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사상 초유의 흥행을 이뤄내면서 국내 게임업계도 발빠르게 콘솔 기반 게임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실상 콘솔 게임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산 게임이 ‘콘솔’이라는 플랫폼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까. 가능성과 변수를 전망해본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변화는 새로운 게이머들을 유입시켰다.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자 더 많은 사람이 게임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모바일 게임 이용자의 증가폭이 상당하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업체 앱애니(App Annie)에서 발표한 ‘2020년 1분기 모바일 게임 결산’에 따르면, 전 세계 구글플레이와 앱스토어 이용자는 올해 1분기에 게임 앱을 약 130억 건 다운로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성장한 수치다. 게임 콘텐츠의 소비도 높아져 앱 마켓을 통한 게임 지출액이 직전 분기 대비 5% 이상 증가한 167억 달러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승률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록이다. 특히 구글플레이의 경우 미국과 일본, 한국에서의 매출 비중이 높았다.
모바일 게임보다는 다소 약세였지만, PC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도 많아졌다. 세계 최대 PC 게임 플랫폼인 스팀(Steam)은 지난 3월, 전 세계 동시 접속자 수가 역대 최대인 2,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를 기점으로 최근까지 주말이 아닌 평일에도 꾸준히 높은 접속률을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개학 연기와 재택근무가 이런 이례적인 수치를 만든 셈이다. ‘리그오브레전드’,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로스트아크’ 등 PC 온라인 게임의 트래픽도 평균 200% 증가했다.
앞으로 코로나19가 장기 국면에 접어들면서 그 규모가 더욱 커질지, 역으로 경기 침체로 소비자의 게임 구매력이 약화될지 아직은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현재 상황으로만 보면 이번 실적 개선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기회를 얻은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게임업계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다양한 분야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분야는 바로 ‘콘솔’이다.
콘솔 게임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큰 성장세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하 모동숲)’이 있다. 사실상 2020년 상반기 글로벌 콘솔 게임 시장 전체를 장악한 모동숲은 지난 3월 20일 첫 출시 이후 단 11일 만에 1,177만 장이 판매됐다. 전용 콘솔인 닌텐도 스위치도 1~3월에만 329만 대가 팔렸다.
이 열풍은 콘솔 게임의 영역이 매우 좁은 우리나라에서도 불타오르고 있다. 국내 콘솔 게임 전문 리뷰 사이트인 콘솔러는 모동숲이 출시 첫 주에 콘솔 패키지 게임 판매량 중 80%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콘솔 게임 구매자 10명 중 8명이 ‘모동숲’을 산다는 것이다. 그나마 게임 자체는 온라인 다운로드 버전으로 대체할 수 있어 다소 해소되었지만 전용 콘솔인 닌텐도 스위치는 사정이 심각하다. 중고 매물조차 품귀현상이 일어난 데다 중간유통업자의 횡포가 더해져 정가 36만 원인 닌텐도 스위치 본체 거래 가격은 현재 50~60만 원까지 치솟았다. 엄청난 흥행에 닌텐도 본사도 발 빠르게 생산량을 늘렸지만 일본 불매운동이 무색할 만큼 납품되자마자 사라지다시피 순식간에 팔려 나가는 상황이다.
언론과 미디어도 모동숲의 흥행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동물의 숲 시리즈 특유의 게임성, 즉 성장과 경쟁요소가 없고 느긋하게 나만의 공간을 꾸미고 만족하는 ‘힐링’ 요소가 코로나19 시기와 겹쳐 시너지를 일으켰다는 해석이 있고, 지나친 확률형 아이템 판매 일변도의 게임들에 지친 게이머들이 모동숲에 열광했다는 의견도 있다. 어떤 주장이 타당하든 사람들이 콘솔 게임에 관심을 보였고 이를 통해 콘솔 게임의 본격적인 대중화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점은 분명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동숲이 보인 파괴력은 국내 게임산업에도 영향을 끼쳤다. 국내 게임개발사들은 차기작 중 일부를 콘솔화한다고 발표하는 등 서둘러 콘솔 게임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콘솔 게임의 가능성을 보고 과감히 투자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모동숲의 성공 때문에 콘솔 시장에 진출한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국내 게임개발사는 모동숲 출시 이전부터 줄곧 콘솔 게임 시장에 문을 두드려왔기 때문이다. 펄어비스의 ‘검은사막’은 지난해 3월과 8월 플레이스테이션4와 엑스박스원 버전을 출시했고, 크래프톤도 2018년 ‘PUBG’를 콘솔 버전으로 출시해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카트라이더’, ‘세븐나이츠’, ‘크로스파이어’ 등 국내 대표 IP를 활용한 콘솔 게임도 연내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에 있다. 즉, 모동숲은 일종의 촉매였을 뿐 게임개발사는 콘솔 게임 시장의 잠재력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국내 콘솔 게임의 성장 지표는 매우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19 대한민국 게임백서>는 국내 게임 제작 및 배급업 총매출액 중에서 콘솔의 비중을 5% 미만으로 집계했지만 2016년부터 매년 40~50%씩 성장했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PC와 모바일 게임 시장은 여전히 강력한 캐시카우이긴 하지만 점차 포화상태에 이르기 시작했다. 