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를 통한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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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NRK(노르웨이방송공사)에서 방송된 한 프로그램은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베르겐에서 오슬로까지의 일곱 시간 기차 여행을 네 대의 카메라를 사용하여 보여준 이 방송은 몇몇 인터뷰 내용을 제외하고는 말 그대로 기차 안팎의 풍경만을 일곱 시간 내내 그대로 보여줄 뿐이었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이른바 '슬로우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크게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유튜브에서 불멍 영상이나 빗소리 영상 등이 상당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지금까지도 다양한 변주가 지속되고 있는 '삼시세끼'나 '윤식당' 부류의 콘텐츠 또한 광범위한 의미에서는 이러한 슬로우 콘텐츠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응답자가 "인생 역전 성공 신화보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담은 콘텐츠를 선호한다"는 답변을 보여준 점은 세대를 뛰어넘는 슬로우 콘텐츠의 인기를 실감하게 해준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출근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슬로우 콘텐츠는 힐링을 갈구하는 정서적 탈출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유로운 마음으로 자연이나 좋아하는 대상과 교감하는 순간이야말로 많은 이들이 궁극적으로 선망하는 '전통적인' 힐링의 순간이자 휴식의 형태일테지만, 뷰 좋은 캠핑장을 찾는 차박은커녕 주말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단풍 관광객의 일원이 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평범한 직장인에게는 콘텐츠를 통한 휴식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개인의 취향을 바탕으로 언제 어디서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게임 기반의 가상 공간은 현대인의 힐링을 위한 새로운 대안 공간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