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는 콘텐츠 속 세계관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고, 실감미디어는 그 세계관을 우리 앞에 생생하게 그려낸다.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스토리텔링은 새로운 미디어 소비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 고민의 결과물을 들여다본다.
2021년은 메타버스의 한 해였다. VR, NFT, 암호화폐 등 다양한 메타버스 관련 테마들이 주목받았고, 수많은 기업들이 메타버스라는 바다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빠르게 끓어올랐던 거품은 그만큼 빠른 속도로 꺼져만 갔다. 2021년을 메타버스의 시대라고 부르더니, 이제는 메타버스의 위기를 논하기도 한다. 메타버스는 정말 위기이고, 거품은 이미 사라져버린 걸까?
결론 먼저 말하면, 위기라고 하기엔 아직 메타버스는 제대로 시작도 안 한 단계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막 메타버스 세계에 진입하기 위한 기초적인 구상에 들어갔을 뿐이다. 모두가 동의하는 진정한 메타버스는 바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과 같은, 오감을 만족시키는 가상 세계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익숙하게 보던 메타버스의 모습을 상상한 대중들에게 현재의 메타버스 콘텐츠들은 만족도를 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영화와 같은 메타버스의 시대가 우리에게 찾아올 것은 분명하다.
먼 미래같이 느껴졌던 가상 현실 세계는 어느새 익숙한 개념이 되고 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한 장면.
출처: <레디 플레이어 원> 메인 예고편, Warner Bros.당장에 메타버스가 구현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메타버스 시대를 준비해야만 할까? 그것은 바로 콘텐츠다. 실제로 업계에서 메타버스의 완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콘텐츠의 확장’에 있다. 완전히 구현된 가상 세계는 콘텐츠 구현의 종착역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메타버스 시대로 나아가는 우리는 대중들에게 더욱 만족도 높은 콘텐츠 경험을 전달해야 하며, 좀 더 몰입도 높은 콘텐츠를 제공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유지되고, 관심 속에서 기술과 콘텐츠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실감미디어 분야는 메타버스의 원천기술이라 불리며 많은 관심 속에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실감미디어란 이름 그대로 실감기술을 활용, 보다 몰입도 높은 경험을 전달하는 디지털 콘텐츠를 의미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AR, 미디어파사드, 홀로그램 기술 등이 이에 속한다. 반드시 VR헤드셋과 같은 장비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가상 세계와 같은 높은 몰입도의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들이다. 실제로 우리는 일상 속에서 다양한 실감미디어를 경험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당시 경기장 바닥을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켰던 경우이다. 한정된 공간인 경기장 바닥이 프로젝터를 통해 눈밭으로 변하고,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뿐만 아니라 광화문 일대의 모습을 디지털 공간으로 변화시킨 초대형 프로젝트 ‘광화시대’를 통해서도 많은 국민들이 실감미디어의 모습을 경험하고 있으며, 디지털 기술을 통해 고인의 모습을 현실로 불러낸 다양한 콘텐츠들도 익숙하게 경험하고 있다. 이처럼 실감미디어 기술력은 다양한 대형 이벤트, 테마파크, 전시회 등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서고 있으며, 빠른 속도로 몰입의 정교함을 더해가고 있다.
‘신비아파트 미디어 어드벤처: 봉인된 퇴마서’ 포스터
출처: 닷밀글로벌 인기 애니메이션 <신비아파트>에서는 귀신들이 사는 아파트인 ‘신비아파트’를 배경으로 다양한 귀신들이 등장하고, 악귀들을 물리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는 ‘신비아파트 미디어 어드벤처’에 방문하는 관객들이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고, 이를 위해 관객들이 직접 퇴마사로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 표현 방식을 고민했다.
우선, 전시는 [대기–프리(pre) 쇼–메인 공간–포스트 쇼]라는 기승전결의 구조를 차용했다. 표를 끊고 입장을 기다리는 ‘대기’ 공간은 영화 미술팀과의 협업을 통해 애니메이션 속 신비아파트 입구를 그대로 재현했다. 관객들은 이곳에서, 콘텐츠 경험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다.
입장 후 처음 즐기는 콘텐츠인 ‘프리 쇼’는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분리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프리 쇼를 통해 관객들에게 주의사항과 미션을 전달하고, 드라마틱한 연출을 더해 공간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닷밀이 만든 디지털 테마파크인 ‘디피랑’과 ‘루나폴’에서도 각양각색의 프리 쇼를 만나볼 수 있다.
프리 쇼가 끝나고 메인 공간에 진입하면, 원작 신비아파트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다양한 귀신들을 직접 퇴마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도울 수 있는 퀴즈 북 『전설의 퇴마서』를 어린이 관람객 모두에게 제공, 단순히 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닌 직접 체험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메인 전시 공간에서는 테마파크라는 단어나 신비아파트 로고, 캐릭터 등신대와 같은 요소는 완벽히 배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관객들이 신비아파트 속에 들어와 있다는 몰입을 깨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설치물에 영상 기술을 통해 몰입감을 더하는 과정
출처: 닷밀자유롭게 관람하는 형태의 전시 공간과는 달리, 마지막 ‘포스트 쇼’에서는 어느 정도 강제성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퇴장하는 관객들에게 명확한 이야기의 끝을 이야기해주고, 여운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신비아파트 미디어 어드벤처’에서는 최종 보스인 ‘두억시니’와의 전투를 연출하고, 관객들이 주인공들과 힘을 합쳐 전투에서 승리하는 경험을 연출했다. 이 전시에서는 최신 실감미디어 기술력이 다수 활용되었지만, 가장 먼저 고민하고 중요시했던 부분은 이야기로 들어가는 입구와 본격적인 체험, 그리고 여운을 남기며 이야기에서 빠져나오는 구조를 통해 콘텐츠 속 세계관에 몰입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더불어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할 것이냐’가 이 구조의 핵심이었다. 메타버스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의 미션은, 완전한 몰입을 위한 문법을 완성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