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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point 1

나영석 PD와 MZ세대가 만든
새 예능판, <뿅뿅 지구오락실>

글. 한수진 (아이즈(ize) 기자)

기성세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세대를 이야기할 때 흔히 ‘요즘 것들’이라는 표현을 쓴다. 기성세대와 ‘요즘 것들’은 대립하는 말처럼 느껴지지만, 이 생각을 뒤엎고 세대를 넘어선 신선한 조합이 재미를 가져다주고 있다. 방송 경력 22년 차 나영석 PD와 평균 나이 25세 ‘요즘 것들’의 이야기, <뿅뿅 지구오락실>(tvN)이 그 주인공이다.

새 얼굴, 신선함이 통하다

“(나영석) PD님 몇 년 차예요?” 지난 6월 24일, tvN에서 방송을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 <뿅뿅 지구오락실>(이하 <지락실>) 첫 회 방영 2분여 만에 나영석 PD가 무릎을 꿇었다. <해피선데이-1박 2일>(KBS2), <꽃보다 청춘>(tvN), <삼시세끼>(tvN), <신서유기>(tvN) 등의 예능 프로그램을 성공시키며 ’예능계 미다스의 손’으로 평가받던 그를 무릎 꿇린 건 베테랑 MC 강호동도, 관록의 배우 윤여정도 아닌 낯설고도 어린 얼굴들이었다. 1992년생부터 2003년생인 MZ세대로 이루어진 이들, 코미디언 이은지, 오마이걸 멤버 미미, 래퍼 이영지, 아이브의 멤버 안유진이다. 1976년생인 나PD와 적게는 16년부터 많게는 27년까지 나이 차이가 나는 이 젊은 세대는 아버지뻘인 그의 입에서 “내가 안 한다고 했잖아”라는 절규가 나오게 만든다.

스스로도 “방송은 낯설다”고 말할 정도의 초짜 예능인들에게 스타 PD가 절절매는 모습은 그야말로 화제였다. 여기에 초반부터 ‘괄괄이’, ‘맑은 눈의 광인’ 등의 별명을 붙여 멤버들의 캐릭터를 구체화하고, 단순한 추격전에 멀티버스를 끌어들여 서사를 강화한 <지락실>의 면면은 대중들의 관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그 결과는 곧장 비드라마분야 화제성 부문 1위로 이어졌고, <지락실>이 스트리밍 서비스 되는 티빙에서도 유료가입기여자수와 시청UV(Unique Visitor, 순방문자수) 모두 예능 부문 1위를 기록했다. 나영석 PD 특유의 게임과 여행이라는 테마는 반복되지만 시즌제로 진부함을 덜어내고, 새로운 인물들로 활력을 불어넣은 결과다.

여행지에서 게임을 하는 예능이라는 틀에서 보면 <지락실>은 <신서유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해외에서 발에 땀이 나도록 추격전을 벌이고, 굶주린 상황에서 음식을 건 내기 게임을 하며, 미션을 통해 단합과 배신을 넘나드는 것으로 주요한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나영석 PD의 전형적인 연출 방식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출연진의 세대가 현저히 낮아졌다는 점과, 남성에서 여성으로 구성원을 바꿨다는 점이다. 이미 시즌 8까지 방영된 <신서유기>의 뻔한 반복이 될 수 있던 <지락실>은 이 두 가지 차이점으로 색이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유튜브에서 건너온 연예인과 걸그룹의 만남

나영석 PD는 자신의 예능에 메인급 MC나 톱스타를 곧잘 활용해왔다. <1박 2일>과 <신서유기>의 강호동, 이수근, 이승기, <꽃보다 청춘> 시리즈의 조정석, 정우, 박보검, 류준열, <삼시세끼> 시리즈의 이서진, 차승원, 유해진, <윤식당>의 윤여정, 박서준, 정유미 등 예능마다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알 만한 유명 연예인을 출연시켜 화제를 끌었다. 출연진의 화제성만으로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가는 전략을 활용해온 것이다. 이와 동시에 출연자에게 ‘허당 이승기’, ‘투덜이 이서진’ 등의 명확한 캐릭터를 부여하고, 그것을 각본이 아닌 실제 모습을 바탕으로 해 출연진에게 인간적인 유대감에서 비롯된 호감을 갖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1박 2일> 같은 범대중적인 예능을 만들던 나영석 PD가 특정 시청층으로 타깃이 바뀐 시대 흐름을 영리하게 읽으며 <지락실>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2017년 웹 예능 <신서유기>에서 2021년 <출장 십오야>(tvN)에 이르기까지 TV 바깥 세상에 발을 담그며 젊은 층의 수요를 따라간 것이 지금의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현 시점의 온라인 세상을 탐색하며 찾은 나PD의 새로운 솔루션은 ‘유튜브에서 온 연예인’ 이은지와 이영지다. 유튜브에 진출한 연예인들은 단순히 유명세만으로 ‘좋아요’와 ‘구독’을 확보하지 않는다. 이들은 유튜브 환경의 특성과 미디어 수용자들의 요구를 이해하고 자신의 특기를 살려 그에 걸맞은 콘텐츠를 직접 연구해 선보인다. 단순한 출연진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영지는 나영석 PD와 첫 만남에서 “(나PD의) 프로그램을 많이 봤기 때문에 꼬박 죽었다고 생각하고 임할 거다. 일단 모든 프로그램 정보 자체가 폐쇄적이고, 이 시스템 안에는 은폐된 불편한 진실이 있다”는 말을 했다.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차원의 수동적 접근이 아닌 능동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연구하고 내다본 모습이었다. 이어 나PD가 자신에게 ‘괄괄이’라는 별명을 부여하자, 더욱 굵고 거센 목소리를 내며 바로 자신의 입력값으로 설정하는 실행력으로 제작진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는 태국 로컬 촬영 이틀 만에 목을 쉬게 만드는 열정으로 이어졌고, 나PD 마저 “돈 줄 테니까 조용히 해달라”고 할 정도의 몫을 해냈다.

