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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wave 1

영상 비즈니스의
오랜 관행을 바꾸다

‘써폿’ 김현진 대표 인터뷰

글. 조영신(SK브로드밴드 경영전략그룹장)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이렇게 자세를 잡으면 될까요?”
광고쟁이로 수십 년간 타인의 자세를 잡아주고 화면을 보았다더니, 직접 카메라 앵글의 피사체가 되자 어색해 어쩔 줄 모른다. 그게 신기했던지, 촬영 장소로 하나둘씩 직원들이 모여든다. “좀 웃으세요.” 선반에서 야근용 즉석 라면을 꺼내 들면서 A는 한마디 거든다. 여기저기서 키득댄다. 써폿의 김현진 대표도 머쓱한지 “야근하니?” 말을 보탠다. 대표나 사장이란 표현보다는 형·동생이 훨씬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영상 인력 시장의 불일치를 맞추는 서비스

미디어 특히 영상 시장은 대개 그랬다. 조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라치면 다 형·동생이었다. 그 밥에 그 나물일 정도로 작은 시장 규모 탓이기도 하지만 단체 작업의 특성상 형·동생이 되지 못하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관계가 중요하다. 이런 시장에서는 요소로서의 인력 시장이 독립되어 발전하지 못한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친구라도 포트폴리오만을 보고 고용해서 일을 맡길 수 있어야 하지만, 이 판은 겪어본 사람들이 먼저다. 이게 역설적으로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길이었다. 괜히 애매한 사람을 소개받아 일을 하다가는 손발이 머리를 쥐고 흔드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오늘 만난 김현진 대표는 이러한 관행을 전복하려고 한다. 귀한 시도라 ‘전복’이란 도발적인 표현을 썼지만, 요즘식으로 표현하자면 ‘요소 시장의 디지털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영상시장에서 인력 유통은 자기와 작업을 했던 사람을 주로 쓰거나 그게 힘들다 싶으면 ‘지인 찬스’를 쓰죠. 그렇게 못 할 경우에는 경력을 물어본 뒤에 채용을 하는데, 이 대목에서 종종 에러가 발생해요. 드라마 촬영팀으로 일을 했다고 해서 채용했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전문성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난감하죠.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이 더 필요해지니 더더욱 그래요. 이런 일을 한두 번 겪다 보면 다시 자기와 작업을 했던 사람을 찾게 되는 거죠.”

영상 인력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는 시장 중 하나다. 단순히 숫자로만 본다면 수요보다 공급이 넘친다. 이런저런 경력을 가지고 시장에 진입하는 신입은 많다. 졸업생이나 여러 기관에서 수료를 한 이들이 넘쳐난다. 수료를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자가 학습을 통해 영상을 만들어 유통해 본 이들도 많다. 그럼에도 이들이 시장에서 선발되고 자리를 얻게 되는 경우는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이 조금 변화하기 시작했다. 텍스트를 거부하고 영상을 선호하는 세대가 등장하니 웬만한 것들은 영상 제작이 필수다. 단순히 OTT가 늘어나서 총 영상 제작물이 늘었다는 것을 넘어서 공기관 민간기관 할 것 없이 뭘 좀 하겠다고 하면 다 영상물을 제작해야 한다. 수요 폭발인 상황에서 경험과 지인찬스만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광고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김현진 대표는 이 상황을 기회로 봤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시스템으로 잡아낼 수 있다면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수일이 걸리는 드라마나 영화 촬영과는 달리 광고 촬영은 하루 이틀에 마무리되는 작업이다. 오늘 급하게 사람을 모아서 상황을 정리하고 촬영하고 다시 해산하는 일련의 작업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영상 수요가 폭발한 상황에서 오늘 같이 일한 사람을 다음에 또 보려고 해도 그 사람은 다른 작업에 붙들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함께 작업할 스태프를 수소문하는 것이 늘 힘든 일이다.

“스태프 한 명 찾는데 감독이나 조감독이 못해도 20통 이상 전화를 해야 할 거예요. 일정이 안 맞으면 다른 사람 소개받아야 되고 친구, 후배 할 것 없이 끌어들이고 커뮤니티에 글도 남기고 하거든요. 지금 써폿에서는 그 과정을 5분 내에 끝낼 수 있어요. 우리 서비스에 들어와서 어떤 프로젝트고, 제작사가 누구고, 스태프 몇 명이 필요하고, 필요한 용품이 뭔지를 클릭 몇 번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자주 이용하시는 분들은 1~2분 만에 끝내기도 해요.”

