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26 2022 Winter

    하늘에서 콘텐츠가 비처럼 내려와

PEOPLE 2

합정만화연구학회 웹툰을 처방해드립니다

김현주  사진 서봉섭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웹툰 속에서 길을 찾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 <웹툰 내비게이션>이 출간됐다. '비평은 깊은 이해와 사랑에서 나온다'는 책 추천사처럼, 웹툰에 대한 사랑으로 모인 네 명의 평론가. 합정만화연구학회 학회원을 만나 웹툰산업과 생태계 전반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웹툰 '처방'을 받아보았다.

  • people2_1 (왼쪽부터) 박범기, 성상민, 조경숙, 조익상 © 서봉섭

웹툰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안녕하세요. 합정만화연구학회와 학회원님들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합정만화연구학회 회원 박범기, 성상민, 조경숙, 조익상입니다. 2019년에 학회를 만들고 느슨하지만, 함께 모여 만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만화를 공부한다는 건 어떤 걸까요? 모여서 무엇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성상민

말 그대로 만화와 관련된 여러 구성 요소를 분석하고 탐구해요. 만화 내적으로는 한 편의 작품, 작가를 중심으로 작화와 연출, 스토리, 경향성, 사회적 의미 등을 분석하기도 하고, 외적으로는 장르나 문화권에 따라 달라지는 만화의 양상을 탐구하기도 하죠. 물론, 맛있는 음식을 함께 즐기기도 합니다.(웃음)

  • people2_4 책 <웹툰 내비게이션> © 알라딘

지난 10월, 합정만화연구학회 분들이 공저하신 <웹툰 내비게이션>이 출간됐어요. 어떤 책인가요?

조경숙

내비게이션이 길을 안내하듯, 웹툰을 안내하는 책이에요. 수많은 웹툰 속에서 어떤 작품을 볼지 모르겠다는 분들. 혹은 웹툰 취향을 넓혀보고 싶은 도전자를 위한 책이죠. 1부에서는 산업 지도 전반을 조망했고, 2부에서는 '100선의 도착지'를 뽑아 소개했는데요. 웹툰을 즐기는 방법을 다양하게 제시한 책이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책을 집필하시면서 고민하고,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조경숙

웹툰 독자들 또한 장르와 산업, 생태계 전반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요. 작품이 창작되고 유통되는 산업의 구조 안에서 독자는 핵심적인 주체거든요. 요즘 불법 유통도 문제가 되는데, 좋은 작품을 위한 독자의 역할은 무엇인지도 함께 다루고자 했어요. 단순히 '여행객'이 아니라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독자를 대하고 싶었거든요.

산업 생태계를 조망하는 걸 넘어서, 실제 독자에게 100가지 웹툰 작품을 소개하는데요. 선정 기준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요.

조익상

저희가 생각했던 키워드는 '웹툰 향유 경험의 확장'이었어요. 아무래도 다양한 작품을 만나야 확장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었죠. 100선 전체의 기준은 다양성이고 개별 작품의 기준은 완성도라고 할 수 있어요. 그중에서도 대중적 재미, 사회적 의미, 장르적 만족도로서의 묘미, 예술적 시도로서의 별미라는 4개의 카테고리로 구체화했습니다.

출간 전 열린 한 북 페스티벌에서 취향이나 니즈를 고려한 웹툰을 추천하시는 걸 '처방'에 빗대어 말씀하셨는데요. '처방'이라는 단어를 선택하신 의도가 있었을까요?

조익상

더 개인화된 추천에 알맞다고 생각했어요. 웹툰은 때론 힐링과도 연관되잖아요. 우리가 웹툰 작품을 처방해주는 약사라는 컨셉을 잡아봤습니다. 실제로 한 모녀에게 처방을 내렸는데요. 어머님께는 웹툰 많이 보는 딸 걱정하지 말라는 처방, 따님에게는 청소년 맞춤작인 <집이 없어>를 처방했는데 이미 복용 중이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연의 편지>도 추가 처방했습니다.

많아도 너무 많은

  • people2_1 © 서봉섭

웹툰 시장이 근 10년 안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행의 흐름에 굉장히 빠르게 반응하기도 하고요.

