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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화에 민감했던 몇몇 창작자는 이미지를 스캔해 각종 온라인 게시판 등에 짧은 컷 만화나 일상툰, 옴니버스, 에세이 등을 올렸고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트래픽이 필요했던 포털사이트는 이러한 온라인 만화를 미끼상품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3년 다음의 '만화 속 세상'과 2004년 네이버의 '네이버웹툰'이 서비스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웹툰의 시대가 열렸다.
글 권창호 사무국장(웹툰협회)
90년대까지는 종이만화의 시대였다. 주간지와 스포츠신문은 종이만화의 주 무대였다. 만화방과 책 대여점 또한 건재했다. 그리고 90년대 후반, 인터넷의 시대가 도래했다. 독자들은 잡지나 신문에서 제공하던 정보를 PC로 얻게 되었고 차츰 종이매체의 입지는 사라져갔다.
시대의 변화에 민감했던 몇몇 창작자는 이미지를 스캔해 각종 온라인 게시판 등에 짧은 컷 만화나 일상툰, 옴니버스, 에세이 등을 올렸고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트래픽이 필요했던 포털사이트는 이러한 온라인 만화를 미끼상품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3년 다음의 '만화 속 세상'과 2004년 네이버의 '네이버웹툰'이 서비스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웹툰의 시대가 열렸다.
만화가의 관점에서 웹툰의 시대란, 뛸 수 있는 운동장이 무한대로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이잡지는 연재 편수가 정해져 있고 발행되는 잡지에 따라 지면 또한 물리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지만, 온라인에선 이론적으론 지면의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웹툰을 종이만화와 구분 짓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댓글'이다. 댓글은 독자가 자신의 견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다른 유저와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장을 만들었다. 댓글 창은 웹툰으로부터 파생되었으나 나름의 독립된 생명력을 지닌 능동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독자의 의견이 모여 하나의 큰 여론을 형성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확장된 무대와 댓글 창, 이 두 가지는 만화가들에게 '무한경쟁'이라는 작업환경의 토대를 강제한다. 독자들의 즉각적인 반응과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조회 수, 그에 따른 순위 매김과 유료 결제율은 곧 작가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대략 두 달에 한 번쯤 당직 서듯 차례가 돌아왔던 컬러 작화는 독자들의 요구와 입맛에 따라 이제는 기본이라 여겨질 정도로 당연시되었다. 초창기 짧게는 40~50컷, 많게는 60~70컷이던 회차당 분량은 90~100컷 이상으로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년 웹툰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화가들의 하루 평균 작업시간은 10.5시간, 평균 작업 일수는 5.9일이다. 창작 활동의 어려움으로 꼽은 주된 원인으론 연재 마감 부담으로 인한 작업시간 및 휴식 시간 부족이 85.4%, 과도한 작업으로 정신적/육체적 건강 악화가 85.1%로 나타났다. 그나마도 많은 작가가 배경과 채색 등 각 파트 별로 분업화하여 작업함에도 불구하고 위의 수치가 나온 것임을 고려한다면, 가히 살인적인 작업량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작가의 창작 스타일, 그림체 등에서 개인적 차이가 있겠지만 현재 웹툰 플랫폼 연재작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장편 극화 분야에서 작가에게 주어진 작업량은 이미 개인이 감당하기 불가능한 영역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이에 대한 공론화와 문제 제기의 목소리는 높고 몇몇 사연이나 사건, 사고들은 이미 위험의 한계치에 도달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만화가들 내부에서조차도 "누가 강제로 등 떠민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냐"라든지, "만화가라면 체력도 필수", "그 정도 작업량도 못 버티면 애초에 만화가 자격이 없는 것" 등 심드렁한 목소리도 절대로 적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러한 목소리를 내는 작가들은 대부분 20년 넘게 만화를 그려 온 중견작가들이다. 이들은 90년대 후반 종이매체의 몰락과 함께 지면이 사라지는 경험을 한 세대이다. 쉽게 말해 만화를 그리다가 배를 곯고, 밥줄이 끊겨 본 사람들이다. 심지어 포털사이트 초창기, 이렇다 할 유료모델이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 이렇다 할 수준의 원고료조차 받지 못하며 웹툰이 무료로 서비스되는 것을 감내했던 작가들에게 현재의 유료모델, 이를테면 최근 대거 도입된 '기다리면 무료' 서비스나 포털사이트에서 여는 각종 프로모션, 계약을 통한 일정 RS(Revenue Share, 수익 배분) 등은 꽤 감지덕지한 일일 것이다.
