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N 2

콘텐츠 기업을 위한 ESG 안내서

글 최세정(카카오 ESG 위원회 위원/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ESG 경영에 동참하는 국내 콘텐츠 기업이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시작 단계다. 이 글을 통해 국내 콘텐츠 기업의 ESG 활동은 어떠한지 해외 사례와 함께 비교해 살펴보고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1)

선택 아닌 필수

ESG 개념은 코로나19 이전에도 탄소중립, 사회공헌, 투명한 기업 지배 구조 등을 강조하며 기업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공동체적인 위기의식과 해결 방식에 대한 고민을 촉발한 코로나19 팬데믹은 기업의 다양한 문제와 사회적 역할을 재조명해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 전환과 ESG 참여를 가속화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국내에서도 금융, 식품, 유통, IT 등 업종을 불문하고 ESG 전담 조직을 만들거나 관련 채권을 발행하는 등 기업의 ESG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2025년부터 자산 2조 원 이상의 코스피(KOSPI) 상장사들에게 의무화되는 ESG 공시가 2030년부터는 전체 상장사로 확대되는 등 기업 활동을 위해서 ESG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다.

Ⓒ구글

콘텐츠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외적으로 콘텐츠 소비를 위한 테크 기업 중심의 ESG 행보가 두드러진다. 글로벌 기업 구글은 2007년부터 탄소중립을 실현했으며 2020년 환경 보고서를 통해 2030년까지 5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5기가와트 규모의 태양열과 풍력을 확보하는 등 탄소 배출 없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한 대표적인 ESG 활동으로서 ‘모두를 위한 인공지능 개발’이라는 슬로건 아래 인공지능을 활용해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려 노력 중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홍수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를 예측해 예방하고 수중 데이터를 활용해 멸종 위기의 고래를 보호하는 등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편 청년들의 디지털 직업 역량을 강화해 취업을 돕고 인종차별을 줄이고자 하는 단체들을 지원하며 사내외의 다양성을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표적으로 네이버가 지난해부터 SASB(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s Board; 지속가능 회계기준위원회) 보고서, 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기후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 보고서와 함께 ESG 보고서를 발간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예를 들어, 환경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신사옥 및 제2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에너지 효율을 개선, 신·재생 에너지 사용을 확대하며 친환경 사업을 발굴하는 등 2040년까지 탄소 배출이 없는 기업을 만들기 위한 정책과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내부 구성원의 역량과 복지 개선, 이용자 경험과 만족 증대, 창작자 지원 및 문화 콘텐츠 활성화, 파트너사와의 동반 성장 추구 그리고 미래 세대의 디지털 활용 능력 제고 등 사회적 가치 창출과 기여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다. 한편, ESG 위원회와 실무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인공지능 윤리 준칙, 기업윤리 규범, 컴플라이언스 조직, 반부패경영시스템(ISO 37001) 등을 통해 윤리경영과 공정거래 관리를 강화한다.

카카오도 올해 ESG 위원회를 신설하고 처음으로 ESG 보고서를 발간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카카오의 약속과 책임’의 구체적 활동을 환경, 사회, 지배 구조 영역별로 소개했다. 먼저 2023년 준공 예정인 친환경 데이터센터 건립과 환경 전담 조직 구축 및 체계 확립 등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고 친환경 플랫폼과 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한 계획이 진행 중이다. 아울러 인공지능 윤리, 프라이버시 보호, 글로벌 협력 등의 분야에서 기업의 디지털 책임을 수행하고 ‘카카오 협력사 지속가능경영 가이드’를 수립해 콘텐츠 제작자, 제휴사, 협력사 등 다양한 파트너의 경쟁력 제고 및 동반 성장을 위한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건전하고 투명한 지배 구조를 확립하고 책임 경영을 수행하겠다는 ‘기업지배구조헌장’을 제정하고 기업 활동 기준과 경과를 적극적으로 공개한다.

국내 ESG 사례: 게임, 방송, 광고

게임업계의 ESG 행보도 눈에 띈다. 먼저 엔씨소프트가 지난 3월 ‘ESG 경영위원회’와 함께 실무 전담 조직을 설립하고,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을 위한 ESG 경영의 핵심 분야로서 미래 세대에 대한 고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환경 생태계의 보호, 인공지능 시대의 리더십과 윤리를 소개했다. 넷마블도 올해 하반기 내로 이사회 산하에 ESG 위원회를 설립하겠다고 예고했으며, 넥슨도 최근 취임한 지주사 NXC의 신임대표가 내부적으로 TF를 구성해 ESG 경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게임업계의 ESG 참여는 중견 게임업체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컴투스와 게임빌은 지난 7월 ESG 경영의 컨트롤 타워로서 ‘ESG 플러스 위원회’를 신설했다고 발표했다. <검은사막>으로 유명한 국내 게임개발사 펄어비스도 지난달 ESG 경영을 위한 TF를 조직 내에 신설했다고 밝혔다.

