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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3

대한민국 희극인들을 품은
유튜브

글. 조서윤(예능 PD)

유튜브라는 플랫폼은 본인만의 콘텐츠를 만들고자 하는 모두에게 기회의 땅이 되어 주었다. 그중에서도 코미디언들은 자유로운 제작 환경과 제약 없는 형식 속에서 끼와 재능을 맘껏 펼치며 주목받고있다. 독자적인 캐릭터로 개성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나가는 코미디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방송에서 유튜브로 건너간 코미디

코미디 PD를 꿈꾸며 1993년 MBC에 입사한 후, 수많은 코미디언들과 작업을 했고 지금도 꾸준히 협업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30년 가까이 그들 개인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는 특수한 환경을 부여받았던 셈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을 보며 느꼈던 개인적 감정 중 가장 큰 것이 ‘애잔함’과 ‘짠함’이었다고 한다면 아이러니로 들릴지도 모른다. 조금 올드한 표현이지만 업계에서 그들을 일컫는 희극인(喜劇人)이라는 호칭으로 보면 ‘웃음’을 도구로 생업을 이어가는 연예인 집단인데, 애잔함과 짠함이라니?

올드미디어들이 시장을 독점 지배하고 인터넷과 SNS 플랫폼이 거의 없던 시절, 그들은 가수, 배우 등 타 연예인군에 비해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 수도 적은데다, 출연료와 행사비에서도 상대적으로 나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언제 프로그램이 없어질까, 언제 퇴출될까 항상 조바심을 냈던 과거의 그들을 생각하면 애잔함과 짠함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했던 것이다.

각종 소셜미디어와 유튜브가 국내에서 본격적인 인기를 끌기 전인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이들이 생계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지상파나 종편 등 TV 플랫폼 제작자들의 선택과 부름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레거시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이들의 의존도는 매우 높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도 아이디어와 끼가 넘치는 코미디언들이었지만 제작진의 입김, 서열이 중시되는 선후배 문화 속에서 본인들의 아이디어가 100% 발현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었는데, KBS, SBS의 경우 희극인들이 직접 코너의 기획, 구성,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전통이 강한 반면, MBC의 경우는 PD, 작가 등 제작진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희극인들의 역할은 제작진이 만든 대본에 애드립을 넣어 대본을 업그레이드하는 정도였다. 결국, 본인의 콘텐츠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청률에 매우 민감한 방송사들이 여러 원인을 들어 희극인실을 없애고 공채 코미디언 모집을 중단함과 동시에, <개그콘서트>(KBS2), <웃찾사>(SBS) 등 코미디 전문 프로그램을 모두 폐지하는 상황까지 겹치면서 졸지에 수많은 이들이 실직자가 됐다.

<개그콘서트> 폐지 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코미디언들

출처: TBC Voyage 유튜브 채널

이들에게 구세주처럼 나타난 것이 바로 유튜브였다. 물론 아프리카TV 등 실시간 방송을 통해 ‘개인 방송’이라는 개념이 이미 자리 잡고는 있었지만, 갈 곳 잃은 희극인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활동의 장을 본격적으로 열어 준 것은 유튜브였다.

개인적으로 개그맨들이 유튜브에 진출해 엄청난 인기와 수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웃찾사> 출신의 한으뜸, 장다운이 진행하는 ‘흔한 남매’였다. 이 듀오는 2년 만에 1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했다. 지금은 240만 명에 육박하는 구독자 수를 자랑하며 도서 출판, 음원 공개, 애니메이션 론칭 등의 쾌거를 이뤄내며 어린이 구독자들에게도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됐다. 역설적으로 TV 프로그램의 폐지가 스타 유튜버를 만들어 준 셈이다. 모두 열거하긴 힘들지만, 김원훈(숏박스), 김대희(꼰대희), 김민경(민경장군), 박미선(미선임파서블) 등 많은 희극인들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수익과 화제성은 물론 불확실하던 고용의 안정성까지 얻고 있다.

‘내 콘텐츠’ 하며 재능 맘껏 펼칠 수 있게 돼

본 기사의 의뢰를 받고, 여러 코미디언들과 직접 인터뷰를 통해 희극인들이 유튜브로 건너간 배경과 장단점 그리고 향후 비전을 들어 보았다.

인터뷰 결과 코미디언들이 유튜브로 진출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은 것은 ‘본인의 콘텐츠’를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수익원의 다양화와 고용 안정성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다른 결과였다. 제작진의 관여와 지시가 아닌 본인들이 직접 기획, 구성, 연출, 출연하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유튜브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것이다.

