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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극장과 TV 사이

글 김요한(왓챠 콘텐츠개발팀 이사)

2016년 넷플릭스의 등장 이후 서서히 영향력을 키워오던 OTT는 이제 영화와 방송 업계의 판도 자체를 뒤집고 있다. 수많은 영화 제작사, 드라마 제작사들도 너나 할 것 없이 OTT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내달리고 있다. 좋은 이야기, 훌륭한 연출과 연기가 어우러진 작품이 사람들을 사로잡는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담아내는 그릇에 따라 필요한 조건들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OTT 시리즈가 기존의 TV 드라마, 영화의 제작 판도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것이 왜 가능했는지 등을 살펴보자.

러닝타임을 결정하는 것

영화나 드라마는 궁극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진다. 창작 방법을 논하기에 앞서 돈 이야기부터 하는 이유는, 돈을 벌어들이는 방식이 콘텐츠의 형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큰 뼈대 안에서 소폭의 변형과 실험은 가능하지만, 뼈대를 완전히 비트는 시도는 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극장에서 9부작짜리 <오징어 게임>을 한 번에 몰아 상영하지 않고, TV에서 2시간 10분짜리 <기생충>을 광고 없이 방송할 수 없다. 수익을 내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자본은 절대 가능성이 적은 곳에 몰려들지 않는다.

영화는 극장에서 티켓을 팔아 돈을 번다. IPTV나 OTT 같은 부가 수익이 있긴 하지만, 통상 영화는 티켓 수익이 전체 수익의 70~80%를 차지한다. 그래서 티켓 판매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대부분 영화의 러닝타임이 2시간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람들이 앉아서 집중할 수 있는 가장 긴 시간, 24시간 동안 극장에 관 편성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길이, 팝콘과 음료수 매출을 높이기 위해 관객 회전율을 높일 수 있는 러닝타임. 그래서 영화는 2시간이어야 하고, 2시간에 가장 맞는 이야기로 발전해 왔다.

TV는 어떤가? 국내 TV 드라마의 중요한 수익원은 광고다. 사정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집에 TV가 한 대씩 있었다. 그 플랫폼에서 방영되는 광고의 효과는 꽤나 대단했다. 그래서 단가도 높고 경쟁도 치열했다. TV 광고의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수백 대 TV를 표본으로 조사해 짐작하는, ‘시청률’이 기준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엉성한 잣대로도 국내 방송국들은 매년 수천억을 광고 수익으로 긁어모을 정도였다.

때문에 TV 드라마는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사람들을 ‘오랜 기간, 최대한 길게’ 붙잡아 둘 수 있게 만들어져야 했던 것이다. 국내 TV 드라마의 미니시리즈가 16부인 이유도, 일주일에 2번씩 2달간 편성되는 이유도, 회당 에피소드가 40분이 아니라 60분, 70분인 이유도 하나로 수렴된다. 광고를 가장 잘, 그리고 많이 팔 수 있는 형태로.

영화와 드라마 사이, 그 어디쯤

TV와 극장은 기본적으로 국가 단위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규제 산업이다. 돈이 많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OTT는 통신망만 잘 깔려 있으면 기술적으로는 플랫폼 자체를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훌륭한 콘텐츠만 있다면 전 세계에 동시에 편성하고 마케팅 역량을 쏟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OTT 콘텐츠는 극장용 ‘영화’와 TV용 ‘드라마’의 중간쯤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리즈라는 특성 때문에 TV 드라마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가 크다. 업계에서는 OTT 콘텐츠의 업계 표준이나 작법, 연출 방식 등이 틀이 잡히기까지 2~3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제작을 위한 각종 계약이나 작업 방식 같은 비즈니스 구조도 그렇지만, 이야기 구조와 연출 스타일 역시 마찬가지다.

OTT 콘텐츠는 무엇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까? 티켓도 광고도 아닌 구독자 유입이다. 모바일 앱의 특성을 활용한 커머스 같은 수익모델이 곧 생기겠지만, 아직까지 OTT의 주요 수익원은 구독료다. OTT에 가장 중요한 건 전체 사용자 규모다. 모든 OTT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으며 오리지널 경쟁을 하는 이유도 구독자를 빠른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이 모으기 위해서다. 플랫폼이 확보한 사용자 규모에 따라 벌 수 있는 구독료도, 앞으로 돈을 만들 수 있는 방법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구독료를 버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새로운 사용자를 들여와서 구독자를 늘리는 것(신규 유저 유입). 둘째, 이미 구독 중인 사용자를 떠나가지 않게 잡아두는 것(잔존). 두 가지 중에는 신규 사용자를 유입하는 것이 잔존보다 훨씬 중요하다. 안 쓰던 구독자를 불러 모으는 것이 이미 쓰던 구독자를 계속 머물게 하는 것보다는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OTT의 실험 속에서

그렇다면 신규 사용자를 유입하는 데 어떤 콘텐츠가 도움이 될까? 아직 명확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대략의 특징은 있다. 일단 2시간짜리 영화 보다는 길이가 긴 시리즈가 효율이 높다. 선택한 콘텐츠를 다 소비할 때까지 붙잡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OTT 오리지널이 시리즈 중심인 이유다. 물론 시즌이 너무 길면 시작할 엄두를 내기 어려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에피소드 러닝타임은 TV 드라마보다 짧은 게 좋다. 시청 데이터를 살펴보면 TV 드라마 콘텐츠(60~70분)는 시청 중간에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제작비 때문에 TV 편성을 같이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OTT만 고려한다면 회당 러닝타임으로 60분은 확실히 길다. 그래서 많은 OTT들이 10~60분 사이에서 최적의 러닝타임을 찾고 있다.

OTT는 에피소드별로 길이를 통일할 필요가 없다. TV는 편성 때문에 정해진 시간을 반드시 채워야 하지만 OTT는 1회가 35분, 2회는 43분이어도 전혀 상관없다. 오히려 이야기 전개가 재미있는가, 다음 화를 꼭 보고 싶게 만드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창작자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많은 OTT가 여러 가지 가설을 놓고 실험을 하고 있다. 앞으로 몇 년간 그 수많은 시도 중에 대박이 터지는 콘텐츠가 나오면서 OTT 콘텐츠의 포맷이 결정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격변의 시기 한가운데 있다.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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