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올드미디어로 여겨지는 TV 방송이지만, 그렇다고 멈춰 설 순 없는 법. 디지털 전환에 맞서는 방송국들의 다양한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지상파의 유튜브 적응기를 들여다본다.
마크 톰슨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1979년 영국 BBC에 입사 후 보도국 편집장을 거쳐 8년간 BBC 사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가 정말 놀랍고 대단한 인물인 이유는 그가 이끈 8년의 뉴욕타임스의 변화와 진화 때문입니다. 8년간 BBC 사장을 지낸 그는 이후 뉴욕타임스 최고경영자로 뉴욕타임스를 이끌게 됩니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 그가 운영한 뉴욕타임스는 성공적인 디지털 뉴스 플랫폼으로서 인정받게 되죠.
지금 다시 한번 마크 톰슨이라는 인물을 호명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과연 ‘국내 방송국들은 디지털에서 성공하고 있는가’를 물을 수 있는 좋은 예시이기 때문이죠. 전 세계적으로 한국 콘텐츠들의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상상도 못할 정도의 인기를 얻고 있는 글로벌 인기 드라마 <오징어 게임>, 아카데미 수상작 <기생충>,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BTS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한국 드라마, 영화, 음악 같은 개별 콘텐츠들의 성공을 설명하려면 플랫폼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높은 퀄리티의 콘텐츠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플랫폼이 없었어도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죠.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등에 업고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BTS에게는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존재했죠. 유튜브는 중소 기획사인 빅히트에게는 가장 값싸고 효율적인 마케팅 1등 공신이었죠. 대형 기획사가 어마어마한 비용의 프로모션을 집행할 때 빅히트는 착실하게 유튜브 콘텐츠를 팬들에게 제공했습니다. BTS의 유튜브 콘텐츠는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제작되고 있죠. 이렇듯 온라인 플랫폼은 콘텐츠 제작자에게 있어서 엄청난 시너지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다시 국내 방송국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방송 사업자로서 채널을 소유하고 있는 플랫폼이자 콘텐츠 제작자인 방송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이 주제를 위해 만나 뵌 분이 있습니다. 예전에 방송국 PD, 다음 및 네이버에서 디지털 전략 기획과 동영상을 담당하셨고, 매년 유튜브 트렌드 분석 리포트를 발간하시는 분입니다. KBS 이사(비상임)이자 현 네오캡 대표 김경달님과 나눈 대화를 기사 형태로 편집했습니다.
지상파의 유튜브 고군분투기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지상파가 유튜브라는 환경에 첫 발을 디딘 것이 대략 4~5년 전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세는 유튜브보다 페이스북이었죠. ‘스브스 뉴스’는 페이스북 중심으로 카드 뉴스를 대대적으로 제작했습니다. 이후 페이스북 알고리즘 변화로 유튜브로 플랫폼을 옮겨왔죠. SBS는 ‘스브스 뉴스’, ‘비디오 머그’를, MBC는 ‘엠빅 뉴스’, ‘14F’를, KBS는 ‘크랩’ 등을 론칭했습니다. 5년의 시간 동안 ‘스브스 뉴스’는 <문명특급>이라는 디지털 미디어 기반 예능프로그램을 성장시키기도 했죠. 하지만 지상파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방송사들은 지금까지 사람들하고 상당히 긴밀한 연결 관계를 성공적으로 잘 수행해왔어요. 사람들의 생활 시간대를 다 좌우할 정도의 편성 권력을 누릴 정도였는데, 매체 환경이 분화되면서 유튜브를 경쟁 라이벌로 또 한편으로는 활용하고 연합해야 할 협력적인 대상으로 봐야 하는가가 고민이었겠죠.”
지상파 방송사의 공식 유튜브 채널들
하지만 과연 지상파 3사 중 이 두 가지 선택지에 대한 고민이 제대로 이루어진 곳이 있는가는 물음표가 따라붙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관심도가 극히 적었고, 어쩌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르죠.
“전략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까 (내부적으로) 정리가 덜 됐던 거고 근데 이제 조금 뉴미디어 전략이 정리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내부적으로 조직적인 변화 같은 것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편성 본부 자체에 크게 국이 두 개가 있다고 보면 방송을 챙기는 곳과 뉴미디어를 챙기는 곳을 같은 비중으로 두겠다는 식의 조직 개편까지 일단 한 거고요. 그다음에 편성을 통해서 어떤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도 고려의 요소를 두 가지 축을 다 반반 놓고 보겠다 이런 거죠.”
이런 결정이 지상파의 뉴미디어 도전 5년이 지난 이제야 이뤄졌다는 점에서 너무 늦은 것은 아닐지 안타까운 측면도 있긴 하지만 우선은 큰 변화를 결단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크 톰슨은 “최소 5년 이상의 전투가 꾸준하게 이어져왔고, 내 생각에 우리가 성공의 맛을 보기 시작한 것은 불과 18개월 정도 밖에 안 된 것 같다”는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어쩌면 아직은 늦지 않은 것일 수 있겠다는 희망을 걸어봅니다.
