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JTBC)이 스타 캐스팅과 배우들의 연기력, 주 3회 편성이라는 특이점에 힘입어 연일 높은 관심을 누렸다. 마지막 결말까지 시청자들의 갑론을박을 이끌어내며 화제에 오르내린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리뷰해본다.
지난 11월 18일 시청률 6%로 시작한 <재벌집 막내아들>(JTBC)이 12월 25일 26.9%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5주 만에 막을 내렸다(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방송 가입가구 기준). <재벌집 막내아들>은 주 3일 편성으로 짧은 기간 동안 시청률이 급상승하면서 많은 시청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으며,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플러스 등 OTT 플랫폼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렸다. 필자 역시 웹소설 원작으로 유명한 이야기가 드라마화된다는 소식에 방송 전부터 큰관심을 가졌으며, 첫 방송 이후 마지막 회까지 빠짐없이 흥미롭게 시청했다. 이 글에서는 연구자의 관점에서, 그리고 충성도 높은 시청자의 시각에서 <재벌집 막내아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재벌집 막내아들>은 2017년 문피아1)에서 연재되었던 산경 작가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웹툰 원작 드라마가 우리에게 익숙한 것에 비해 웹소설 원작 드라마는 다소 생소하지만, 사실 그동안 웹소설을 각색한 드라마는 꽤 있었다. <내 이름은 김삼순>(MBC), <해를 품은 달>(MBC)에서부터 <김비서가 왜 그럴까>(tvN), <법대로 사랑하라>(KBS)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드라마가 웹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웹툰에 비해 웹소설 시장의 규모가 작고 이용자 수가 적어서 주목을 덜 받는 편이다. 따라서 웹소설의 스토리를 자세히 알고 있는 시청자들이 적은 편이고, 덕분에 리메이크 작품임에도 시청자들에게 새로움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웹소설이 드라마 원작으로 발탁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스토리텔링의 힘에 있다. 누구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스토리텔링 플랫폼이 바로 웹소설이다. 재벌가 순양그룹에 복종하다가 순양의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주인공 윤현우가 순양가(家)의 막내아들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나 통쾌한 복수극을 펼친다는 창의적이고 기발한 설정 역시 웹소설 플랫폼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원작 웹소설
출처: JHS BOOKS“이번 생은 망했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살아가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가볍게 내뱉곤 하는 말이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지만, 이 한마디에는 사람들의 로망과 판타지가 담겨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사람들의 내면 깊이 잠재해 있는 환생의 판타지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고, 그런 이유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경험하고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욕망을 충족하는 것은 드라마의 주요 소구점(appealing point) 중 하나인데, <재벌집 막내아들>은 바로 이러한 부분에 충실한 드라마다.
하지만 마지막 회의 결말에서는 웹소설과는 다른 반전을 보여주었다. 재벌가에서 다시 태어난 진도준의 통쾌한 복수 판타지가 아니라 국밥집 아들 윤현우가 부딪쳐 극복해내야 하는 현실을 선택했다. 드라마는 환상 속의 진도준이 아닌 현실의 윤현우를 ‘진짜’ 주인공으로 택했고, 환상 속에서 행복했던 시청자들을 현실로 소환했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시간여행을 소재로 하는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에 발을 딛은 주인공이 참회를 통해 진정 원하던 것을 얻는 정의 구현으로 마무리되었다. 웹소설의 결말을 익히 알고 있는 시청자들이 이러한 결말에 대해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의견이 분분했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결말과 상관없이 드라마가 방송되는 동안 윤현우이자 동시에 진도준이기도 한 주인공을 보면서 행복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윤현우를 통해 시청자들을 현실로 소환하고 참회의 교훈을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도 시청자들은 판타지를 가슴에 안고 스스로 현실의 제자리로 돌아왔을 거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원작과는 다른 결말로
다양한 의견을 낳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들은 같은 기억을 공유한다. 힘든 시기는 미화되고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들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사회적 기억과 추억을 소환하여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 진도준이 자신만의 역사적 기억과 지식을 무기로 재벌가를 상대로 복수를 펼쳐 나가는 과정에서 서태지를 비롯하여 KAL기 폭파사건, 영화 <타이타닉>, IMF, 2002 한일 월드컵, 역도선수 장미란의 경기 등 수많은 기억과 추억이 재생된다. 우리 사회가 겪었던 굵직한 사건과 대중적 이슈들을 빠르게 훑어나가는 속도감 있는 전개는 시청자들의 흥미와 몰입을 유도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진도준과 같은 시대를 살아온 중장년층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컸으며, 높은 화제성과 시청률을 기록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방대한 분량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만큼 <재벌집 막내아들>의 스토리 전개는 매우 빠른 편이다. 첫 회부터 윤현우가 살해된 후 10살의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나며, 이후 수많은 역사적 사건 사고와 함께 진도준이 성장하고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면서 순양 기업에 복수하는 과정이 일사천리로 전개된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 3일 연달아 방영하는 편성은 그러잖아도 빠른 속도의 스토리 전개에 가속 페달을 밟는 역할을 했다. 시청자들은 급행열차를 탄 기분으로 빠른 전개의 스토리를 박진감 있게 즐길 수 있었다. OTT의 등장으로 몰아보기(Binge Watching)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금토일 편성이라는 새로운 시도가 낯설거나 불편하기보다는 환영할만한 것이었다는 점은 높은 시청률이 잘 보여준다.
드라마 흥행 성공 요인을 분석한 연구에서 빠지지 않고 지적되는 것은 다름 아닌 ‘편성’이다(배진아, 2005; 이원재·이남용·김종배, 2012; 전범수·이정기, 2014). 인지도 높은 스타가 출연하고 좋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도 적절한 시간대에 적절한 방식으로 편성되지 않으면 높은 성과를 보이기 어렵다는 것이 기존 연구의 결론이다. OTT 시대에 편성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TV 플랫폼에서의 성공이 OTT 플랫폼에서의 성공을 견인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편성은 여전히 중요하다. 금토 드라마 편성이 시도된 이후 드라마 장르에서 새로운 편성 시도가 다양하게 이루어졌지만, 금토일 편성은 처음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가지고 있는 내용적(웹소설 원작), 외적(스타 출연, 연기력, 연출 등) 경쟁력과 시너지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새로운 편성 시도의 효과에 대해 의미 있는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드라마가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흥행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요인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면서 서로 긍정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시대의 요구에 맞는 좋은 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적합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편성해야 하고,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세련되고 완벽한 연출, 충성적인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반응과 참여도 필요하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이러한 여러 요인들이 유기적으로 잘 작동한 드라마다. 웹소설과는 다른 스토리 전개, 특히 원작과 완전히 다른 방향의 결말에 대해 시청자들이 실망하거나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조차도 드라마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일부이다. 방영 초반에 시청자들의 마음을 한번 강력하게 사로잡으면 의리 있는 시청자들은 불평을 늘어놓을지언정 쉽게 이탈하지 않는다는 것을 <재벌집 막내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배진아, <드라마 시청률 영향 요인 분석: 드라마 속성 및 수용자 요인을 중심으로>, 한국방송학보, 270쪽, 2005.
이원재, 이남용 & 김종배, <드라마 시청률 예측모델에 대한 실증적 연구>, 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 논문지, 325쪽, 2012.
전범수 & 이정기, <토요일 프라임 타임 프로그램 편성전략이 채널 시청률에 미치는 영향: 지상파 방송을 중심으로>, 방송과 커뮤니케이션, 5쪽,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