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다큐멘터리가 해외 시장에서도 소비되며 K-다큐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본과 파급력을 지닌 플랫폼을 통해 K-다큐는 국경을 넘어 더 멀리 뻗어갈 수 있을까?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다큐멘터리의 위치를 알아보고 앞으로의 전망을 내다본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의 시기는 대한민국 역사상 ‘K’라는 알파벳이 가장 많이 쓰인 시기가 아닐까 싶다. 가장 최근 소식으로는 <오징어 게임>(넷플릭스)의 에미상 수상 소식이 있었다. 에미상은 미국 텔레비전 최고의 상이라고 불린다.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성공, 더 정확하게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자랑하는 미국의 인정으로 인해 국내 콘텐츠 시장 종사자들 사이에서의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이렇듯 K-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지만 대중의 관심과는 조금 먼 장르가 있다. 바로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극장 관객 1만 명만 모객해도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런 기류가 최근 들어 조금씩 바뀌고 있다. 공영방송에서 제작되던 시사, 휴먼, 자연 다큐에 익숙해진 한국 관객들이 넷플릭스형 다큐를 접하면서 시야를 넓히기 시작했다.
실제로 국내 감독이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가 2021년과 2022년 각각 한 편씩 공개됐다. 2021년 4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는 다큐 부문 최다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진모영 감독이 제작하고 김선아 PD가 프로듀싱했다. 일 년 뒤인 2022년 4월에 넷플릭스 공개된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영화 <저수지 게임>, <더 플랜> 등을 극장 개봉한 최진성 감독이 연출했다.
업계에 알려진 바로는, 넷플릭스는 2021년 시작된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를 필두로 매해 2편에서 4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을 목표로 두고 있다고 한다. 장르를 불문하고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국내 다큐 산업의 규모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넷플릭스에서 다큐 한 작품에 투자하는 규모가 KBS의 한 해 다큐 제작 예산을 웃돈다고 한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6개국 시리즈로 확장된 다큐멘터리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
출처: 넷플릭스국내 다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지역에 따른 콘텐츠 프랜차이즈를 염두에 두고 있다. <종이의 집>(넷플릭스)이 여러 나라에서 리메이크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도 지역에 따라 프랜차이즈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프랜차이즈를 처음 시도해 보기에 좋은 콘텐츠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성비가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다른 의미로 한국 창작자들이 저임금노동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 NHK, 노르웨이 NRK, 미국 ITVS와 공동제작한 영화 <내일도 꼭, 엉클조>를 연출한 최우영 감독은 한국 다큐멘터리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시점을 2010년 초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한국 작품이 수상을 거머쥐며 국제무대에 진출하게 된 시점이 이때이다. 암스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춘희막이>, <달팽이의 별>을 비롯해 <논픽션 다이어리>, <철의 꿈> 등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2020년에는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단편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이 <기생충>과 같은 해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됐다. 최우영 감독은 <부재의 기억>의 오스카 노미네이트 이후 북미 창작자들과 국내 창작자들의 연결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영화 <철수에게 자유를>은 재미교포 하줄리, 이성민 감독의 작품으로 한국이 공동제작 파트너다. 이 작품은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되었다. 이뿐 아니다. 영화 <백남준: 전자 초고속도로 위의 예술가>도 미국과 공동 제작 중에 있다. 재미교포인 아만다 나정 김 감독은 백남준 작가의 마지막 조수이기도 하다. 한국 제작사 SEESAW 픽처스와 함께 작업 중이다.
<내일도 꼭, 엉클조>의 최우영 감독과 인터뷰를 진행하여 K-다큐멘터리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식스틴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한국 작품에 관심이 특별히 늘었다고 볼 수 있나?
최우영 감독
과거에는 ‘차이나 프리미엄’이라고 해서 중국 작품들이 많이 선택받았다. 북미와 유럽에서 중국과 한국이 비슷한 이야기를 가지고 경쟁했을 때 투자가 중국 쪽으로 실렸던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최근 국제 정세와 중국 내 검열 문제가 심해지면서 다큐 시장 내에서 어떤 진공 상태가 생겼고, 이에 한국 작품들이 많은 선택을 받게 됐다. 물론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이 알려지며 한국이 질 좋은 콘텐츠 시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어필되기도 한다.
