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PC와 스마트폰으로, 혹은 콘솔로 게임을 즐겨왔다. 더 멋진 그래픽과 스토리로 무장한 새로운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 PC를 업그레이드하고 성능 좋은 스마트폰을 사거나 차세대 콘솔 출시 소식을 기다리기도 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될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온라인 접속이 가능한 디바이스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신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클라우드 게임’이, 눈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이용한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의 원리는 매우 복잡하지만, 단 한 가지만 염두에 두면 된다. 바로 서버를 통해 게임을 스트리밍하여 원격으로 플레이한다는 것. 게이머는 넷플릭스처럼 스마트폰이나 PC, TV 등 어떤 플랫폼에서든 게임을 즐길 수 있고 기업은 정기 구독료로 수익을 거둔다. IPTV의 셋톱박스처럼 원격 장치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키보드, 마우스, 스마트폰, 컨트롤러 등 온라인 접속이 되는 디바이스만 있다면 고사양의 게임도 문제없이 즐길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크로스 플레이’를 구현하는 기술인 셈이다.
2000년대 초부터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이 본격적으로 주목받자 게임 산업계도 클라우드 게임의 가능성을 보고 줄곧 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회선 속도와 안정성이 낮은 과거에는 화질이 고르지 못했고 영상·음성·조작 신호 전달이 지연되는 바람에 게임을 정상적으로 플레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5G를 비롯한 통신기술의 발전이 모든 난제를 점차 극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용화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게임업계도 클라우드 게임의 성장 가능성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조사업체 뉴주(Newzoo)에 따르면 올해 연말까지 글로벌 클라우드 게임 시장은 5억 8,470만 달러(약 6,900억 원) 규모로 시작해 2023년에는 48억 달러(약 5조 7,0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아직 초기 시장인 만큼 구글플레이나 애플 앱스토어와 같은 플랫폼이 탄생하기까지 여러 업체의 치열한 경쟁이 뒤따를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이미 작년 말부터 세계적인 IT기업들이 시장 선점을 위해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를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큰 틀은 비슷하지만 기술력, 노하우, 보유한 게임 수 등 저마다 가진 장점을 극대화한 형태로 게이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간 여러 단편적이고 실험적인 서비스가 있었지만 본격적인 클라우드 게임 플랫폼의 첫 포문을 연 곳은 구글의 스태디아(Stadia)다. 2019년 11월부터 북미와 유럽 14개 국가에서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크롬 브라우저가 구동되는 모바일 기기는 대부분 가능하며, 와이파이로 연결되는 컨트롤러를 구매하면 PC나 TV로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서비스 시스템은 PC게임 유통 플랫폼인 스팀(Steam)과 동일하다. 스태디아에서 원하는 게임을 구매하면 무료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스트리밍 방식에 차등을 두었다. 4K 화질과 5.1채널 사운드를 원한다면 월 9.99달러의 이용료를 내야 한다.
게임 개발사 입장에서는 스트리밍 기술이 추가된 새로운 게임 유통 시스템일 뿐이어서 그저 게임 판매점에 게임을 들여놓듯 스태디아에 입점만 하면 된다. 물론 기존 출시작의 경우에는 기술적인 해결과제가 있긴 하다. 문제는 소비자가 스태디아에서 게임을 개별적으로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어디서든 간편하게 고성능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이미 스팀에서 구매한 게임을 굳이 스태디아에서 다시 구매하면서까지 게이머가 이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플랫폼이 하나 더 추가됐을 뿐, 아직까지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따르고 있다.
뒤이어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를 정식으로 출시한 엔비디아(Nvidia)의 지포스 나우(Geforce Now)는 스태디아가 가진 문제를 게임 유통사와의 제휴로 해결했다. 게임은 스팀과 유플레이, 에픽게임즈 스토어 등 기존의 전문 유통사에서 구매하고 지포스 나우는 스트리밍 서비스만 월정액으로 제공한다. 말하자면 고성능의 PC(성능)만 대여하는 셈이다. 온라인 영상 재생이 가능하다면 저사양 노트북이나 스마트폰도 모두 플레이가 가능하다.
