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하나 이상의 OTT 서비스를 구독하며 비교 분석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되면서 서비스들 사이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소비자들은 이제 여러 구독 서비스 중 본인에게 맞는 서비스를 취사 선택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각 OTT 서비스들은 어떤 차별점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을까?
여러분은 디지털 구독 서비스에 한 달에 얼마를 쓰시나요? 음원 서비스가 전부였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음원, 유튜브, OTT, 클라우드까지 결제할 서비스가 참 많습니다. 이 중 OTT 서비스는 가장 큰 난제입니다. 지난 몇 년 사이 여러 서비스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넷플릭스와 왓챠 둘 중 하나만 고민하던 소비자들은 이제 넷플릭스, 왓챠, 티빙, 웨이브,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등 여러 서비스 사이에서 고민해야 합니다.
경쟁은 치열해졌지만, 전망이 마냥 좋지만은 않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급속도로 늘어난 OTT 이용량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며 올 초 대비 무려 23%나 급감했습니다. 물론 OTT를 결제해서 보는 사용 습관이 든 사용자가 많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서비스가 추락할 일은 없지만 분명히 생존을 고민해야 할 시기입니다. 실제로 글로벌 OTT 사업자의 투자액은 올해에만 무려 1,400억 달러(약 175조 8,260억 원)라고 합니다. 즉, 팬데믹으로 인한 OTT 호황기는 끝났고 경쟁 강도는 높아졌지만 사업자들은 이 경주를 멈추지 않을 셈입니다.
소비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올해 초 발간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디지털전환 시대 콘텐츠 이용 트렌드 연구>1)에 따르면, 국내 이용자들은 평균적으로 2.69개의 서비스를 유료로 구독하는데요, 각 플랫폼의 구독 이유는 콘텐츠 때문이라 답했습니다. 다만, 이용료가 인상될 경우 이용하지 않거나 타 서비스로 넘어가겠다고 답한 사람들이 50%에 육박했습니다. 즉, 하나의 서비스에 높은 충성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약정 시스템으로 장기간 사용자를 묶어둔 IPTV 등 유료 방송 시스템과 달리 월 단위 구독인 OTT 서비스의 한계점이기도 합니다.
<디지털전환 시대 콘텐츠 이용 트렌드 연구> 중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메뚜기처럼 뛰어다니는 사용자를 잡기 위해선 더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좀 더 거시적으로 바라본다면 포지셔닝이 중요합니다. 과거 ‘드라마 왕국’을 내세우던 MBC처럼 OTT 서비스들도 차별화를 위해선 포지셔닝이 필수적입니다.
웨이브와 티빙은 국내에서 가장 보편적인 TV 포지션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국내에 운영 중인 OTT 중 실시간 채널 서비스를 운영하는 유일한 서비스들입니다. YTN과 JTBC 등 뉴스 채널 시청도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 TV와 가장 가까운 콘텐츠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습니다. 국가대표 평가전 등 기존 TV에서만 볼 수 있고 기성세대가 좋아하던 콘텐츠를 수급하기 때문에 더욱 이 포지션을 강화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애플TV플러스과 아마존프라임은 웰메이드 및 프리미엄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곳으로 포지셔닝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콘텐츠의 양으로 승부한다면, 이 두 곳은 정말 남다른 콘텐츠만 있는 곳으로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고 있죠.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코다>, 윤여정과 이민호가 출연한 <파친코> 등을 제작한 애플TV플러스는 아직까지 콘텐츠 투자액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현금이 많은 회사로 꼽히고 마케팅에만 무려 5억 달러(약 6,281억 원)를 쓴다고 하니 제작 투자액은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롭게 IP를 만들고 있는 애플TV플러스와 달리 아마존프라임은 기존 IP의 실사화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코믹스 원작 드라마 <더 보이즈>로 시장에 존재감을 알렸고,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잭 리처>를 추가 제작하기로 했으며 유명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을 리메이크한 드라마 송출을 앞두고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 첫 시즌 제작비가 무려 4억 6,500만 달러(약 5,839억 원)입니다. 신규 IP를 알리기보다 이미 유명한 IP를 구입해 돈을 쏟아부어 최고 수준의 실사화를 자랑하는 이 전략은 분명히 아마존의 브랜드 자산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프리미엄 콘텐츠와 달리 니치(Niche) 콘텐츠2)를 지향하는 플랫폼이 있습니다. 바로 왓챠입니다. 실제로 국내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OTT 중 왓챠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숫자(MAU)는 가장 낮은 수준인데요, 반면 트위터 등 SNS에서 인기도는 꽤 높은 편입니다. 예전부터 왓챠는 독립영화와 <좋좋소> 등 유튜브 기반 웹드라마 등을 수급하며 니치한 팬덤의 마음을 홀렸습니다. 이 전략은 동명의 BL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시맨틱 에러>에서 정점을 찍습니다. 왓챠 오리지널 <시맨틱 에러>는 내로라하는 상업영화를 제치고 7주 연속 왓챠에서 시청 1위를 기록했습니다. 실제로 왓챠는 영상과 웹툰 그리고 음원을 묶은 종합 플랫폼으로 나아가겠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플랫폼 재편 이후에도 <시맨틱 에러>와 같이 대중적이지 않아도 분명한 팬덤이 있는 콘텐츠를 보유한 플랫폼으로 포지셔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장 ‘덕후’ 친화적인 플랫폼인 셈이죠.