“이를테면 SBS가 디지털 전략에서는 앞서 나갔어요. 적어도 자회사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스브스 뉴스 로고를 콘텐츠 시작점에 배치했죠. 또, <문명특급>이라는 콘텐츠를 통해 뉴미디어 기반 예능을 어떻게 키워나가면 좋을지에 대한 이해도는 생겼잖아요. 역량이 이제 쌓인 거죠. JTBC에서 하는 ‘스튜디오 룰루랄라’도 그 안에서 상당히 좌충우돌했지만 어쨌든 지금 <왓썹맨> 다음에 <워크맨> 그리고 <비시즌>까지 계속해나가면서 그 속에서 디지털 전략을 어떻게 키워나갈지에 대한 역량이 생겼죠.”
유튜브 내 예능 프로그램의 약진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스브스 뉴스>, ‘스튜디오 룰루랄라’ 등이 있고, <왓썹맨>을 통해 개발된 포맷은 다양하게 확장되었죠. 그렇다면 뉴스 카테고리는 어떨까요?
“뉴스로 보면 JTBC의 ‘헤이뉴스’ 같이 계속 한 단계씩 나아지는 게 생기는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비교해보면 MBC는 짧은 시간 외주를 통해서 ‘14F’를 만들었고요. KBS 같은 경우는 느리고 미온적이긴 하죠.”
그런 KBS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이 있는데요. 바로 ‘D-live’라고 불리는 재난 특별방송입니다.
“뉴스를 연관해서 KBS 보도 쪽에서 ‘D-live’라는 게 가장 혁신적인 프로젝트인 셈입니다. KBS는 공영방송이기도 하고 재난방송 주관 방송사인데 TV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비어있고 모자란 환경일 수 있거든요. 포털의 경우 24시간 그 서비스가 돌아가기 때문에 물리적 제한이 있지 않아요. 이를테면 제주에서 태풍이 올 수도 있지만 부산에 동시에 올 수 있거든요. 일방향으로 편성되어 송출되는 방송은 이런 환경에 부족할 수 있죠. 그래서 최근에는 제주나 부산 같은 곳에서 기자가 유튜브 채널을 열어 밤샘하며 방송을 한 적도 있어요.”
각각의 미디어가 모두 동일한 전략을 취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D-live’는 재난방송을 주관사이자 공영방송사인 KBS에서 시도하기에 적합한 디지털 전략일 수 있죠. <문명특급>은 추석특집으로 TV에서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스브스 뉴스’ 유튜브 채널에서 제작되는 시리즈 콘텐츠 <네이처돌이>는 커머스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네이처돌이>를 통해 환경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품을 알립니다. 키링, 칫솔, 설거지 바 등을 판매하는 제로웨이스트 샵 175플래닛(175planet.com) 하단을 보면 ‘㈜SBS디지털 뉴스랩’에서 운영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죠.
제로웨이스트 샵을 론칭한 SBS디지털 뉴스랩
“CNN이 내년 초 유료 구독형 뉴스 스트리밍 서비스 CNN+를 출시한다는 소식은 좀 더 전격적이라 화제가 되고 있어요. CNN이 처음 나왔던 당시에는 ‘24시간 뉴스를 한다’는 것이 혁신적인 모델이었죠. 뉴스를 현장에서 위성을 통해 바로 쏠 수 있는 것 등이요. 해외 출장 가면 호텔에서 CNN부터 트는 문화까지 생길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CNN이 이제 올드 미디어가 돼버린 거죠. 그래서 혁신적인 모델로 새롭게 내놓은 것이 CNN+라는 모델이에요.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 레거시 미디어 안에서도 스스로 틀을 깨고 바뀌어야겠단 자성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미디어 환경에 대한 체감은 확실히 됐다는 것이죠. 그래서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 같고요.”
뉴욕타임스에 대한 새로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홍콩에 위치한 디지털 뉴스본부를 서울로 옮긴다는 소식이었죠.
“뉴욕타임스가 서울에 오는 것은 환경적으로 보면 코리아 리더십의 성장 등이 있겠죠. 또, 남한과 북한 구도와 경제력이 커진 한국에 대한 뉴스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있고요. 경제력이 높아진 한국에 대한 뉴스 수요도 높고요. 성장세로 보면 한국은 뉴스 수요가 급증하는 나라예요. 그러니까 여기에 뉴스 매체들이 안 오면 이상한 거예요. 뉴욕타임스가 구색 맞추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해관계상으로 봐도 맞거든요. 앞으로 글로벌하게 뉴스 미디어들이 한국을 주목한다고 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기일수록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글로벌 기업의 하청업체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도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다음 단계를 어떻게 가느냐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기로에 섰다고 볼 수 있어요. <오징어 게임>도 저작권을 넷플릭스에서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확장성을 못 갖잖아요. 오히려 지금은 넷플릭스가 시즌2를 더 원하겠지만 전적으로 그들의 의사 결정에 달린 문제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하청 기지가 될 것인지 혹은 크리에이티브 기지로서 케이우드로 나아갈 것인지의 기로에 서 있죠. 현재로 볼 때는 그 양면의 가능성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