과금체계는 원활한 클라우드 서버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접속을 제한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프리미엄 요금제(국내 월 12,900원)는 서버 접속에 우선권이 있으며 한 번 접속하면 6시간 동안 연속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반면 베이직 요금제는 기본적으로 무료지만 접속이 지연될 수 있으며 한 시간 이상 접속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기존 게임 시장 구조를 해치지 않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개발사-유통사-지포스 나우의 게임 라이선스 문제가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개발사들은 지포스 나우를 단순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아닌 별도의 플랫폼으로 보고 게임 유통 라이선스에 대한 권리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팀과 에픽게임즈 등의 퍼블리셔는 게임에 대한 소유권이 아닌 구독권만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엄밀하게 보면 소비자도 게임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약관(EULA)에 따라 게임을 플레이 할 때 기기·장소·환경·2차 가공 등의 제약이 있다. 즉, 게임을 클라우드 서버라는 다른 방식을 통해 서비스하는 만큼 지포스 나우가 게임 라이선스를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포스 나우는 스퀘어 에닉스와 캡콤, 락스타 게임즈, 액티비전 블리자드 등이 출시한 게임은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Project xCloud’라는 이름으로 스트리밍 게임 서비스를 시범 제공한 끝에 2020년 9월부터 Xbox Game Pass에 편입시켜 정식으로 출시했다. 게임패스 얼티밋 요금제(국내 월 16,700원)에 가입하면 전용 앱을 설치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 기기와 Xbox, PC 등 다양한 디바이스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 자체에 몰두하기보다는 많은 게임을 확보하는 데 기준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더 많은 게임들을 자사의 서비스 울타리 안에 두고 많은 게이머가 디바이스에 구애받지 않고 소비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기술력과 인프라는 충분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지포스 나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라이선스를 두고 게임 개발사를 일일이 설득하고 계약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예 회사를 직접 사들였다. 최근 제니맥스 미디어를 75억 달러(약 8조 7,400억 원)에 인수했다. 이 회사는 〈엘더스크롤〉과 〈폴아웃〉 시리즈 등의 프랜차이즈 게임으로 유명한 베데스다 소프트웍스를 비롯해 이드 소프트웨어, 아케인 스튜디오, 머신게임즈 등의 게임 개발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아울러 일렉트로닉 아츠(Electronic Arts)의 게임 구독서비스인 ‘EA Play’와도 손을 잡아 EA가 서비스하는 게임도 Xbox Game Pass를 통해 플레이할 수 있다.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 점유율 1위인 아마존도 클라우드 게임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 9월 24일 클라우드 게임 플랫폼 ‘루나(Luna)’의 출시를 예고한 것이다. PC와 Amazon Fire TV, 특히 Apple의 iOS 기반 디바이스도 호환된다. 자사가 보유한 세계 최대의 인터넷 방송 플랫폼인 ‘Twitch’와 연계한 특화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루나는 기본료 외에 ‘게임 채널’에 따라 요금을 구분하는 독특한 과금체계를 마련했다. 각 게임 채널은 개발사나 유통사 등 특정한 카테고리로 게임들을 묶은 단위로, 개별 채널 각각을 원하는 만큼 구독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IPTV나 케이블TV의 방식처럼 기본료와 부가서비스를 결합한 형태로, 각 게이머의 취향에 맞춘 다양한 게임 채널을 확보하여 수익성을 높이고자 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기본 채널인 ‘Luna+’는 월 5.99달러에 제공된다.
소니는 자사의 대표 콘솔인 Playstation의 독점 타이틀을 통한 충성도 높은 고객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2014년부터 선보인 ‘Playstation Now’를 통해 Playstation2부터 4까지 출시된 게임을 PC에서 스트리밍으로 구동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모바일 디바이스의 지원이 미비한데다 서비스하는 게임의 수도 적어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다만 최근 경쟁사인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MOU를 체결하면서, 게이머들은 곧 출시될 Playstation5 타이틀의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를 기대하고 있다.
중국의 텐센트도 엔비디아와 손잡고 자국 내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 ‘Start’를 선보였고, 페이스북도 관련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을 인수하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마치 과거 안드로이드나 iOS, 혹은 Windows의 초창기처럼 초기 시장을 선점하여 초대형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는 모습이다.
국내에서는 5G 인프라를 구축한 이동통신사가 주도하고 있다.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보다 쾌적한 게임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5G 무제한 요금제나 더욱 빠른 인터넷 회선으로 전환하는 등 새로운 수익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통신3사 중에서는 LG유플러스가 가장 빨랐다. 2019년 9월부터 엔비디아와 협력하여 자사 고객을 대상으로 지포스 나우의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고 올해 1월 1일부터 정식 유료화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은 SK텔레콤은 지난 9월 15일부터 ‘SKT 5GX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100여 종의 Xbox 게임을 제공하고 있다. KT는 타 통신사와 달리 대만의 스트리밍 솔루션 업체 유비투스와 협력하여 자체 개발한 플랫폼 ‘게임 박스’를 선보였다. iOS도 지원하며, 향후 PC와 자사 IPTV를 통해서도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국내 게임업계는 매우 신중한 모습이다. PC 온라인과 모바일 게임의 수요가 여전히 높은 만큼 아직은 클라우드 게임이 국내에서 흥행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클라우드 네트워크 특성에서 비롯되는 해상도 저하와 인풋랙(input latency) 문제가 완전히 극복되지 못한 것도 시장 진입의 걸림돌이다. 아주 짧은 순간에 승패가 판가름 나는 대전·FPS·RTS·AOS와 같은 게임을 즐기기엔 현재의 클라우드 네트워크의 품질이 아직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글로벌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한 주요 업체들이 모두 뛰어든 만큼 예고된 변화를 미리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는 돈이 많이 드는 사업이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야 하는 데이터센터를 많이 만들수록, 인구 밀집 지역에 가까운 곳에 서버를 둔 기업일수록 유리하다. 또한 하나의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콘텐츠가 다양할수록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모을 수 있다. 이제야 상용화라는 첫발을 내디딘 만큼 수년 내에 투자금 회수조차 불투명한 복잡한 이 수익 모델에 뛰어드는 기업은 이처럼 일부 IT 공룡과 이동통신사뿐이다. 세계 클라우드 시장에서 나란히 1~3위를 기록한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이 나서서 클라우드 게임 시장에 진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가 국내에서는 마치 콘솔 게임처럼 크게 주목받지 못하거나 혹은 새로운 대세 플랫폼으로 떠오르게 될 수도 있다. 후자가 현실이 된다면 국내외 게임 개발사는 거대한 플랫폼의 콘텐츠 제공회사 정도로 그 지위가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어떤 결과로 이어지든 지금 분명한 것은, 게이머는 게임을 즐길 기회와 선택지가 늘었고 게임회사는 더욱 치밀한 방법으로 게이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 과제가 늘었다. 게임을 즐길 환경이 풍부해진 점 하나만큼은 게임과 게이머, 게임 산업에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