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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ustry & Policy 1

모든 생명에 무해한
촬영 현장을 위해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글. 권나미(카라 교육아카이브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구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20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전국 638만 가구가 반려동물 860만 마리와 함께 산다. 반려동물은 중요한 가족 구성원이 되었고, 미디어는 이를 빠르게 반영했다. 반려동물 관련 프로그램이 생겨났고, 광고에서는 동물 이미지가 자주 등장했으며, 유튜브 등 1인 미디어에서는 반려동물과의 일상을 기록하는 영상이 늘어났다. 이 많은 동물은 대체 어디서 오고, 어떻게 촬영되고 있을까?

미디어 속 동물, 귀여움 혹은 혐오감

미디어에서 등장하는 동물의 이미지 하면, 대다수는 귀여운 모습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사람들은 귀여운 동물을 보며 힐링하고 싶어 한다. 동물권행동 카라가 시민 2,05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1)에서도 동물 영상을 시청하는 이유 중 ‘귀여운 동물이 출연해서’가 46%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참여자 56%가 동물 영상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감소한다고 답변했다.

반면 미디어가 이용하는 동물의 주요 이미지에는 동물에 대한 ‘혐오감’도 있다. 이는 2000년대 초반에 자주 등장했다. 당시 국내 예능 프로그램은 혐오식품을 보양식으로 포장하여 등장시켰다. 혐오식품은 도마뱀, 벌레, 박쥐와 같이 식용으로 익숙하지 않은 야생동물을 음식으로 만든 것으로, 출연진은 혐오식품을 모르고 혹은 억지로 먹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결국 동물을 입에 넣은 출연진이 비명을 지르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 흔하게 연출된다. 때로는 동물이 살아있는 채로 등장하여 출연진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도 한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 장면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 야생동물을 먹는 방송은 사라지지 않았다. 1인 미디어로 플랫폼만 바뀌어서 여전히 방송되고 있다. 오히려 더 자극적이고 더 폭력적으로 동물을 이용하고 있다.

촬영 현장에서 동물은 안전하지 않다

훈련된 동물이라도 낯선 환경에서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이거나, 오랜 대기 시간이 기본인 촬영 현장은 스트레스가 높을 수밖에 없다. 카라는 국내 미디어 종사자 15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동물이 어떤 환경에서 촬영되는지, 동물 학대 상황은 없었는지를 확인했다.2) 실태 조사 결과, 동물과 안전하게 촬영하기 위한 기본적인 대책이 없는 현장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64%는 현장에 동물 촬영 가이드라인이 없었고, 35%는 동물 전문 스태프가 없었다고 답변했다. 촬영 후 출연 동물 처리에서도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개, 고양이, 말과 같이 업체에서 섭외되거나 보호자가 있는 동물은 촬영 후 돌아갈 곳이 있지만, 촬영을 위해 구매되거나 자연에서 포획된 동물의 처지는 달랐다. 동물은 소품처럼 다루어졌다. 16%는 업체에게 되팔았고, 8%는 동물이 촬영 후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3%는 폐사했다고 답했다. 동물의 책임자가 불분명한 경우, 동물의 추후 처리는 오롯이 제작부의 책임으로 맡겨졌고, 이에 관한 규정은 없었다.

미디어 종사자들의 59%는 동물들이 현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판단했다. 직접적인 사례를 묻는 질문에서는 심각한 동물 학대에 해당하는 사례들이 드러났다. 8%는 촬영을 위해 고의로 동물에게 해를 가했고, 13%는 촬영 시 사고로 동물이 죽거나 다친 적이 있다는 결과도 나타났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영화 장면 묘사를 위해 거북이 등껍질을 벗겼다’, ‘촬영 중 놀란 말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전기충격기를 사용했다’, ‘새가 멀리 날아가지 못하게 하려고 다리를 부러뜨렸다’, ‘앉아있는 개의 모습을 찍기 위해 오래 붙잡고 있었더니 개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등이 있었다.3)

