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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3

독일의 친환경 방송 제작 동향

글. 김세환(동국대 교수)

해외에서는 이미 BBC, 넷플릭스, 워너미디어 등 유수의 기업들이 미디어 콘텐츠가 지닌 사회적 영향력을 고민하며 ‘포용성’과 ‘친환경’ 등의 관점을 반영해왔다. 그중 독일은 친환경 제작 기준을 마련하고 제작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다. 독일의 사례를 통해 우리 방송가에 친환경 제작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살펴본다.

독일의 친환경 방송 제작, ‘그린슈팅’

독일 방송영상산업은 기후변화 대응 및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가계획인 ‘독일 지속가능성전략(Deutsche Nachhaltigkeitsstrategie)’에 호응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친환경 제작 이니셔티브인 ‘그린슈팅(Green Shooting)’을 2017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해당 이니셔티브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주 영상진흥기구인 MFG 바덴뷔르템베르크를 중심으로 공영방송(ARD, ZDF), 민영방송(RTL, ProSiebenSat.1), 제작사(Bavaria Fiction, UFA), 플랫폼(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연구기관(독일영화아카데미), 협회(제작자협회, 영화텔레비전기술기업협회) 등 독일 방송영상산업의 핵심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린슈팅’이 친환경 제작을 구현하기 위한 실효적 사업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2022년 7월부터 적용한 생태학적 최소기준(Ökologische Mindeststandards) 및 그린모션 라벨(Label Green Motion)에 있다. 해당 이니셔티브는 2020년부터 친환경 제작을 검증하기 위한 파일럿 프로젝트 ‘친환경 제작 100(100 Grüne Produktionen)’을 진행했는데, 이를 통해 누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2022년 독일 내 방송영상콘텐츠 제작에 적용될 생태학적 최소기준을 개발하였다. 이렇게 개발된 생태학적 최소기준은 그린슈팅의 주체들이 제작하거나, 독일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할 경우 반드시 준수하여 그린모션 라벨을 획득하도록 의무화했다는 점에서 친환경 제작의 획기적 전환으로 평가받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그린슈팅에 참여한 ARD, ZDF, RTL, ProSiebenSat.1의 합산 시청점유율이 88.6%에 이르고, 독일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가 합류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모든 독일 방송영상콘텐츠 제작에 생태학적 최소기준이 적용되는 셈이다.

항공 이동 자제하고 LED 사용…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생태학적 최소기준은 15개 영역으로 나눠지며, 해당 영역별로 필수사항과 조건사항을 포함한다. 최소기준에 따라 이뤄지는 방송영상콘텐츠 제작은 필수사항을 기본적으로 준수해야 한다. 다만 필수사항이 모든 유형의 제작에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해당 예외 사항은 제작 후 방송사, 플랫폼, 지원기관에 제출해야 최종보고서에 ‘관찰’로 기재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스포츠 방송에서는 많이 쓰이는 야외 중계 차량을 다큐멘터리 제작에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필수사항이 상이하게 적용된다. 다만 이러한 예외적 경우도 전체에서 3개까지 허용되며, 이와 관련해 최종보고서에서 반드시 소명해야 한다. 방송사, 플랫폼, 지원기관은 필수사항을 충족한 최종보고서를 확인하여 승인해야 하고, 승인이 결정되면 해당 콘텐츠는 그린모션 라벨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받게 된다. 반면, 조건사항은 필수사항과 달리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정이 아니지만, 생태학적으로 지속 가능한 제작방식에 대한 필요로 의해 도입되었다. 필수사항처럼 조건사항의 충족은 온실가스의 효과적 감축에 기여하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제작 기술로 인해 관련 요구를 충족할 수 없는 경우를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15개 영역의 최소기준을 필수사항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환경자문관(Green Consultant)이다. 제작사는 외부 환경자문관 혹은 환경자문관 교육을 이수한 전문가를 채용해야 한다. 두 경우 모두 환경자문관 교육에 참여한 이력을 입증해야 한다. 프리 프로덕션에서 최종보고서 작성에 이르는 제작 전 과정에 참여하여 최소 기준 준수, 자연 자원 절약, 온실가스 배출 감소 등에 대한 자문을 수행한다.

두 번째는 산출이다. 제작사는 온실가스 배출 예상량을 제작 전 혹은 지원금 신청 전에 이니셔티브 주체인 MFG 바덴뷔르템베르크에서 개발한 탄소계산기로 산출해야 한다. 그리고 산출을 통해 제작이 최소기준을 준수하는지 사전에 확인하고, 전체 제작 과정이 생태학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수행될 것임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제작 후에도 탄소계산기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작 전후로 비교하는 방식으로 상세하게 산출해야 한다. 주목할 점은 제작사는 차년도 연방정부 혹은 주정부의 제작 지원을 받고자 하면 반드시 산출 결과를 포함해서 응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최종보고다. 제작 완료 후 제작사는 표준화된 양식으로 최종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여기에는 두 번째 영역에서 언급한 온실가스 배출 예상량과 실제 배출량을 포함해야 한다.

네 번째는 친환경 전기다. 인증받은 방식으로 생산한 친환경 전기로 전환하는 것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다. 이에 따라 제작사는 모든 제작 시설, 스튜디오, 제작 장비에 인증된 친환경 전기를 이용해야 한다.

