund)’와 ‘원더풀(Wonderful)’의 결합어처럼 보인다. 펀드는 고객이 맡긴 투자금을 금융상품에 투자해서 수익을 실적배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펀더풀은 ‘고객으로부터 투자금을 받아 콘텐츠에 투자해서 그 수익을 실적배당한다는 것이 너무도 멋지다’란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과연 그런가?

사실 윤성욱 대표를 만나러 가기 전에 지인들에게 이 사업의 가능성을 문의했었다. 그때 ‘아직도 윤 대표가 그 일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콘텐츠 투자를 논의하기에 2019년이란 시점이 좋지 않았다는 평가다. K-드라마 제작 편수가 역대급으로 증가했다곤 하지만, 코로나19로 영화관이 문을 닫았던 시기다. 이런 시기에 창업을 했으니, 존폐를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이야기를 전했더니 잔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힘들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내부적으로 프로젝트는 돌아가고 있었고, 고객들의 반응도 괜찮았지만 둘러싼 외부 환경은 그를 몰아갔다. 투자받은 자금으로 겨우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불안했던 요인도 분명히 있었어요. 운이 좋게 저희가 예상했던 사업의 확장 방향이 실행되는 것들을 경험했어요. ‘시장이 이렇게 변할 거야’라고 했을 때의 그 변화 폭, 그리고 각 상품 카테고리별로 예측한 변화 폭 등이 대부분 들어맞았어요. 우리가 시장을 제대로 보고 있구나라는 걸 확인하는 계기가 됐죠.”

동료들의 확신은 조직의 힘이 되었다. 윤 대표는 투자를 받고 사업을 시작했다. 투자자가 과감히 의사결정을 해줬고, 십수 년간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모여들었다. 기술도, 서비스 기획도, 그렇게 한 몸이 되었다.

‘투명성’이 중요한 열쇠

윤 대표는 크라우드 펀딩이란 용어의 한계를 지적했다. 스스로 와디즈에서 콘텐츠 투자를 해왔던 입장이지만, 국내에서는 크라우드 펀딩이 너무 좁게 해석된다는 판단이었다. 엄밀하게 보면 크라우드 펀딩도 증권형 서비스가 있지만 대부분 이익 관점이 빠진 R&D(연구개발)나 후원의 성격이 훨씬 강했다.

“와디즈에서 콘텐츠 투자를 거의 다 해 본 입장에서 크라우드 펀딩이라고 알려진 시스템은 선결제 후 배송, 그러니까 미리 결제부터 하고 두세 달 있다가 받는 것, 또 가끔은 떼이기도 하는 그런 거예요. 적어도 투자가 되기 위해서는 투자와 회수, 이익이란 실질적인 개념이 장착되어야죠.”

혜택만 놓고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비즈니스의 이익과 내 이익이 일치한다는 관점에서 둘은 전혀 다르다. 상품에 따라 채권처럼 확정 이자가 지급되기도 하고, 특정 매출 규모를 달성하면 수익이 발생하도록 설계하는 것에서부터 추가 발생한 이익에 대한 배당으로만 상품 포트폴리오를 설계할 수도 있다.

엄밀하게 보면 크라우드 펀딩도 증권형 투자를 할 수 있다. 와디즈도 펀더풀처럼 금융위원회로부터 온라인 중개 사업권을 받았고, 투자형 성격이 강한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펀더풀은 증권형 펀딩 서비스를 핵심 사업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와디즈와 분리된다.

특히 펀더풀의 핵심은 콘텐츠 사업자가 새롭게 진행하려고 하는 프로젝트를 하나의 증권으로 만들어 관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증권 계좌를 통해서 콘텐츠 투자-배당 등의 거래 행위가 관리될 수 있다면 통상적으로 집행되는 총 예산의 8~10%에 해당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그 절감된 금액만큼 제작 효율성이 높아지고 수익성도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 윤 대표의 주장이었다.

“낱낱의 콘텐츠를 투자 프로젝트화 할 수 있어요. 투자자는 펀더풀이란 금융 플랫폼에서 ‘청약’ 버튼만 클릭하면 됩니다. 여타 펀드처럼 사전에 제공된 다양한 시뮬레이션과 목표 수익 등을 보시고 청약을 결정하시면 증권을 발행하죠. 만약 목표 금액 모금에 실패하면 즉시 프로젝트는 청산되고, 금액은 반환됩니다. 정해진 기간 동안 해당 콘텐츠로 발생한 이익은 투자 금액의 비율대로 배당 처리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시스템하에서 이루어지고 투명하게 관리된다는 점도 장점이고요.”

회계적 투명성은 윤 대표가 펀더풀을 구상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 중 하나다. 그의 오래된 경험에 따르면 콘텐츠 사업자가 투자금을 관리하는 비용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영화 한 편을 제작하는 데 20여 개의 투자사가 참여할 경우 수십 장의 계약서를 체결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투자금의 비용 처리 내역 등을 보고하고 수익을 정산할 때도 다시 엑셀과 이메일로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되던 것이 관행이라고 한다. 만약 펀더풀을 통해서 전체 프로젝트가 관리된다면 기존의 작업이 디지털화되는 것은 물론 관리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 윤 대표의 판단이었다. 물론 아직까지 전체 프로젝트가 하나의 증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고 있지만 그럴 조짐들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는 것이 사업을 바라보는 윤 대표의 희망이고 바람이었다.

“제 고객은 콘텐츠 사업자들이거든요. 콘텐츠 사업자들에게는 6~7%의 조달 비용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투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해 드린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물론 담보도 필요 없고요. 심지어 상품 설계에 따라 마케팅을 해 드릴 수 있다는 점도 이야기해요. 원금을 특정 기간 동안 갚아 주기만 한다면 말이죠.”

공모란 콘텐츠 투자 상품이 표준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식, 채권처럼 정형화가 되면 사업자들은 이를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 발행 횟수, 규모, 회수 기간을 상품별로 설계하고 고객들에게 투자 의사를 물으면 그만이다. 시스템에 대한 인지도와 경험치가 증가하면 자연히 이용량과 투자 규모, 투자를 의뢰한 기업도 늘 수밖에 없다고 윤대표는 확신한다.

“현재까지 약 50개 정도의 콘텐츠 증권을 발행했고 현재 160억 원 정도가 온라인에서 거래됐습니다.”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다. 공모 시장이 확대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투자에 대한 성과가 투명하게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수익의 결과가 잠재적 투자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펀더풀은 이 과정을 있는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콘텐츠 투자의 성과가 다른 투자 대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려준다. 이를 통해서 투자자의 규모가 확대되면 자연스럽게 이 시스템에 참여하는 제작사도 늘어날 것이고, 점진적으로 시장은 커진다는 것이 윤 대표의 믿음이다. 이렇게 시장이 커지면 자연히 펀더풀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인 중개수수료 수익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중장기적으로는 프로젝트 투자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고 이용료를 받을 생각도 하고 있다.

아직은 본인의 믿음을 시장에서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수익을 기대하고 투자를 집행하되,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갖출 수 있게 도와주어 시장을 견인해야 한다는 과제도 아직은 미완이다.

‘투자가 없어 콘텐츠를 만들지 못하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는 확신에 대한 지지는 콘텐츠를 이용하고 사용하는 우리의 몫이다.

  • 조영신

    SK경영경제연구소에서 수년 동안 미디어 시장의 변화와 갈 길을 연구하다가, 2019년부터는 SK브로드밴드에서 미디어 사업의 실행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