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1

‘나’는 어떻게 ‘우리’가 되는가 <외계인 게임> 오음 작가

글 노윤영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파키스탄의 훈자(Hunza)에 위치한 어느 게스트 하우스로 한국인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반듯하게 자라온 중학교 국어 교사,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영상번역가, 이혼 후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은 소설가,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라는 생각으로 찾아온 대학생, 실연의 상처를 품고 있는 여행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온 걸까 그리고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낯선 여행지 훈자에 모인 다섯 청춘의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 <외계인 게임>으로 ‘2020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 스토리 부문’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오음 작가를 만났다.

‘2020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 스토리 부문’ 대통령상

Q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2020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 스토리 부문’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수상작 <외계인 게임>(2021, 팩토리나인)이 얼마 전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수상을 예상하셨나요? A 그간 문학 공모전에 소설을 내왔는데, 최종심까지는 꾸준히 올랐어요. 최종심에 올랐다는 건 글이 어느 정도 다듬어졌다는 뜻이니까 수상도 약간 기대하고 있었죠. 하지만 그게 대상(대통령상)일 줄은 몰랐습니다. 대상은 드라마나 영화 관련 콘텐츠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Q 본인의 장편소설이 대통령상을 받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A 스토리나 구성 측면에서 다른 작품들과 겹치지 않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불황인 출판 시장을 응원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고요.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운이 아닐까 합니다.(웃음)

Q 심사기준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높은 우수한 원작의 발견’이었던 만큼, 영상화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라 들었습니다. A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영상 관련 업체와의 미팅을 많이 잡아주고 계세요. 국내 드라마 및 영화 제작사는 물론 중국 같은 해외 업체와의 미팅 일정도 예정돼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공연이나 웹툰보다 영상이 제 작품과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제 생각을 잘 반영해 진행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혼자서 건널 수 있는 세계는 없다

Q <외계인 게임>은 챕터마다 (1인칭) 시점이 바뀌는 장편소설입니다. 이런 다시점을 택한 의도는 무엇인가요? A 대학 때 상담심리학을 전공했는데 그때부터 사람 간 관계에 관심이 많았어요. 사람 간의 오해와 이해관계 등을 다루는 게 재미있었죠.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와 속내를 잘 드러내려면 이런 방식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사람들의 ‘1인칭 시점’을 챕터마다 구분해 보여준다면 각 인물들의 심리를 한결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고, 작품 전체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Q 게스트 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은 ‘외계인 게임’을 통해 자신의 속내를 밝히기도, 남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기도 합니다. 외계인 게임이란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리 없을 법한 사건’에 대한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하는 게임이죠. 둘 중 소수 의견 쪽이 ‘외계인’이라는 건데요. 이런 게임은 어떻게 구상하셨나요? A 대학생 때 제가 개발한 게임이에요. 학교에서는 물론 해외로 배낭여행을 가서 외국 친구들과도 해봤는데 나이나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 좋아하더군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놓고서 그 선택에 대한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들의 깊은 내면에 다가설 수 있게 돼요. 작품에서 여행자들이 대화를 통해 다른 이의 비밀스러운 사연과 상처를 재발견하고 공감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싶었는데, 외계인 게임은 그 이야기를 풀어내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데 적합한 매개체였어요.

Q 세상과 불화를 겪는 인물들의 피난처로 파키스탄의 훈자를 선택하셨어요. A 작품 속 인물들은 훈자에 오기 전 현실을 지옥 같다고 생각했어요. 중학교 국어 교사 김설은 사랑의 상처가 깊고, 영상번역가 남하나는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인물이에요. 대학생 전나은은 방황을 거듭한 끝에 훈자를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로 여기고 온 경우죠. 이렇듯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세상에 섞이지 못하고 ‘외계인’처럼 살다가, 천국과도 같은 공간에서 위로받고 치유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자면 그에 걸맞은 공간이 필요했죠. 파키스탄의 훈자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일명 ‘3대 블랙홀’(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행지)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에요. 전 두 번 가봤는데 천국 같은 풍경은 물론 그곳 사람들의 친절함과 따스함이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그래서 작품 배경으로 설정했습니다.