다섯 번째는 발전기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경유 발전기 사용을 줄이기 위해 야외 중계 차량은 일반 전원 공급 장치를 이용해야 하며, 경유 발전기를 전원 공급 장치로 활용할 수 없다. 또한 스튜디오 제작에서는 경유 발전기를 쓰면 안 된다. 야외에서 제작하는 경우에도 최대 100미터 이내의 거리에서 기술적으로 적합한 친환경 전력망을 사용해야 한다.

여섯 번째는 충전식 배터리다. 촬영장, 사무실, 스튜디오 등에서 제작 기간 동안 일회용 배터리를 사용할 수 없으며 재활용이 가능한 충전식 배터리를 사용해야 한다. 다만 인이어(in-ear)용 버튼 배터리는 예외로 한다.

일곱 번째는 조명이다. 현장과 스튜디오에서 사용하는 조명은 전력 사용이 많은 기기로 상당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이에 따라 스튜디오 촬영은 LED 혹은 LED와 효율성이 비슷한 광원을 사용해야 한다. 현장 촬영의 경우에도 비슷한데 2025년부터는 LED 혹은 LED와 효율성이 비슷한 광원만 최대 2kW의 헤드라이트에 사용해야 한다. 현재 조명은 모두 조건사항이지만 스튜디오 조명은 2024년부터, 현장 조명은 2025년부터 필수사항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여덟 번째는 여행과 교통이다. 기차로 5시간 미만 걸리는 이동에는 항공편을 이용하지 않는다. 자동차와 관련해서는 제작사가 2대 이상의 차량을 보유(임대 및 리스 포함)할 경우 보유 차량의 최소 30% 이상은 이산화탄소, 질소산화물, 그을림 배출이 적은 차량이어야 한다. 해당 비율은 2023년에 최소 40%, 2024년부터 최소 50%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밴, 미니버스, 트럭과 관련해서도 최대 7.49톤의 중량 등급에 해당하는 화물용 차량을 5대 이상 보유(임대 및 리스 포함)할 경우 보유 차량의 최소 20% 이상은 이산화탄소, 질소산화물, 그을림이 적은 차량이어야 한다. 해당 비율은 2024년부터 최소 40%를 충족해야 한다. 또한 3대 이상 보유(임대 및 리스 포함)할 경우 보유 차량의 최소 30% 이상은 이산화탄소, 질소산화물, 그을림이 적은 차량이어야 한다. 한편, 제작에 사용되는 모든 경유 차량은 예외 없이 유로6(EURO6)1)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아홉 번째는 숙소다. 제작사는 전체 숙박의 최소 50%를 제작 현장에서 15km 이내에 위치하고, 환경 조치가 이루어진 아파트, 주택, 호텔로 예약해야 한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환경 조치란 친환경 방식으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고, 냉난방 관련 에너지 절약 조치를 수행하며, 절수 및 쓰레기 분리수거가 가능한 경우이다.

열 번째는 케이터링이다. 외부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구매가격 기준 음식 사용량의 최소 50% 이상은 현지에서 조달해야 한다. 여기에서 현지 조달은 제작 현장 반경 100km 이내에서 생산된 식자재를 의미한다. 또한 최소 33% 이상은 EU 혹은 독일에서 인정한 유기농 라벨을 부착한 식자재여야 하고, 일주일에 최소 1회 이상 순수 채식으로 식단을 구성해야 하며, 제작 스태프에게 육류 섭취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식단 선택에 참여하도록 하고, 일회용 식기류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열한 번째는 이다. 제작사는 재활용 섬유 함량이 90% 이상인 용지를 사용해야 한다. 이것은 복사지, 키친타월, 봉투 등 모든 형태의 종이에 해당하는데 소품은 제외한다. 또한 기획 단계에서 사용하는 종이는 100% 견뢰도2)가 기술적으로 요구된다.

열두 번째는 자재다. 제작사는 세트와 소품을 제작하는데 필요한 자재를 구매 혹은 대여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목재 혹은 목재를 활용한 자재를 채택하는 경우에 지속 가능하게 관리되는 산림에서 가져와야 하며 FSC(Forest Stewardship Council) 라벨을 획득해야 한다.

열세 번째는 분리수거다. 실내와 야외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제작 현장에서 생산된 폐기물은 분리수거 해야 한다. 이때 최소한 종이, 유리, 플라스틱, 금속, 유기폐기물, 목재를 구분해야 한다.

한국 제작 현장도 기후변화 대응 필요해

15가지 최소기준에서 의상플라스틱은 필수사항이 아닌 조건사항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가령 의상은 패스트패션과 마트에서 판매하는 할인 의류는 피해야 하며, 유통 경로를 줄이기 위해 가급적 현지에서 의류를 수급해야 한다. 플라스틱은 일회용 사용을 지양하고, 친환경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메이크업 시 미세플라스틱을 포함하지 않은 화장품을 사용해야 한다.

그린슈팅의 의미는 민관이 협력하여 친환경 제작 가이드라인을 개발한 후, 파일럿 프로젝트로 여러 번의 검증을 거쳐 제작 현장에 최적화된 최소기준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최소기준을 독일에서 제작되는 거의 모든 방송영상콘텐츠에 적용하여 실효성을 담보하였다. 방송영상콘텐츠산업에서 기후변화 대응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사명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그린슈팅의 의미가 한국 제작 현장에도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 필자 소개_ 김세환

    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 영화영상제작학과 강의전담교수이다. OTT, ESG, 경영전략, 노동환경 등을 중심으로 영상콘텐츠산업을 분석하고, 관련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세계일화국제불교영화제’의 프로그래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