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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ssue 1

OTT 넘어 방송까지 확대된 자막

강우일(MBC D.크리에이티브스튜디오 D.콘텐츠제작1팀 차장)

영상 소비의 주요 창구가 TV에서 뉴미디어로, OTT로 흘러가면서 시청자들의 요구는 다양해졌다. 그러나 각 플랫폼의 특성상 이러한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최근 방송계에서 늘고 있는 자막 확대 현상을 콘텐츠 소비 패턴의 변화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콘텐츠 소비자의 요구에 발맞춘 변화

영상콘텐츠 소비 행태가 시대에 따라 변하면서 이제는 OTT와 유튜브를 통한 영상콘텐츠 소비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되었다. OTT와 유튜브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할 때는 청각장애인이 아니더라도 한국어 자막과 함께 감상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하는 OTT와 유튜브에서의 콘텐츠 소비는 TV보다는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한 비중이 더 높은데,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한 영상콘텐츠 소비 시에는 주변의 소음 때문에 소리가 잘 들리지 않거나 아예 소리 없이 음소거 상태로 감상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영상의 한국어 자막은 콘텐츠 내용을 놓치는 상황을 방지하여 감상을 보다 편리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OTT와 유튜브에서는 이른바 빈지 뷰잉(Binge Viewing, 몰아보기)이라는 영상콘텐츠 소비 행태도 많이 나타나는데, 이때 한정된 시간 내에 몰아보기를 하려면 배속 조절이 필연적이다. 배속 조절로 빠르게 콘텐츠를 감상하고자 할 때도 한국어 자막은 내용 전개에 대한 이해도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국내에서 한국어 자막 서비스를 도입한 건 넷플릭스가 최초인데, 한국 작품도 한국어 자막과 함께 시청하면 편하다는 감상이 퍼지면서 후발 주자들도 이에 질세라 한국어 자막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국내 유튜브 채널들 역시 유튜브 영상 시청 행태가 모바일 위주로 변하면서 이용자들의 요청에 의해 또는 이용자의 감상 편의성을 높여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한국어 자막을 입히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한국어 자막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영상콘텐츠 소비 행태 변화를 읽어내고, SBS가 지상파를 통해 드라마 재방송에서 처음으로 한국어 자막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 2월 드라마 <법쩐> 재방송에서 처음 등장한 한국어 자막 서비스는 호의적인 시청자 반응을 끌어냈다. <법쩐>에 이어 <트롤리>, <모범택시 2> 그리고 현재 방영 중인 <꽃선비 열애사>까지, SBS의 드라마 재방송에서 한국어 자막 서비스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OTT로 보는 느낌이다”, “액션 장면에서 대사가 명확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에도 자막을 통해 이해하기 편하다”, “드라마를 훨씬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반응들이 대부분이다.

SBS의 드라마 재방송 한국어 자막 서비스는 시청자의 시청 패턴 변화를 읽어내고 이에 발맞추어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를 실시함으로써 시청 편의성을 증대시킨 조치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렇다면 SBS는 한국어 자막 지원을 왜 더욱 확대하지 않는 것일까? 또 KBS와 MBC는 왜 한국어 자막 서비스를 실시하지 않는 것일까?

긍정적 반응에도 소극적인 이유

관련 기사에서 한 SBS 관계자는 TV는 OTT처럼 자막 설정 여부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연출적 요소나 연기에 대한 집중이 떨어질 수 있어, 시청 방해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에 본방송에서의 한국어 자막 도입은 계획이 없다고 답변한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드라마의 경우 대본이 정해져 있기에 스크립트는 이미 확보되어 있다. 다만 자막을 입히기 위해서는 자막에 타임 코드가 부여되어야 하는데 사전 제작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드라마 본방송 시간까지 타임 코드가 입력된 자막을 완성하기에는 시간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면이 있다. 따라서 본방송에까지 한국어 자막을 제공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또한 대본이 있는 드라마와는 달리 예능이나 교양 프로그램에서는 대본이 없거나 설령 대본이 있다 해도 대본 그대로 말하지 않기에, 자막을 만들기 위해서는 따로 스크립트를 새로 작성해야 하고 여기에 타임 코드 역시 별도로 또 부여해야 한다. 드라마보다 시간과 비용 모두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미 청각장애인용 자막 방송도 실시되고 있는데 본방송에서의 자막 서비스가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청각장애인용 자막 방송의 경우 청력을 상실하여 아예 방송 시청이 불가한 사람들을 위해 방송법 제69조 제8항에 근거하는 서비스의 일환이다. 담당자가 실시간으로 방송을 청취하면서 입력하는 자막이어서 영상보다 자막이 늦을 수밖에 없고, 오타가 다수 등장할 수밖에 없다. 만일 지상파 방송에서 한국어 자막이 영상과 타이밍이 어긋나거나 자막에 오타가 등장한다면 신뢰도가 무척 떨어져 비난이 빗발칠 것이다. 이런 식의 한국어 자막 서비스를 실시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서비스가 되고 만다. 따라서 드라마 장르로 한정하여 그것도 재방송에서만 한국어 자막 방송을 실시하는 것이 현재로서의 현실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KBS나 MBC는 그조차도 비용 부담 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다.

자막 확대가 불러올 선순환

방송사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한국어 자막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유튜브 이용자들의 모바일 기기를 통한 콘텐츠 감상 패턴에 맞추려면 한국어 자막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마땅하나 하루에도 막대한 양의 업로드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자막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으로 인해 이용자들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유튜브의 경우 글로벌 플랫폼이라는 특성을 살리려면 국내 이용자뿐 아니라 글로벌 시청자들에 주목해야 하기에 이를 위한 영어 자막 제공 또한 필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어 자막이 없는 상황에서는 영어 자막 제작 비용이 크게 증가한다. 실제 유튜브 외국어 자막 전문 제작 업체에 따르면 타임 코드가 부여된 한국어 자막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 업체에서 타임 코드를 부여해 가며 한국어 자막을 우선 제작 후, 다시 이를 번역하여 영문 자막을 제작하는 과정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비용이 두 배로 든다고 설명한다.

만일 정부 차원에서 방송에서의 한국어 자막 제작 비용이 지원된다면 시청자들의 시청 행태 변화에 따른 시청 편의성 증대와 더불어 방송사 유튜브 채널에서의 한국어 자막 역시 추가적인 비용 없이 제공 가능해지고, 영문 자막 제작 비용이 저렴해지는 선순환이 나타나 한류 콘텐츠 확산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시청자들의 시청 편의 증진을 위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책을 기대해본다.

  • 강우일

    2007년 MBC에 입사한 이래 콘텐츠 유통, 법무, 정책기획 부서를 거쳐 현재는 디지털 콘텐츠 제작 및 유통 부서에서 근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