컴퓨터 그래픽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해외에서는 동물의 권리와 안전에 공감하며, 실제 동물을 출연시키는 것 대신 컴퓨터 그래픽을 선택하고 이를 홍보하는 영화나 방송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미디어 종사자 실태조사에서 58%는 컴퓨터 그래픽을 고려한 적 ‘없다’고 답했다. 고려하지 않는 이유로는 예산 부족(41%)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장면(33%)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컴퓨터 그래픽 보편화에는 예산, 기술력, 그리고 시간을 반드시 확보해야 가능하기에, 현장 실무자에겐 여전히 동물을 직접 출연시키는 일이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물론 컴퓨터 그래픽에서는 동물 학대가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하려 동물에게 연기를 시키는 과정에서 동물 학대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물에게 연기 훈련을 시키는 업체의 학대 사건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카라의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 카라가 제작한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출처 : 카라 홈페이지

동물권행동 카라는 2020년, 미디어 속 동물의 안전과 권리를 위한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를 제작했다. 국내 최초의 가이드라인으로, 감독, 프로듀서, 작가, 1인 미디어 제작자에게 동물을 학대하지 않을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더불어 미디어를 소비하는 시청자에게도 동물 학대 영상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며, 학대 영상을 어떻게 신고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특히 종별 가이드라인은 미국 인도주의 협회(AHA)의 가이드라인을 기본적으로 참고하면서 한국의 법, 동물 보호 환경, 영화제작 관행 등을 고려하여 적절한 내용을 변형, 생략, 추가하였다. 종별 가이드라인의 주요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개/고양이 인도주의적인 방식으로 훈련된 16주령 이상의 동물을 출연시킬 것을 권고한다
조류 새 주변에는 유리판을 설치하지 않아야 하며, 길들여진 새는 영구히 방사될 수 없다.
어류 종에 맞는 물을 준비해야 하고, 동물이 적응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30초 이상 물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
말과 축산동물 말의 걸음에 이상을 주는 장치나 약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파충류/양서류 살모넬라균이 있기 때문에 촬영 전후 촬영에 참여하는 모든 인원이 손을 씻도록 물과 비누를 갖춰둬야 한다.
곤충과 거미류 호흡기가 섬세하므로 주변에 있는 사람은 절대 흡연을 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

가이드라인을 제작하고 배포하면서 미디어 종사자의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대부분은 동물의 안전을 염려했고, 동물을 위한 환경개선에 동의했다. 미디어 종사자들은 과거보다는 지금의 현장이 그나마 나아진 편이라는 점에는 동의했으나, 이는 개인들의 동물권 인식이 향상된 결과이다. 반드시 시스템으로 뒷받침되어야 보편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 가이드라인은 모든 논의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가이드라인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물론 있었다. 전문가는 가이드라인이 어렵고 까다로워야 미디어에서 동물들을 무분별하게 이용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지금의 카라 가이드라인은 동물이 촬영으로 인해 다치거나 죽지 않아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제안하고 있다. 촬영 현장에서 해를 입어서 안 되는 생명에는 아주 당연하게 인간도 포함된다. 동물에게 안전하지 않은 현장은 인간에게도 위험하다. 미디어 종사자 실태조사에서 동물과의 촬영에서 인간이 다친 적 있다고 8%가 대답한 것만으로도 그 연관성을 알 수 있다. 미디어 종사자들이 이토록 당연한 안전에 공감해주고, 앞으로 함께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고 개선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 동물권행동 카라의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는 카라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다운로드 가능하다.

필자 소개

  • 권나미
  • 동물권행동 카라 교육아카이브팀 활동가. 카라동물영화제, 동물전문 킁킁도서관을 담당한다. 영화의 내용을 넘어서 촬영 과정에서의 동물의 권리를 고민하여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제작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