반면 방송사 등 전통적인 콘텐츠 기업의 ESG 활동은 상대적으로 미비하다. KBS와 MBC는 연례보고서를 발간해 프로그램 중심의 성과, 시청자와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을 소개하고 JTBC는 개별적인 사회공헌활동을 모아 사회공헌백서를 발간한다. 그러나 이는 결과물 중심의 단편적인 기술에 머물고 있으며, ESG를 도입했다고 보기 어렵다. 대다수의 국내 콘텐츠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과 공헌에 대해 산발적으로 언급하기는 하지만 ESG와는 거리가 멀다. 한편, CJ ENM은 그룹 전사 차원의 ESG 경영 강화에 발맞춰 올해 ESG 위원회를 신설했다. 마찬가지로 각각 삼성, 현대, LG그룹의 계열사인 종합광고대행사 제일기획, 이노션, HS애드도 ESG 이사회 혹은 전담조직을 설치하고 ESG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콘텐츠 기업의 ESG 활동은 아직 초기 단계로, 해외 사례를 참고해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넷플릭스는 2019년부터 ESG 보고서를 출간하고 지속가능성 목표와 구체적 지표를 제시해왔다. 먼저 넷플릭스는 2022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0’으로 수렴시키겠다는 환경보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과학자들과 함께 구상한 계획은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뿐 아니라 대기에 탄소 유입을 막는 프로젝트에 투자해 배출량을 상쇄하고, 나아가 토양 복원 사업 등에 투자해 완전한 ‘탈탄소화(decarbonize)’를 이루는 것이다. 또한, 포괄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사내 복지를 확대하고 향후 5년 동안 연간 2,000만 달러를 투자해 여성, 유색인종, 소수인종, 성소수자 등 다양한 배경의 인력을 양성해 해당 구성원 비중을 개선하는 등 다양성을 확보하고 다원주의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디즈니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 보고서를 발간하고 환경보호, 근무 환경 개선, 포용적·긍정적 콘텐츠 제작 등을 추구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수립해 공개하고 있다.

<다양성 리포트> Ⓒ넷플릭스

ESG 활동 어떻게 해야 할까

ESG와 관련한 국내외 콘텐츠 기업의 사례를 살펴보니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첫째, 국내 콘텐츠 기업의 ESG 참여는 필요한가. 둘째, ESG 활동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가.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답하면, 국내 콘텐츠 기업의 ESG 참여는 필수적이다. 콘텐츠는 글로벌 확장성이 크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전 세계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며 글로벌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코로나19의 여파와 함께 MZ세대를 중심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소비자의 눈높이에 못 미치는 기업의 콘텐츠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디즈니 영화 <뮬란>은 인권 문제 등이 제기되며 불매 운동을 겪었다.

둘째, 글로벌 사업 확장뿐 아니라 국내기관의 투자를 위해서는 ESG 경영 활동 평가가 요구된다. 또한, 구글과 애플이 협력사에도 자사와 동일한 수준의 ESG 경영을 요구하는 것처럼 콘텐츠 생태계에서의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될 수 있다.

셋째, 콘텐츠의 기반은 공동체적 창의성이다. ESG는 내부 구성원과 파트너사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위한 프로그램과 소통을 중시하며, 콘텐츠 기업은 복지, 공정거래 등의 실현을 통해 창작자의 권익과 동반 성장을 증대할 때 우수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 실제 핵심 사업과 연계된 ESG 경영은 실적의 향상과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소개되기도 했다.2)

국내 콘텐츠 기업의 바람직한 ESG 활동 방향은 무엇일까. 먼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본질과 연계된 ESG 활동이 필요하다. ESG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공헌만을 강조하는 CSR과는 다르다. 대부분의 콘텐츠 기업은 착한 기업으로서 이미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수행해왔다. 주주, 소비자, 임직원, 파트너사, 사회구성원 등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기업은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장기적인 투자의 개념으로서 콘텐츠의 가치와 연관해 ESG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둘째,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ESG 목표와 지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산발적이고 일회적인 기부나 활동이 아니라 지속가능성 목표를 실행하기 위한 각 영역의 세부 계획과 지표가 일관되며 시너지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직은 여러 기관의 평가지표가 통일되지 않아 혼동이 있지만 이를 참고해 콘텐츠 기업의 특성을 반영한 활동과 지표를 설정하고 내재화해야 한다.

셋째,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성공적인 ESG를 위해서는 리더십뿐 아니라 구성원 전체의 참여가 중요하다. 나아가 주주, 소비자, 파트너사 등 다른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필요하다. 자사의 ESG 활동을 잘 알리고 공감을 얻어 함께 실현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따라서 단순히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홍보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약속과 이해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노력을 촉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콘텐츠 기업의 ESG 활동 평가 등급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관련 정보의 부재다. 보고서를 통해 이미 수행 중인 활동을 정리, 평가하고 향후 목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대내외적으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첫 발걸음일 것이다.

공식적인 의무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 콘텐츠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ESG에 참여하길 바란다. 물론 ‘진정성’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그린워싱(greenwashing)’과 같이 위장된 모습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넷플릭스는 ‘세상을 즐겁게 하기 위해(to entertain) 존재하며 이를 위해서 살아갈 만한 세상(a habitable world)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ESG 활동의 이유를 밝혔다. 국내 콘텐츠 업계의 ESG가 선언적 의미에 머물지 않고 특유의 ‘창의성’을 발휘해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하는 성장 동력으로 작동하고 살아갈 만한 세상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한다.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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