매뉴얼로 일하니 대우가 달라졌다

모든 사업이 그렇듯 아이디어만 있다고 가능하지는 않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해야 한다. 구직자는 양질의 일감을 찾고자 할 것이고, 구인자는 경험 많은 양질의 인력을 원한다. 사람과 직업을 매칭해 주는 일은 쉽지만 ‘원하는 것’의 질량이 다른 두 집단의 요구 조건을 맞추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고 당장 채용 사이트처럼 앱을 만들고 홈페이지를 만든다고 시장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마중물이 필요했다. 지금에야 디지털을 이야기하지만 시작은 아날로그였다.

“플랫폼을 만들기는 막막하더라고요. 기술을 아는 것도 아니고, 당장 개발자를 구해서 뭘 만들자고 하기에도 막막했어요. 그보다는 일 좀 한다는 친구들을 채용했어요. 촬영 장비도 구입했고, 촬영 차량도 구입했어요. 무슨 촬영을 한다고 하면 일종의 패키지처럼 제공할 수 있도록 준비한 거죠.”

10여 명으로 시작했다. 광고판에서 잔뼈가 굵었으니, 광고 제작자가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것부터 했다. 갑자기 광고를 촬영하는 회사에서 드론이 필요하고, 행사 진행 요원이 필요하고, 조연출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오면 그 요구 조건에 맞추어 직원을 준비시켜 보냈다고 한다. 밸류 체인의 끝단에서 요소 사업을 한 셈이다. 다만 막연히 요소 대행업만으로 수지를 맞추고 싶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 지인들의 도움이 있어 처음부터 적자 없이 운영을 할 수는 있었으나, 이는 장사지 사업은 아니었다. 사람을 보내고 장비를 보내는 일련의 과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뉴얼, 일종의 루틴을 정리했다.

“저희 SWAT처럼 입고 다녀요. 연출팀인데 그걸 했어요. 유니폼 뒤에 ‘연출팀’이라고 크게 새겨 넣고 일을 했더니, 이제 이 유니폼만 입고 가도 사람들이 알아봐요. 써폿에서 온 팀이라고 말이죠. 유니폼 하나가 체계적으로 일을하는 사람들이라는 확신을 보태준다는 거죠.”

기존에는 영상 관련 현장 인력들이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스스로 허드렛일을 한다고 생각했고, 남들도 허드렛일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곤 하지만 스태프에게 ‘야’나 ‘어이’라고 부르면서 ‘이거 저기 갖다 놔’하는 식으로 대접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래서는 대접받을 수도 없고, 대접을 받지 못하면 구직자가 몰려들 수도 없다. 그런데 유니폼을 입고 모자를 쓰고 나타나니 뭔가 있어 보였다. 있어 보이니 하대가 줄었다. 세세한 것들을 매뉴얼로 만들었다.

“어느 날 미용실에 갔는데, 한 방 맞은 기분이었어요. 보통 미용실에 가면 1시간, 2시간 코스가 있잖아요. 그 코스가 꽉 짜여 있는 거예요. 손님이 오면 인사하고, 선생님이 머리를 만지고, 머리를 감기고, 드라이를 하고, 중간에 마실 것을 갖다주고 등등…. 코스가 촘촘히 루틴으로 구성되어 있더라고요.”

정해진 약속 장소에 20분 먼저 도착하는 것을 시작으로, 도착 후 루틴을 세팅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하루의 일정과 할 일을 브리핑하고, 브리핑한 일에 대해서 숙지 여부를 확인했다. 단순해 보이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되, 그 인사법도 매뉴얼화 했다. 각각의 상황이 다른 만큼 그때그때 추가할 것들이 생기지만 거기에 맞추어 루틴을 재정리했다. 써폿을 통해서 사람을 구한 이들은 흔히 접하는 풍경이다.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자 ‘야’가 줄었다. 시간이 쌓이면서 써폿의 유니폼을 입은 친구들을 대하는 자세가 좋아지는 것이 보였다. 동등한 동료로서 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구직자들 사이에서 써폿을 통해 구직을 하면 대접이 다르다는 말이 조금씩 돌기 시작했다. 어떤 제작사의 대우가 좋지 못한지 등이 기록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구직자들이 가고 싶어 하는 업체와 피하는 업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작사들로서도 처우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게 된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데이터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정량적 평가로 정확한 매칭 가능해

매뉴얼이 만들어지고 기록, 정리되기 시작하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작사에 대한 스태프들의 정량화된 평가가 마치 ESG 지표처럼 제작사를 평가하는 지표로 활용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뿐만 아니다. 더불어 스태프 개개인의 평가도 쌓이기 시작했다.

