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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point 2

퓨전 사극 <슈룹>을
바라보는 시선들

글. 김송희(작가, 칼럼니스트)

조선시대 세자 교육을 다룬 퓨전 사극 <슈룹>(tvN)이 지난 12월 4일 종영했다. 중국풍 표현 등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여성 서사를 중심으로 하는 시대극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회차를 거듭하며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슈룹>을 다시 들여다본다.

최고 시청률 기록하며 막을 내린 <슈룹>

<슈룹>(tvN)의 마지막 회 시청률은 16.9%였다. 이전 회차들이 11%에서 14%를 상회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마지막 회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이 드라마가 기존 팬층과 함께 새로운 시청층을 지속적으로 유입시켰음을 방증한다. 더불어 한 회당 70분에 총 16회라는, 요즘 시청자들이 감당하기에는 다소 긴 호흡의 드라마인데도 시청률이 꾸준히 상승했다는 것은 이 드라마가 빠른 전개와 매회 새로운 갈등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챘음을 의미한다. 물론 넷플릭스에서 동시 방영해 뒤늦게 편승한 시청자도 쉽게 따라갈 수 있었으며, 자사 채널에서 재방송을 자주 편성한 것 역시 시청률 상승에 큰 역할을 했다.

<슈룹>의 재미에 올라탄 시청자들은 주변에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나며 매회 시청률이 상승한 것이다. 무엇보다 드라마가 최종 장에 이르기까지 주요 갈등을 완전히 해소하지 않고 이야기를 몰입력 있게 끌고 갔기에 가능했던 시청률이다. 16.9%는 2022년 tvN 방영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이다. 상반기 방영되어 주요 시상식에서 올해의 드라마로 꼽혔던 김태리 주연의 <스물다섯 스물하나>, 노희경 작가의 복귀작이었던 <우리들의 블루스> 역시 tvN 드라마였으나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최고 시청률은 11.5%, <우리들의 블루스>의 최고 시청률은 14.6%였다.

<슈룹>을 둘러싼 논란들

시청률과 화제성 면에서는 성공을 거뒀지만, <슈룹>은 역사성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퓨전 사극인 <슈룹>은 1회부터 극 중에 자막을 활용하는데, 여기에 한자 대신 중국어 간체로 쓰인 물귀원주(物归原主)를 사용한 것이다. 또 5회에서는 중전이 자신을 ‘본궁’이라 칭하는데, 이를 두고 중국의 시대극이나 퓨전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라는 의견이 있었다.

드라마의 인기와는 별개로 비판의 목소리를 의식한 듯 방송국은 종영 후 <슈룹>을 집필한 박바라 작가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논란에 대해 작가는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태화는 고려시대 때부터 사용해온 아주 흔한 한자이며, <슈룹> 속 모든 명칭들은 제작 과정에서부터 전문가에게 한자 자문을 받았습니다. 본궁이란 단어 역시 감히 중전이 말하는데 끊는다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본인인 중궁’의 말이 안 끝났다는 의미로 사용하였을 뿐입니다. <슈룹>에는 다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한국 고유의 것이 나옵니다. 열심히 찾아 준비한 만큼 화면에 나오는 한국풍을 맘껏 즐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1) 작가의 답변을 주연 배우 김혜수가 SNS에 공유해 지지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조선시대 입시 전쟁 다룬 ‘퓨전 사극’

이전의 퓨전 사극 주인공들이 민가의 인물이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조선의 왕, 세자, 중전과 대군들이었기에 가벼운 코믹적 변형이 논란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또한, <슈룹>의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의 전작 중 <여신강림>(tvN)과 <간 떨어지는 동거>(tvN)가 과도한 중국기업 PPL로 거센 비판을 받았고, 사극 중에서는 <조선구마사>(SBS)의 조기 종영 사례로 인해 한국 시청자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엄격한 시선으로 드라마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논란에 영향을 끼쳤다.

중국풍에 대한 논란과 별개로 <슈룹>은 첫 부분부터 이 드라마가 현대식의 퓨전 사극임을 드러내는 장면을 야심차게 내세운다. 궁에서 가장 발이 빠르고 할 일이 너무 많은 중전이 체통없이 경보 선수처럼 활보하고, 대군들이 경합을 준비하는 장면에는 ‘거벽 - 현대의 코디네이터’ ‘가정교학 - 현대의 홈스쿨링’ 등의 자막이 코믹하게 등장한다. 진지한 정통 사극이 아니라 배경만 조선시대 궁궐이고 입시 전쟁을 코믹하게 활용한 퓨전 사극임을 알 수 있다. 작품 소개란에는 ‘시대만 과거, 현대화 매치’, ‘족집게 과외’, ‘집중력 향상 브레인 케어… 이 치열함은 과거 왕실에도 있었다!’ 등의 문장으로 관전 포인트를 제시한다.

