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국내 OTT(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시장에 신규 플랫폼이 등장했다. 바로 국내 최대 IT 회사인 카카오가 만든, 종합 콘텐츠 기업 카카오M의 카카오TV다. 제작 노하우와 업계 인맥을 보유한 기존 방송사가 아닌, IT 회사의 영상 플랫폼 진출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9월 1일 문을 연 카카오TV는 속도감 있는 호흡을 가진 문법, 함께 즐기고 소통하는 콘텐츠 소비문화 강화, 스크린 프레임의 다양화를 차별점으로 내세우며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장에선 카카오TV가 기존 OTT의 대항마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데, 카카오TV는 기존 서비스들과 자신들은 다르다고 일단 선을 그은 상태다. 기존 OTT가 영상 플랫폼으로서 TV 영상이나 영화 같은 형태의 콘텐츠에 머물러 있다면 자신들은 모바일에 특화된 새로운 포맷을 적극적으로 실험하며 포맷 다양화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모바일 환경에 맞는 새로운 수익구조를 발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디지털 음원 시대를 맞아 음반시장이 붕괴하면서 해당 산업이 공멸할 것 같았지만 결국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수익구조가 나타나 음악시장의 파이가 오히려 더 커졌다. 만화도 인터넷 시대 이후 대본소 시장구조가 붕괴했지만 결국 웹툰이라는 새로운 수익구조를 찾아냈다. 모바일 영상 플랫폼에서도 그렇게 새로운 수익구조가 나타날 텐데, 그런 변화에 대응하려면 일단 플랫폼을 시장에 안착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플랫폼을 조기에 안착시키는 정공법은 바로 콘텐츠다. 넷플릭스는 ‘돈을 태운다’고 할 정도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양산했고, 이를 통해 가입자를 확보하고 규모의 경제를 이룩했다. 카카오TV는 출범 첫 해인 올해 드라마 6개, 예능 19개 등 총 25개 프로그램 350편의 에피소드를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올해라고 해도 9월 출범이니 단 4달 동안 350회를 쏟아붓겠다는 것이다. 2023년까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총 3,00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나왔다.
또 모회사인 카카오M은 이미 2018년부터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숲엔터테인먼트, BH엔터테인먼트 등 가수, 배우 소속 회사 10여 곳을 인수하고 스타 PD, 작가들이 소속된 메가몬스터 등 드라마 제작사 3곳, 사나이픽처스 등 영화 제작사 2곳, 공연제작사 쇼노트 등을 흡수해 영상 플랫폼 출시에 대비해왔다. 다음웹툰을 통해 축적된 7,000여 개의 지식재산권(IP)도 향후 영상 제작을 위한 중요한 자산이다.
그렇게 준비된 역량으로 플랫폼 출범과 함께 내놓은 작품 중 하나가 〈찐경규〉다. 국민MC급인 이경규를 캐스팅했다. 이 플랫폼을 주류 미디어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연출 역시 마리텔의 모르모트 PD로 유명한 권해봄 PD다. 이경규와 권 PD가 좌충우돌 티격태격하며 재미를 만들어간다는 기획이다.
이경규는 “기계와 장비는 바뀌지만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면서 “플랫폼의 다변화 시대에 살고있는 지금, 플랫폼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 무엇을 하든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출연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예능의 핵심인 재미만 담아낸다면 새로운 플랫폼에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또 다른 빅스타, 이효리도 카카오TV에 등장했다. 그의 이야기를 담은 〈페이스아이디〉는 에피소드 하나가 526만 뷰를 기록하는 등 큰 화제를 일으켰다. 웹툰 기반의 웹드라마인 ‘연애혁명’도 공개 이틀 만에 100만 조회수를 달성했다.
이 밖에도 노홍철, 유희열, 슈퍼주니어의 김희철, 배우 심형탁, 작사가 김이나 등이 카카오TV 예능의 출연진으로 가세했다. 노홍철은 “나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고 안 해 본 것을 하고 싶었는데 카카오TV PD님들이 새로운 걸 하게 해주겠다고 해서 출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예계에서도 플랫폼 환경 변화에 관심이 높아지는데, 새로운 환경에서 모바일을 분석해 콘텐츠를 만든다고 해서 방송인으로서 호기심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노홍철의 말은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호기심, 그 플랫폼에서 받는 신선한 느낌을 대변해준다. 방송계 인사들과 시청자들 모두 새로운 플랫폼에 대해 이와 같은 인상을 받는다. 이때 빅스타의 출연은 시청자들이 그 플랫폼에 조금 더 쉽게 진입하도록 하는 마중물의 역할을 하게 된다.
아무리 카카오가 기획사와 제작사들을 흡수하며 준비를 하고 빅스타를 캐스팅했다고 해도 영상 시장은 녹록한 영역이 아니다. 이미 자리 잡은 OTT 선발주자들을 제칠 콘텐츠 경쟁력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영상 분야는 과거 재벌들이 진출했다가 포기했을 정도로 나름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이다. 그래서 카카오TV의 시장 안착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다.
