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심상민(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바야흐로 누구나 콘텐츠에 투자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과연 이러한 콘텐츠 투자의 혁신은 콘텐츠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편집자 주
2001년 봄, 영화 <친구>의 제작과 함께 한국 콘텐츠 경제사의 제1기에 해당하는 ‘네티즌 펀드’가 열린 금융 시장을 선도했다. 당시 순제작비 20억 원으로 출발한 <친구> 프로젝트에 1차 마케팅 비용 10억 원이 들어갔고, 개봉 후 영화가 대박 조짐을 보이자 추가 마케팅 비용 10억 원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이때 긴급 수혈 자금으로서 네티즌 펀드가 구원 투수 역할을 했다. 이후 크라우드펀딩으로 개념이 확장되었고 이윽고 플랫폼 기반의 콘텐츠 투자 방식이 혁신적인 트렌드를 이끌게 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음악 저작권 거래 플랫폼 기업이 국내 증시 상장을 예고하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세계 최초 저작권 거래 플랫폼을 표방하는 기업 뮤직카우는 2016년에 설립되어 음악 지식재산권과 저작인접권에서 발생하는 저작권료를 받을 권리인 ‘저작권료 참여 청구권’을 거래 대상으로 삼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 흡사 주식처럼 몇 주 단위로 쪼개어 거래할 수 있는 콘텐츠 증권이 플랫폼 안에서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도록 했다. K-콘텐츠 직접 투자를 기치로 내건 또 다른 플랫폼 펀더풀의 행보도 주목을 끌고 있다. 펀더풀은 드라마와 영화, 웹툰,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 상업 대작을 폭넓게 커버하는 ‘K-콘텐츠 전문 투자 플랫폼’을 내걸고 있으며, 이전까지 전문 투자자의 전유물이었던 문화콘텐츠 투자라는 특정 종목을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누구라도 홈페이지를 통해 여러 장르에 걸친 콘텐츠 프로젝트를 검수한 뒤 손쉽게 투자할 수 있다. 빠르면 12개월 안에 수익 실현을 기대할 수 있도록 했다.
전문가의 영역을 벗어난 콘텐츠 투자는 디지털화된 비즈니스 모델 및 수익 데이터와 함께 뚜렷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뮤직카우에서는 10월 현시점까지 920여 곡의 저작권이 거래되고 있고, 지난해 이용자 평균 투자 수익률은 연 8.7%로 알려져 있다. 2021년 9월 한 달 거래액은 700억 원을 돌파했고 누적 거래액은 2,465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개인 투자자 누적 회원 수는 2021년 9월을 기점으로 71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었다.1)
펀더풀의 경우, 최근 종영한 TV조선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2>의 투자금이 2주 만에 5억 원 가까이 모였다고 한다. 투자 수익은 TV조선 최고 시청률에 근거하여 제공하는데, 최종화(16회)가 16.582%를 기록해 수익률은 8%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2) 2021년 8월 개봉한 영화 <싱크홀>은 초과 모집되었고, 2022년 여름 개봉 예정인 영화 <데시벨(가제)> 공모도 직전에 와있다. 이 영화는 일반 개인 투자자가 최대 500만 원까지 투자할 수 있고 매출 총합이 총비용(총제작비+개봉 비용+수수료 등)을 넘어서면 수익이 실현되는 상품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기존의 텀블벅, 와디즈 등 크라우드펀딩 형태의 파이낸스 시스템이 음악을 비롯한 콘텐츠 전반을 다루는 투자 플랫폼으로 확장한 것은 자연스럽게 콘텐츠 비즈니스 활동의 본원적 영역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변화의 양상은 디지털 투자, 디지털 제작, 디지털 유통의 고도화로 압축 표현할 수 있다. 2021년 2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승리호> 사례가 대표적이다. 중국의 텐센트 등이 250억 원 순수 제작비 20%를 충당하자 투자배급사를 경유해 게임사 엔씨소프트가 100억 원 투자를 단행했다. 이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크라우디가 진행한 일반인 프로젝트 투자 사전 등록에는 4,900여 명이 신청했다. 이후 IBK기업은행, 미시간벤처캐피탈 등이 합류했고 최종적으로 넷플릭스가 310억 원으로 판권을 구매함으로써 전 세계로 와이드 릴리즈되었다.3) 이처럼 해외 IT 기업의 최대 지분 투자, 비 미디어 기업의 투자, 크라우드펀딩 등이 복합적으로 집결하는 ‘비전문가’ 네트워크 펀딩이 혁신적 콘텐츠 투자 방식을 선도하고 있다. 이는 곧 산업 생태계 변화로 연결되어 다양한 플레이어들을 등장케 했는데, 영화와 드라마 제작 투자의 디지털화를 촉진하는 B2B 플렛폼 blintn, Goviddo 등이 대표적이다.
투자의 디지털화는 기존 표준이자 주축인 오프라인 직접 피칭이 갖는 배타성, 정보의 비대칭성 등의 한계를 넘어서게 해준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구매자가 콘텐츠를 직접 스크리닝하는 오랜 관행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들어서는 더더욱 불편하게 되었다. 이런 제약을 넘어서기 위해 신생 서비스 벤처들은 시장과 수익 데이터를 분석하여 콘텐츠 특성별로 다양한 펀딩 참여 투자 시스템을 마련하고 고객에 맞춘 큐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경로로 투자 채널이 작동하도록 함으로써 선택권을 확장시키고 있다.
결국 콘텐츠 파이낸스의 개방적 혁신이 디지털 제작, 디지털 유통 혁신으로 작용하면서 콘텐츠 산업 전반에 플랫폼 경제 효과가 극대화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열린 시장으로 들어오는 다양하고 적극적인 신규 일반 개인들은 ‘관조하는 수동적 투자자’라는 틀을 박차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왕성한 참여로 제작 과정에 관여하고 홍보와 판매, 마케팅까지 거들며 전체 디지털 제작, 유통시스템 전환을 ‘하드캐리’하고 있다. 자기 지분을 가지고 주인의식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비평과 댓글 참여는 물론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키가 되는 더빙, 자막, 해설이나 문화 교류, 현지 팬 커뮤니티 활동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콘텐츠 투자 방식 혁신이 불러올 디지털 제작과 디지털 유통시스템 고도화의 향방은 ‘개인 지분 집단 지성(individual owner’s collective intelligence)’의 실력과 적합한 경영 활약이 결과를 좌우할 것으로 내다보인다. 신규 창조 계급이 되는 뉴 오너들이 서로 긴밀하게 공조하고 조직화될 수 있도록 하는 투자 플랫폼 사업자의 조정자 역할과 선진 경영시스템 또한 결정적 인자가 될 터이다.
이렇듯 콘텐츠 투자에 우호적인 여건을 활용할 줄 아는 슬기로운 투자 에이전트 플랫폼과 ‘대박’ 잠재성을 지닌 K-콘텐츠를 조련하고 전파하는 디지털 제작, 유통 시스템 혁신 전개가 콘텐츠 생태계를 한층 더 쇄신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