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진석(SKT ESG혁신그룹 팀장)
최근 ESG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국내외에서 ESG 정보가 쏟아지고 투자자 역시 기업들에게 ESG를 요구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상장기업 중심이나, 스타트업 역시 ESG에 빨리 대응할수록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스타트업은 ESG를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할지, 또 실제 비즈니스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알아본다.
ESG 열풍이 뜨겁다. 그동안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CSV(공유가치 창출), 사회적 가치와 같은 개념이 관심을 끌었지만, ESG만큼 영향력이 크지는 않았다. ESG 이슈가 너무 단기간 내에 끓어올라 혹자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겠는가 하기도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극히 없어 보인다.
상당히 지속되고, 또 강화될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근거는 많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미 기업의 재무 리포트만으로 기업을 평가하지 않게 되었다. 2014년 배기가스 테스트 부정 스캔들을 일으킨 폭스바겐이나 2018년 5,000만 명의 고객에 대한 보안 침해 사건이 벌어진 페이스북의 재무 리포트에는 이런 리스크를 감지할 수 있는 정보가 전혀 없다. 비재무 리스크나 기회 요인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에 대한 요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최근 ESG를 주도하고 있는 이해관계자가 투자자라는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기업에 가장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해관계자는 투자자와 소비자다. 이 중 투자자가 ESG 정보 공개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기에 기업은 그 어느 때보다도 민감하게 ESG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아울러 ESG 규제도 급증하고 있다. 글로벌 101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ESG 규제는 2010년대 초반 연평균 41건이었는데, 2018년 210건, 2019년 203건으로 최근 5배 이상 급증했다.1)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ESG 파도는 앞으로도 더욱 거세질 것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ESG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주로 대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관투자자들이 주로 상장회사를 염두에 두고 ESG를 바라보고 있는 이유가 크다.
기후 위기, ESG 규제, ESG 리스크 및 기회 등의 요소는 대기업만이 아니라 스타트업에게도 중요한 경영 환경이다. 문제는 ESG 표준 공시나 ESG 평가가 주로 상장회사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스타트업에게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의 엑셀러레이터 및 스타트업 투자 기관인 ‘500 스타트업스’를 비롯해 스타트업도 ESG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며 준비하고 있는 기관들이 나타나고 있다.
500 스타트업스의 조사 결과2)에 따르면, 스타트업은 ESG 정책 실현이 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응답 기업의 69%는 ESG가 매출을 증가시킬 것으로 답했으며, 압도적 다수인 91%는 ESG가 기업의 인재 유치 및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또한 52%는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들어가 보면, 영역별로 편차가 존재했다. 스타트업이 가장 쉽게 적용하고 있는 영역은 ‘사회’였다. 회사 내 차별금지 규정 마련, 직원 내 인종 다양성, 데이터 보호, 안전 관리 등 기업 문화 및 고객과 관련한 내부 규정과 프로세스를 상당히 갖추고 있었다.
환경 영역은 다소 미흡했다. ESG 정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다는 스타트업의 36%만이 환경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고 응답했다. 실제 72%가 에너지원과 수자원 소비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거버넌스는 많은 부분에서 아직 고민 단계에도 진입하지 못했다.
