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맷산업협의회 오픈세미나
<OTT시대, K-포맷의 현재와 미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적 사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넷플릭스 전 세계 시청 순위에서 한국 콘텐츠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게 된 지금, 방송영상 포맷 업계는 K-콘텐츠 시장의 미래를 어떻게 내다보고 있을까?
바야흐로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문화 얘기다. 화장품부터 애니메이션, 방역까지, ‘K’자만 앞에 붙이면 뭐든 글로벌 규모의 호감을 자아낸다. 대중문화 쪽은 더 쟁쟁하다. 음악계에서는 BTS가 거대한 자본을 벌어들이는 산업 그 자체가 되었고 영화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을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렸다.
그에 비해 방송의 약진에는 상대적으로 조명이 덜한 느낌이다. 전 세계 54개국에 포맷이 수출되며 글로벌 포맷 시장의 역사를 다시 쓴 <복면가왕>(MBC)의 국외판 <Masked Singer>는 돈이나, 개인적 명망과는 좀 다른 성과를 가져왔다. 게다가 <너의 목소리가 보여>(Mnet)의 국외판 <I Can See Your Voice>라는 시즌2의 제작으로 2번 타자도 히트를 했다. 이 두 히트작은 TV라는 강력한 방식을 통해 한국인의 정신과 영혼을 더 쉽게, 더 자주 세계에 배포한다. 우리 제작진과 시청자의 생각하는 방식, 유연함, 보편적 정서가 글로벌 TV 업계의 표준이 되어간다는 뜻이다. ‘진짜 시장은 이제부터 열린다’는 기분 좋은 예감을, 업계당사자들끼리만 체감하긴 아쉬워 세미나를 열었다.
포맷산업협의회 오픈세미나 포스터
오픈세미나의 타이틀은 ‘OTT시대, K-포맷의 현재와 미래’였다. 그동안 기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던 국외에서의 쟁쟁한 최신 성과를 공유하며, 현재를 분석해보고 미래를 준비하자는 취지였다. 발제자로 유건식 소장(KBS공영미디어연구소)과 황진우 대표(썸씽스페셜)가 나섰고, 포맷산업협의회장인 필자가 사회를 맡았다. 종합토론은 문형찬 차장(MBC), 민다현 팀장(CJ ENM), 박원우 대표(디턴), 강지은 방송영상광고과장(문화체육관광부)이 참석했다.
학계나 정부 중심이 아닌 업계 플레이어들끼리의 협의체다 보니, 모이면 가장 먼저 각사의 최근 실적들을 공유하며 자랑 아닌 자랑으로 회의를 시작하게 된다. 이번 세미나도 그 연장선상에서 토론이 시작되었다. 단체의 회장이자 사회를 맡은 내가 <로또싱어>(MBN)의 옵션계약1)을 가져간 폭스채널이 Proof of concept(파일럿 제작 전의 가제작본)을 제작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정규편성의 긍정적인 전망으로 자랑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가장 핫한 두 글로벌 히트 포맷의 동향이 이어졌다. 모두들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하나하나 꼽아보면 사실 엄청난 뉴스들이다. 이 체감의 온도차를 좁히자는 게 이번 세미나의 목적이었다.
민다현
“<I Can See Your Voice>는 현재까지 미국, 영국 포함 18개국에 판매가 되었는데 최근에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 편성이 확정돼서 20개국으로 늘어났습니다.”
문형찬
“<Masked Singer>는 현재 미국, 영국 포함 54개국에 판매되었습니다. 코로나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특수를 누리고 있습니다. 모든 국가가 정상적인 제작이 힘든 환경이다 보니, 오히려 검증된 성공작으로 구매가 몰리는 경향이 있거든요. 다행히 수입해간 나라마다 좋은 시청률을 보여 시즌제 제작이 반복되는 상황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최근 들어 저희 MBC에서 <Masked Dancer>(영국)나 <Masked Talent>(프랑스)처럼 ‘Masked’라는 콘셉트를 브랜드화해서 다양한 스핀오프 프랜차이즈들을 생산하는 시도를 하는 중인데 글로벌 반응이 좋다는 겁니다.”
박원우
“MBN에서 방영했던 드라이브스루 노래방 <드루와>를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등 중동 유럽지역에 배급했고요, 저희가 자체 개발한 <My Ranking>을 미주, 유럽지역에 옵션계약하고, 최근엔 워너미디어와 <H2Opera>라는 포맷을 공동개발 중입니다. 또한 많은 국외 제작사들이 저희에게 ‘한국식’ 음악 쇼의 기획안들을 보내서 ‘유료’ 검토를 부탁하는 중입니다. 그 과정에서 이전에 없던 다양한 컨설팅 비즈니스를 하고 있죠. 예컨대 폭스채널 같은 미국 제작사들과 맺은 페이퍼 포맷에 관한 독점 우선 공급계약(exclusive first look)같은 겁니다. 아무래도 <Masked Singer>의 크리에이터로 지명도가 쌓이다보니 새로운 기회를 많이 만나게 되는 듯해요.”