초기 성적은 고무적이다. 출범 1주 만에 누적 조회수 1,300만 회를 넘어서고, 2주 만에 300만 구독자를 달성했다. 카카오톡의 힘을 십분 발휘했고 무료 구독이란 점도 영향을 미쳤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거대한 규모의 숫자가 모이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플랫폼 업계의 생리다.
카카오TV는 ‘모바일 오리엔티드(Mobile Oriented)’를 내세운다.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짧은 콘텐츠, 즉 ‘숏폼’ 형식이다. 기존 방송사의 콘텐츠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모바일 전용 오리지널 콘텐츠를 새롭게 만들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가 한 시간이 기본인 기존 방송사의 드라마, 예능 일변도에서 벗어나 짧은 길이의 웹콘텐츠도 선호한다는 점이 이런 전략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숏폼이 단순히 길이의 문제가 아닌, 모바일에 맞는 새 접근법이라고 한다. TV보다 집중도가 높고 모바일에 익숙해질수록 밀도가 더 높은 콘텐츠를 추구하기에 60~120분짜리를 단순히 10~20분으로 쪼개는 것이 아닌, 60분을 10~20분으로 압축하는 느낌의 호흡과 형식을 추구한다는 계획이지만 얼마나 현실화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일단 현재는 세로 화면을 2분할하고, 출연자의 휴대폰 화면을 연결해 보여주는 등 기존 TV 화면과는 다른 새로운 영상법으로 신선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카카오TV는 또 인터넷 팬덤을 타깃으로 한다. 팬덤이 형성된 웹툰 원작으로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것이다. 기존 방송사에서는 웹툰 기반의 드라마를 방영해도 팬덤의 시청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인터넷 세계에선 원작 콘텐츠의 팬덤이 파생 콘텐츠의 시청층으로 유입되는 경우가 많다. 방송사는 웹툰을 드라마화하면서 일반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각색하기도 하는데, 그런 변형(또는 훼손)이 기존 팬덤을 실망케 한다. 반면에 디지털 플랫폼은 원작과 팬덤 성향에 부합하는 맞춤 콘텐츠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팬덤의 관심을 크게 받는다. 카카오TV 측은 바로 이런 특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TV는 또 막연하게 ‘국민 여러분’이라는 보편적 시청자를 위해 무난한 방송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방송사와 차별화해 타깃 시청층을 뚜렷하게 적시했다. 드라마의 경우에는 MZ세대를 겨냥했다. 이들이 공감할 만한 키워드를 드라마에 배치하고, 이 세대와 일체성을 만들어 시청자와 카카오TV 플랫폼이 함께 성장해가는 구도를 만들려고 했다. 전체 플랫폼 차원에서는 15세~49세를 주시청층으로 상정했다. 40대도 모바일 플랫폼을 TV 이상으로 많이 본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이중에서 좀 더 중점적으로 집중하는 시청자층은 15세부터 34세까지의 여성이다.
이 시청자들은 기존 TV에서 공감할 만한 프로그램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존 TV 주시청층의 연령대가 올라가자 프로그램의 콘셉트도 고연령대에 맞춰지게 됐고 그 결과 주시청층이 더욱 연로해졌다. 이 때문에 15~34세가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들이 관심 가질 만한 학원, 연애, 직장, 취업, 커리어, 젠더이슈 등을 내세운 것이다. 이 세대는 바이럴력, 트렌드 리딩력이 강하기 때문에 이들을 잡으면 다른 세대도 견인할 수 있고, 플랫폼 인지도도 빠르게 높일 수 있다.
일단 초기엔 무료 서비스로 진행한다. 유튜브가 무료로 저변을 넒히면서 광고를 통해 수익을 올렸고 완전히 시장에 안착한 후 제한적 유료화를 시도한 것처럼 카카오TV도 바로 이 유튜브 수익성 모델을 참작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튜브와 다른 점은 메시지 프로그램과의 연동성이다. 유튜브는 영상 플랫폼 하나지만 카카오TV는 카카오톡과의 연계를 이어갈 것이다. 카카오톡 플랫폼 안에서 카카오TV 서비스가 이루어지면서 사실상 두 서비스가 통합되는 시스템으로 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카카오톡을 통한 커머스(Commerce·상거래) 수익 등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카카오TV 관계자는 “지금은 수익구조가 미약하지만 결국 이용자의 니즈에 따라 시장은 빠르게 이동할 것이고, 거기에서 제대로 된 사업구조를 만들어내는 자가 시장을 재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대열에 카카오TV가 서는 것이 목표이고, 과감하고 모험적인 투자를 감행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 대열에 카카오TV가 서기’ 위해서 지금은 이용자 확대가 최우선 과제다.
결국 관건은 콘텐츠 수급과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능력이 될 것이다. 넷플릭스는 다양한 타 제작사 작품을 상영하면서,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자체 제작을 병행해 대형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콘텐츠 경쟁력에 카카오톡, 포털사이트 다음과의 연계가 잘 살아난다면 성공적인 토종 OTT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