이은지는 ‘괄괄이’ 같은 캐릭터를 부여받지는 못했지만 부캐(부 캐릭터) 부자다운 다재다능함과 9년 차 코미디언의 굵은 잔뼈로 웃음과 안정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는 동생들에게 “얘들아 감독님 보면서 걸어”라며 진행 흐름을 유연하게 돕고, 기상 미션을 받은 멤버들의 행동을 눈치 빠르게 간파하며 게임의 활력을 돋운다. 뿐만 아니라 제작발표회에서 “인지도가 제일 낮고 동생들이 잘해서 잘 묻어가야겠다 생각했다”고 말한 이은지의 발언은 그가 프로그램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나이로 서열을 강조하지 않고, 스스로 Z세대인 어린 멤버들과의 허울을 무너뜨렸다.

남성 출연자의 경우엔 나이나 경력 등으로 자연스럽게 서열과 계급이 만들어진다. <신서유기>에서 강호동의 눈치를 적지 않게 보던 동생들의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은지와 동생들 사이에서는 세(勢)를 쥐려는 서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맏언니 이은지의 허울 없는 태도 덕분에 출연진들은 서열이 없는 ‘찐친’의 최상 케미스트리를 보여준다.

미미와 안유진은 이승기나 송민호로 분류되는 나영석 PD표 의외성의 발굴이다. 삼국지 줄거리를 1분 만에 요약하고 사법고시 문제도 맞추는 엄친아 이미지의 이승기에게 ‘허당’이라는 새로운 면모를 발굴해 반전의 웃음을 줬던 식 말이다. 미미가 멤버로 있는 오마이걸은 귀엽고 발랄한 이미지의 걸그룹이다. 래퍼 포지션을 맡고 있는 미미는 제법 묵직한 랩을 구사하며 팀 내에서 ‘걸 크러시’를 담당하기도 한다. 그런 미미가 <지락실>에서 “아는 것이 맞다” 등 기상천외한 오답과 통역이 필요한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는 엉뚱한 모습은 의외성에서 비롯된 웃음을 안긴다.

프로젝트 걸그룹 아이즈원부터 아이브에 이르기까지 단정하고 말간 이미지를 지녔던 안유진도 이러한 의외성으로 웃음을 주요하게 만들어낸다. 함께 루프탑에 놀러가자며 “팀장님한테 루프탑 가도 되는지 물어봐”라는 이은지의 말에 “그냥 갈래요”라고 대답하고, ‘형’으로 끝나는 끝말잇기 게임을 하던 중 능청스럽게 “호동이형”을 외치는 뻔뻔함은 바른 걸그룹 이미지를 가진 그이기에 가능한 웃음을 유발한다. 끝내는 미미가 안유진을 일컬어 “눈이 돌았어요”라고 말하기에 이르며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캐릭터로 <지락실>의 소중한 자산으로 성장한다.

“형”이 된 나영석 PD, 갑을의 반전이 주는 웃음

<지락실>이 주는 또 다른 주요한 웃음은 출연진과 나영석 PD의 관계성이다. 네 출연진은 거의 매 게임마다 강한 면모를 보이며 나PD와 제작진을 당황하게 만든다. 분량을 뽑기도 전에 웬만한 게임은 성공시키니 멤버들이 먼저 “분량 안 나왔냐”고 걱정해줄 정도다. 더욱이 이들이 매번 게임에 성공하는 건 아니더라도 종종 나PD의 실수나 오류를 지적하며 그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으로 갑을이 반전된 상황을 연출한다. 때문에 방송에서 게임의 난이도를 두고 제작진이 긴급회의를 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다급해진 나PD가 말이라도 바꾸려하면 “영석이 형!”하고 으름장을 놓고, “지금 몇 년 차인데 그것도 계산을 못했냐”며 ‘역관광’을 선사하는 상황도 즐비하다.

출연진들은 MZ세대의 당당함을 기본으로 깔고, 자신들만의 채널을 직접 운영하는 능동성까지 더해 나영석 PD와 대등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이는 나PD가 의도적으로 깔아놓은 역학적인 판이다. 나PD는 이미 수년 전부터 여러 웹 예능을 시도하며 젊은 세대의 니즈를 파악했고, 그 세대 출연자를 자신의 프로그램에 기용함으로써 기존 방식에서 큰 변화 없이도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유튜브가 주둔지인 MZ세대 진영을 TV로 무사히 안착시키며 말이다.

처음에는 기존 예능의 답습으로 보였다. 하지만 현재는 크리에이터 역할을 해내는 젊은 인력이 방송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주는지, 대등한 갑을 관계가 어떠한 진귀한 웃음을 가져다주는지가 톡톡히 증명되고 있다. <지락실>은 MZ세대를 집요하게 좇으며 유튜브와 방송을 오묘하게 걸쳐낸 나PD 예능의 새로운 경지다.

  • 필자 소개_ 한수진

    웹 매거진 아이즈(ize)에서 방송, 가요, 공연 등 대중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취재 기자로 근무하고 있으며, 단편적인 사실보다는 구조를 이해하고 본질과 전망을 살피는 기사를 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