스타트업들이 ESG 기준 전반을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빨리 대비할수록 그 가치는 커질 수 있다. 500 스타트업스의 크리스틴 차이 CEO는 “ESG는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있어 인재와 소비자를 유치하고, 규정 준수를 강화하며, 시장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면서, “기업이 빨리 시작할수록 이러한 기회를 포착하고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는 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투자 환경 역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올해 2.2조 원을 조성하는 정책형 뉴딜펀드 공모에서 펀드 심사 고려 요소 중 하나로 ESG를 언급했다. 또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 기관에서도 ESG 요소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아직 스타트업에게 적용할 ESG 가이드라인이 구체화되지 않았고 일부는 선언적 수준이지만, 점차 스타트업에게도 ESG를 물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앞으로 ESG 정책을 가지고 있는 스타트업은 투자 유치에 유리해질 것이다. 또 ESG 정책은 스타트업들로 하여금 정보 보안, 공급망 관리 등 리스크에 미리 대비토록 하고, 기회 요인을 찾도록 함으로써 스타트업의 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타트업이 이산화탄소 배출 관리, 이사회 다양성 등의 정책을 펼칠 수는 없다. 스타트업에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몇 가지 접근 방법이 있을 것이다. 첫째,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와의 연계점을 찾는 것이다. SDGs는 2016년부터 2030년까지 유엔과 국제사회가 달성해야 할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 기후변화 대응 등 17개 목표는 ESG 영역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SDGs는 글로벌 차원의 가치라면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과제를 선정한 K-SDGs가 좀 더 구체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K-SDGs의 17개 목표, 119개 세부 목표를 통해 해당 스타트업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실행 계획을 도출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자막을 제공하는 콘텐츠 번역 기업이라면 청각장애인을 포용하는 서비스를 펼치고 있으므로 양질의 교육(4번)과 불평등 완화(10번)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또 시장 진입이 어려운 콘텐츠 창작자에게 고객을 만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라면 양질의 일자리(8번) 목표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창출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ESG가 건강한 기업 구조를 강조한다면, 사회적 가치는 실제 창출하는 사회·환경적 성과에 주목한다. 콘텐츠 플랫폼은 다수의 기회를 만들어내고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콘텐츠의 확장은 지역·인종의 장벽을 낮추고, 사회 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가치는 선언에 그쳐서는 안되고, 실제 검증을 통해 효과성을 입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자체적으로 중요한 ESG 정책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이에 대한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다. 먼저 핵심 이슈를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ESG 기관이 제공하는 산업별 중대성(materiality) 이슈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 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s Board)는 77개 세부 산업별로, MSCI(Morgan Stanley Capital International)는 158개 세부 산업별로 핵심 비즈니스에 중대한 리스크와 기회를 줄 수 있는 이슈를 제시하고 있다.3) 이러한 기준이 아니라도 자체적으로 주요한 이해관계자를 정의하고 이해관계자별 핵심 이슈를 도출하는 방법도 있다.
콘텐츠 스타트업 중에는 새로운 유통 과정, 계약 형태, 정산 규정을 만들어야 하는 기업도 있고, 다수의 콘텐츠 생산자와 협업을 하기에 공정성, 투명성이 중요한 기업도 있다. 이를 ESG 정책으로 자체 규범을 만든다면 리스크도 예방하고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데이터 관리를 해야 한다. 데이터 관리는 ESG 경영의 필수 요소다. 유니레버는 2010년 USLP(유니레버 지속가능한 생활 계획, Unilever Sustainable Living Plan)을 런칭하고, 2020년 및 2030년을 목표로 건강·위생, 환경, 삶의 질과 관련된 목표를 내걸었다. 이는 모두 73개의 세부 목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세부 목표에 따라 구체적으로 데이터 관리를 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는 “측정해야 관리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핵심 ESG 이슈를 선정하고 이를 개선하려 한다면 데이터를 측정하고 관리해야 한다. 비재무적 가치를 구체적인 숫자로 나타냄으로써 이것이 기업 가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투자, 고객 유치 및 공급망 확보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ESG를 현재의 포괄적인 정보 공개 프레임으로 본다면 스타트업이 적용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ESG 경영을 얼마나 잘 하는가’하는 프레임으로 본다면 스타트업이 더 잘 할 수도 있다.
마이티바이츠(Mightybytes)는 시카고에 위치한 디지털 에이전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ESG 경영은 뛰어나다. 보다 지속가능한 디지털 제품 및 서비스를 설계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이에 대한 영향력을 확산시키고 있다. 마이티바이츠는 모든 호스팅된 사이트에 재생 에너지를 공급하고,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방법으로 웹사이트를 개선하도록 지원한다. 마이티바이츠는 비콥(B Corp) 인증을 받기도 했다.
비콥은 사회·환경적 성과를 공식적으로 검증받고, 투명성 및 책무성에서 높은 기준을 충족하여 사회적 이익과 재무적 이익을 균형 있게 추구하는 기업에게 부여하는 인증이다. 전 세계적으로 4,000개가 넘는데, 파타고니아, 벤앤제리스, 더바디샵처럼 규모가 큰 기업도 있지만, 엣시(Etsy), 올버즈(Allbirds), 부레오(Bureo), 와비파커(Warby Parker)와 같이 스타트업 시기에 인증받은 기업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비콥 인증을 받은 기업 역시 모두 스타트업이다.
오히려 스타트업이 뾰족하게 두드러지는 ESG 경영을 할 수 있다. 최근 대기업들이 ESG 경영을 위해 관련 분야의 스타트업을 찾고 협력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SG는 스타트업에게 리스크일 수도 있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자신의 기업에게 맞는 ESG 정책을 찾고 이를 앞서서 적용해간다면 사회·환경 문제 해결도, 비즈니스 경쟁력 제고도 함께 이루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