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영상콘텐츠 기획개발은 체계적인 콘텐츠 개발과 제작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단계다. 하지만 비용 회수가 어려운 투자 단계라는 인식, 또 실제 제작으로 이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적 문제 등 기획개발을 활성화하는 데에 여러 고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콘텐츠의 기반을 다지는 기획개발의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 알아본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의 방송영상콘텐츠는 글로벌 OTT를 매개로 해외 시장에서 눈에 띄는 인기를 끌고 있다. 넷플릭스발(發) K-드라마가 가장 대표적이며, 파격적인 흥행을 기록한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드라마들로 연이은 흥행 가도를 이어갔다. <오징어 게임>의 경우 경제적 파급효과가 약 1조 원에 달 한다고 평가받고 있으며,1) 이러한 신드롬에 힘입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상인 에미상에서 비영어권 드라마로는 최초로 감독상, 남우 주연상을 비롯한 6관왕에 올랐다.2) 이 외에도 예능 <솔로지옥>이나 다큐멘터리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 같은 비드라마 장르의 콘텐츠도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나 세계적인 K-콘텐츠 열풍을 견인하고 있다.
세계 OTT 시장은 최근 3년간 매년 2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고, 향후 5년 동안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3) 국내 미디어 산업도 여기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으며, 지난해까지 넷플릭스의 국내 투자 규모가 약 1조 원에 달하고,4) 내년도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라인업 50편 중 K-콘텐츠가 12편에 달한다.5) 이 같은 글로벌 OTT의 한국 콘텐츠 투자 확대로 인해 웨이브,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등 국내 OTT들도 작년부터 향후 수년간 수천억에서 조 단위의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6)하는 등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례로, 2010년대 후반 국내 드라마 제작 편수는 감소세였지만,7) 2020년대 들어서는 2021년에 140편, 올해에는 160편이 제작될 정도로 콘텐츠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8)
OTT로 인한 K-콘텐츠의 인기와 글로벌 미디어 시장의 성장은 국내 방송영상콘텐츠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지며, 그 시발점인 기획개발 단계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매체가 늘어나며 좋은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OTT와 방송사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각 매체가 요구하는 콘텐츠의 종류도 매우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획개발 단계는 고품질 콘텐츠 개발의 기반이며 콘텐츠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중요성은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도 동의를 표하고 있다.9)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비해 국내의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기획개발 단계는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매몰비용 구간으로, 특히 중소제작사의 경우 여기에서 큰 재무적 어려움에 봉착한다. 제조업은 반도체와 배터리 같은 신성장·원천기술/국가전략기술 분야 연구개발(R&D)에 대해 다양하고 높은 비율의 세제 혜택을 받지만, 콘텐츠 분야는 연구개발에 대한 불명확한 개념으로 인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10) 게다가 기획개발 단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2022년 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 분야 예산을 기준으로 제작지원의 약 15% 수준에 그치고 있다.11) 창·제작자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 문제도 중요하다. 이는 기획개발의 경쟁력과 직결된 문제로 창·제작자 권리 보호가 법으로 도입되어 큰 성장을 이룬 영국의 사례가 이를 뒷받침 한다.12) 또한, 스튜디오에서 자체적으로 수익을 나누는 미국 사례처럼 민간에서도 상생차원에서 상호노력이 필요하므로 다각도의 논의가 요구된다.
이에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OTT 환경에서의 방송영상콘텐츠 기획개발 지원정책 개선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방송영상콘텐츠 산업의 연구개발에 해당하는 기획개발 단계의 개념을 정립해 세제 혜택 확대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고, 업계 의견수렴을 통해 실질적인 지원정책을 마련하고자 한다. 또한, 창·제작자와 방송사/OTT 간 IP 문제에 대해서도 K-콘텐츠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지속 가능한 생태계 마련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하고 있다.
본 고에서는 상기 연구내용 중 국내 방송영상콘텐츠 분야 중소제작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기획개발의 중요성과 산업적, 정책적 쟁점 사항에 대해 요약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설문은 2022년 11월 14일부터 12월 3일까지 20일에 걸쳐 총 234개 사(드라마 82개 사, 예능·교양 75개 사, 다큐멘터리 77개 사)를 대상으로 진행했으며, 이 중 총 161건(드라마 58건, 예능·교양 52건, 다큐멘터리 51건)의 응답 결과를 바탕으로 분석하였다. 참고로 본 연구에서는 문헌 연구와 국내·외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기획개발의 개념을 소재 발굴부터 편성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단계로 설정하였음을 밝혀둔다.13)
방송영상콘텐츠 제작단계를 ‘기획개발-프리프로덕션-프로덕션-포스트프로덕션’의 4단계로 구분하고, 이 중 기획개발 단계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모든 장르에서 기획개발 단계가 가장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다큐멘터리는 기획개발(47.1%)과 프로덕션(39.2%) 간 차이가 크지 않았다. 이는 국내 다큐멘터리가 저예산 휴먼 다큐 중심이라 비교적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드라마와 예능·교양 장르와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작단계 중 가장 중요한 단계를 알아보는 설문에서도 모든 장르에서 기획개발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와 그 중요성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다.
