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대중도 체감하는 것처럼, 최근 국내 방송영상콘텐츠산업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과는 글로벌 맥락에서도 도드라진다. 국내 방송영상콘텐츠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갖는 의미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 즉, 글로벌 경쟁력의 확장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정책 과제를 고민해 본다.
국내 방송영상콘텐츠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일반적인 기업 및 산업의 글로벌화에서 관찰되는 전형적 전개 양상인 ‘국내중심(domestic) → 지역중심(regional) → 세계중심(global)’의 단계적 패턴을 벗어나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국내 방송영상콘텐츠산업은 국내중심에서 지역중심으로 가는 상황에 나타난 중대한 퇴행적 압력(일본의 혐한, 중국의 한한령 등)에도, 이를 성공적으로 넘어서 세계중심으로 이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불연속적 전개는 글로벌 OTT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미디어 환경의 출현과 급성장, 그리고 국내 방송영상콘텐츠산업에 축적된 창·제작 역량이 상응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국내 방송영상콘텐츠산업과 연계, 전개해온 전략적 변화는 환경과 역량의 적합적 진화를 잘 보여준다.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하면서 아시아 시장에 초점을 맞춰 특화된 콘텐츠 내지는 가성비 좋은 콘텐츠 라인업을 늘리기 위해 선구매 형태로 접근하던 단계(집중화)에서, 글로벌 시장을 지향한 가성비 좋은 콘텐츠(장르물 등)에 초점을 맞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단계(비용우위), 그리고 <오징어 게임>(넷플릭스) 등 글로벌 시장에서도 차별화된 특유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단계(차별화우위)로 전개해온 양상은 특별하다. 국내 방송영상콘텐츠산업처럼 제한된 규모의 산업이 경쟁우위를 갖기 위해서는 특정 경쟁력에 선택과 집중해야 한다는 통념을 벗어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 것이다. 글로벌 OTT의 다양한 기대를 넘어 이제 국내 방송영상콘텐츠산업의 창·제작 역량은 글로벌 OTT의 기대 자체를 경신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최근 공식 계정을 통해 <오징어 게임>의 시즌 2 제작을 발표했다.
출처 : 넷플릭스 코리아 유튜브 채널그러나 이러한 국내 방송영상콘텐츠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양날의 칼’이다. 밝은 면이 주로 부각 되지만, 어두운 면 역시 작지 않다. 우선 밝은 측면에서는 첫째, 글로벌 경쟁력은 특정 대상에 대한 자원의존성(resource dependency)과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을 낮춤으로써 리스크 분산이 가능하게 한다. 중국 한한령 등의 부정적 영향을 극복하게 한 글로벌 OTT와의 거래 다변화는 이를 보여준다. 둘째, 대체수요처의 상존으로 방송영상콘텐츠 비즈니스의 변동성을 낮출 수 있다. 방송영상콘텐츠 비즈니스는 전형적인 위험 비즈니스의 속성을 갖는다. 소위 말하는 대박과 쪽박이 아무렇지 않게 반복될 수 있고, 그래도 이상하지 않다. 대체수요처는 이를 보다 안정화해 준다. 셋째, 방송영상콘텐츠의 가격 경쟁력 및 협상 우위 확보에 도움이 된다. 글로벌 경쟁력을 통한 거래 대상의 확대는 ‘콘텐츠 제값 받기’ 가능성을 높인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진출의 문화적 허들 극복에 필요한 소요비용을 외부화시켜준다. 예를 들어, <오징어 게임>의 자막 및 더빙작업 등에 소요된 것으로 알려진 금액은 아직 국내에서 감당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관련 출혈은 최소화하면서도 문화적 허들을 넘어선 성과를 창출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동시에 글로벌 경쟁력은 어두운 측면도 있다. 첫째, 글로벌 거래는 상호호혜적(reciprocal)이다. 즉, ‘주고 받음’이 중요하고, 일시적, 단편적으로 한쪽이 유리해 보이는 것과 달리 중장기적, 다차원적으로는 역동적 균형성(dynamic equilibrium)을 지향한다. 따라서 국내 방송영상콘텐츠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얻는 것이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만큼의 희생을 감수해야 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수적 다수를 점하는 관련 국내 중소콘텐츠기업의 피해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글로벌 경쟁력이 일종의 성공함정(success trap)으로 작용함으로써 창·제작 역량의 새로운 도전과 혁신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돌발적인 위험 상황에 대한 취약성을 갖게 할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경쟁력은 전술한 대로, 글로벌 유통을 등에 업고 얻는 면이 크다. 하지만 글로벌 유통에 대한 의존성(과도한 외부화)은 국내 유통체계의 경쟁력을 저해함으로써 상황에 따라 일부 통제 가능한(정책적 개입 등) 국내 유통체계가 아닌, 어느 상황에도 통제가 쉽지 않은 글로벌 유통체계 중심의 체제를 공고하게 함으로써 뜻하지 않은 돌발 상황을 맞이하게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경쟁력 특히 창·제작 등 특정 영역에 한정된 경쟁력은 국내 방송영상콘텐츠산업의 지속가능성과 확장성을 위해 필수적인 타 영역을 위축시킬 수 있다. 단계별로 가치를 더해가는 가치사슬 관점에서 모든 영역은 일정 수준 이상의 가치를 더할 수 있는 역량을 개발, 보존, 유지할 필요가 있다. 가치사슬의 특정 영역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균형이 필요하다.
