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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3

드라마에 등장한 우리말 자막,
제작 과정에서 고려할 점은

이광순(스튜디오S CP)

콘텐츠에 자국어 자막을 송출하는 풍토가 방송에까지 영향을 주면서, 제작진들은 전에 없던 새로운 실험 앞에 놓여있다. 실제 방송을 만들어가는 제작진들이 방송 자막 송출에 있어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OTT 타고 자리 잡은 한국어 자막

어느 시점부터 드라마 방송 이후 시청자 게시판 또는 내부 회의에서 “대사가 들리지 않는다”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원인을 찾아보려 해도 어려웠다. 음향 기술이나 종합편집 시스템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미 준 사전 제작 시스템이 자리 잡혀 과거 생방송 수준으로 급히 제작되던 때처럼 원 신(scene), 원 테이크로 급하게 찍느라 놓치는 부분도 없을 것이다. 내부적으로 많은 논의 끝에 유추한 원인은 바로 시청 디바이스의 다양화와 시청 패턴의 변화였다.

OTT 플랫폼은 기존부터 한국어 자막을 제공했다. 자국어로 대사를 하는데 꼭 한국어 자막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시시비비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어 자막의 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빠른 화면 전환으로 뭘 하는 것인지 잘 보이지 않거나, 대사가 잘 들리지 않을 때 자막으로 파악할 수 있었고 이는 작품의 이해를 좀 더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드라마는 특성상 대사 한 줄을 놓치면 자칫 큰 맥락을 놓칠 수 있는 구조다. 사람들은 점점 한국어 자막 설정 후 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한국어 자막을 제공하지 않던 플랫폼들도 이제는 한국어 자막을 제공한다. 이제 자막은 필수가 되어버렸다. 또한 지상파뿐만 아니라 많은 플랫폼의 모든 예능,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자막 없이는 방송이 어려울 정도로 자막은 시청자들에게 매우 친숙해져 있었다.

지상파 드라마에 자막이 등장하다

그러나 드라마에 자막을 넣는 것에 대해서는 내부 의견이 반으로 갈렸다. 외국어도 아닌 자국어로 방송하는데 화면을 일부 가려가면서까지 굳이 자막을 노출해야 하는 것이냐는 의견부터, 음량을 키울 수 없는 환경에서 자막을 통해 대사 전달률을 높여 극의 몰입감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까지, 이견은 어느 한쪽으로 좁혀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OTT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 자막 등이 설정을 통해 조정할 수 있는, 시청자들의 ‘선택 사항’이지만 방송에 대사 자막을 적용 후 송출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선택권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내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논의와 고민을 거쳐 재방송 회차에 자막을 적용해보는 것으로 최종 의사 결정을 했다.

드라마에 자막을 입혀본 사례도 없고 경험도 없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영화 자막 제작 업체나 OTT에 들어가는 자막을 제작하는 업체들을 수소문해야 했다. 비용적인 문제와 생각보다 긴 작업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도 문제였다. 그러다 SBS 기술연구소에서 AI기반으로 화면 음성(대사)을 자막으로 변환하여 편집까지 가능한 기술을 외부 업체들과 컨소시엄으로 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해당 부서와 협업하여 제작을 진행했다.

드라마 본편의 대사들은 대본 없이도 그대로 인식돼 텍스트화됐고, 영상과 싱크까지 맞춰서 출력됐다. 추가적으로 방송 심의상 문제가 될 수 있는 비속어나 표현들의 수위 그리고 몇몇 의성어들만 체크하면 되는 수준이었다. 해당 기술이 없었으면 아마 먼저 대본에서 대사들을 발췌하고, 최종 편집된 영상의 대사들을 일일이 듣기/받아쓰기해 이를 최소 3회 이상 검수해야 했을 것이다. 거기에 완성된 자막 파일과 영상의 싱크를 맞추는 작업까지 아마 상당한 인력과 비용 그리고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자막을 제작한 후에는 시청자들에게 가장 적절한 자막의 사이즈와, 시청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는 자막 위치 선정, 그리고 저작권 이슈가 없는 가독성이 높은 폰트 지정까지 모든 게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재방송에 자막을 송출하자는 결정을 한 지 일주일 만에 드라마 <법쩐>(SBS)과 <트롤리>(SBS)의 재방송분부터 자막이 서비스되기 시작했다.

첫 자막 방송이 송출되고 나서 그 주 주말까지, 프로그램 관련 대화방, 시청자 게시판, 민원 전화 등 다양한 채널로 의견이 폭주했다. 자막을 당장 내려달라는 항의성 의견도 있었고, 반대로 볼륨을 올리지 않아도 조용히 자막으로 보니 몰입감이 좋다고 칭찬해 주는 의견까지 다양했다.

<법쩐>은 장르 특성상 사투리와 욕설이 많은 드라마인데, 이를 그대로 자막으로 표기하느냐 하는 건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다. 자막은 음성보다 좀 더 격하고 타격감이 느껴지기 때문에 방송심의 규정을 위반하는 대상이 될 거라는 의견이었다.

근거 법령이 다른 이유로, 모든 욕설이 적나라하게 자막으로 서비스되는 OTT와는 다르게 공공성을 유지해야 하는 지상파이기 때문에 OTT에 비하면 애교스러운(?) 욕설도 표기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지만 심의 규정에 어긋나지 않은 음성 대사라면 자막으로 표기해도 무방할 거라는 생각 끝에 음성 대사와 동일하게 자막을 표기하기로 했다. 여러 고민과 걸림돌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내외적으로 드라마의 자막 방송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취향에 따른 기술의 발전 기대

몇몇 해외 사례들을 찾아본 결과 지역별 사투리 차이가 심해 표준어를 자막으로 송출하는 국가들 외에, 자국 방송에 자국어 자막을 송출하는 국가는 많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OTT 서비스가 정착되고 1인 가구 시청자들이 늘며 음량을 조용히 해두고 시청하거나 또는 이어폰 등으로 시청하는 패턴들도 늘고 있어, 드라마 자막에 대한 서비스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SBS를 시작으로 이후 타 방송사에서도 드라마에 자막이 송출될 수 있다.

다만 현재 대다수 가정의 TV 수신 방식이 IPTV 셋톱박스나 안테나 수신 방식이기에 각각의 디바이스를 통해 제공되는 자막 서비스를 시청자의 의사로 ON/OFF 할 수 있는 기술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또한 방송사는 지금까지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여 송출한다는 의무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청자들이 우리의 콘텐츠들을 취향에 맞게 편하게 즐길 수 있게 하는 기술적 고민을 해야 하고, 보편적 서비스를 함께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본 방송을 제외한 재방송에만 자막이 서비스되고 있지만 본방송에도 적용될 날이 머지않았다. SBS의 드라마 대사 자막 서비스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 이광순

    SBS 광고팀과 드라마본부를 거쳐 현재 스튜디오S 제작국에서 드라마를 기획, 제작하는 CP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