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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2

생방송과 예능의 경계,
홈쇼핑을 바라보는 시선

심미선(순천향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최근 일부 홈쇼핑 방송에서의 몇몇 발언이 물의를 빚었다. 홈쇼핑은 상품판매방송으로 규정되어 심의가 일반 방송과는 다르다. 또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만큼 갑작스러운 사고에 대처하기 어렵다. 홈쇼핑을 둘러싼 논란과 규제의 허점 등에 대해 생각해본다.

홈쇼핑은 예능일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한때 어린이들 사이에서 불렸던 동요 가사다.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텔레비전은 동경의 대상이고, 출연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미디어다. 하지만 막상 카메라 앞에 서면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머리가 하얘지고 말문이 막히는 경험은 방송에 출연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2012년 종합편성채널이 개국 방송을 시작할 즈음 모 채널에서 뉴스 진행 중 방송사고가 나서 화면이 나오지 않았는데, 앵커가 상황을 수습하지 못하고 10분 정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만큼 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10여 년이 훌쩍 지나 최근에 불거진 논란은 이전과는 정반대다. 홈쇼핑 채널의 쇼호스트가 방송을 너무 편하게 생각해서 문제가 발생했다. 판매하는 상품이 매진되면서 방송을 종료해야 하는데 후속 방송이 준비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방송을 진행하면서 짜증스러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심지어는 욕설까지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이 이를 문제 삼자 해당 쇼호스트는 사과 대신 “불쾌하면 내 방송 보지 마라”, “홈쇼핑도 예능 아니냐”는 식으로 응수했다.1) 결국 문제의 쇼호스트는 해당 채널로부터 영구 출연 정지를 받았고, 방송통신 심의위원회도 최종 법정제재인 ‘경고’ 처분을 내렸다. 이 사안은 이렇게 일단락되었지만, 우리 방송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홈쇼핑 채널에서 왜 이와 같은 문제가 불거졌을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홈쇼핑을 생방송 예능으로 봐주는 시대가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말에서 그렇다면 생방송 예능에서는 막말을해도 괜찮다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정말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에서 막말을 하고, 욕을 했는데도 문제가 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을까?

욕설 자체보다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

예능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들을 사용한다. 비속어, 욕설, B급 언어 등이 웃음을 유발하는 기제로 사용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언어들은 문맥적으로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그래서 웃음으로 넘겨버렸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를 그대로 방치하지는 않았다.

오락 프로그램에서 욕이 난무했을 시절, 당시 오락 프로그램의 주 시청층이라고 할 수 있는 중고등학생들은 욕을 일상적으로 사용했으며, 욕을 사용하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이렇게 예능 프로그램에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사용했던 비속어, B급 언어, 욕 등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예능은 다른 포맷을 찾아 진화하기 시작했고, 오늘날 리얼리티 예능이 자리 잡게 되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비속어나 욕을 사용하는 것은 그나마 맥락이 있다. 또 과도하게 상대방을 무시하고 비속어를 사용하는 목적은 명확하다.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함이다. 누군가를 무시하는 행위가 다소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웃음을 주기도 한다. 가령 시청자의 예상을 뒤엎는 상황이 전개될 때 웃음을 유발한다. 이때 적용되는 도구가 언어로는 비속어, 욕 등 B급 언어였다. 즐거움을 주기 위해 사용됐다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일부 시청자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욕의 일상화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시청자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프로의식에 충실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무조건 비판적일 수만은 없다.

  • 예능 프로그램에서 욕설은 시청자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예능에서 욕설이 등장할 때는 소리를 덮고 입 모양을 그림으로 가리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아래는 해당 유튜브 클립의 시청자 반응이다.

    출처: 런닝맨 - 스브스 공식 채널

그런데 쇼핑 채널에서 쇼호스트가 하는 막말과 욕, 짜증은 시청자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주기 위한 의도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쇼핑 채널의 목적은 한마디로 시청자에게 ‘유익하고 즐거운 쇼핑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유익하고 즐거운 쇼핑 기회라는 것은 상품에 대해 시청자보다 좀 더 잘 아는 쇼호스트가 상품 정보를 자세히 알려주고, 상품의 용도를 설명하는 것에서 나온다. 그러나 사야 할 물건이 있을 때만 홈쇼핑 채널을 시청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 쇼핑을 하듯, 어떤 때는 습관적으로 또 어떤 경우에는 새로운 물건을 보는 재미로 홈쇼핑 채널을 보는 경우도 많다. 이런 맥락에서 홈쇼핑 프로그램도 예능으로 볼 수 있으며, 쇼호스트의 이런 일탈을 눈감아 줄 수도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홈쇼핑의 언어를 돌아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압축 성장기를 거쳐왔다. 미디어의 경우 홈쇼핑 채널이 대표적이다. 홈쇼핑 채널의 매출성장률은 개국 이후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상승 추세를 이어왔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87%에 달했다.2) 시간이 흐르면서 성장률은 다소 꺾였지만, 매출 감소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상품 판매를 책임지고 있는 쇼호스트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지고, 과도한 영향력은 개인적 일탈을 부추긴 측면이 크다.

