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승일(미디어 칼럼니스트)
가입자 수 세계 1위 넷플릭스만으로도 벅찬데, 대적하기 힘든 풍부한 IP와 막강한 제작·자본력을 지닌 디즈니 플러스(글로벌 가입자 수 1억여 명)와 HBO 맥스(6,400만여 명), 아마존 프라임(2억여 명)까지 한국 진출을 노리고 있다. 국내 OTT는 이 거인들에 맞서기 위해 어떤 전략으로 OTT 전쟁에 임해야 할까.
사람들이 왜 OTT에 가입하는가를 생각해보면 성패를 가를 답이 나온다. ‘어떻게 하면 다른 OTT보다 더 재미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서비스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오리지널 콘텐츠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OTT 사업자가 직접 투자에 참여해 제작한 자체 콘텐츠를 말한다. 그리고 둘째, 특정 OTT가 단독으로 수급한 예능, 드라마, 영화(대부분 구작)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잘 만든, 혹은 잘 수급한 오리지널 콘텐츠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넷플릭스를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한 킬러 콘텐츠 <하우스 오브 카드>가 잘 만든 콘텐츠의 대표적인 예다. 전통적인 TV 스튜디오와 함께 회당 100억 원을 투자해 제작한 이 드라마의 성공으로 넷플릭스 가입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나르코스> 등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한 시리즈물 역시 넷플릭스가 수년간 독보적인 OTT 경쟁 선두에 서는 데 기여했다.
넷플릭스와 달리 지금까지 국내 OTT 업계의 힘은 자체 제작보다는 수급에 있었다. 시청률 30%가 넘은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보기 위해 시청자는 지상파 3사가 운영하는 OTT인 웨이브에 가입해야 했다. 미국 HBO에서 방영돼 2019년 최고 화제작으로 꼽힌 드라마 <체르노빌>은 국내에서는 오직 왓챠플레이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이처럼 독점적으로 수급한 두 콘텐츠만으로 사람들은 웨이브와 왓챠플레이에 가입해야 할 명분을 얻었다.
어떤 오리지널 콘텐츠를 수급하고 제작하느냐에 따라서 OTT 전쟁의 판도가 바뀐다. 그런데 둘 중에서 더 중요한 것은 제작이다. 단독으로 수급한 오리지널 콘텐츠는 계약 기간이 있고, IP가 영속적이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자본력에서 우위에 있는 글로벌 OTT를 상대로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독점 수급하는 것은 영세한 국내 OTT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가령 넷플릭스는 영업이익률을 5~6%로 유지하며 2억 4,000만 가입자가 매달 내는 구독료 대부분을 콘텐츠에 투자한다. 올해 한국 콘텐츠에만 약 6,000억 원을 투자할 전망인 넷플릭스를, 향후 3년간 4,000억 원을 투자한다는 티빙과 올해 900억 원의 콘텐츠 예산을 집행할 웨이브가 수급만으로 이길 수는 없다.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21년 국내 업체 콘텐츠 투자액이 총 6,000억 원으로 예상되는데 넷플릭스의 올해 전체 콘텐츠 예산은 190억 달러(약 21조 6,657억 원) 수준일 것으로 전망된다.
예산 규모가 차원이 다른데 제작의 영역이라고 해서 싸움이 될까. 혹자는 승산 없는 싸움이라고 말한다. 해외 OTT는 막강한 자본력을 이용해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들과 능력 있는 작가, 감독을 캐스팅한다. 차원이 다른 글로벌 마케팅을 하고, 이미 세계적으로 인기가 검증된 풍부한 IP를 보유하고 있다. 디즈니 플러스에서는 디즈니, 픽사, 마블, 스타워즈,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의 IP에서 파생한 콘텐츠를 볼 수 있으며 HBO 맥스에서는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등 글로벌 인기 영화를 배급한 워너브라더스와 <체르노빌>, <왕좌의 게임> 등 명작 드라마로 유명한 방송사 HBO의 콘텐츠를 볼 수 있다.
