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성장세를 이어온 OTT 업계이지만 이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OTT 사업에 가장 중요한 본질은 콘텐츠이다. 자체 스튜디오 설립을 통해 독자적인 콘텐츠를 제작하여 변화를 꾀하는 OTT들의 전망을 내다본다.
팬데믹 기간은 OTT 시장에 다양한 의미로 영향을 주었다. 닐슨코리아 자료에 따르면 2020년 2월 말 TV 이용 시간이 2019년 2월 말 동일 기간보다 2배 이상 늘었고 넷플릭스 월 이용자 수는 2019년 128만 명에서 2021년 10월 709만 명으로 5.5배 증가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한국 미디어 시장은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스트리밍 서비스가 초기 단계를 넘어 확장기로 접어든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가 서비스 중이며 본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하지는 않고 있지만 아마존프라임은 한글 이용이 열려 있는 상황이고, 워너브라더스는 HBO max를 출범시킬지 콘텐츠 제휴 형태로 진입할지를 검토 중이다. 그야말로 대세 글로벌 OTT가 경쟁하는 시장이다.
팬데믹이 지나면서 OTT 시장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 4월 말 1분기 성과를 발표한 넷플릭스 주가는 하루만에 35% 하락했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11년 만에 처음으로 가입자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최근 가격을 다시 한 번 올렸으며, 비즈니스 모델에도 게임을 추가하고 광고 기반 요금제를 도입하려는 변화를 모색 중이다. 팬데믹이 지나가면서 치열했던 OTT 시장의 경쟁이 가입자 확대에서 수익성 제고 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의 경우, 1분기 성과 발표에 따르면 가입자는 증가하였지만 영업손실은 전년 동기 대비 6억 달러(약 7,706억 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하여 디즈니는 2022년 콘텐츠 투자액을 330억 달러(약 42조 3,786억 원)에서 320억 달러(약 41조 944억 원)로 10억 달러 축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콘텐츠 투자는 가입자 확보를 위해서는 인기있는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가 필수라고 보고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하던 지난해와는 달라진 분위기로 읽힌다.
국내 OTT 서비스는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하다. 대표적으로 웨이브와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가 선전하고 있지만 소비자의 이용시간이나 구독 현황은 글로벌 OTT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OTT 이용이 본격화되기 전에 비실시간 미디어 이용 부분을 담당했던 유료방송 VOD의 매출도 2018년 8,206억 원으로 정점을 찍고 2019년 7,915억 원으로 하락세로 반전되었다.
글로벌 OTT와의 경쟁에서 국내 미디어 기업들이 배운 교훈은 플랫폼 이용자 확대에는 좋은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대응은 먼저 국내 OTT 관련 기업들의 콘텐츠 투자로 나타났다. 주요 언론을 통해 공개된 2021년 콘텐츠 관련 투자 규모를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이렇게 주요 관련 기업의 투자 규모만 살펴보아도 2020년 유료방송시장의 PP가 제작에 투자한 1조 9,000억 원을 상회하는 규모이다.
<표1> 주요 OTT 관련 기업의 콘텐츠 투자 규모 (2021년)
출처: 필자 제공, 각종 언론사 자료를 검색하여 재구성팬데믹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가 콘텐츠 투자 규모를 재검토하더라도 한국 콘텐츠 제작에 대한 투자 규모는 줄이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 이유는 먼저 전 세계적으로 한류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 중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 따르면 6월 27일자 현재 일본의 넷플릭스 TV 시리즈 Top10 중 6개가 한국 작품이다. 최근 공개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넷플릭스)이 1위이고 그 밖에도 <의사 요한>(SBS), <우리들의 블루스>(tvN), <시크릿 가든>(SBS), <이태원 클라쓰>(JTBC), <사랑의 불시착>(tvN)이 10위 내에 포진하고 있다. 한국 콘텐츠의 인기는 대만 및 동남아시아 국가 전체에서 일반적인 현상이다.
글로벌 OTT에게 가입자 성장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도 동남아 시장이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가입자 확대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한류 콘텐츠를 확보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에 대한 콘텐츠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팬데믹이 지나며 콘텐츠 투자 규모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한국의 콘텐츠 시장에 대한 글로벌 OTT 기업의 투자는 크게 감소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넷플릭스)의 경우, 블룸버그의 분석에 따르면, 제작비는 2,410만 달러(약 309억 5,404만 원)였지만 그 효과는 9억 달러(약 1조 1,559억 6,000만 원)로 약 37배의 투자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콘텐츠는 투자비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그 효과는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명 | 편당제작비 |
---|---|
<The Crown> | 13 |
<Stranger Things> | 12 |
<The Get Down> | 11 |
<The Witcher> | 10 |
<Marco Polo> | 10 |
<Sense9> | 9 |
<The Defenders> | 8 |
<Bloodline> | 7.5 |
<Altered Carbon> | 7 |
<Bridgerton> | 7 |
… | |
<오징어 게임> | 2.7 |
<표 2> 넷플릭스 편당 제작비 비교 (단위: 백만 달러)
출처: www.statista.com글로벌 OTT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한 콘텐츠 투자는 제작사 설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리지널 킬러 콘텐츠 확보를 위해, 제작 부분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CJ ENM은 지난 2016년 스튜디오드래곤 출범에 이어 최근 CJ ENM 스튜디오스(STUDIOS)를 추가로 설립했다. 이로써 최근 인수 작업을 끝낸 미국 엔데버 콘텐트(Endeavor Content)와 함께 스튜디오 삼각편대를 구축하여 국내외 시장을 모두 겨냥하고 있다. 특히 신설한 CJ ENM 스튜디오스에서 OTT 유통용 콘텐츠를 중점적으로 제작할 것이라고 한다.
