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ol.24 2022 Summer

    가상인간, 현실로 로그온

핫트렌드 3

가깝고도 먼,
퍼블리시티권

이현민(대중문화평론가)

지난 6월 8일, 퍼블리시티권 보호를 위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민법상 따로 규정이 없던 ‘퍼블리시티권’이 처음 명문화된 것이다.

  • hot3_1 © Shutterstock
  • 퍼블리시티권. 많이 들어봤지만, 여전히 생소한 단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초상권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이 법을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고치면서 그 단어의 생소함까지 그대로 가져왔고, 그래서인지 더욱이나 아리송하게 느껴지는 법이기도 하다.

퍼블리시티권, 그리고 문제들

  • 퍼블리시티권은 성명과 초상 등 자신을 식별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상업적 이용 권리가 스스로에게 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그 권리에 대한 사용 승인 여부가 논의의 관건이다. 즉, 내가 가진 권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는가가 주요 쟁점이 된다. 당연히 모든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지만, 과거 이를 이용하여 상업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당사자는 연예인과 특정 유명인에 국한됐다.

    하지만, 1인 미디어 시대가 도래한 지금은 다르다. 누구나 하룻밤 사이에 유명인이 될 수 있고, 결국 누구나 퍼블리시티권 침해 위험을 갖는 것이다. 개인의 권리가 중요한 화두가 된 이 시대에 퍼블리시티권의 제정과 시행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판례가 적어 관습법적 성격을 띠고, 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hot3_2 ⓒ Jewel-Osco / Dominick’s

    미국의 경우, ‘마이클 조던 상표권 분쟁’ 등 초기 퍼블리시티권은 유명인의 이름과 초상에 관한 권리에서 출발하였지만, 이제는 유명인의 표상, 심지어 특정인과 연결된 물체에 의해 연상되는 인격까지 인정하자는 시도까지 이어지고 있다. 1950년대부터 약 70여 년간 시행해온 미국에서조차 세월이 흘러가면서 법의 적용 범위와 해석이 계속 변화하는데, 판례조차 찾기 힘든 우리나라에서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적용하여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막막해 보인다.

모호한 개념과 흐릿한 경계

  • 사례 1. 과제 발표에 내 연예인 사진이?
    너무나 익숙하고 유명한 인물의 사진을 활용하여 대학교 과제물 중 일부를 만들었다. 반응은 뜨거웠고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한 학생이 “내 가수”의 사진을 어떻게 함부로 사용할 수 있냐며, 퍼블리시티권의 침해라고 이야기한다. 수많은 광고에 자주 사용된 사진이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밈으로 활용하고 있던 사진이라 퍼블리시티권 침해라는 말이 당황스럽다.1)

  • 이는 한국인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고, 충분히 발생 가능한 가상의 사례다. 해당 사례의 경우 당연히 퍼블리시티권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학 과제물로 유명인의 사진을 활용했을 뿐,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진을 접한 유명인의 팬은 “내 가수”의 사진이 무단 도용된 것으로 보았다. 엄밀히 따지면 인격권 중 재산권이 침해된 것이 아닌데, 그 사실은 간과한 채 퍼블리시티권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는 국민들에게 와 닿지 않는 용어의 사용이 촉발한 문제다. 대략적 의미는 알지만 정확한 개념을 설명하기 어려운 영어식 표현이 혼돈을 가져온 것이다. 아이덴티티의 범위 역시 모호하다. 유명인의 이미지, 서명, 캐릭터 등 표현물의 범위를 얼마나 넓게 적용해야 하는지 등과 더불어 유명인과 일반인을 객관적으로 구분하는 지표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유명인으로 한정한 법률은 자칫 연예인 특권 보호법처럼 비추어질 수 있고, 누구든 그 권리를 보장받아야만 하기에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논의가 필요하다.

  • 사례 2. 나를 그대로 따라한 모창 가수왕?
    설 특집 모창 가수왕은 우리 가족이 사랑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모창 가수왕 1위에 뽑힌 김씨는 가수 A씨의 시그니처 창법은 물론 헤어스타일과 의상까지 완벽하게 재현하였다. 그는 설 특집 방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각종 광고와 행사 섭외 1순위가 되었다. 많은 팬들이 생겼고,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였다. 그런데 돌연 가수 A씨로부터 고소를 당하게 되었다. 퍼블리시티권 침해라는 것이다.2)

  • 사례 2의 경우, 대중문화를 즐기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패러디에 관한 이야기이다. 패러디의 본래적 의미도 단순 모방이 아닌 원작을 면밀히 분석하여 비틀고 풍자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것에 있는데, 이러한 과정 중에 당연히 상업적 이해관계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퍼블리시티권 침해 여부를 결정할 기준이 불분명하다.