조익상

장르든 코드든 분명 유행이라고 할 만한 게 발견됩니다. 제작 에이전시가 대거 등장한 흐름과 맞물려 가속화된 지점도 있고요. 2015년에 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 <달빛 조각사>가 크게 히트를 했는데요. 그때부터 계약 중개를 넘어 자체적으로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에이전시가 폭발적으로 생겨났고, 그 중심이 노블코믹스였던 거죠. 그런 상황 속에서 웹소설의 유행이 다시 노블코믹스로 이식되고, 그게 우리가 느끼는 '유행'의 실체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노블코믹스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러한 시장의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익상

아무래도 우려가 되죠. 탄탄한 스토리를 지닌 웹소설을 잘 골라서 웹툰화하는 건 반길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예도 있으니까요. 웹소설 IP를 워낙 경쟁적으로 사들이다 보니 엉망인 원작이 웹툰화되기도 하거든요. 운 좋게 좋은 작품을 확보했다고 해도 제작 역량 부족으로 웹툰화를 망치는 일도 생기죠. 또, 웹툰 작가들의 역할이 갈수록 분업화되고 작가의 의미가 변화하기도 했는데요. 변화가 가져오는 장단이 있지만, 지금은 덜 존중받는 방향으로 변해가는 게 보여서 우려스럽습니다.

산업이 유행에 동조화되어 움직이는 것이 작가들에게도 좋은 현상은 아니라고 보시는 거죠?

조익상

그렇죠. 지금 만화가 지망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졸업 시즌이 되면 노블코믹스 에이전시, 기획사, 제작사 등에서 섭외가 많이 와요. 데뷔하는 작가 수는 분명 늘고 있고 더욱 늘겠지만, 자기 작품을 온전히 연재할 수 있는 작가가 많지 않겠다는 전망을 하게 되더라고요. 개인 작가가 홀로 만든 작품이 협업으로 제작되는 대형 작품과 경쟁해서 눈에 띄기란 쉽지 않아요.

조경숙

그래도 요즘엔 오히려 자신만의 방식으로 했을 때 더 돋보이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딜리헙에서 연재를 시작했던 <극락왕생>이나 인스타툰 <며느라기>처럼요. 그러니 지금의 웹툰 성공의 공식에 갇히지 말고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웹툰이 유행해서 나도 봐야 할 것 같다는 압박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조경숙

제가 웹툰 리터러시 교육을 할 때가 있는데요. 양육자나 선생님들이 많이 느끼시더라고요. 자녀 혹은 학생들과 함께 웹툰을 즐기고 싶은데 힘드시대요. 눈이 너무 아프거나 내용이 별로라고 하시는데, 그럴 때 저는 굳이 같은 작품을 볼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려요. 본인에게 맞는 작품을 찾아서 즐기면 돼요. 서로 다른 취향을 공유할 때 오히려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지곤 하잖아요.

실제로 웹툰 작가의 노동환경이나 처우 등에 대에서도 논란이 많죠. 어디서부터 변화가 시작돼야 이것이 개선될 수 있을까요?

조경숙

저희가 독자를 중요한 주체라고 앞서 언급한 것도 같은 이유인데요. 아무래도 독자의 인내심이 중요한 것 같아요. 휴재해도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 준다거나, 조금 너그러운 피드백을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성상민

기준을 만드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물론 스튜디오냐, 에이전시냐, 혼자 하느냐에 따라 층위가 다 다르죠. 하지만 전반적인 업계의 기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휴식이 될 수 있을까

  • people2_1 책 <웹툰 네비게이션> 카드리뷰 © 출판사 <냉수>

이번 호는 어떻게 콘텐츠가 다시금 이용자와 창작자에게 '휴식'과 '오락'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됐는데요. 어떤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박범기

콘텐츠가 범람할 때일수록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일종의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지혜는 수용자 내면에서 길어 올릴 수도 있지만, 외부의 지혜를 참고하는 것으로 배가될 수도 있을 거예요. 주변에 작품을 고르는 눈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친구나 지인이 있다면 그 의견을 참고할 수 있겠네요. '최애' 작품을 영업하고, 영업 당하는 일이 다양한 콘텐츠의 향유로 이어지는 거죠.

그럼 학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좋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독자들이 그런 좋은 작품을 고르는 팁을 주신다면요?

성상민

각자 취향이 다르니, 저마다 생각하는 '좋은 작품'도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어요.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팁은, 시간 나는 대로 다양한 작품들을 찾아 읽으며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는 것이 곧 좋은 작품의 발견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표지만 보고, 일부만 보고 취향과 다르다며 바로 손을 떼는 게 아니라 도전하는 마음으로 여러 작품을 찾아보세요. 이전에는 몰랐던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되는 것은 물론, 생각 이상으로 넓고 다양한 만화를 만날 수 있으실 거예요.

마지막으로 <웹툰 내비게이션> 홍보 부탁드려요!

조익상

콘텐츠산업에 발을 디디길 희망하는 지망생이라면, 이 판에 어떤 작품이 존재하고 인정받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산업 종사자분들은 더더욱 저희 책을 보셔야죠.(웃음) IP 확장이 아직은 안 된 명작이 몇 개 담겨 있기도 하고, 또 산업에 대해서 평론가들과 연구자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시각을 참고할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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