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26 2022 Winter

    하늘에서 콘텐츠가 비처럼 내려와

핫트렌드 2

신발을 살 '기회'를 사는 시대

정태성 대표(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

중학교에서 농구를 전문적으로 하는 아들을 둔 덕분에 새로운 농구화가 발매되었다는 소식만 들리면, 득달같이 매장으로 달려가서 신어 보고 구매하는 일을 반복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농구화를 구매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먼저 신어 본 인플루언서들의 착용 후기를 본 후 바로 매장으로 가는 것이 일종의 수순인데 아무리 빨리 매장으로 달려가도 '품절'이라는 얘기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라인에서 검색하면 두 배가 넘는 엄청난 고가에 그 농구화를 팔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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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화뿐일까? 대략 2~3년 전부터 오픈런, 샤테크, 슈테크 등 새로운 용어가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언론에서도 '한정판인데 엄청나게 가격이 오른 상태에서 재판매 된다더라', '누구는 이렇게 해서 월 몇천만 원씩 벌었다더라', '이게 바로 MZ 세대의 재테크 방법이다' 등 보도를 통해 '성공한 리셀러'들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현상에 더욱 불이 붙었다.

특히, 소위 MZ세대를 중심으로 '리셀'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다양한 경제 현상으로 이어졌다. 경제 활동의 새로운 주체로 '리셀러'가 등장했고, 재판매를 전문적으로 중개하는 플랫폼 기업들이 나타났다. 또, 이에 대해 기존 기업들은 대응 혹은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방법들을 쏟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일반 소비자들은 예전이라면 쉽게 구할 수 있던 상품을 바라만 보며 발만 동동 구르는 일도 많아졌다.

리셀러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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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리셀러들의 등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물론 조금의 개념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과거 존재했던 '암표상'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너무 인기가 있어 표를 구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스포츠 경기나 문화예술 공연이 있을 때마다 슬그머니, 그리고 아주 조용하게 등장해서 '혹시 표 구하세요?'라고 묻는 바로 그 암표상 말이다.

이들로부터 시작된 오늘날의 리셀러들은 우선 경제 작동원리에 충실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공급은 부족하고 수요는 많은 상품에 대해서는 가격이 올라가기 마련이고, 이를 예측하고 활용할 줄 아는 인간. 리셀러들은 바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호모이코노미쿠스'가 틀림없다. 더 나아가 리셀러들은 아주 한정적인 시장에서는 수요가 떨어지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본인들이 나서서 공급을 줄여버리는 일을 한다. 그 후 리셀러가 곧 제2의 공급자로서 역할을 하며, 가격을 높여버리는 것이다.

다만 원리는 과거 존재하던 암표상과 유사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수의 변화다. 로버트 실러의 <내러티브 경제학>에서는 인간 개개인의 불합리한 선택과 행동이 실제로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얘기하면서 그 이면에는 내러티브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요즘 같이 경제가 불확실하거나 정확한 투자 대상을 찾기 힘든 시기에는 누군가가 돈을 엄청나게 벌었다거나 여러 매체를 통해 급격히 확산하면 실제로 다수가 그 불합리한 행동을 함께하며 경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이다. 리셀도 마찬가지로 최근 청년 대다수가 주식을 하고, 가상화폐에 대한 맹목적인 투자를 하는 것처럼 '리셀이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다'라는 내러티브가 곧 리셀러의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소위 말하는 '양떼 효과'(Herd effect)가 발생했고, 리셀러들의 확산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지 말이다.

리셀에 대한 기업의 대응

  • hot2_img3 © 크림
  • 그렇다면 이러한 리셀러들의 등장에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이는 두 가지로 나누어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새로운 기회로 보는 시각이다. '리셀'에 대한 개개인의 관심과 행동들은 기업들이 이를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로 인식하게 했다. 새로운 유통 구조로 접근해 재판매를 전문적으로 중개하는 플랫폼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네이버의 계열사인 운동화 전문 리셀 플랫폼 '크림'이나 무신사의 '솔드아웃', 그리고 '리플'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 또한 새로운 접근은 아니지만, 오늘날처럼 온라인 거래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리셀러들과 일반 소비자들이 서로 안심하고 거래를 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기업들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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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하나는 마케팅 방안으로 활용하면서도 리셀러들에게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스니커즈 생산업체인 나이키는 조던에 대한 충성고객을 많이 보유하고 있고, 리셀러들이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브랜드다. 나이키가 활용하는 방식은 특정 시점에 수량을 푸는 '드롭'과 응모를 통해 구매 자격을 주는 '래플'이 있다. 이는 한정 수량, 즉 희귀한 신발을 얻게 된다는 것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리셀러들의 선 넘은 재판매가 시작되자 나이키는 지난 9월, 이용 약관에 '재판매를 위한 구매 불가' 조항을 추가했다. 브랜드 이미지 훼손과 인기 상품 외의 제품에 대한 상품 판매량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리셀러에 대한 명백한 제재를 가한 것이다. 유사하게 샤넬, 에르메스 등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상이라는 차이가 있거나 실행 방법만 조금 다를 뿐이지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한 리셀러들의 반발과 실제 효용성이 있을지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 그렇다면 필자를 포함한 일반 소비자들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실 황망하지만, 그저 기다리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을 가졌지만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는 거다. 암표상과 리셀러 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나면 조금 이해가 쉬워진다. 그들의 가장 큰 차이는 '현시성'이다. 암표의 경우 오늘 바로, 지금 당장 그 경기와 공연에 한정되기에 그 현장이 지나가 버릴까 두려운 소비자와 재화의 가격이 '0'이 되길 원치 않는 판매자 간의 심리 전쟁이 끝없이 이어진다. 반대로 대부분의 리셀러들이 판매하는 건 지금 당장,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한 상품이 아닌 경우가 많다. 한정판이라 하더라도 또 다른 한정판이 등장하거나, 해당 제품에 대한 수요가 떨어지면 가격이 하락하는 예도 많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구매의 기회를 기다리거나, 그만큼의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다른 대체 상품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한동안은 지속될 리셀의 시장에서 현명한 소비자로 진정한 승리자가 되어보는 거다. 정신승리로 시장의 흐름을 초월하다 보면, 어쩌면 우리만의 '희귀템'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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