밝은 면은 최대화하고 어두운 면은 최소화하는 것이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향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글로벌 스탠다드의 영향 범위에 진입한 국내 방송영상콘텐츠산업의 글로벌 위상에 걸맞는 협상력 강화가 필요하다. 이는 글로벌 경쟁력을 지속, 유지, 확대하는 데 필요한 바람직한 거래, 협상 및 계약 관행의 정립과 관련된다. 다양한 레버리지를 활용한 글로벌 OTT와 전략적 거래 관계 모색, IP 확보 지원과 함께 IP 유동화 및 활용 로드맵 구축·운영을 통한 IP 사업화 생태계 조성, 협상력 균형을 위한 국내·외 방송영상콘텐츠 기업 간 제휴와 연합활 성화 등이 요구된다.
둘째, 글로벌 경쟁력 확대에 따른 반대급부로 부정적 영향에 놓일 수 있는 국내 방송영상콘텐츠산업의 스페셜리스트(산업생태계의 틈새에 생겨나는 작은 변종) 즉, 잠재력 있는 중소콘텐츠기업을 보호, 육성하는 것이다. 계속적인 스페셜리스트 출현을 통한 생태계 다양성 확보 그리고 그들의 적응을 통한 제너럴리스트화 메커니즘이 중요하다. 가능성 있는 중소콘텐츠기업의 발굴, 보호, 지원 그리고 단계적 혁신과 성장을 거듭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적 육성체계 마련과 운영이 필요하다. 기존 정책 금융의 틀을 벗어나 국내 OTT 기업에 대한 상생 조건부(공정한 권리 분배조건) 지원을 통해, 유망한 중소콘텐츠기업 프로젝트에 대한 재투자로 연계되도록 하는 정책 펀드 조성·운영 등도 검토할 만하다.
셋째, 기존 미디어 환경과 새로운 미디어 환경의 제도적 요구를 조화롭고 균형 있게 반영하는 체계 및 거버넌스 마련이 필요하다. 기존 미디어 환경은 국가별, 제도적 개별성이 존재했지만, 새로운 미디어 환경은 글로벌 OTT로 인한 국가 간 제도적 동형화(isomorphism) 압력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컬 관점만의 내재적 제도의 진화나 글로벌 관점만의 벤치마킹 기반 접근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과거와 달리 진흥이 중심인 스페셜리스트와 진흥과 규제 병행이 필요한 제너럴리스트 등의 분산이 커진 상황이다. 이외에도 창조/예술 영역(창·제작 등) 대 경제/산업 영역(유통, 배급 등), 콘텐츠 영역 대 디지털 기술 영역 등 영역 간 역학 구도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졌던 취약 영역의 양적, 질적 성장에 따라 이를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제도적 복잡성이 커지고 있다. 기존 틀과 새로운 틀을 어떻게 엮어낼 것인지, 현재 시스템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적극 추진하면서도, 체계 및 거버넌스의 큰 틀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넷째, 성공함정에 빠지지 않고, 고유한 창·제작 역량에 기반한 새로운 도전과 혁신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중심 혁신과 여유자원 혁신이 있다. 문제중심 혁신은 문제가 있어 꼭 해야 하는 혁신으로 ‘동기’ 측면에, 여유자원 혁신은 자원이 넉넉해 그저 해보는 혁신으로 ‘역량’ 측면에 강점이 있다. 이중 어느 하나로는 완전하지 않다. 여유가 있을 때(역량), 위기의식으로 하는(동기)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결합적 혁신 노력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창·제작 관련 시야 확장을 위한 글로벌 공동제작, 인력교환 프로그램 운영, 새로운 영역(장르, 소재 등)을 창출하는 주체인 작가, PD, 출연자 등의 양성과 지원, 정책 금융 지원 등에 있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업에 대한 일정의 지원체계 마련, 다양한 창·제작 원천의 활용과 연계 활성화 지원 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창·제작 외 여타 전·후방(프리/포스트 프로덕션, 유통, 사업화 등) 및 측방(각종 기반 기술 및 인프라 산업, 연계 가능한 타 산업 영역 등) 영역의 균형적 강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소위 ‘맛집 마인드’라 할 수 있는, ‘맛있으면 잘 팔릴 것이다’가 아닌 맛이 덜 해도 일정 정도 꾸준히 팔리도록 하는 비즈니스 역량과 영역이 잘 갖춰져야만, 국내 방송영상콘텐츠산업의 지속적 수익 창출을 통한 안정적 창·제작이 선순환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창·제작 못지않게 다른 영역에 대한 최적의 지원방안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요구된다. 유통 관련해 시장 거래를 강조하는 외부화 측면에서 글로벌 OTT 거래가 우선일 수 있지만, 외부화가 갖는 리스크가 상존하므로, 이를 일부 완충할 수 있도록 내부화시키는(국내 방송사 및 OTT 관련 효과적 지원방안 모색) 접근이 필요하다. 글로벌 경쟁력의 확보는 특정 영역의 경쟁력에서 시작됐지만, 글로벌 경쟁력의 강화는 해당 산업 및 연관된 산업 전반의 경쟁력에서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