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팅 쇼, 연애 예능이 그야말로 붐이다. 헤어진 연인, 돌싱, 지나간 첫사랑 등 다양한 관계의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테마로 얽히고설킨다. 데이팅 쇼 포맷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2011년 방송됐던 <짝>이 떠오른다. <짝>부터 <나는 솔로>까지,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연애 예능의 승부수는 무엇일까?
한여름 시도 때도 없이 요란하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혹시 우리가 만드는 TV 프로그램도 그렇게 들리지는 않나 공포스러울 때가 있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매미는 그렇게 온몸을 흔들며 울어대고 있는가? PD는 도심 속 한 마리 매미처럼 내 프로그램 좀 봐 달라고 날마다 비명을 지르는 자다. 매미의 떼창에 귀를 막는 사람들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숲속의 풀벌레 소리를 그리워한다. 지금 범람하고 있는 한국의 데이팅 쇼가 매미의 떼창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온갖 종류의 매미가 몰려들어 작은 동네를 흔들어 놓고 있다.
그 매미의 울음이 공해가 아닌 복음이 되려면, 기똥차게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 그 수많은 매미 중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법은 나를 찾아낼 때까지 계속 울어대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지금 두 가지 전략으로 <나는 솔로>(ENA PLAY, SBS Plus)를 만들고 있다. 시즌제로 끝나는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1년 내내 줄기차게 만들다 보면 전 국민이 알게 되는 국민 프로그램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데이팅 프로그램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도 있다.
영화든 방송이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르가 있다. 로맨스, 액션, 공포, SF 등 전통적으로 인기 있는 장르는 잘 만들면 기본적인 흥행은 한다. 방송에서 데이팅 프로그램 시장은 넓어서 늘 공급 경쟁이 치열하다. 공교롭게도 지금 한국에서는 데이팅 프로그램의 공급 과잉이 느껴질 만큼 유사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있다. 각기 거기에 투자되는 자본과 인력을 생각해보면 향후 대한민국의 데이팅 프로그램 경쟁력은 세계 1등이 될 게 확실하다. 공급이 많아지면 경쟁을 통해서 제작 능력이 발전하고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이 성장하게 된다. 프로그램마다 제작진만 아는 비밀 노하우가 있다.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시작했는지 제작 ‘썰’을 풀어보면 프로그램은 더 선명하게 잘 보인다.
<나는 솔로>는 2021년 7월 14일 탄생했다. <짝>(SBS)은 2011년 1월 2일 탄생했다. 10년의 시간을 두고 필자는 데이팅 프로그램을 반복해서 만들고 있다. 하나는 전설이 되었고 하나는 전설이 되기를 바라며 만들고 있다. 물론 그 중간에 2020년 만든 <스트레인저>(ENA PLAY,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가 있기에 <나는 솔로>도 가능했다. 결국 모든 일은 인연과 필연과 인과관계로 이어져 지금의 결과물을 보여준다. <나는 솔로>는 결국 <짝>이 있어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형식의 유사성과 내용의 동질성을 부인하지 않는 이유도 <나는 솔로>의 기원은 <짝>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형식과 내용을 규정하는 정신은 100% 동일하다. 두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 역시 같다. ‘사랑을 통하여 인간을 본다’가 그것이다. 그 기획 의도를 구현하는 방식도 역시 동일하다. 그런 내용들을 이미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공연하게 밝힌 바 있다. 내가 만든 <짝>을 교묘하게 되살려 놓은 것이 지금 방송하고 있는 <나는 솔로>라고 말이다. <나는 솔로>의 제작방식과 경쟁력을 말하기 위해서는 <짝>에 대한 언급은 불가피하다.
<짝>은 매우 정교하고 완벽한 포맷을 가진 프로그램이다. 100개의 데이팅 프로그램을 15초씩 보여준다고 했을 때 그 장면이 무슨 프로그램인지 구별이 가능하면 좋은 포맷이다. <짝>은 어느 장면을 캡처하든 그것이 <짝>임을 금방 인지한다. <짝>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의 당혹감과 낯섦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짝>을 만든 이유는 사랑의 탄생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 제작방식에 있어서 최초로 시도되는 것들이 많았다. 촬영 장소를 지명이 아닌 ‘애정촌’이라고 부르면서 애정촌 시스템을 세상에 처음 만들었다. 세상에 없던 애정촌의 개념과 의미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세상에 학교와 군대가 처음 만들어지는 시스템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나는 솔로>를 찍는 장소는 ‘솔로 나라’였다. 그곳은 그곳만의 방식으로 운영되고 그곳 사람들은 세상에서 고립된 그들만의 종족이다. 그곳의 의미와 존재 목적이 중요했다.
<짝>의 애정촌을 표방한 <나는 솔로>의 솔로 나라
출처: 촌장엔터테인먼트TV 유튜브 채널사랑의 탄생을 증명하는 촬영 기간은 천지창조의 일주일에서 따온 7일이 좋다고 생각했다. 출연자들은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며, 똑같은 의상을 입었다. <나는 솔로>를 만드는 방식과 시스템은 전적으로 <짝>에 의존하고 있다. 솔로 나라도 그렇고 영수, 영철, 영자, 순자 등으로 이름을 부르는 방식도 변주에 불과하다.
