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은 최근 국내 최대 규모의 버추얼 스튜디오를 개관했다. 미디어 기업뿐 아니라 시각효과 업체, 통신기업,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버추얼 스튜디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스크린을 활용한 특수효과 기술로 몰입도를 높이고 후작업에 드는 시간과 제작비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추얼 스튜디오는 앞으로 방송영상 제작 현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콘텐츠 산업의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가운데 버추얼 프로덕션과 버추얼 스튜디오가 제작 과정의 혁신 요소로, 또한 콘텐츠 IP의 확장을 위한 중요한 요소로 주목받고 있다. 버추얼 프로덕션은 실시간으로 현실과 가상을 연결하는 프로덕션 방식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의 프로덕션 구조를 알아야 한다. 전통적인 콘텐츠 제작 구조는 프리 프로덕션(기획, 제작 준비) - 메인 프로덕션(촬영) - 포스트 프로덕션(편집, 녹음, CG/VFX시각 특수효과) 과정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선형 프로세스에 가깝다. 이에 비해 버추얼 프로덕션은 CG/VFX 작업이 전체 프로덕션 과정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비선형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다. CG를 통해 아이디어를 사전에 시각화하고, 배우의 연기와 CG가 접목되었을 때 스크린에 어떻게 보이는지 촬영과정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점검하는 것이 가능하다.1)
버추얼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진행한 <놀면 뭐하니?>(MBC)
출처: MBCentertainment 유튜브 채널버추얼 프로덕션 제작에서 최근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방식은 LED 월(wall)을 활용하는 것이다. 버추얼 스튜디오는 세트의 벽과 천장 등을 대형 LED 스크린으로 꾸민 스튜디오로, 영상 촬영에 필요한 다양한 배경(디지털 에셋)을 LED 스크린에 구현하여 촬영을 진행할 수 있다. 디즈니플러스의 <만달로리안>, HBO max의 <웨스트월드>, 넷플릭스에서 곧 공개될 <서울대작전> 등이 버추얼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작품들이다.
버추얼 스튜디오는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그린스크린 등 크로마키 배경이 아니라 최종 이미지가 구현된 LED 월 앞에서 연기와 촬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배우는 더욱 쉽게 연기에 몰입할 수 있고, 제작진도 CG/VFX가 덧붙여진 모습을 촬영 단계에서 점검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장면을 정확하게 확인하게 되면 제작 전반의 불확실성이 감소한다. 그만큼 시간과 비용을 효율적으로 절감하고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그린/블루 스크린을 활용한 영화 <토르: 다크월드> 촬영 세트장 모습
출처: 『애니메이션연구』대형 LED 스크린을 활용한 버추얼 스튜디오(비브스튜디오스) 모습
출처: 『미디어 이슈&트렌드』팬데믹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로케이션 촬영의 어려움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은 두 번째 장점이다. 현장에 가서 촬영을 진행하지 않기 때문에 장소 섭외, 현장 인력 관리, 날씨 등의 돌발 변수로부터 자유롭다. 물리적인 세트를 설치하거나 철거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관련 비용도 들지 않고 환경을 보호하고 탄소를 절감하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실과 가상을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로케이션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버추얼 스튜디오는 새로운 방식의 제작도 가능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한국의 스튜디오와 할리우드의 스튜디오가 클라우드에 접속한 뒤 같은 배경을 각각의 LED 월에 띄워두고 이를 실시간으로 촬영을 진행하며 융합할 수 있다. SKT가 2022년 7월에 문을 연 ‘팀스튜디오’가 이와 같은 형태의 스튜디오이다.
마지막으로 버추얼 스튜디오는 실감 기술을 활용한 최첨단 콘텐츠 제작에 유리하다. 이는 영상 콘텐츠를 넘어 다양한 콘텐츠 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SM엔터테인먼트가 선보인 ‘Beyond Live’, 2021년 쇼핑엔티의 ‘버추얼 파리 컬렉션’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로 다른 미디어와 플랫폼에 대응할 수 있는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버추얼 스튜디오는 IP의 트랜스미디어 확장 추세에 걸맞은 제작 방식을 제공한다. 나아가 현실과 가상을 실시간으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가 융합된 메타버스를 구현할 수 있는 제작 솔루션이자 메타버스 생태계의 주요한 구성요소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장점으로 인해 국내외에서 버추얼 프로덕션을 전문으로 하는 버추얼 스튜디오가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국내에만 약 15개의 버추얼 스튜디오가 구축되어 있다. 덱스터, 자이언트 스텝 등 시각효과 업체뿐 아니라 CJ ENM과 같은 미디어 기업, SKT과 같은 통신기업, YG·네이버(구축예정)와 같은 엔터테인먼트/플랫폼 기업도 앞다투어 버추얼 스튜디오 구축에 뛰어들고 있다. 대작 콘텐츠의 제작이 증가하면서 CG/VFX 등 시각효과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VR·AR 등 실감 콘텐츠 산업과 메타버스의 높은 성장세가 예측되면서 버추얼 스튜디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주도권 경쟁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 조사 기관인 그랜드뷰리서치(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버추얼 프로덕션 시장 규모는 2022년 16억 달러(약 2조 1,393억 원) 규모에서 2028년 47억 달러(약 6조 2,843억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스트리밍 시장의 성장과 <오징어 게임>(넷플릭스) 등 K-콘텐츠의 성공으로 인해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 및 투자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 K-콘텐츠는 차별화된 스토리와 원천 IP의 힘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오징어 게임>의 제작비(편당 약 28억 원)와 <만달로리안>의 제작비(편당 약 178억 원)의 차이가 보여주듯이 한국과 할리우드의 간극은 작지 않다. 이 차이를 좁히고 K-콘텐츠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콘텐츠 제작 과정의 혁신이 불가피하다. 버추얼 스튜디오는 이 같은 혁신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이자, 메타버스 등 향후 다양한 가상현실 기술로의 융합 및 확장을 위한 중요한 게이트웨이로서 기능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개선이 필요한 점도 있다. 첫째로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되어있는 버추얼 스튜디오의 지역 기반 구축이 필요하다. 단순히 제작 환경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버추얼 플랫폼을 활용한 유통망 구축 및 연계 사업 아이템 개발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또한 버추얼 프로덕션과 스튜디오를 활용할 수 있는 인력양성 시스템, 영세 사업자들이 버추얼 스튜디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방안도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버추얼 스튜디오의 특성상 이는 한국 영상 산업의 변혁과 성장뿐 아니라 메타버스 산업의 혁신적인 성장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