  • hot3_3 ⓒ 레인컴퍼니
  • 예를 들어, 비의 깡이 역주행하며 큰 사랑을 받게 되었는데, 이 역주행의 원동력은 인터넷 밈(meme)에서 비롯되었다. 유튜브 등 SNS를 통해 패러디되기 시작한 비의 “깡”은 수많은 짤을 양산하며 하나의 밈으로 큰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깡” 패러디가 문화 현상이 되자, 한 음료 회사는 비를 ‘패러디’하여 자사 홍보 게시물로 활용하였는데, 비의 팬들은 이를 두고 퍼블리시티권에 저촉된다며 문제를 제기하였다. 패러디가 하나의 문화 현상처럼 자유롭게 활용되었지만, 직접적인 광고로는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튜브를 통해 비의 짤을 만들어 게시한 유튜버에게는 상업적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높은 조회 수와 유명세, 광고 수익까지 발생하는 것이 유튜브의 수익구조인데, 용인되고 되지 않는 상업성의 간극은 어떻게 매울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어디까지, 어떻게 패러디는 허용될 수 있으며 ‘표현의 자유’와 퍼블리시티권 중 무엇이 더 우선시되어야 하는지 그 경계가 모호한 실정이다.

K-컬쳐 보호, 메타버스의 시대적 숙명

  • 그렇다면 이렇듯 우리의 정서와는 다소 거리가 먼, 퍼블리시티권을 왜 시행해야만 할까. OTT의 도입과 함께 K-콘텐츠가 급부상하는 시점에서, K-컬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퍼블리시티권이 문화콘텐츠 산업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시작되었듯, 대중문화 산업이 발달할수록 해당 문제의 중요도는 높아진다. 특히 콘텐츠 무단 도용에 관대한 중국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려면, 먼저 국내법 도입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이미 수년 전부터, 중국 포털 사이트에는 한국 연예인이나 콘텐츠 캐릭터를 그대로 활용한 광고가 등장하고 있다. K-Pop의 모방 또한, 이제는 단순 모방을 뛰어넘어 미묘한 차이까지 베껴 혼동을 일으키는 수준이 되었으니 법적인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국내법이 존재하지 않아 해외 위반 사례를 적발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 hot3_4 wenhoney ⓒ 抖音
  • 메타버스 산업 또한 아바타, AI 딥페이크 등의 기술이 발달하며 법적인 보호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에서 딥페이크 기술로 만들어진 크리에이터 ‘wenhoney’, 일명 ‘차이유’가 뷰티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고 있고, “아이유 닮은꼴”로 높은 인기와 수입을 올린 것이 뉴스에 연일 보도되었다. 당연히 퍼블리시티권의 침해 사례로 법적인 제재를 받아야 마땅한 상황이지만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메타버스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바타가 일종의 재화가 된 지금, 메타버스 내의 아바타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막대해졌다. 그중에서 유명인의 캐릭터나 의상 등을 도용하여 아바타를 제작하거나 현실 세계의 저작물을 가상세계에 그대로 활용하는 사례들까지, 퍼블리시티권의 위반 사례는 셀 수 없다. 가상의 세계라고 타인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는 것을 용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문화콘텐츠 산업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한국이 억울한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무형의 지적 재산권을 명문화된 기준으로 보호해야 할 때가 왔다. 그만큼 이러한 사례들은 수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고,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형의 재산이 보호받는 시대

  • 법조계 일각에서는 퍼블리시티권이 상속, 양도가 안 되므로 재산권의 성격을 가지지 못하고 개정법이 큰 효력이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퍼블리시티권은 권리의 침해가 발생하였을 때 구제에 그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유명인의 권리 자체를 미리 재산권으로 확정해주기 위함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연예인 특별법으로의 오해의 소지가 있기에 더욱 상세한 기준 마련이 요구된다.

  • hot3_5 ⓒ 넷플릭스, 농심
  • 또, 대중문화의 파생이 자유로운 표현과 다양한 밈의 발생, 이를 통한 다양성 확보에 존재의 가치를 둔 만큼, 퍼블리시티권의 제정이 자칫 경직된 패러디 문화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다양한 영역의 대중문화가 공존하면서 한 사람의 인격권과 재산권을 함께 보호할 수 있는 포괄적인 개념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수없이 발생 가능한 법적 분쟁에서 법조인과 문화콘텐츠 현장 전문가들의 협의와 소통이 필수적이며, 현장에서 통용되는 예술의 영역과 법적 해석의 여지로 발생할 수 있는 모호성의 틈을 메워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퍼블리시티권의 제정과 시행에 대한 다각도의 홍보도 시급하다. 몇 해 전 “폰트 저작권” 위반으로 발생한 불미스러운 상황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퍼블리시티권을 위반할 수 있음을 인지하도록 말이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이 주도하는 콘텐츠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그들에 관한 법의 제정과 시행 홍보가 필수적일 것이다.

    아직은 낯선 개념이지만 이와 같은 노력이 모여 무형의 재산이 충분히 보호받고, 또 보호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해지는 시대를 만들 것이라고 본다.

  • 1)
  • Yahoo!news(2015.10.04.), “Michael Jordan Is Suing a Supermarket for an Ad Using the Air Jordan 1 Without Permission”
  • 2)
  • 남형두, 「세계시장 관점에서 본 퍼블리시티권」, 『저스티스』제86호,한국법학원,2005.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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