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의 절대적인 수가 늘어나는 만큼 이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는 드라마 <블랙의 신부>의 마케팅 창구로 TV 홈쇼핑을 선택했다. 경계를 지워가며 협업하고 있는 영상콘텐츠와 커머스의 만남을 들여다본다.
김희선이 홈쇼핑에 출연했다면, 여러분 과연 믿으실까요?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지난 7월 13일, 홈쇼핑 GS샵에 김희선뿐 아니라 이현욱, 정유진, 박훈, 차지연 등 총 5명의 배우들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는데요. 바로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의 신부>를 홍보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겁니다.
사랑이 아닌 조건을 거래하는 상류층 결혼정보회사를 배경으로, 복수와 욕망의 스캔들을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의 신부>는 배우 김희선이 선택한 첫 번째 넷플릭스 시리즈로도 주목받았는데요. 홈쇼핑을 주요 매체로 선택해 홍보에 나서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겁니다. 이날 진행된 방송에서는 넷플릭스 이용권이나 굿즈 등을 판매하는 형태의 세일즈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홈쇼핑 상품 판매 형식을 빌려, 드라마의 전체적인 줄거리와 캐릭터에 대한 소개를 이어가며 순수하게 드라마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30분을 꾸몄고, 방송 중 실시간 채팅에 참여한 고객 중 추첨을 통해 경품을 지급하는 행사도 같이 진행하는 등 시청자와 활발한 소통을 이어갔습니다.
홈쇼핑을 통해 홍보에 나선 드라마 <블랙의 신부>
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공식 유튜브 채널넷플릭스가 해당 시간대 프로그램에서 발생할 만한 매출을 감안해 적절한 광고비를 지급했다고 알려지기는 했습니다만, 홈쇼핑인 GS샵 입장에서는 사실 손해를 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고정적으로 상품 구매를 하러 찾아오는 기존 고객을 잃을 수도 있고, 마케팅 측면에서도 화제가 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넷플릭스 입장에서도 수많은 채널 중 굳이 홈쇼핑을 선택해 마케팅하는 것 역시도 부담되는 상황이었겠죠. 다행히 이 마케팅은 성공했습니다. 해당 방송은 총 1만 9,242가구가 시청해 전주 같은 시간대 GS샵 방송 프로그램 시청가구 수 대비 63%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GS샵의 주력 프로그램 <쇼미더트렌드>보다도 47% 많은 수치였죠. 방송 시간대 실시간 채팅 수는 2만 건을 돌파하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이 몰렸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최근 이처럼 콘텐츠를 홍보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커머스에 눈을 돌리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OTT 플랫폼뿐 아니라,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들이 새로운 홍보의 장으로 커머스에 앞다퉈 뛰어드는 추세입니다. 네이버는 ‘컴백Show핑라이브’라는 이름으로 아이브(IVE), 업텐션, 이진혁 등의 컴백 쇼케이스를 여러 차례 치러내면서 MZ세대 사이에서 ‘아이돌 컴백 맛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보통 글로벌 스타 라이브 방송 플랫폼 V 라이브와 네이버 쇼핑라이브를 통해 동시에 스트리밍되는 형태로 운영되며, 네이버 쇼핑라이브를 통해서는 실시간으로 앨범을 선주문하거나, 한정판 굿즈를 구매할 수 있는 혜택을 주는 등 시청자들을 위한 특별한 혜택을 제공 합니다.
네이버는 자사 라이브커머스 방송 시청 후 상품을 구매하는 이용자에게 다양한 혜택을 증정한다.
출처: 네이버 쇼핑라이브영화업계도 커머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요. 최동훈 감독이 연출하고 류준열, 김우빈, 김태리, 소지섭, 염정아 등 화려한 배우진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던 <외계+인 1부> 개봉 당시 CGV는 네이버 쇼핑라이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실시간 방송을 통해 영화 관람권 판매는 물론, 실시간 접속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는 등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통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CGV는 2020년 첫 방송 이후 ‘주간 박스오피스 라이브’라는 이름으로 네이버에서 라이브 방송을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콘텐츠 사업자들이 커머스로 눈을 돌리게 된 건 커머스 채널이 상품에 대한 주목도가 높고 적극적인 홍보를 할 수 있는 만큼, 자연스러운 콘텐츠 소비 또는 관련 상품 판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 효과는 앞서 설명했던 홈쇼핑, 라이브커머스 등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방송을 통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처럼 순수하게 프로그램 홍보만 할 수도 있지만, 앞서 소개해드린 다양한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이용권, 관람권 판매뿐 아니라 관련 굿즈 판매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라이브커머스의 강점입니다.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의 범위가 일단 제한이 없는 데다가, 꼭 판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넷플릭스처럼 홍보의 채널로 활용하기만 하더라도 CF 등의 광고 형태보다는 더욱 주목도 높은 홍보가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죠.
모바일에서 이루어지는 라이브커머스의 경우 그 효과가 더욱 극대화되는데요. 화면 내에 채팅, 좋아요 등 출연자와의 인터랙션(interaction)이 가능한 기능들을 함께 심어 시청자의 몰입도를 올립니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방송을 보며 시청자는 채팅을 남기고, 자신이 선망하는 연예인이나 출연자가 채팅을 읽어주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콘텐츠에 대한 호감도와 몰입도는 더더욱 상승합니다. 상품 구매 역시 시청 화면에서 결제 화면까지 빠르고 쉽게 흘러갈 수 있는 UX·UI로 구성되어 시청자들이 더욱 빠른 구매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매스 마케팅’보다는, 콘텐츠를 소비할 가능성이 높은 시청층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진행되는 마케팅이 더욱 강조되는 것도 커머스 채널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넷플릭스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넷플릭스가 GS샵을 통해 홍보에 나섰던 드라마 <블랙의 신부>는 복수, 불륜, 돈, 배신, 사기 등 자극적인 키워드들이 등장하는 이른바 ‘치정물’에 가깝습니다. 우리에게는 ‘막장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카테고리의 작품이죠. 자극적인 소재로 40대 이상의 시청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넷플릭스는 이 드라마 장르를 가장 많이 시청할 만한 잠재적 타깃층이 TV 홈쇼핑에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실제로 넷플릭스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장르의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청자와 TV 홈쇼핑 시청층 사이에 접점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TV 홈쇼핑 사용 연령층은 50대 이상의 기혼 여성들이 많고, 지핑 재핑(zipping-zapping)1)과정에서 홈쇼핑을 시청하는 경향이 많죠. 이 타깃층의 주목도를 단시간에 끌어올리는 데는 주연배우들의 직접 출연만 한 도구가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화제성 측면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의외성을 견인할 수 있는 신선한 마케팅이었던 셈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네이버의 ‘컴백Show핑라이브’ 역시 아이돌의 주요 소통 창구인 V라이브와의 동시 송출을 통해 아이돌 관련 상품 주요 소비층의 시선을 주목하게 함으로써 성공적인 마케팅을 거둘 수 있었던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콘텐츠를 홍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이야기로도 들려서 어쩐지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습니다. TV뿐 아니라 OTT, 유튜브, 이제는 라이브까지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하루에도 수억 개의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가 열렸고, 이제 콘텐츠도 한 번이라도 더 주목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채널을 통해 어떤 방식의 마케팅들이 쏟아질지, 그리고 콘텐츠는 커머스와 어디까지 결합하게 될지, 더욱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