Q 혼자가 아닌 ‘우리’를 강조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혼자서 건널 수 있는 세계는 없다. (중략) 타인의 가슴에 뚫린 블랙홀을 통과해 다음 세계로 함께 나아가는 일”(301쪽) 같은 구절에서 강하게 느껴졌어요. 외계인처럼 살아가던 ‘나’들이 ‘우리’로 변모해가는 과정이 잘 그려져 인상적이었습니다. A 학창 시절에는 작품 속 ‘전나은’처럼 방황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상담 치료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었죠. 이후 여행을 다니면서도 다른 여행자들이나 현지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사는 동안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은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개인의 성과보다 연대를 통한 ‘우리’의 성과가 더 크고 값지다고 생각해요. 그런 제 생각을 작품에 담고 싶었습니다.

모든 콘텐츠가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Q 여행 작가로 먼저 활동하셨죠. 여행 에세이를 쓰게 된 계기는? A 앞서 언급했듯 방황하던 시기에 좋은 상담 치료사를 만나 극복할 수 있었는데, 그걸 계기로 대학에서 상담치료를 전공했어요. 상담치료사가 현실적으로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해 유학까지 생각했지만 평소 절 잘 알고 계셨던 담당 교수님은 “진짜 네가 원하는 게 맞느냐”고 되묻더군요. 그때를 계기로 가장 하고 싶은 게 뭔가 생각했고 결국 ‘여행’이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덕분에 여행 작가로 활동하며 두 권의 여행 에세이를 낼 수 있었죠.

Q 그러다 소설로 방향을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요? A 2년 전쯤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방송에도 출연했는데, 방송국 로비에서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모집공고 포스터를 본 적이 있어요. 가슴이 설레더군요. 그전까지만 해도 소설은 나와 상관없는 세계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생각해보니 여행 에세이만 써서는 작가로 생활하기 힘들 것 같았어요. 마감 기한이 2주 남은 상황에서 밤을 새가며 장편소설 초고를 써서 응모했고 결국 최종심까지 올랐습니다. 그 이후 문학 공모전에서도 수차례 최종심에 올랐고요. 제게도 가능성이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더 열심히 쓰게 됐죠.

Q 소설 창작을 시작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대통령상’이라는 큰 상을 받았다는 게 놀랍게 느껴져요. 평소 소설에 관심이 많았나요? A 소설을 쓰지 않던 시절에도 이야기는 좋아했어요.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했고, 제 이야기를 남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좋아했어요. ‘말 잘한다, 글도 좀 쓸 줄 안다’는 말을 들어왔죠.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면서 다른 좋은 작품들을 찾아 읽고 있는데 최근에는 한강, 김중혁, 김애란, 이은정 작가의 작품들을 흥미롭게 봤습니다.

Q 대상은 드라마나 영화 관련 콘텐츠일 거라 생각하셨다고 말씀하셨죠. 영상이나 웹툰, 게임 등 다른 콘텐츠가 최근 좋은 성과를 거두는 반면, 출판시장은 과거에 비해 많이 침체됐다고 해요. 작가님도 실감하고 계신가요? A 네, 그런 점에서 <N콘텐츠> 독자 분들이 제 책을 봐주셨으면 합니다.(웃음) 시각을 자극하는 콘텐츠가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는 효과가 크죠. 그래도 저는 글자로 전하는 문학의 힘을 믿습니다. 결국 더 좋은 이야기로 승부를 보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2020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 스토리 부문’처럼 큰 규모의 공모전이 더 활성화되고, 거기서 선정된 작품들이 주목받아야 해요. 그래야 출판시장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영상 관계자들과 미팅을 해보면 최근 제작자들이 한국 웹툰에는 관심을 보여도 한국 문학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합니다. 영상이나 다른 콘텐츠로 재가공돼 대중에게 알려진다면, 그만큼 한국 문학이 되살아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콘텐츠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Q 작가에게는 두 번째 작품이 중요하다고 하던데, 계획이 있으신가요? A 첫 번째 장편소설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내 더는 쓸 게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어요. 밑그림은 어느 정도 구체화한 상태고, 이제 곧 집필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대한민국콘텐츠대상이라는 큰 상을 받았지만 제 소설은 아직 더 발전이 필요해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만큼 더 갈고닦아서 독자를 사로잡는 흥미로운 이야기, 완성도 높은 작품을 쓰겠습니다. 작가로서의 제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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