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맵 오브 더 소울: 페르소나(Map of the Soul: Persona)’로 빌보드 200 차트 1위에 올랐던 BTS가 이번에는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도 2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이로서 BTS는 빌보드 200과 빌보드 핫 100 1위를 모두 석권한 한국 최초의 가수가 됐다.
특히 이번 핫100 차트 1위 기록이 남다른 이유는 앨범 판매량을 척도로 삼는 빌보드 200 차트가 팬덤의 힘에 좌지우지될 수 있는 것과 달리, 핫100 차트는 음원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횟수, 미국 내 라디오 방송 횟수, 유튜브 조회 수 등이 합산되어 매겨지는 미국 일반 대중들이 선택하는 차트라는 점 때문이다. 결국 핫100 차트 1위를 기록했다는 건 미국 대중들의 히트곡이 됐다는 뜻이다. 빌보드에 의하면 ‘다이너마이트’는 발매 첫 주에 미국에서 3,390만 회 스트리밍 됐고 30만 건의 디지털 및 실물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약점이었던 ‘팝송 라디오 차트’에서도 역대 최고 순위인 20위에 오를 정도로 좋은 성적을 냈다.
BTS 이야기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유튜브 같은 SNS와 아미(ARMY)라는 팬덤이다. BTS의 빌보드 입성 또한 아미들의 열광적인 지지가 그 바탕이 됐다는 걸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빌보드 핫 100 1위는 이제 이들의 인기의 저변이 일반 대중으로 넓혀졌다는 걸 뜻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것은 BTS만이 아닌 K팝 전반에 대한 미국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실제로 지난 10월12일 빌보드 200차트의 풍경은 현 K팝의 달라진 위상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BTS가 우리말로 피처링한 제이슨 데룰로의 ‘새비지 러브(Savage love)’가 1위를 기록하고, 지난 10월2일 발매된 블랙핑크의 첫 정규앨범 ‘디 앨범’의 타이틀곡 ‘러브식 걸즈(Lovesick girls)’가 2위 그리고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3위에 오르는 진풍경이 만들어졌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K팝과 빌보드 차트는 거의 무관하다 할 정도로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최근 BTS를 위시해 K팝 가수들의 빌보드 입성은 이제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번에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1위를 기록했던 빌보드 핫100 차트에 대한 K팝 가수들의 도전사는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원더걸스의 ‘노바디’가 79위에 오른 이후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1위의 문턱을 앞두고 아쉽게 2위에 머물렀다. BTS는 2017년 ‘DNA’로 67위를 기록하며 처음 핫100 차트에 진입한 후, 2018년 ‘페이크 러브’로 10위, 2019년 ‘작은 것들을 위한 시’로 8위, 2020년 2월 ‘온’으로 4위를 기록하고 ‘다이너마이트’로 드디어 1위에 올랐다. 최근 들어 BTS와 함께 빌보드 차트에서 선전하고 있는 블랙핑크는 2019년에 ‘킬 디스 러브’로 41위, 올해 ‘샤워 캔디’와 ‘하우 유 라이크 댓’으로 각각 33위를 기록했고, 최근 발표한 ‘러브식 걸즈’가 59위에 진입했다.
팬덤의 힘이 보다 크게 작용하는 빌보드 200 차트에서는 훨씬 더 많은 K팝 가수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남자 아이돌 7명이 뭉친 슈퍼엠이 데뷔 앨범 ‘슈퍼엠’으로 BTS에 이어 두 번째로 이 차트 정상을 차지한 바 있고, 같은 해 블랙핑크가 ‘킬 디스 러브’로 24위를, SM 차세대 보이그룹 NCT127이 ‘NCT #127 위 아 슈퍼휴먼’으로 11위를 차지했다. 또 올해에는 스타쉽엔터테인먼트 몬스타엑스가 ‘올 어바웃 러브’로, 또 NCT 127이 ‘NCT #127 네오 존’으로 각각 5위를 차지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 들어 K팝 가수들의 빌보드 차트 도전 전략의 체계가 점점 잡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유명 음반사와의 협업으로 보다 전략적인 계획 아래 앨범 활동을 하고 있는 것. BTS가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인 컬럼비아 레코드와 협업을 통해 현지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처럼, 블랙핑크는 유니버설뮤직 산하 레이블 인터스코프 레코드를, 몬스타엑스는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 레이블인 에픽 레코드를 파트너로 정하고 현지를 공략하고 있다. 이처럼 현지 음반사들과의 협업은 이제 미국 진출의 중요한 전략으로 자리했다. 아이오아이 출신 전소미는 유니버설뮤직 인터스코프와, 청하는 아이씨엠 파트너스와, 또 (여자)아이들이 유니버설뮤직 리퍼블릭레코드와 계약한 것 모두 미국 시장을 염두에 둔 행보다.
최근 들어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K팝 가수들이 신곡이나 앨범 발표 시점을 금요일에 맞추기 시작한 것도 미국 빌보드 차트를 겨냥한 새로운 전략적인 선택이다. 국내 음원 시장에서는 하교 및 퇴근 시간대에 음원 이용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월요일부터 목요일 오후 6시에 음원을 발표하는 게 하나의 공식이었다. 하지만 BTS나 블랙핑크, 슈퍼엠 같은 글로벌 K팝 아이돌들은 최근 금요일 오후 1시를 신곡 발표 시간으로 택하고 있다. 금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의 성적을 집계하는 빌보드 차트에 맞춘 선택이다. 애초부터 빌보드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빌보드에 맞춰진 또 하나의 전략적 행보는 K팝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충분히 갖추면서도 동시에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영어 가사’와 더불어 팝스타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이 그것이다. 이번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핫100 차트 1위에 오르는 데 영어 가사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그간 가장 높은 진입장벽으로 여겨지던 라디오 방송 횟수를 늘리는데 영어 가사가 큰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미국 팝스타 셀레나 고메즈가 피처링한 블랙핑크의 ‘아이스크림’이나 슈퍼엠의 ‘100’ 같은 곡이 대부분 영어 가사를 활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불어 이번 BTS가 피처링해 빌보드 200차트 1위로 오른 제이슨 데룰로의 ‘새비지 러브’처럼 팝스타들과의 협업은 그 스타들의 팬들은 물론이고 미국 대중들에게 K팝 가수들의 위상과 동시에 친근함을 만들어내는 좋은 전략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이제 이 말은 K팝을 비롯한 K콘텐츠 전반에서 통용되는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늘 해외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던 국내 산업의 구조적 특징은 이제 K콘텐츠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활짝 열린 글로벌 시장에서 점점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성공이 그들만의 성취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기회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