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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1

방송사-OTT 간
무경계 제작이 확대되는 이유

임석봉(JTBC 정책협력실장)

방송사와 OTT의 경계를 지우는 현상은 방송사의 제작 스튜디오 설립 등 다양한 부분에서 꾸준히 전개돼왔다. 점차 ‘제작자 집단’으로서 변화해가는 방송국의 움직임을 들여다보고, 이러한 변화가 방송국, 그리고 제작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아본다.

‘콘텐츠가 왜 이동하고 있는가’라는 물음

최근 많은 사람으로부터 듣는 첫 인사가 “요즘 JTBC는 어때요?” 인 것 같다. 같은 질문에도 질문자의 의도와 기대했던 대답은 다를 수 있지만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요즘 모든 방송사가 너무, 그리고 진짜 어렵습니다.”

왜일까? 산업의 트렌드는 물론 시청자(이용자)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용 행태가 너무나 달라졌고 그로 인해 광고도, 유통도, 제작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 할 이야기의 주제인 방송사-OTT 간 무경계 제작 확대 이유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청자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는 분들도 있다.

  • 물음 1.
  • 왜 많은 제작사들이(기존 방송사를 포함하여) OTT로 눈을 돌리는가?
  • 물음 2.
  • 드라마에 이어 예능, 시사 프로그램도 이제 OTT 퍼스트(first)를 시도하는가?
  • 물음 3.
  • 이러한 방송·미디어 산업 흐름 속에서 방송사의 프로그램 제작 방향과 전략은 무엇인가?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그 답에 대한 논거를 정확히 대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최근 넷플릭스와 티빙 같은 OTT에서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나아가 시사·다큐 콘텐츠까지 OTT 전용 콘텐츠인 ‘오리지널 콘텐츠’가 제작되고 있다. MBC는 <피지컬: 100>을 제작해 넷플릭스에 공급해 큰 인기를 얻었고 SBS는 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인 <국가수사본부>를 제작·공급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MBC는 국내 프로야구단을 소재로 하는 다큐멘터리 <풀카운트>를 제작해 디즈니플러스에서 스트리밍한다고 밝혔다. 미국 ESPN이 제작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의 한국판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렇듯 이제는 시청자(이용자)뿐만 아니라 제작자에게도 방송과 OTT는 더 이상 건너편 딴 세상이 아닌 것이다. 물론 방송사의 OTT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은 새삼스럽지 않다. 다만 그 장르가 드라마에서 예능으로, 그리고 시사·다큐멘터리 교양까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지점은 ‘왜 방송사는 방송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않고 (결과론적이지만) 잘 만든 콘텐츠를 OTT에 넘겨줄까?’ 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아래와 같이 나름의 이유를 찾아보려고 한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말이다.

왼쪽부터 웨이브와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국가수사본부>, <피지컬: 100>

출처: 웨이브/넷플릭스

OTT 이용자의 확대와 가입자 증가 현상

방송사는 제작한 콘텐츠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선보일 수 있는 플랫폼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2021년 11월에 넷플릭스의 MAU(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1,000만 명을 돌파했다. 그리고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인 2023년 1월 기준으로 약 25%가 증가하며 1,257만 명을 돌파했다. 여기에 티빙 515만 명, 쿠팡플레이 439만 명, 웨이브 401만 명으로 토종 OTT 3인방의 MAU 합이 넷플릭스보다 다소 높은 1,355만 명을 넘겼고1), 이를 국내 전체 OTT 이용자(국내+글로벌)로 합산하면 2,909만 명이다. 전년 대비 약 300만 명이 증가하면서 인구 대비 56%가 넘는 수가 OTT를 이용하고 있다.

OTT 이용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방송 시청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셈이다. 특히 특정 타깃을 중심으로 하는 콘텐츠일수록 기존 방송 환경(시청층)보다는 OTT가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방송사가 제작하는 프로그램이 OTT를 통해 소비된다는 것이다.

스트리밍에 대응하는 방송 편성의 변화

그동안 방송국은 24시간을 기준으로, 또 프라임 타임(방송사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오후 8시에서 11시까지) 3~4시간에 맞추어 제작과 편성 전략을 짰다. 따라서 방송사가 콘텐츠를 제작할 때는 제작비와 함께 콘텐츠의 편수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트리밍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OTT는 콘텐츠 공개일은 있어도 편성 시간은 없고, 당연히 제한된 콘텐츠 수도 없다. 오직 전략과 전술 그리고 능력에 맞는 콘텐츠 수급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방송사의 본방송 시간은 점차 축소되어왔다. 아래 표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체 제작은 물론 OTT에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제공하는 주요 방송사(채널)의 본방송 비율을 정리2)한 것이다. 최근 5년을 기준으로 대체로 5%p 내외로 모든 방송사의 본방송 비율이 축소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방송사의 업력이 쌓이는 만큼 콘텐츠 제작 역량도 쌓이지만, 방송에서 소화할 수 있는 콘텐츠 수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제작 역량을 펼칠 기회를 외부로 돌릴 수밖에 없게 된다.

