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을 위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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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 동안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공간이다. 스트리밍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극장을 찾던 관객들은 나 홀로 편히 영화를 즐기는 환경에 적응해갔다. 예상치 못한 타인의 방해를 견딜 필요도 없고, 한 편의 영화를 원하는 만큼 나눠볼 수 있으니 이보다 편할 수 없다.
그러나 <탑건: 매버릭>이 개봉하면서 극장 영화에 대한 호감이 돌아왔다. 2년이나 개봉이 지연된 36년 만의 속편은 액션 영화뿐 아니라 극장 영화를 재정의했다. 130분 동안 톰 크루즈가 펼치는 전투기 액션 드라마를 즐긴 관객들은 입을 모아 "이것이 바로 영화"라고 외쳤다. 평단은 "모든 미국 극장이 애타게 찾던 영화"라 평을 하며 관람을 부추겼다.
수많은 사람이 집 밖으로 나와 기꺼이 극장에서 '바로 영화'를 감상했고, 그 결과 지난 10월 기준 <탑건: 매버릭>은 2022년 세계 최고 흥행작이자, 역대 미국 박스오피스 5위 영화가 되었다. '바로 영화'라는 찬사에는 극장에서 꼭 봐야 하는 콘텐츠라는 공간적 특성이 포함되어 있다. 극장은 아무리 산만한 관객도 2시간 동안 몰입을 가능케 하는 공간이다. 팬데믹 동안 '구독자(subscriber)'로 명명되었던 이들은 그간 불가능했던 집단적 몰입을 경험하며 영화 관객(audience)으로 돌아왔다.
액션 영화와 함께 호러 영화도 극장에서 봐야 하는 독보적인 장르로 부상했다. 9월에 개봉한 저예산 호러 영화 <스마일>은 35세 미만 관객층을 극장에 불러들이며 한 달이 넘도록 꾸준한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상영 중 관객이 구토를 해서 유명해진 초저예산 슬래셔 호러 영화 <테리파이어2>도 박스오피스 10위권 내에 진입했다. <블랙폰>, <바바리안>, <인비테이션>, <할로윈 엔드> 모두 하반기 박스오피스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던 영화들이다.
<스마일>의 배급 담당자는 CNN을 통해 관객의 '공동으로 몰입하는 경험'에 대한 욕구가 흥행 성공의 비결 중 하나라고 말했다. 무서운 장면이 수시로 등장하는 호러 영화를 수많은 사람이 함께 보면 서로의 반응을 즐기는 축제의 장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스트리밍 서비스로는 체험하기 힘든 입체적 경험이다. CNN 기자는 이런 호러 영화를 두고 "스트리밍 혁명에 대한 면역력을 보여준다"고 표현했다. 모든 장르가 스트리밍 서비스로 흡수되고 있는 가운데 유독 호러 영화만 극장에서 더 강한 생명력을 보이고 있으니 '면역력'이란 말이 과장이 아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