현실이 이렇기에 지레 겁먹을 수 있지만, 자체 제작 오리지널 콘텐츠 영역에서의 싸움은 충분히 해볼 만하고, 그 싸움의 결실은 상당히 매력적일 수 있다. 이 영역에서 전쟁의 성패는 오로지 자본력으로만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영상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가 전체 영상의 37%에 달하는 넷플릭스지만 자체 제작 콘텐츠는 오히려 가입자 수 증가 폭을 둔화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콘텐츠는 너무 많은데 볼 게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넷플릭스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1억 달러가 넘는 자본을 투자해 오리지널 콘텐츠들을 만들었으나 번번이 인기를 끌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감독 마이클 베이에게 2억 달러를 주고 제작했지만 세계적으로 혹평 받은 <6 언더그라운드>가 있고, 데이빗 핀처의 <맹크>, 아론 소킨의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같은 예술 영화도 감독들이 그간 보여준 역량에 못 미치는 결과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넷플릭스 영화가 오스카 후보에 대거 올랐다지만, 이는 명백히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이 문을 닫아 좋은 영화들의 제작이 취소되고 개봉이 연기됐기 때문이다. 유재석, 김종민, 이승기 등 탑 예능인과 배우, 가수를 대거 캐스팅해 만든 예능도 큰 인기를 얻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국내 OTT는 활발히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을 펼치고 있다. 집중하고 있는 장르는 대부분 드라마나 예능이다. 자본력이 부족한 국내 OTT에게는 당연한 선택이다. 비슷한 제작비로 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보다 20부작 드라마나 예능을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다. 특히 드라마는 1-2부가 재밌으면 20부까지, 시즌1을 시청하면 시즌3까지 보게 하기 때문에 OTT 입장에서는 훨씬 매력적이다.
특히 재미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양산하며 세를 불리고 있는 카카오TV와 티빙의 활약이 눈에 띈다. <이 구역의 미친 X>, <도시남녀의 사랑법>, <며느라기> 등 카카오TV의 드라마는 대부분 웨이브와 넷플릭스에 공급되며 시청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 당연히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보다 제작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예능은 <톡이나 할까?>, <머선129>, <찐경규> 등 참신한 형식을 내세워 인기몰이 중이다. 넷플릭스의 인기 시리즈 <킹덤>과 <스위트홈>의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을 밑에 두고 tvN, Mnet 등 십여 개의 인기 채널을 통해 자체 콘텐츠를 송출해온 CJ ENM의 티빙은 자사 콘텐츠를 티빙에 몰아주는 ‘디즈니 플러스 전략’을 사용하며 드라마와 예능을 넘어 오리지널 영화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지난 5월 기준, 티빙의 국내 월 이용자 수(MAU)는 334만 명으로 지난 3월(327만 명) 이후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넷플릭스의 MAU가 지난 1월 역대 최고치(895만 명)를 달성한 후 5개월 연속 감소해 5월에 791만 명을 기록한 것과 대조된다.
다만 넷플릭스의 전철을 밟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혹자는 넷플릭스가 유명 감독과 배우를 섭외해 큰돈을 던져주고 지나친 자유를 부여하는 콘텐츠 제작 행태 그리고 콘텐츠의 상업성을 좇아야 할 프로듀서의 부재를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외주 제작사에 15% 이상의 GPM(매출총이익률)을 보장하지만 그 외의 인센티브는 없고 모든 IP를 넷플릭스에 귀속하는 시스템도 제작 역량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어떤 사람이 1만 4,000원짜리 영화표를 사게 되는 과정과 1만 1,000원짜리 OTT에 가입하게 되는 과정은 다르지 않다. 중요한 건 콘텐츠의 힘이다. 2019년 <어벤져스: 엔드게임>, <알라딘>을 포함해 대단한 해외 블록버스터들이 극장에 걸렸지만, 그해 관객 수 1위는 <극한직업>이 차지했다. 관객 1,600만 명을 동원한 <극한직업>의 제작비는 95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매출액은 약 1,400억 원으로, 제작비 대비 15배의 매출이 발생한 셈이다. 콘텐츠 전쟁의 승부는 오롯이 돈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OTT 전쟁의 성패 역시 더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달려있을 수 있고, 재미의 결정인자는 자본이 아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국내 OTT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본다. 몇 년 이내에 두 개 정도로 줄어 있을 것이라고도 한다. 물론, 해외 OTT와의 경쟁에서 버텨낼 곳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 OTT는 분명 거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