식스틴
글로벌 OTT가 국내에 진출하는 등 다큐 시장에 투자되는 비용이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OTT의 국내 시장 진입 후 국내 다큐 시장에는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
최우영 감독
절대비용은 늘었다고 볼 수 있다. OTT에서 투자하는 금액은 과거에 들어본 적 없는 큰 금액이다. 이런 흐름이 기존 시장에 영향을 준다. 지상파 방송국의 전형적인 휴먼 다큐멘터리를 주로 접했던 시청자들이지만 이제는 콘텐츠를 보는 수준이 높아졌고 소비 패턴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다큐에 무조건 내레이션을 깔았다면 이제는 지상파 다큐멘터리도 어느 정도 퀄리티가 올라가면 내레이션을 빼기도 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한다.
식스틴
글로벌 OTT 진출로 인해 우려되는 점은 없을까?
최우영 감독
다큐의 경우 지상파들의 독점 계약을 통한 매절 계약 형태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전부 글로벌 OTT로 쏠림 현상이 일어났다. 똑같은 계약이지만 지상파에 비해 10배는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하는데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계약 과정에서 묻고 따지고 하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간편한 계약 시스템에 대해 해외에서 국제 공동제작을 해본 사람들은 문제의식을 가진다. 여러 나라가 개입되어 있는 국제 공동제작의 경우 개별 협상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사소한 것들이 매우 중요하다. 기준이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단위의 계약도 적어도 6개월은 걸린다. 넷플릭스 한국지사가 생기면서 내부 인력이 전부 한국 미디어 산업에 종사하셨던 분들이어서 이런 과정을 건너뛰거나 중요도가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넷플릭스도 한국에서는 한국의 관행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해외 콘텐츠 시장은 제작사가 굉장히 중요하고, 감독은 고용되는 형태이다. 제작 중간에 감독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OTT로 들어가면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상태에서 작업에 임해야하는 지점이 있다.
식스틴
2020년 이승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부재의 기억>이 오스카에 노미네이션됐다. 국제 공동제작 작품으로는 어마어마한 성과였다.
최우영 감독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과 같은 해에 일어난 일이라 주목이 좀 덜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찌됐든 한국 다큐에 큰 자산으로 남았다. 한국 다큐가 상업적이든 비상업적이든 미국 시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원리를 경험하고 온 것이다. 2016년 미국 필드오브비전(Field of Vision)에서 이승준 감독에게 먼저 연락이 왔고, 탄핵과 관련된 이슈로 다큐를 만들자는 제안에서 세월호 사건을 다루는 쪽으로 역제안했다. 그렇게 필드오브비전과 한국의 시민방송(RTV)이 투자했다. 그렇게 해외에서는 30분 미만의 단편으로, 한국에서는 한 시간으로 편집해 방영됐다.
식스틴
넷플릭스가 특별히 선호하는 장르가 있나?
최우영 감독
크라임, 레볼루션, 언더독, 에버그린 장르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소재로 제작된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가 크라임 장르에 해당한다. 홍콩의 우산혁명을 다룬 다큐 <우산 혁명: 소년 vs. 제국>이 레볼루션 장르이고, 언더독 장르는 사회의 다크호스들을 다룬다. 에버그린은 말 그대로 시의성을 타지 않고 꾸준히 사람들이 시청하는 콘텐츠를 의미한다. 결국은 OTT들이 자극적인 것을 쫓는다는 문제적인 측면도 있다.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
출처: 넷플릭스우리가 K-다큐멘터리에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이 아시아 다큐멘터리 산업의 허브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방송국을 중심으로 제작됐던 다큐 산업이 2010년도를 기점으로 국내로 역수출되기 시작하며 국내 다큐 산업도 국제적 기준에 맞추기 시작했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전주국제영화제 등의 영화제들이 다큐를 발굴하고 피칭(제작비를 펀딩하기 위한 발표 세션) 제도를 도입했다. 펀딩 규모도 매년 늘고 있으며 아시아 창작자를 대상으로 한 펀딩도 마련되어 있다. 이제는 한국 프로듀서들이 인도, 필리핀 등 아시아 창작자들의 작품을 발굴하고 국제 공동제작을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냥 밝은 전망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해외 자본이 국내에 유입되면서 창작자의 양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30~40억 규모의 제작비가 한두 작품에 투자되면서 작품의 질적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고 이에 따라 남은 창작자들은 소외될 것이라는 우려다. 또한 아직 국제 공동제작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양한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창작자 권리가 침해될 것이라는 우려 또한 존재한다. 산업이 팽창하고 있는 지금이 바로 앞으로 발생할 리스크를 꼼꼼히 확인해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