한 달 뒤 진행할 촬영을 위해 필요한 스태프 8명을 뽑는다고 상상해 보자. 플랫폼에 요구 조건을 올리고 필요 인원을 입력하면 얼마 되지 않아서 한 명씩 지원자가 모인다. 지원서를 보면 개별 스태프들의 종합 점수가 뜬다. 어떤 특징이 있고, 누구랑 작업을 했고, 어떤 드라마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가 나온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동료들의 평가가 기록되어 있고, 심지어 그동안 얼마의 수익을 벌었는지 등의 정보가 나온다. 이를 보고 제작사는 상대적으로 자기와 궁합이 맞는 스태프를 선발할 수 있게 되었다. 투수의 성적이 공개되듯이, 스태프 개개인이 쌓은 기록을 보면서 누구를 선택할 수 있을지를 고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데이터를 통해 적합한 인력을 매칭할 수 있는 써폿의 시스템

인력 매칭의 관점에서 보면 갈 길은 멀지만 가능성이 보인다. 국내에 존재하는 모든 채용 사이트는 나름의 매칭 노하우를 제공하고 있긴 하지만 정량화에는 대부분 실패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직업이나 경력 등으로는 지원자의 스킬 셋(skill set)을 명확히 판단하기가 어렵다. 고임금 직종은 헤드헌터에 의존하거나 지인 그룹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가능한 영역이 IT 등 개발 인력이었다. 개발은 특성상 어떤 코드를 무슨 언어를 사용해서 작성을 하는지, 특정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정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 마케팅 직군 등의 구인자와 구직자는 단순히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했는지를 확인할 뿐 실제로 그 과정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를 정량화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써폿은 동료평가와 업무를 세분화함으로써 어느 정도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은 먼 길입니다. 머릿속으로야 AI가 수요와 공급을 100% 완벽하게 매칭할 수 있었으면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다만 엑셀 파일에 수작업하면서 진행했던 것에 비하면 정량화하는 대목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판단의 자료가 풍성해지고 있다는 점은 자랑할 만합니다.”

디지털 전환으로 시장의 효율성 개선에 기여

작업 관행이 개선되고,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마중물이 필요 없는 시장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써폿에 자신의 프로필을 올리는 구직자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써폿을 통해서 연출 스태프를 찾는 제작사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등록된 구직자는 1,000명을 넘어섰고, 항시적으로 이용하는 제작사의 숫자도 100군데가 넘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소위 재구매율이라고 할 수 있는 재방문율(Retention Rate)이 50%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 구직 구인을 넘어서 이 서비스를 이용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다.

“매칭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더 많은 제작사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더 많은 재능 있는 인력들이 들어와야 해요.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건 시장의 불편함을 기술로 개선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거죠. 그래야 이 시스템을 이용할 테니까요.”

‘타임 카드’가 이런 예다. 일종의 근무 기록인 셈인데, 스태프들이 어디서 몇 시에 일을 했는지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연출 보조를 위해서 200명이 필요해서 고용했다고 치면, 처음 시작할 때야 200명을 모아서 머리 숫자라도 카운트하겠지만, 그 각각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를 체크하는 건 비효율적이잖아요. 이를 기술이 대신해 주는 거죠. 그럼 다음에는 가장 효율적인 인원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거예요. 단순히 사람과 일을 연결하는 작업이 아니라 영상 시장을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시장으로 만드는 데 써폿이 기여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올인원 프로덕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써폿의 김현진입니다.”

손 인사를 나눌 때 했던 소개말이 이제야 실감 났다. 그리고 스스로 ‘사업을 모른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해결해야 하는 일을 먼저 생각하고 움직였다면 시작할 수 없었다는 말로 들렸다. 처음부터 사업을 크게 상상하고 움직였더라면 감히 시작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는 자평이기도 했다.

써폿의 김현진 대표는 방송 요소 시장을 디지털화해서 보다 체계적인 요소 시장으로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동안의 쌓은 공력과 투자한 시간이 이 발언에 무게를 싣는다. ‘올인원 프로덕션서비스’ 써폿이 가져올 방송시장의 변화를 기대해 볼 만 하지 않을까.

  • 필자 소개_ 조영신

    SK경영경제연구소에서 수년 동안 미디어 시장을 연구하다가, 2019년부터 현업에서 미디어사업의 실행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