<시맨틱 에러> 포스터
출처 : 왓챠디즈니플러스는 가족 단위 시청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플랫폼입니다. 부모의 추억이 담겨있는 마블 및 <스타워즈> 시리즈, 항상 아이들에게 인기 많은 픽사 애니메이션까지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타 OTT와 달리 극장 개봉 영화의 ‘스핀오프’ 콘텐츠가 많다는 게 차이점입니다. 신작 영화를 좀 더 재밌게 즐기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이 콘텐츠를 시청해야 합니다. 즉, 단순한 OTT가 아니라 영화의 재미를 몇 배로 높여주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여타 서비스와 포지셔닝이 다릅니다. 타 서비스들이 없어도 되는 사치재라면, 이 서비스는 디즈니 영화를 즐기기 위한 필수재입니다.
업계 선두주자였던 넷플릭스는 가장 큰 위기를 직면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넷플릭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콘텐츠를 가진 OTT였습니다. 하지만 균일하지 않은 콘텐츠 품질과 경쟁사업자의 추격으로 인해 유일무이했던 포지션을 잃었습니다. ‘믿고 보는’이라는 타이틀은 애플TV플러스와 아마존프라임에게 뺏기고 있으며, 넷플릭스보다 저렴한 서비스의 등장과 최근의 요금제 인상으로 인해 경제적인 서비스라는 입지도 잃었습니다. 디즈니플러스 등이 예상보다 많은 가입자를 얻은 데에 비해 넷플릭스의 가입자 수가 줄어든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통계적으로 넷플릭스는 압도적인 1위입니다. 하지만 이는 가장 핫하고, 힙한 서비스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장기적으로 이 포지션을 잃으면, 시장에서 입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포지션을 위협하는 가장 큰 잠재적 경쟁자는 애플TV플러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패드, 아이폰, 맥북 등 사용자에게 선제적으로 침투해서 어필할 수 있다는 점과 자사가 보유한 애플 뮤직 및 애플 아케이드와의 번들링3) 가능성, 그리고 압도적인 자본을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콘텐츠 퀄리티를 고려하면 가장 위협적인 상대입니다.
그렇기에 콘텐츠의 첨단을 달리며, ‘와!’ 라는 감탄사가 나오게 만드는 포지션은 아마 애플TV플러스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작한 콘텐츠의 숫자는 적지만, 그 완성도는 심상치 않습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파친코>는 많은 평론가들과 시청자들에게 찬사를 받았고, <코다>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세브란스: 단절>과 <우린폭망했다> 등도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브란스: 단절>
출처 : 애플TV플러스독자적인 콘텐츠를 바탕으로 독보적인 위치에 다다랐던 넷플릭스는 점점 차별점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최초’라는 포지션만으로 시장을 이끌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OTT에 친숙해졌고 많은 경쟁사업자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최초가 무의미해진 시장에서는 최고만이 유의미합니다. 정량적으로 평가가 어려운 콘텐츠 시장에서 최고는 곧 특정 포지션을 꽉 잡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짧은 15초 콘텐츠와 밈형 챌린지 콘텐츠 시장을 꽉 잡은 틱톡처럼, 각 OTT 서비스들도 자신들이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위치를 찾고 사용자에게 각인시켜야 합니다. 선발주자의 이점이 사라질 정도로 성숙한 시장에서는 각 플랫폼 사업자들이 차별화로 자신들의 영역을 독점 해야 생존할 수 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