표 1. 장르/제작단계별 어려움 및 중요도
장르별 기획개발 소요 비용(평균값)의 경우 드라마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드라마는 장편과 단편/숏폼 간 제작비 규모의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통계의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구분해서 조사하였다. 장편 드라마의 경우 기획개발 비용만 약 2억 3,000만 원에 달해 중소제작사 입장에서는 기획개발 단계에서의 재정적 부담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표 2. 장르별 기획개발 소요 비용(평균값)
장르별 기획개발 소요 기간의 경우 장편 드라마는 평균적으로 약 1년 6개월가량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편/숏폼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는 약 8개월, 예능·교양은 이보다도 짧은 6개월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예능·교양의 기획개발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것은 트렌드에 민감하고 기획의 완성도보다 시의성이 중요한 장르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획개발에서 제작으로 이어지는 비율의 경우 장편 드라마와 예능·교양이 20%대를 기록한 반면 단편/숏폼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는 절반 수준으로 나타났다. 장편 드라마는 기획개발에 상당히 장시간이 소요됨은 물론 제작으로 이어지는 비율도 낮아 중소제작사의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표 3. 장르별 기획개발 소요 기간(평균값) 및
제작으로 이어지는 비율
장르 | 기획개발 소요 기간 | 제작으로 이어지는 비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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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장편 | 18.1개월 | 장편 | 28.9% |
단편/숏폼 | 8.3개월 | 단편/숏폼 | 56.1% | |
예능·교양 | 5.9개월 | 28.1% | ||
다큐멘터리 | 8.1개월 | 52.8% |
국내 방송영상콘텐츠 분야 중소제작사들이 기획개발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확보하는지 자금 조달 방안에 대해 조사를 진행해 보았다. 장르별 상위 3개 항목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모든 장르에서 공적 자금(정부/지자체/공공기관의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30%에 달하며 2위를 차지했다. 방송사나 OTT가 사전에 지급하는 경우는 드라마와 예능·교양이 20% 내외였으며 다큐멘터리는 8.7%에 불과했다. 이처럼 국내에서는 정부의 지원금이 중소제작사가 기획개발을 진행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표 4. 장르별 기획개발 자금 조달 방안 우선순위
장르 | 1순위 | 2순위 | 3순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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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비중 | 구분 | 비중 | 구분 | 비중 | |
드라마 | 자체보유 현금 | 44.6% | 정부/지자체/기관 지원금 | 23.2% | 방송사/OTT 사전지급 | 56.1% |
예능·교양 | 자체보유 현금 | 38.5% | 정부/지자체/기관 지원금 | 30.8% | 방송사/OTT 사전지급 | 23.2% |
다큐멘터리 | 회사채 발행 | 23.4% | 정부/지자체/기관 지원금 | 21.1% | 자체보유 현금 | 23.2% |
중소제작사들에게 필요한 지원정책의 중요도를 알아보기 위해 해당 정책 항목을 발굴해 항목별 우선순위에 대해서도 조사해 보았다.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선택된 여러 정책 항목 중 몇 가지를 추려 본고의 목적과 관련된 시사점을 확인해 보고자 했는데, ‘기획개발 지원금 수혜 규모 확대’와 ‘저작권법 개정’, ‘R&D 관련 세법 개정’ 항목이 그것이다. 설문 결과, 전반적으로 저작권법 개정에 대한 요구가 높아 IP 확보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지원금 수혜 규모 확대에 대한 응답률도 높아 기획개발 단계에서 공적자금 의존도가 높은 점을 다시금 확인 할 수 있었다. 반면, 연구개발 관련 세법 개정에 대해서는 드라마에서만 비교적 높은 응답률이 나왔는데, 이는 실제 중요도가 낮다기보다는 아직 연구개발 관련 세제 혜택에 대한 중소제작사들의 인식이 낮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디어미래연구소가 2021년 3월에 영상콘텐츠 사업체 30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콘텐츠 연구개발 세제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51.3%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표 5. 장르별 제작단계별 어려움 및 중요도
장르 | 기획개발 지원금 수혜 규모 확대 | 저작권법 개정 | R&D 관련 세법 개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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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중 | 중요도 | 비중 | 중요도 | 비중 | 중요도 | |
드라마 | 20.0% | 2위 | 21.8% | 1위 | 10.9% | 4위 |
예능·교양 | 7.7% | 5위 | 19.2% | 2위 | 1.9% | 9위 |
다큐멘터리 | 29.4% | 1위 | 9.8% | 3위 | 3.9% | 8위 |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를 종합해보면 방송영상콘텐츠를 만드는 데 있어 기획개발 단계가 상당히 중요하며, 국내에서는 이 단계에서 아직은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 경제에서 정부의 개입 당위성과 정도에 대해서는 언제나 갑론을박이 있다. 하지만, 미국 등 서구 문화권의 시장 지배력이 높았던 콘텐츠 산업에서, K-콘텐츠가 지금의 경쟁력을 가지게 된 데는 오랜 기간 콘텐츠 산업을 지원해온 정부의 기여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의 한류가 민간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경쟁해온 성과인 동시에 정부에서 추진한 다양한 정책적 지원도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14)
특히나, 창작자나 중소제작사에 있어 기획개발 단계는 보릿고개와 같아, 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건전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라도 정부의 지원은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본 연구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통해 국내 방송영상콘텐츠 기획개발의 활성화를 돕고 한국 콘텐츠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가질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되고자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한 보다 세부적인 내용과 지원정책에 대한 제언들은 2023년 1월에 발간될 <OTT 환경에서의 방송영상콘텐츠 기획개발 지원정책 개선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