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26 2022 Winter

    하늘에서 콘텐츠가 비처럼 내려와

현장 취재

전기 없이도 짜릿한,
SPIEL '22

서수빈 주임(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문화팀)

| SPIEL '22

  • 주       최

  • 프리드헬름 메르츠 페얼라그, 에센시

  • 기       간

  • 2022.10.06 ~ 2022.10.09 (총 4일)

  • 위       치

  •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에센시

  • 행사내용

  • 1983년 처음 개최된 역사 깊은 보드게임 행사로 소비자와 게이머를 초청해 새로운 게임과 장난감을 즐길 수 있게 한 B2C행사다. 매년 행사 내에서는 여러 사람들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독일 게임상(Deutscher Spiele Preis)'에 대한 시상식이 열리기도 한다.

  • 행사규모

  • 약 980개 기업 참가, 14만여 명 방문(2022)

다시 만나 반가워, SPIEL

  • on_1 SPIEL 2022 현장 © 한국콘텐츠진흥원
  • 매년 10월, 독일 북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발렌주에 있는 에센(Essen)시에서는 전 세계 보드게임 플레이어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행사 '슈필'(Spiel)이 열린다. PC와 모바일이 전 세계 게임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은 지금, 슈필은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아날로그 게임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행사다. 모두가 애칭처럼 '슈필'이라 부르는 이 행사의 정식 명칭은 '국제 게임의 날 슈필(Internationale Spieltage SPIEL)'이다.

    개최 40주년을 앞둔 해당 행사는 처음부터 국제 행사로서의 규모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1983년 첫 개최 당시에는 독일의 보드게임 퍼블리셔들이 참가하는 국내 행사였지만, 점차 인지도를 높이며 전 세계 50여 국가, 1,000여 개의 업체가 참여하며 매년 20만 명의 방문객이 참가하는 행사로 거듭났다. 다만 매년 폭발적으로 성장세를 보이던 행사는 2019년 전 세계를 강타한 COVID-19의 영향으로 주춤하는 기세를 보였다. 2020년에는 온라인 행사로 대체됐고, 작년에는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되 19년 대비 절반으로 규모의 축소를 보이며 여전히 코로나의 영향 아래 있음을 보여줬다.

    특히 보드게임은 플레이어 간의 현장 교류를 최대 장점으로 꼽는 이들이 많기에, 슈필 2022의 오프라인 행사 개최 소식은 전 세계 보드게임 팬들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2년간 대면으로 참가자를 만나지 못한 보드게임 업체에게는 비즈니스 장이 되고 전 세계의 보드게임 팬에게는 신작을 만나고, 숨은 고수들과 실력을 겨루는 장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실제 행사장을 가는 열차 안에는 당일 현장 구매를 위한 큰 캐리어와 가방을 든 사람들로 가득 찼고, 모두 설렘을 안고 가는 것이 느껴져 반가웠다.

K-보드게임 나가신다

  • 행사가 진행되는 Messe Essen 전시장은 총 8관으로 이뤄졌고, 그중 6개의 전시장을 슈필이 사용하며 대규모 행사임을 실감케 했다. 전 세계 56개국, 980여개의 부스가 마련됐고, 진흥원 지원을 통해 마련된 '한국 공동관'은 HALL 4에 마련됐다.

  • on_3 SPIEL 2022의 한국 공동관 © 한국콘텐츠진흥원
  •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의 다양한 보드게임 업체와 보드게임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각각의 독립 부스가 아닌 공동관의 형태로 참여를 지원했다. 만두게임즈를 비롯해 게임올로지, 다즐에듀, 젬블로, 팝콘에듀 총 5개 업체가 참여했는데, 교육용부터 파티형 보드게임까지 유형을 다양화해 전 연령층이 즐길 수 있게 준비해온 점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외에도 총 4개의 한국 업체가 자체적으로 개인 부스를 마련해 참가해 업체 간 서로 돕고, 때론 경쟁하며 더욱 열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주최 측인 독일을 포함해 보드게임 강국인 유럽국가들과 다르게 아직은 한국 보드게임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는 않기에, 현장 프로모션을 통해 적극적인 모객이 이뤄졌다. 노출도가 높은 입구 등에 배너를 위치시키고, 타 부스에 대기하는 관람객 및 바이어들에게 부스 방문을 유도하는 등 업체들 모두 적극적으로 임했고, 이는 준비 수량 완판 및 방문객 증가로 이어졌다. 특히 3년 만에 참가한 오프라인 행사인 만큼 참가 업체들은 적극적인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했고, 행사장 곳곳에서 명함을 주고받으며 협업 관련 논의를 이끌어 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 on_4 한국 공동관의 방문객 © 한국콘텐츠진흥원
  • 한국 공동관의 주 방문객은 10·20세대의 자녀가 있는 가족 단위였다. BTS와 블랙핑크를 포함해 유럽지역에서의 인기를 끌고 있는 K-Pop의 영향으로 젊은 자녀가 가족을 이끌고 방문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몇몇 부모는 "우리 아이가 요즘 한국에 빠졌어요"라며 웃기도 했다. K-Pop과 <오징어 게임> 등으로 시작된 한국에 관한 관심이 곧 한국 보드게임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보드게임이 뜬다