왜 그런 시스템을 하는지는 뻔하다. 데이팅 쇼 포맷으로는 <짝>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소개 방식을 생각해보자. <짝> 이전에는 개인정보를 즉시 공개하거나 바로 자기소개를 하고 본론으로 들어갔었다. 촬영지, 이름, 나이, 직업 등을 즉각 정확하게 알려주고 시작하는 게 방송가의 정석 플레이였다. 난 그것부터 과감하게 뜯어고쳤다. <짝>과 <나는 솔로>에서는 입소 다음 날 자기소개를 한다. 입소 첫날은 아무런 정보 없이 사람을 본다. 직업과 나이 등 신상 명세가 드러나는 순간 선입관과 편견은 여지없이 깨진다. 출연자들에게는 이것이 자아 성찰의 기회가 된다. 스스로 사람 보는 방식이 닫혀있거나 좁았다고 깨닫는다. 그리고 최종 선택까지,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 과정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짝>이 만들어지고 10년이 지난 지금 리얼리티 관찰 프로그램은 홍수다. 데이팅 프로그램도 소재만 바뀌면서 나뭇가지처럼 퍼지고 사라진다. <나는 솔로>를 새로 만들면서 기존의 <짝>을 가져오되 포맷은 더 심플하게, 그러나 정신은 더 확실하게 가져오기로 했다. <짝>보다 더 사실적인 연출, 더 섬세한 심리묘사, 더 풍부한 감정표현을 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일체의 거짓 없이 담백하게 사실만 잘 담아서 현실을 반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모두가 고속도로를 질주하면 국도를 달리는 게 영리한 전략이다. 국도를 달리며 보는 풍경은 확실히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그곳에서 마주치는 인간의 삶은 살아있다. <나는 솔로>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면 내 의도는 성공한 것이다. <짝>도 그렇지만 <나는 솔로> 역시 사실이 아닌 것은 철저하게 경계했다. ‘뽀샤시’한 촬영 스타일로 출연자를 예쁘고 멋지게 묘사하는 것도 안 되고 숙소가 호화찬란한 것도 경계했다. 생활의 불편함은 사랑으로 승화하라고 했고 생활을 통해서 사람을 보라고 분위기를 조장해갔다. 심지어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극사실주의’로 정하고 사실적인 연출과 묘사에 집중했다.
극사실주의 리얼리티 콘셉트의 <나는 솔로>
출처: SBS Plus 유튜브 채널지금 <나는 솔로>는 9기를 방송하고 있고 솔로 나라에서 5쌍의 부부가 탄생했다. 그 어마어마한 결과에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연예인 지망생이나 개인의 홍보가 목적인 출연자들은 방송 이미지만 만들다 가기 쉽다. 그런 출연자는 제발 <나는 솔로>에 얼씬거리지도 말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본심을 숨기고 위장하고 오면 어쩔 수 없이 뒷목 잡을 일도 많다. 그만큼 출연자 세팅은 중요하다. 양질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가장 큰 고민은 얼마나 리얼한 결과물이 나오느냐 하는 것이다. 설계도가 부실하거나 공장이 허술하면 완성품은 불량품이 된다. 실패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대부분은 그 과정이 억지스럽거나 사실적이지 못하다. 포장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진실은 절대 감추지 못한다. 스스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중요한 이유다.
애정촌이나 솔로 나라를 설계하면서 주목한 것은 딱 한 가지다. ‘인간은 목적이 있으면 움직인다’. 사랑에만 집중하라는 목적 하에 애정촌을 만들고 솔로 나라의 운영방식을 정했다. 도시락 선택이나 파트너 없이 혼자 먹는 고독 정식이라는 방식을 통해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유도하는 것은 프로그램의 동력이었다. 제작진은 성실하게 그 과정을 담고 도로의 신호등이나 교통경찰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 차를 운전하는 것은 드라이버, 즉 출연자의 몫이다. 목적지를 설정하고 달리면 네비게이션은 충실히 종착점으로 안내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감정은 이리저리 부딪히고 튀고 통하고 교류한다. 층층이 모이고 쌓인 감정들을 잘 추스르면 스토리는 차곡차곡 완성된다.
솔직함을 바탕으로 했기에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든 <나는 솔로>
출처: SBS Plus 홈페이지사람들은 <나는 솔로>가 사실적이면서 재미있기에 본다고 한다. 단지 다큐멘터리적 감성만 있다면 반응은 뻔하다. 반대로 웃기는 장치에만 몰두하면 또 깊이가 없다. 난 인간의 숨어있는 본성을 믿는다. 장례식에서도 불쑥불쑥 인간은 웃지 않는가. 그 인간의 감정을 자연스러움 속에서 팝콘처럼 터지게만 한다면 프로그램은 걱정이 없다.
지금 여기 <나는 솔로>에서 보여주는 한국인들의 사랑놀이가 세계인들에게 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랑에 대한 본질을 정확하고 진실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본성은 언어를 넘어 통하고, 대중은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방법만 잘 찾아서 제대로 재미를 주면 사람들은 몰려든다. 그렇게 브랜드가 된 상품은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가 되면서 고전으로 자리 잡는다. 혼신의 힘을 쏟아 잘 만들어 사랑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는 것이 내가 꿈꾸는 프로그램의 목표다.
100년 후 인류의 사랑과 짝을 만들어가는 방식에 대하여 학술적으로 의미 있는 자료를 뒤적여 찾아본다면 <짝>과 <나는 솔로>가 거기 No.1 자리에 있기를 희망한다. 감히 단언하는데 학자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을 우리는 하고있다. 2020년대 한국인의 사랑을 찾아보려면 <나는 솔로>를 보라. 거기에 묘사된 인간 심리와 감정이 가장 진실하고 정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