K-포맷은 실시간으로 진화한다. 위 내용 말고도 현재 계약 직전이거나, 진행 중이어서 공개하지 못하는 실적들도 많다. 이런 놀라운 성과를 방송영상콘텐츠의 진흥을 주관하는 부처인 문체부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강지은
“포맷 산업은 요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IP 산업의 일종으로 전망이 밝고 최근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어 더욱 기대되는 분야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런 유망한 산업이 제대로 성장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고 하고, 포맷산업협의회가 보다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실효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정책 발굴에 많은 도움을 줬으면 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포맷사업 지원 중 특히 국외업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것은, 기획 단계의 지원이다. 주로 포맷 랩 사업을 통해 ‘포맷티스트’ 등 4개 회사가 각각 프로 및 아마추어 레벨에서 페이퍼 포맷을 만들어내도록 마중물 격의 지원을 3년째 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해낸 페이퍼 포맷의 교역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나라 방송사든 다른 나라의 제작 방영물이 아닌, 종이 기획안을 구매할 용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최근의 한국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K7미디어’ 등 서구의 유력 리서치기관들은 한국의 하이브리드 포맷이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만의 ‘음악+게싱게임(guessing game)’장르의 메가 히트작에 열광하고 있다. 단순히 멋진 무대만이 아닌, 온 가족이 모여 무대의 비밀을 추리하는 재미를 제공하는 한국 음악 쇼의 특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페이퍼 포맷일지라도 독창적인 콘셉트만 있다면, 일단 입도선매, 제작도 하기 전에 판매를 제안받는 것이다.
K7미디어의 보고서 <Trends in Korean TV: Hybrid Entertainment Formats: South Korea’s Secret Weapon> 중
밝은 면이 있다면 어두운 면도 있다. 성공에 도취해 너무 특정 장르에 매몰되지는 않는지 점검도 필요할 것이다. 몇 년 전 같은 영광을 누렸던 이스라엘의 부침에서 보듯, 글로벌 포맷 업계의 순환은 빠르고 냉정하다. 이런 호시절을 지속시키기 위해선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전 세계 TV 방송 시장의 강력한 경쟁자이자, 협력자로 떠오른 OTT가, 혹시 그 모멘텀을 제공해줄 수 있을까?
사실 OTT는 포맷 업계에겐 위기의 신호였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는 기본적으로 넉넉한 제작비와 기업 이윤을 보장해주지만, 제작사와의 IP 공유에는 매우 완고한 원칙을 고수한다. 게다가 OTT의 특성상, 국경 없는 실시간 배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포맷 업계의 특성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플랫폼으로 여겨졌다. 즉, 특정 지역(국가)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다른 지역에 시즌별 판매를 이어가는 TV포맷업계의 기본적인 원칙이, 전 세계 동시 배급과 어긋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그렇게 비관적이지만은 않은 듯하다.
문형찬
“최근 <복면가왕>의 아마존 재팬 제작 계약에서 보듯, OTT가 포맷 시장에 새 문호를 열고 있다는 건 확실해요. 신규 OTT 플랫폼들이 가장 원하는 건 새로운 IP의 선점인데, 이 수요를 포맷 업계가 메워줄 수 있다고 봐요. 특히 국내 OTT들의 자본은 방송사에겐 큰 매력입니다. 드라마 시장이 이미 그렇게 됐듯, 교양이나 예능에도 OTT는 굉장히 소중한 투자자입니다. 저희도 웨이브(wavve)와 함께 <문명>이라는 비드라마 포맷을 제작 중이고, SBS도 <편먹고 072>처럼 웨이브의 투자로 제작, 선공개 후 지상파 방영을 하는 사례를 만들고 있죠. 결국 방송사의 스튜디오화가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쪽으로도 전개되는 것 아니냐는 예상을 하고 있어요.”
민다현
“저도 TV와 OTT는 공생관계라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글로벌, 국내 OTT 말고도, 특정 지역 몇몇 국가를 아우르는 ‘지역 OTT’도 강력해졌죠. 저희 CJ도 최근 아랍 지역을 포괄하는 터키의 지역 OTT와 유통계약을 추진 중입니다. 전에 없던 시장이죠. 또한 티빙(TVING) 같은 국내 OTT들은 소재나 표현수위에서 포맷 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도 해요. 새 히트 포맷이 탄생할 확률이 더 커진 거죠.”
박원우
“창작자들에게 OTT는 기회의 확장입니다. OTT나 방송사나, 아이디어를 주는 조건은 똑같아요. 어차피 IP 관련해선 아직 창작자가 불리한 건 마찬가지니까요. 오히려, OTT뿐만 아니라 유튜브나 카카오 TV 같은 모바일 기반 플랫폼까지 포함해서, 전체 시장의 크기가 커진다는 것은 창작자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환경이죠.”
포맷산업협의회 오픈세미나 현장
시장은 커지고, 수요는 늘어났다. K-포맷에 찾아온 이 골드러시(gold rush)는 업계 플레이어들에게 기대와 흥분을 준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문체부 같은 지원 기관, 해당 부처들에게도 이제 K-포맷은 중요한 분야가 되었다. 지난 10여 년간 늘 그랬듯, 우리 포맷 업계는 경험한 적 없는 놀라운 시장에서 나름의 지속가능한 해답을 찾게 될 것이다. 그것이 지식기반 문화 수출국 한국만의 ‘K’자 돌림 국위 선양이다.
한국포맷산업협의회(KFA, Korean Format Allience)
한국 포맷산업 발전에 대해 논의하고 국외시장에서의 한국포맷 보호 활동과 국제협력 강화를 위해 2016년 6월에 출범한 비영리 단체다. 현재 총 17개의 국내 포맷 분야 주요 방송사, 제작사가 회원사로 가입되어 있으며, 지난 5년 동안 정기적으로 국내 포맷 산업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진행해 왔다. 한한령 직전, 한중 포맷 콘퍼런스를 개최하기도 했고, BCWW에서 협의회 주관의 K-포맷 쇼케이스를 개최해왔으며 국제 포맷 보호 및 인증협회인 FRAPA와 협력관계를 유지해 오는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