연간 본방송 비율(%)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MBC 69.1 71.0 70.9 65.4 63.7
SBS 77.2 74.8 72.7 70.1 71.6
JTBC 61.3 63.4 63.3 65.1 59.5
tvN 19.3 22.4 22.4 18.8 17.7

주요 방송사의 연간 본방송 비율(<2022 방송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의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

출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그럼 왜 본방송 비율이 축소되고 있는 것일까? 방송을 통해 송출되는 콘텐츠의 효율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 효율을 결정짓는 데에는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방송광고가 광고매체로써 매력이 떨어지고 있는점, 방송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순간 지켜야 할 심의 수준과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유튜브, 넷플릭스, 티빙이라면 송출(스트리밍)이 가능한 콘텐츠(예를 들어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 <술꾼도시여자들>, <신서유기>)가 제작 대비 효율성 측면과 표현 수위 등을 감안한 심의 수준 측면에서 보면 방송용으로는 제작하기도 편성되기도 어렵다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결국 콘텐츠 효율이 떨어지니 방송 아닌 외부(OTT)로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제작 시스템의 변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지상파·종편·CJ 등 대형 방송사 위주로 콘텐츠를 제작·발전시켜왔다. 하지만 국내 경쟁만 위주로 했던 과거와 달리 글로벌 OTT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자 방송사들도 제작 시스템을 변화시키며, 방송을 위한 방송 콘텐츠 제작에서 콘텐츠 제작 스튜디오로 탈바꿈하고 있다. 방송을 넘어 영화·OTT로 콘텐츠 공급을 확대하는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중반 이후에는 드라마 제작을 중심으로 CJ 계열의 스튜디오드래곤과 중앙그룹의 JTBC-SLL(스튜디오룰루랄라)이 콘텐츠를 제작해 방송·영화·OTT에 공급해왔다. 지금은 오랫동안 예능과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해 역량을 쌓아왔던 지상파 방송이, 보다 타깃팅 된 시청자를 대상으로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제작해 OTT에 공급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OTT가 지급하는 제작비도 방송사 전략에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역량 있는 고정 인력을 확보한 대형 방송사로서는 보유 인력을 적극 활용해 방송 이외의 콘텐츠를 제작해 유통시킴으로써 제작 역량을 더욱 발전시키고, 동시에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외면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 예상 못한 변수도 발생하고 있다. <피지컬: 100>이나 <솔로지옥>처럼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는 모든 권리(IP)를 넷플릭스가 갖는다. 그래서일까, <피지컬: 100>을 성공적으로 제작한 MBC 장호기 PD는 지난 4월 10일 MBC를 퇴사하고 넷플릭스와 <피지컬: 100>의 시즌 2 제작을 협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2021년 12월과 2022년 1월에 론칭한 <솔로지옥>은 JTBC 김재원 PD와 김나현 PD가 제작해 성공적인 성과3)를 낸 콘텐츠이다. 그러나 두 PD 모두 JTBC를 떠나 ‘시작컴퍼니’에 합류해 <솔로지옥 시즌 2>를 제작했고 현재는 JTBC가 시작컴퍼니를 예능 레이블로 영입해 계열사로 둔 상태다. 결국 넷플릭스처럼 시즌 1이 성공하면 안정적인 시즌 2, 시즌 3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제작 PD에게는 기회가 되고, 반대로 방송사에게는 제작 인력이 이탈되는 변수가 되는 것이다.

방송·미디어의 변화가 누군가에는 ‘기회’가 되기도 ‘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 변화를 만들어 내면(궁즉변, 窮則變), 결국 성공의 기회를 가져다줄 것(변즉통, 變則通)이라고 믿는다.

  • 임석봉

    JTBC에서 방송정책, 방송심의, 지식재산권과 시청자(Audience)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23년간 방송과 미디어 업계에 몸담고 있으며 콘텐츠 소비에 있어서도 헤비 유저로 콘텐츠 분석과 미디어 산업 생태계에 늘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2020년 『넥스트 넷플릭스(NEXT NETFLIX)』(한스미디어)의 저자로 청소년·청년들과 강연, 특강 등으로 소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