무엇보다 물건을 판매하는 방송이다 보니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규제가 적은 것도 사실이다. 홈쇼핑채널에 대한 규제는 주로 상품오인정보에 집중되어 있다. 상품을 판매하는 방송이니 일반 프로그램과는 다른 규제기준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점차 홈쇼핑 프로그램을 물건을 구매하는 목적 외에도 상품의 정보를 얻고, 시간을 보내기 위한 목적으로 시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프로그램에 볼거리나 재밋거리를 넣으려는 시도가 많아졌고, 이런 변화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쇼호스트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문제는 이번 쇼호스트의 비속어 파문이 ‘어쩌다 발생한 하나의 우연에 불과할까?’ 하는 것이다. 많은 홈쇼핑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터질 게 터졌다는 입장을 보였다. 홈쇼핑 채널에서는 쇼호스트가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 표현을 사용한다. 쇼호스트가 사용하는 언어 중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비속어와 같은 부적절한 언어 표현과 성역할 고정관념을 공고히 하는 표현이 있다. 홈쇼핑 채널의 쇼호스트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 여성은 예뻐야 하고, 마른 몸매를 유지해야 하며, 남편과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여성의 나이 듦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여성의 게으름으로 단정 짓는다. 부엌은 여성의 공간이고, 청소는 여성의 몫이다. 운동기구를 판매할 때도 남성은 편한 운동복을 입고 등장하는데, 여성은 몸에 달라붙는 의상을 입고 운동기구 위에 올라가 몸매를 자랑한다. 이게 홈쇼핑 채널에서 그리는 여성과 남성의 모습이다. 홈쇼핑 채널에서 쇼호스트들은 여성 시청자들에게 남성으로부터 사랑받는 여성이 되기 위해 내가 소개하는 상품을 구매하라고 강요한다. 그리고 이런 부분을 비난하기보다는 물건을 팔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여겼고, 사회적으로 지탄받지도 않았으며, 규제기관으로부터 제재받은 사례도 많지 않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주류 미디어로 자리 잡아온 텔레비전에는 상징성이 있다. 텔레비전에서 말하면 그것은 곧 표준이 된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에서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삶의 표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텔레비전은 여타 미디어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표준이 되는 만큼 언어 표현도 가급적 정제되어야 하며, 개인적 일탈을 허용해서도 안된다. 텔레비전 매체만은 사회적 기준을 만들고 유지해 나가야 한다. 홈쇼핑 채널 쇼호스트의 일탈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쇼핑 채널이 가정의 텔레비전 속으로 들어온 건 1995년 케이블 채널이 개국하면서부터이다. 삼구쇼핑(이후 CJ온스타일로 합병)과 LG쇼핑(GS홈쇼핑으로 사명 변경)으로 시작한 홈쇼핑 채널은 올해로 28년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 약 30년 동안 텔레비전 홈쇼핑 채널은 양적, 질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해냈다. 2개로 시작한 채널이 현재 T커머스까지 합하면 12개로 늘었고,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약 3조 8,000억 원의 매출액을 달성했다. 최근 들어 홈쇼핑 채널의 매출액 및 영업이익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전체 방송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2021년 국내 전체 방송시장 규모는 18조 118억 원으로, 이 중 홈쇼핑채널이 차지하는 비중은 21%에 달한다. 홈쇼핑 채널의 수적 증가와 매출액 규모를 고려할 때 상품을 판매하는 목적 이상으로 공적 미디어, 사회적 미디어로서의 책무를 수행해야 할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즉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 행동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로 언어 표현에서 드러나는 문제, 특히 부적절한 표현이나 성역할 고정관념을 공고히 하는 표현들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해야 한다. 홈쇼핑 업계 연봉 1위 쇼호스트의 비속어 발언이 개인의 일탈로 끝나지 않고 홈쇼핑 채널 프로그램의 생태계를 바꾸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 심미선

    2002년부터 현재까지 순천향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기자상 심사위원,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 심사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