  • 박람회가 진행되는 3박 4일간 가장 피부로 와닿았던 점은 <2021 대한민국 게임백서>에서 이야기한 보드게임 시장 동향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중에서도 성공적인 IP와 보드게임의 결합, 보드게임을 '수집'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는 점과 1-2인 게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 on_5 IP를 활용한 보드게임 © 한국콘텐츠진흥원
  • 먼저, 성공한 IP를 활용한 점이다. <오징어 게임>, <진격의 거인>과 같은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IP가 보드게임으로 탄생한 것이다. 기존 보드게임 룰에 캐릭터나 배경을 적용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개발 단계에서부터 해당 IP에 맞게 게임을 기획한 것도 볼 수 있었다. 이는 모두가 익히 아는 IP를 통해 홍보와 캐릭터 개발 등에 대한 비용 절감 도모는 물론, 관련 IP의 팬층을 노릴 수 있는 전략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수집의 개념을 보드게임에 적용한 것이다. 도서에서 '양장본'과 '초판본'에 대한 열풍이 불었던 과거처럼 보드게임에서도 프리미엄을 찾는 이들이 증가했다. 특히 기존 보드게임의 확장판과 빅박스, 고급스러운 플라스틱 피규어 등이 대표적이었는데 디자인과 구성물의 높은 퀄리티 등이 코어 보드 게이머를 즐겁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 듯 보였다. 당일 현장에서도 <앙크(Ahnk)>, <크툴루: 죽음마저 소멸하리(Cthhulhu: Death May Die)>, <위쳐: 올드월드(The Witcher: Old World)> 등이 한국 가격으로 20만 원이 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판매 개시 직후 매진되면서 '플레이어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보드게임이 성공한다'는 법칙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포켓몬(Pocketmon)>, <마블 챔피언스(Marvel Champions)>, <유희왕(Yu-Gi-Oh!)> 등 카드를 수집하여 진행하는 트레이딩 카드 게임 또한 마찬가지였다.

  • on_6 스플렌더 듀얼(Splendor Duel) 부스 © 한국콘텐츠진흥원
  • 마지막으로 눈에 띄는 변화는 소그룹 플레이 양상이었다. 모임과 만남이 제한된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지만, 취미생활의 개인화가 곧 전 세계적인 2인용 보드게임 수요로 이어졌다. 이번 행사에서는 유명 보드게임인 <스플렌더(Splendor)>가 듀얼 게임용인 <스플렌더 듀얼(Splendor Duel)>을 출시하며 주목을 받았는데, 해당 부스에는 행사 기간 내내 끊임없이 테스트 게임을 하는 이들로 북적였다. 그 외에도 플레이어 혼자 진행이 가능한 퍼즐류가 인기를 끌었다. 특히 <크라임 신(Crime Scene)>, <UNLOCK> 시리즈와 같이 시나리오 기반의 추리게임이 많은 이의 흥미를 끌었고, 스마트 디바이스나 게임 보조기구를 활용한 1인 게임도 많이 등장하는 추세였다.

K-한류, 보드게임을 위하여

  • 사실 코로나19가 보드게임 수요 증가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외출이 제한되고,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며 '보드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2020년 10월 카카오가 발행한 <카카오 코로나 백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이 절정에 달했던 20년 3월에 보드게임과 퍼즐 판매량이 연초 대비 643%, 4월에 716% 증가하는 등 보드게임이 중요 실내 오락거리로써 자리 잡았음을 보여줬다.

  • 하지만, 단순히 코로나19 영향 외에도 보드게임이 하나의 즐길 거리로 일상에 자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친구와 가족 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여 보드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동시에 '보드게임 카페' 등에 대한 수요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보드게임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주요한 산업 부문 중 하나다. 슈필에서도 가족 단위부터 60·70대 노인들까지 연령층이나 주거 형태 등과는 관계없이 많은 이들이 보드게임을 즐기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이번 2022 슈필 참가는 이러한 성장세 속에서 모두가 즐길만한 높은 퀄리티의 게임이 한국에도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모바일과 PC게임 제작사에 비해 비교적 작은 규모를 가진 보드게임 업체들에게는 시장 동향을 파악하고 해외 비즈니스의 문을 여는 틈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 보드게임 시장의 경우, 시장 특성상 업체의 규모와 상관없이 누구나 성공 가능성이 있다. 하나의 작품이 성공하면 우후죽순 컨셉이나 구성 등을 모방하는 타 장르와 다르게 보드게임은 해적판과 카피캣이 통하지 않는 시장이기에 더욱 그렇다. 소비자 사이에서도 '진품'에 대한 수요가 높고, 워낙 작은 시장이다보니 업계 내에서도 이를 조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즉,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독점할 가능성이 큰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이번 슈필을 발판 삼아 업체들이 새롭게 바뀐 시장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고, 새롭고 다양한 제품과 판매 방식을 선보여 <오징어 게임>의 뒤를 잇는 'K-한류: 보드게임'의 시대를 열어가길 기대해 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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