궁에서 가장 보폭이 큰 중전인 주인공 화령이 첫 회에 등장하자마자 사용하는 어투는 기존 정통 사극의 그것이 아니다. 대군들이 종학(조선시대 종실의 교육을 담당한 관청)에 여태 도착하지 않았다는 궁녀들의 보고를 들은 화령은 “아, 가, 일단 가. 성남대군 어딨어?”라며 윽박지른다. 정통 사극의 왕족은 흐릿한 촛불 앞에 앉아 수족에게 지시를 내리는 반면 화령은 가만히 앉아있는 장면이 적다. 대비, 영의정 등과 직접 독대하며 동분서주 뛰어다닌다. 대사 또한 현대극의 어투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대군들이 세자 택현(경합을 통한 세자 선발)에 도전하는 내용은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쟁구도처럼 연출하기도 했다. 거기에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패러디로 대군들을 ‘겁 없는 놈’, ‘소심한 놈’ 등으로 표현하고, 유행어 자막을 적소에 이용해 일종의 활극처럼 그린다. 실존했던 조선 왕조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며, 재미 위주의 연출과 현대 어투, 조선시대를 기준으로 하면 규범에서 어긋나는 여러 설정은 <슈룹>을 ‘낯설지만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다. 그러니 <슈룹>을 즐기기 위해선 이 드라마를 정통 사극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마치 웹소설을 읽듯이 접근하는 것이 좋다. 조선 배경의 퓨전 사극이라는 그릇 속에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을 풍성하게 담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기준으로만
콘텐츠를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앞선 ‘중국풍’으로 비판받았던 다른 드라마들과는 달리 <슈룹>이 그만의 미덕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이유는 드라마가 단순히 재미있어서만은 아니다. 이 드라마의 작법은 온전히 과거 성공한 한국 드라마의 그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가족애와 우정, 선한 자가 승리하는 신화, 암투 속에서 고되도 옳은 길을 선택하는 주인공의 승리, 다양한 왕자와 후궁 캐릭터들로 주는 잔재미, 악역의 단순화, 모든 사건이 선한 여성 주인공으로 귀결되는 과정 등 이 드라마는 기존의 성공한 한국 드라마의 작법을 충실히 따라간다.

세자의 죽음으로 택현을 통해 세자를 뽑게 되고, 여기서 왕재(임금을 보필할 만한 재능)를 입증해야 하는 성남대군은 왕이 낸 문제를 풀기 위해 멀리 떠난다. 백성의 고된 삶을 어우르는 어진 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에 도달하기 위해서다. 영특한 형, 왕세자의 빛에 가려져 있었던 성남대군은 여기에서 꿈을 포기하려 하는 어린 백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도망가는 것은 나 자신이지, 꿈이 아니란다.” 억세고 무서운 것 같아도, 어진 어미이기도 한 중전은 대군들에게도 늘 이런 말을 해왔다.

<슈룹>이 성소수자 자녀와 부모의 화해를 담고 있는 과정을 보자. 어머니가 자신을 부정할 것이라는 짐작으로 비밀을 숨겨왔던 계성대군에게 화령은 딸을 낳으면 주려 했던 비녀를 물려준다. 이는 화령이 제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계성대군은 마지막에 이르러 궁을 떠나 독립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화령은 품 안의 자식을 떠나보내며 어머니로서도 한층 성장한다. ‘대치동 학원가와 같은 풍경이 조선 궁에 있었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슈룹>은 육아와 교육이 자녀를 온전히 독립시키는 과정이라는 현대적 교훈까지 드라마에 녹인다.

슈룹은 우산의 순우리말이다. 드라마에서 김혜수가 연기하는 중전 화령은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슈퍼맨처럼 나타나 거센 비바람에 우산이 되어준다. 과도한 교육열처럼 보이지만, 실은 여성 인권을 위해 애쓰고,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여자라고, 계급이 낮다고 하여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발언을 하는 중전이며, 성소수자인 아들 계성대군에게 “네가 무엇이라도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고 감싸 안는 진보적인 여성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억울한 백성을 위해 불의에 맞서는 여성 히어로다. 배우 김혜수가 <슈룹>을 지지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러한 드라마의 미덕이 가려지는 것이 아쉬워서였을 것이다.

주인공이 성소수자인 아들 계성대군에게 비녀를 선물하는 장면

출처: tvN drama 유튜브 채널

<슈룹>은 좋은 드라마인가, 아니면 역병으로 인한 극빈층의 차별, 어진 리더와 좋은 부모에 대한 현대적인 고민을 사극에 잘 녹여낸 드라마일까? 드라마 제작하기도 쉽지 않지만, 맘 편히 드라마를 즐기기는 더욱 편치 않은 시대다. 그럼에도 <슈룹>에서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시대를 떠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려냈기 때문이 아닐까.

  • 필자 소개_ 김송희

    <빅이슈 코리아> 편집장,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에세이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딸세포)의 저자. 인스타그램 @cheesed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