제이콘텐트리 역시 자회사 JTBC 스튜디오로 OTT 경쟁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자체 플랫폼이 없는 제이콘텐트리는 플랫폼 제휴 부분에서 웨이브로 떠나 티빙과 협력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아가 제작사 필름몬스터를 2019년에 200억 원에 인수했고, SLL(스튜디오 룰루랄라)을 설립하여 감독 중심의 15개 레이블을 운영한다는 비전을 발표하였다. 글로벌 경쟁을 위해서는 미국의 wiip(Word, Idea, Imagination, Productions)을 1,338억 원에 인수하였다.
티빙과 경쟁 중인 웨이브 관련 기업들의 스튜디오 관련 동향은 주로 지상파 쪽에서 포착되고 있다. SBS는 드라마 제작 관련으로 2020년 3월 스튜디오S를 출범시켰는데 금년에는 예능 스튜디오 설립을 경영 목표에 포함시켜 발표하였다. 이를 통해 콘텐츠 메가 유니버스를 구축하고 SBS 편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슈퍼IP 생산을 지향한다고 했다.
통신사 운용 OTT의 대표 주자로는 KT의 시즌을 들 수 있다. KT는 콘텐츠 사업 육성을 위해 2021년 스튜디오 지니를 출범시켰다. 나아가 ‘2022년 미디어 데이’에서 금년 9~10개의 작품을 방영할 예정이고 50개가 넘는 드라마 제작사와 협업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 밖에도 카카오의 행보 역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카카오는 2021년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M이 합병하며 ‘카카오엔터테인먼트’를 출범시켰다. 그 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IP 밸류체인과 콘텐츠 사업 밸류체인을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였다. 동영상 제작 역량 관련해서는 6개의 영화/드라마 제작사와 자체 예능 스튜디오도 보유 중이다. 카카오는 이러한 제작 역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는 슈퍼IP 개발 및 제작을 통해 콘텐츠 기업으로서 성장한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 | 플랫폼 | 스튜디오 투자 | 해외기업 인수 |
---|---|---|---|
CJ | 티빙 | 스튜디오드래곤, CJ ENM 스튜디오스 | 엔데버 콘텐트 |
JTBC | 티빙 | JTBC 스튜디오, 필름몬스터, SLL | wiip |
SBS | 웨이브 | 스튜디오S, 예능 스튜디오 (예정) | |
KT | 시즌 | 스튜디오 지니 | |
카카오 | 카카오TV/페이지 | 메가몬스터, 로고스필름, 글앤그림미디어 등 | Radish(웹소설 플랫폼) |
<표 3> 국내 OTT 기업들의 OTT 관련 투자 현황
출처: 필자 제공, 해당 기업 관련 자료 재구성제작사라는 화두는 새로운 미디어 시장을, 새로운 경쟁 국면을 만들어 낸다. 분리와 해체가 새로운 국면의 키워드이다. 국내 미디어 산업에서 분리와 해체의 역사는 종합유선방송의 도입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대 이전, 대부분의 제작 역량이 지상파 내부에 있었다. 그러다 1991년부터 의무외주제작이 도입되었고 이후 외주제작 비율은 꾸준히 상승해 왔다. 이러한 외주제작 제도화는 1995년 케이블TV가 도입될 때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들이 시장에 연착륙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두 번째 제작 역량의 이동은 2009년 종합편성채널의 도입과 관련 있다. 많은 지상파 제작 역량이 케이블 시장으로 이동하는 2차 계기가 이 때 형성되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작 역량의 이동은 글로벌 OTT 시장의 투자와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한 ‘방영’ 창구의 다변화이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같은 글로벌 OTT뿐 아니라 유튜브, 틱톡 같은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의 발달로 콘텐츠를 유통할 수 있는 경로가 급격히 증가했다. 따라서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자사의 유통 플랫폼으로만 유통시키는 것은 수익화의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지상파가 자체 제작 콘텐츠를 자사 채널에만 태우는 시대를 지나 글로벌 OTT에 제공하고, 스튜디오드래곤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는 더 이상 tvN이나 티빙에만 유통하지 않게 되었다. 제작-유통-방영의 미디어 시장 밸류체인에서 ‘분리/해체’되는 구조로 가고 있는 것이 스튜디오라는 화두에 담긴 산업적 구조 변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작-유통-방영 중 제작이라는 원류로 업스트림해가는 미디어 산업 구조 변화의 트렌드는 유통 기회의 확대, 창작의 자율성, 장르의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 방향으로의 전환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스튜디오 시스템의 강화는 OTT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경쟁 전략으로 평가되며, 궁극적으로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 증가에도 기여할 것으로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