유튜브의 경우 트렌드가 매우 빨리 변화하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지속적인 구독자 수와 수익 확보가 가능하다. 누구보다도 특이한 발상과 끼, 에너지가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고, 장시간의 아이디어 회의에 고도의 훈련이 되어 있는 희극인이야말로 이러한 플랫폼 성격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이 자체 분석이었다. 유튜브의 경우 일반 방송과는 달리 촬영기법이나 후반작업의 완성도에 너무 집착할 필요 없이 저예산으로도 제작이 가능하며, 출연자 본인의 기그(GIG)1)와 캐릭터에 의존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원맨쇼가 가능한 이들의 특성도 유튜브와 그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강화해 주었다. 더구나 지상파 방송에서 수년간 단련된 이들의 경우 소재 선정과 구성, 촬영에 있어서도 깜짝 카메라, 페이크 다큐, 재연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제작할 역량을 갖추고 있기에 두각을 보이기에 유리하다.

페이크 다큐, 콩트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는 코미디언들의 유튜브 채널

이러한 특성은 갓 데뷔하는 신인들에게도 유효한 요소로 작용한다. 유튜브가 데뷔 초기 시점의 희극인에게 큰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콘텐츠를 활용하여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프로모션에도 유튜브를 적극 활용하는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988년부터 활동해온 중견 여성 코미디언의 경우, 국내 유수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MC로 맹활약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의 콘텐츠가 아닌 본인의 콘텐츠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점을 유튜브의 가장 큰 매력으로 보아 개인 유튜브를 시작했고 현재 5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다만 새로운 내용을 계속 개발해야 하는 플랫폼 특성상 소재, 구성, 기획에 대한 접근이 점차 일반 방송물과 비슷하게 변하고 있어 초창기에 비해 큰 재미를 못 느끼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희극인들이 유튜브로 진출하는 두 번째 이유는 수익의 다양화와 고용의 안정성이었다. ‘흔한 남매’처럼 고정 프로그램이 폐지되면서 생계를 고민하다가 뜻밖의 흥행이 터진 경우도 있고, 방송업 특히 예능 분야는 특성상 평생 직장, 고정 직장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본인의 활동 영역을 미리 넓혀 놓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인기 코미디언들만의 전략은 아니다. 방송 활동이 꾸준한 베테랑 출연자들, 예를 들면 박명수, 지상렬, 박미선, 김준호 등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전략이다. 결국 유튜브는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 불문율로 전해 내려오는 명제인 ‘출연자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의 검증대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개인 유튜브를 운영하여 많은 덕을 보고 있는 코미디언들을 지켜보면서 과거 이들에 대해 느끼던 애잔함, 짠함의 감정이 점점 희석되고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회의 땅’

한편 이들은 유튜브 세계로 뛰어든 이후의 어려움과 딜레마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먼저, 전문 희극인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가 유튜브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는 것이다. 유튜브는 출연자 본인의 개인기와 재능 하나로 전체 콘텐츠를 이끌어가야 하는, 난이도가 매우 높은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취약한 출연자의 경우 아무리 전문 방송인 출신이라 해도 구독자와 조회수 확보에 실패하고, 낙담을 하기도 한다.

아울러 카메라 감독 등 전문 스태프를 고용해서 제작하는 경우, 초기에는 적자 상태를 감수하고 버티며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런 부담을 최소화하려면 본인이 직접 촬영, 편집을 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려면 전업 수준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므로 유튜브 운영이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에 코미디 유튜브 전문 채널을 개설, 사업화 하려 한다며 지망생들을 발굴하고 투자를 요구한 뒤 채널을 키운 후에 출연자를 배신하고 채널까지 빼앗는 이들도 있다. 이 때문에 빚더미에 앉는 코미디언도 종종 발생하고 있는것 또한 현실이다.

전문 희극인 출신들은 ‘유튜버’라는 타이틀에 대해 뿌리 깊은 편견이 남아 있기도 하다. 유튜브가 많은 희극인들에게 기회를 준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하더라도 본인이 연예인이냐 유튜버냐 하는, 정체성에 관한 물음을 들을 때에는 둘 사이에 명확한 선 긋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꿈은 유튜버로 남는 것이 아니다. 유튜브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전통 미디어인 TV에 출연하여 보다 폭넓은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하고 더 넓은 영역에서 정체성을 각인 받고 싶어 한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연예인이 유튜버가 될 수는 있지만 일반 유튜버가 연예인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는 확률적 경험이 있고, 코미디언 스스로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자존심이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위와 같은 선긋기에도 불구하고 희극인들의 유튜브 진출은 어떤 연예인군보다 계속 확장, 진행되어 나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터뷰를 진행한 희극인들과 매니지먼트 관계자들 모두, 앞으로도 유튜브를 최고의 사이드 허슬(Side Hustle)2)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 믿음이 실현될 거라 믿는다. 예능 제작 PD로서도 희극인들을 품어준 유튜브가 더욱 확장되고 엔터테인먼트의 주요 무대 중 하나로 잘 활용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 필자 소개_ 조서윤

    1993년부터 현재까지 MBC, YG 등에서 예능 제작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쇼 러너(showrunner)이며 티캐스트 E채널 노동조합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