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하지 못하는 해결책

코로나19는 우리 사회 전반에 커다란 상처를 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여파가 큰 분야는 문화예술계다. 문화예술계의 특성상 관객 모집이 필수적이지만 감염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모든 행사들이 멈춰 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공연 중단, 전시 취소, 개봉 연기

지난 2월 24일 예술의전당은 자체 기획 공연과 전시 행사, 교육 강좌를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코로나19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내린 조치다. 이로써 예정됐던 공연 <아티스트 라운지>가 취소됐고,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와 <조선근대서화전> 전시도 더 이상 열릴 수 없게 됐다. 국립극장은 3월 공연 예정이던 국립창극단 작품 <아비, 방연>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정오의 음악회>를 비롯해 산하 예술단의 공연 5개를 모두 연기했다. 세종문화회관도 자체 기획 공연을 잠정 중단해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S씨어터에서 진행되던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의 공연이 전면 취소되었다. 이로써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같은 대극장이 3월 한 달 동안 모두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전국의 문화예술을 선보이는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들도 일제히 문을 닫았다. 국립지방박물관 10개관과 국립현대미술관 3개관, 국립중앙도서관 3개관이 휴관했고,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이 문을 닫았다.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박물관과 미술관도 모두 휴관했고,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아트스페이스 광교 등 수도권 문화예술기관도 휴관했다.

공연과 전시를 하는 공간들이 문을 닫게 되면서 그곳에서 공연이나 전시를 하는 아티스트들과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문화예술 기업들도 줄줄이 위기에 몰렸다. 이미 계획되었던 클래식 공연 기획사들은 잇따라 취소된 공연으로 심각한 경영난을 맞게 됐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KBS 교향악단, 서울시향 등이 예정됐던 공연을 취소했고, 보스턴 심포니오케스트라, 홍콩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같은 클래식 애호가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내한 공연도 취소됐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 자료를 보면 코로나19가 지난 4개월 간 공연 업계에 미친 충격파가 얼마나 큰가를 실감할 수 있다. 지난 1월 공연계 전체 매출액은 386억 8,299만 원이었지만, 1월 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오면서 매출액이 뚝 떨어지기 시작해 3월에는 91억 2,146만 원에 머물렀고 4월에는 46억 7,644만 원으로 추락했다.

대중문화계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특히 대중들이 모여 관람이 이뤄지는 영화계와 공연계의 타격이 컸다. 개봉 예정된 작품들이 줄줄이 개봉을 연기했고, 시사회는 취소되었다. <사냥의 시간>은 개봉을 연기하다 결국 넷플릭스를 통한 온라인 공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극장의 매출 감소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 4월 극장을 찾은 관람객 수는 97만 2,57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333만 8,963명의 7.3% 수준에 머물렀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5월 8일 공개한 ‘코로나19 충격 : 한국영화 산업 현황과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여파로 지난해보다 올해 영화관 매출이 약 1조 4천억 원 줄어든다는 관측이 예고됐다. 또 이러한 매출 감소로 인해 영화계는 2만 명 이상이 고용불안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가요계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들어 전 세계로 활동 무대를 넓혀가던 K팝 가수들은 해외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전 세계 18개 도시에서 스타디움 투어 공연을 앞두고 있던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트와이스, 세븐틴, (여자)아이들, 몬스타엑스, 갓세븐 등 수많은 가수들의 해외 투어 일정이 전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이들은 결국 국내 활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팬 이벤트나 콘서트, 행사들을 가질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었다.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들

정부는 당장 생계의 위기에 처한 예술인들을 위한 지원에 돌입했다. 극장주나 단체를 위한 총 30억 원 규모의 긴급생활자금 융자를 내놨고, 특히 큰 타격을 입은 지역 예술인들을 위해 각 지자체들은 긴급지원자금을 서둘러 제공했다. 하지만 이런 일시적인 자금 지원이 코로나19로 드러난 취약한 공연예술계의 근본적인 대책이 되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그래서 예술인들의 기본소득 보장 지원 제도를 이 기회에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연계에서는 관객과 만날 수 없는 갈증들을 온라인을 통해서나마 풀어보려는 비대면·비접촉의 언택트 공연을 시도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언택트 공연 ‘방방콘’을 열어 전 세계에서 최대 동시 접속자 224만 명에 5,00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SM엔터테인먼트의 슈퍼엠은 ‘비욘드 라이브’를 통해 AR 합성기술과 화상토크 등을 더한 쌍방향 언택트 콘서트를 시도했다. 또 글로벌 쇼트 비디오 애플리케이션 틱톡은 에이핑크, 악동뮤지션, 오마이걸, 몬스타엑스, 아이콘, 강다니엘 등이 출연하는 ‘틱톡 스테이지 라이브 프롬 서울’이라는 온라인 콘서트를 열었다.