새로운 플랫폼으로의 확장이 필요한 가운데, 게임개발사는 가장 잠재력이 큰 플랫폼으로 콘솔에 주목했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개발사들이 콘솔 게임을 개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작년 전 세계 콘솔 게임 시장의 규모는 모바일 게임(51%)에 이어 PC 게임을 웃도는 수준인 25%를 차지했다. 특히 매년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콘솔 게임의 가치는 이미 검증되었다고 봐도 될 정도다. 아울러 유럽, 특히 미국 내 게임 유통 플랫폼의 절반을 차지하는 콘솔 게임 시장에 진입하면서 중국 매출액에 대부분을 의존하는 기형적인 수입구조를 일정 부분 개선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게임은 문화의 흐름에 따라 변모해왔고, 동시에 IT산업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발전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기별로 유행하는 장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겠지만 대중적인 플랫폼의 변화는 IT 기술 발전에 의한 분명한 기점이 분명히 존재했다. 크게 보면 게임팩을 꽂는 ‘게임기(콘솔)’가 판매되자 많은 사람들이 게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PC가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플로피 디스크나 CD 기반의 PC 게임이 번성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부터 집과 PC방에서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을 즐겼다면 이제는 휴대전화의 보급과 무선인터넷의 발전으로 언제 어디서든 모바일 게임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현재 게임 플랫폼 중에서 모바일이 가진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에 반해 콘솔은 모바일 시대에 역행하는 면이 여실히 드러나는 플랫폼이다. 게임만을 위한 하드웨어를 먼저 갖춰야 하고 게임 구매가격대도 높은 편이다. 오랫동안 즐겨왔던 독점 게임 시리즈가 아닌 이상 선뜻 처음 보는 게임을 구매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모동숲은 이러한 콘솔 플랫폼의 한계를 극복한 훌륭한 사례가 됐다. 전용 콘솔과 독점 타이틀을 사야 즐길 수 있는 모동숲을, 소비자는 기꺼이 구매했다. 콘솔 게임에 대한 심리적이고도 물리적인 장벽인 ‘콘솔 구매’를 중화시킨 것이다.
기술적으로도 진일보했다. 플레이스테이션4프로나 엑스박스원X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4K 해상도를 지원하며 높은 수준의 그래픽을 구현해내고 있다. 휴대성이 강조된 닌텐도 스위치도 게임에 최적화된 기기인 만큼 컨트롤러가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모바일 게임의 약점으로 꼽히는 세밀하고 정확한 컨트롤이 가능하다.
이러한 특성은 사실 콘솔 플랫폼의 오랜 마케팅 포인트이기도 했다. 적당히 만족할 만한 그래픽과 직관적인 조작, 그리고 독점 게임의 흥행까지 모두 소니와 닌텐도를 비롯한 콘솔 게임 전문 개발사의 전통적인 판매전략이었고 여러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콘솔과 독점 게임을 출시하며 현재까지 성장해온 원동력이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PC의 빠른 보급 등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을 뿐이다.
국내 게임개발사들이 모바일 다음의 플랫폼으로 콘솔을 염두에 두는 이유 중 다른 하나는, 콘솔 게임의 대표 제작사인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연내 강력한 하드웨어 성능을 기반으로 한 차기 모델 출시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콘솔 플랫폼이 주목을 받는 시기에 게임을 발매한다면 효율적인 홍보 효과는 물론 콘솔 게임 개발사로서 나름의 입지를 다질 수 있다.
‘크로스 플레이’ 지원도 콘솔 플랫폼 진출의 유인 중 하나다. 콘솔 게임 시장의 핵심 승부처는 언제나 플랫폼 독점 게임이었다. 매력적인 플레이스테이션 독점 게임의 잇따른 흥행은 소니가 콘솔 시장을 장악할 수 있도록 만든 핵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포트나이트’가 모바일-PC-콘솔 등 플랫폼을 오가는 크로스 플레이를 최초로 지원한 이후 다양한 크로스 플레이 게임이 출시됐다. 플레이스테이션4와 엑스박스원 간의 크로스 플레이를 지원하는 ‘검은사막 콘솔’도 기존 대비 두 배 이상의 동시 접속자가 몰렸다. 최근에는 소니 자회사에서 개발하는 퍼스트파티 타이틀 ‘호라이즌 제로 던’이 지난 3월 공식적으로 PC버전으로도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소니의 퍼스트파티 타이틀이 PC로 이식되는 것은 처음이다.
다만 게임 인지도의 차이는 난이도 높은 과제로 남아 있다. 국내 게임개발사의 IP는 유럽과 북미 게이머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또한 선호 장르와 플랫폼에 따른 개발 노하우의 차이로 기술적·연출적인 면에서 기존 콘솔 게임제작사보다 개발 조건이 다소 불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단순한 컨버전이 아닌, 콘솔 게이머의 입맛에 맞춘 스토리 디자인, 본편과 DLC의 분할 판매를 통한 수익 구조 재편도 고민해야 한다.
플랫폼의 변화는 게이머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되지만 게임개발사에게는 필수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미래 예측이 한층 복잡해진 가운데 콘솔 게임도 개발해야 하는 한편 현재의 주요 매출인 모바일과 PC게임 매출도 안정적으로 지속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변수가 많았던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 그 저력을 바탕으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잘 만든 국산 콘솔 게임’이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