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이 지난해 9월 공개된 이후로 1년이 지났다. 이 1년 동안 한류도 눈에 띌만한 성과를 기록했고 <오징어 게임> 이전과는 다른 파급력을 갖게 됐다. 해외 미디어 전문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류의 변화 과정을 들어보고, 세계시장에서 한류의 위치를 짚어본다.
한류. 코리안 웨이브. K-콘텐츠. 저마다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해외에서 방송영상산업과 문화에 미치는 그 영향만큼은 모두 같다. 그런데 왜 생긴 지 20년 가까이 된 개념이 근래 12개월 사이에 갑작스러운 폭발력을 보이고 있는 걸까? 또한 애초 한국과 ‘문화적 근접성’을 지닌 국가에서만 유효하던 문화가 전 지구적인 현상으로 탈바꿈하여 추진력을 얻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답하는 시리즈가 있다. 바로 1년 전 넷플릭스를 타고 전 세계 시청자의 안방을 강타한 <오징어 게임>이다. 이 드라마는 그 대담함과 신선함으로 서양 세계에 살며 단 한 번도 대한민국 콘텐츠를 접해 본 적 없던 수백만 명을 사로잡았고, 그들이 K-콘텐츠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바람을 타고 한류의 물결은 미답의 서양 국가들에 도달하여 공개 28일 만에 16억 5,000만 시간이라는 아직도 깨지지 않은 스트리밍 기록을 달성하였다.
업계는 왜 지금까지 이런 경향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며 머리만 긁적이는 평론가와 학자로 넘쳐났다. 사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지금까지 한류의 행보를 보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라는 점은 이해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들은 넷플릭스가 어떻게 (일부가 보기에는) 가장 ‘가능성이 희박한 곳’에서 또 다시 세계적인 대박 작품을 발굴했는지 의아해한다.
한류는 그동안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골고루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미국 초대형 스타디움 공연장을 매진시키는 블랙핑크와 BTS, 비(非)영어권 영화로는 최초로 오스카 작품상을 타 아카데미의 역사를 쓴 영화 <기생충>이 좋은 예다. ‘얼굴을 감춘 가수’라는 아름답고도 기묘한 포맷에 매료되어 폭스(FOX)가 제작한 <복면가왕>(MBC)의 미국판이 성공한 후 전 세계 TV 방송사가 눈독을 들여왔다. 따라서 언젠가는 드라마 부분에서도 기록적인 성공을 거둘 것이 자명했다. 넷플릭스만이 선견지명이 있어서, 즉 넷플릭스의 조력만이 유일한 성공 요인은 결코 아니었다.
폭스(FOX)를 비롯한 전 세계 55개국에 수출된 <복면가왕>의 포맷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으로 K-콘텐츠와 방송영상산업에 미친, 눈에 안보이는 영향은 더욱 놀랍기만 하다. 전 세계 시청자의 취향이라든가 스토리 라인, 극적 구성의 여러 가능성을 고려할 때, <오징어 게임> 이전 혹은 이후로 구분하는 것은 업계에서 흔한 일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오징어 게임> 이전의 드라마 성적이 나빴던 것도 아니다. <사랑이 뭐길래>(MBC), <겨울연가>(KBS2) 같은 드라마는 K-시리즈의 원류를 형성하고 아시아 전역에 한류의 발판을 마련하였기에 국가적 자부심의 원천이라 부를만하다. 다만, <오징어 게임>이라는 획기적인 작품으로 지금 같은 인정을받지 못했다면, <작은 아씨들>(tvN),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 <환혼>(tvN), <글리치>(넷플릭스) 최신 한국 작품들이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차트에 입성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이 업계 전반에 미친 영향을 나타내는 또 다른 지표는 비드라마 장르에 일어나는 변화이다. 영국의 제작사가 제작 중이고 넷플릭스가 곧 공개할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Squid Game: The Challenge)>는 드라마를 바탕으로 456만 달러(약 65억 원)의 상금을 걸고 456명이 참가하여 실제 리얼리티 게임을 펼치게 된다. 작년에 드라마가 공개된 지 얼마 안 지나, 넷플릭스보다 먼저 실제 리얼리티 게임 쇼를 만든 미국의 인기 유튜버 ‘MrBeast’가 플랫폼에 영상을 공개한 첫 주에 자그마치 1억 3,900만 조회수를 달성한 바 있다.
<오징어 게임>의 파급 효과는 포맷 산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개최된 프랑스 MIPCOM 20221) 콘텐츠 시장의 최신 동향을 살펴보면 스튜디오 램버트의 <Rise & Fall>, 바니제이 라이츠의 <The Fifty>처럼 참가자가 서로 다투며 같은 편을 찾거나 노골적으로 서로를 방해하며 이기려고 경쟁하는 포맷이 갑자기 많아졌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디어 헌터(The Deer Hunter)>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 같은 미국 영화를 보며 자라, 그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는 반대로 K-콘텐츠의 영향을 받은 서구 콘텐츠 창작자의 세대가 등장할 차례가 된 것이다!
다만, <오징어 게임>이후의 새 한류도 아마 새로운 도전과 직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이 K-콘텐츠가 전 세계 안방으로 들어가도록 멋진 다리를 놓아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글로벌 스트리밍을 통한 K-콘텐츠의 확산과, 그에 따른 한국 제작자들의 정당한 IP의 확보가 동시에 가능할까 하는 문제는 올해 BCWW2022(국제방송영상마켓)의 주요 쟁점이었다. 적절한 균형을 찾기 까다로울 수 있지만, 단숨에 무대 중앙에 서게 된 한국 콘텐츠 제작자는 그간의 노력으로 얻은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선례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KOCOWA+와 같은 틈새 VOD 서비스가 늘어나는 양상으로 보아 글로벌 K-콘텐츠 전용 플랫폼 출시도 성공 신화를 이어갈 방법이 될 수 있다.
어느 쪽이 되든 다음으로 대박을 터트릴 작품은 무엇일지, 어떤 장르일지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한다. 한국 드라마는 그 자체로 일종의 고급 브랜드가 되었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최근엔 괄목할 성과를 보이지 못한다. 유럽과 미국에서 한류는 정상에 올랐는가?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안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