미술관과 박물관도 대안 찾기에 나섰다.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은 집에서 만나는 디지털 미술관을 제작했다. 또 사바나미술관은 증강현실 기술을 통한 버추얼 미술관을 오픈했고, 경기아트센터와 국립국악원 등에서는 3D 촬영 장비를 동원한 가상현실 생중계도 시도했다. 또 한남동의 문화예술아지트로 불리는 디 뮤지엄은 공식 계정을 통해 온라인 전시, 문화, 교육 프로그램 등을 지속적으로 개발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는 문화예술계 전반에 위기를 만들었지만 이를 통해 언택트 공연, 전시라는 새로운 시도들이 속속들이 이뤄지고 있다는 건 주목해 볼만한 일이다. 이러한 새로운 문화는 코로나19 이후에도 문화예술계의 한 부분으로 자리할 것으로 보인다.

‘띄어 앉기’로 해결되지 않는 생계의 위협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생활 방역 단계로 전환되면서 두 달 가까이 문을 잠갔던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 등의 문화예술시설들이 다시 문을 열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철저한 사전 방역은 물론이고 객석에서는 지그재그로 한 칸 띄어 앉기를 시행함으로써 관객들 간의 밀접한 접촉을 방지하려는 노력을 더하고 있다. 사실상 휴업 상태에 있던 공연장이 다시 열리기 시작하면서 공연계도 조심스럽게 침체된 업계의 활기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6월에는 올해로 한국 초연 10주년을 맞는 <모차르트!>와 한국 초연 20주년을 맞는 <렌트>, 쇼 뮤지컬의 대표작인 <브로드웨이 42번가>가 일제히 개막할 예정이라 뮤지컬 업계의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모차르트!>는 김준수의 티켓파워에 힘입어 매진에 가까운 티켓 판매율을 기록함으로써 ‘띄어 앉기’를 시행하는 세종문화회관이 이를 적용할 것인가 아닌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 ‘띄어 앉기’는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시행되는 것이지만, 공연 기획사들은 띄어 앉기로 인해 절반 정도만 관객을 채우는 공연은 적자 운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던 상황이다. 그래서 성남아트센터에 오를 예정이었던 뮤지컬 <레베카> 같은 공연이나 손열음 피아니스트의 서울 콘서트는 매진 사태로 인해 공연을 올리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등 24개 국립문화시설 운영도 재개되었지만 방역 전문가들의 권고에 따라 사전예약제를 통한 개인 관람만 허용하고 있다.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등에 있는 실내 관람시설 또한 재개관 되었지만 관람객 수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고, 관람객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와 발열 여부 등을 체크하고 있다. 시설들이 오픈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꽁꽁 얼어붙어 있던 문화예술계에 조금씩 봄바람이 불고 있지만 이번 사태가 만들어낸 상처는 꽤 깊어 아무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화예술인들의 생계 위협이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예총)가 발표한 ‘코로나19 사태가 예술계 미치는 영향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4월 사이 취소, 연기된 현장 예술행사는 2,500여 건으로 직접 피해액만 523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보고서가 진행한 설문에 의하면 문화예술인들의 88.7%가 전년 동기 대비 수입이 줄어들었고, 코로나19 종료 이후에도 수입에 변화가 없거나 감소할 것이라는 응답이 84.1%를 차지했다. 그만큼 문화예술인들의 위기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걸 보여준다. 이번 코로나19를 통해 문화예술인들은 예술계의 권익을 대변하는 종합예술 단체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코로나19 사태는 그만큼 문화예술계의 약한 체질을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 면이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갖게 된 위기의식은 그래서 좀 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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