또 다른 주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만화에 대한 애정이다. 하고 많은 직업 중에 만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발적으로 이 바닥에 들어온 이상 이 바닥의 룰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인데 누구 탓을 하겠냐는 거다. 나아가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오롯이 작가의 몫이며, 제아무리 힘들다고 한들 컷 수를 타의에 의해 제한당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직업적 자부심’도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 오류가 있다. 문제를 제기하는 측도, 감내해야 한다는 측도 이 문제를 자칫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현재 만화·웹툰계에서 '누구 탓'을 해야만 한다면 이는 오롯이 '시스템'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개선의 영역이지,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화가라는 직업군이 노동자와 자영업자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기에 나타나는 모순 또한 존재한다. 이를테면, 치킨집 사장이 셔터를 내리듯 몸이 아프면 무급 휴재하면 되고 그 결과는 작가가 감내해야 할 몫이 아니냐는 질문은 반쪽짜리 진실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치킨집 사장은 하루 매출을 포기할 뿐이지만, 만화가는 주간연재 1회 휴재로 월 수익의 25%가 날아간다. 단골을 기반으로 하지만, 유동 인구에 매출의 상당수를 기대하는 치킨집 사장과 달리 웹툰 세계에선 한번 떨어진 별점과 댓글 평판, 순위를 회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매주 '쿠키' 혹은 '코인'을 유료로 결재하면서 습관처럼 작품을 클릭하는 고정 독자들은 곧 창작자들의 수익과 직결된다. 물론 유료 고객이 아니더라도 '댓글'을 통해 적극적인 의견 표출이 가능한 지금의 시장에서 이용자의 실망은 곧 조회 수 감소, 즉 수익의 감소로 다시 이어진다. 여느 식당보다도 '단골 잡기'가 중요한 것이 바로 현 웹툰 시장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완전한 자영업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플랫폼을 통해 보호받는 노동자로도 볼 수 없다. 배너에 노출할 프로모션 스케줄을 이유로 플랫폼 담당자가 "잠시 휴재를 할지 말지, 선택은 작가님 자유입니다"라고 했을 때, 그것이 결코 자영업자의 '자유'와 동일시되지 못하는 현실이니 말이다.
결국 현재의 독자이자 소비자들은, 즉자적(卽自的)으로 판단할 뿐 해당 산업과 산업 종사자의 작업환경을 특별히 고려하지는 않는다. 플랫폼 또한 마찬가지다. 이윤을 위해 존재하고 소비자들의 선택에 기민하게 반응할 뿐이다. 하지만, 웹툰 산업의 기본단위는 작품이며 작품을 생산하는 일차적 주체는 작가이다. 그러한 작가가 잔인한 노동환경에서 신음하고 있다면, 대책을 고민해 볼 시점이다.
변화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미국이 1938년 법을 제정해 시행한 '주5일제'가 우리나라에서 2002년 처음 시범 도입될 때, 일부는 "일주일에 5일만 일하면 직장이 돌아가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비쳤다. 시위도 하고, 반대 서명을 진행하기도 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직장이 무너질 거라는 우려였다. 하지만 2011년 주5일제가 전면적으로 도입된 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모두가 걱정하던 직장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 심지어 아이러니하게도 지속 가능한 발전을 고민하고, 때로는 규제와 제재를 가했던 분야는 눈부시게 도약했다. 반면 눈앞의 이익만 좇았던 분야는 동력을 상실하고 폐허가 되어 사라져갔다.
폐허처럼 사라지지 않기 위해, 더 큰 성장을 위해 우리는 변화해야 한다. 특히 최근 실험적이나마 연재 주기의 다양화가 점차 이뤄지고 있는 것은 꽤 고무적인 일이다. 나아가 조회 수의 차이 등 일절 전제조건 없이 연재 기간에 비례한 일정 횟수의 유·무급 휴재를 부여하는 문화도 하루빨리 정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주5일제'와 같이 시스템의 선제적 도입이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방향키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동시에 이용자들은 '창작자 휴식'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작가의 휴재를 '성실하지 못함'이 아닌 '휴식'이라는 단어 그 자체로 바라봐 주고, 아무 거리낌 없이 다음 연재를 기다려주는 인내심을 발휘해 보는 것이다. 함께 쉬어가고, 때론 묵묵히 지켜보면서 변화의 여정에 함께 해주었으면 한다.
웹툰 산업 1조 원의 시대. 그 안에는 '창작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어쩌면 그 답은 자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