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것이 코로나19와 함께 변화하고 있다. 특히 경제·사회·문화가 함께 얽혀 있는 콘텐츠산업은 그 변화의 폭이 훨씬 크다. 콘텐츠산업은 각 분야별로 유통구조나 수익모델 등이 다르기 때문에 온라인을 접점으로 하는 언택트 시장과 오프라인을 접점으로 하는 콘택트 시장을 각각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분야 중 하나는 여행 및 항공산업이다. 본질적으로 여행이라는 경험은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과 접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콘텐츠산업도 유통 과정에서 소비자가 오프라인 접촉을 해야 하는 분야의 피해가 가장 크다. 많은 사람들이 밀폐된 공간에 모여서 ‘관람’을 하는 영화산업과 공연산업이 대표적이다. 영화진흥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극장가가 얼어붙으면서 올해 3월 영화 관객 수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3월 한 달 동안 전체 관객 수는 183만 명으로 작년 동기대비 87.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04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였다. 일일 관객 수 역시 처음으로 1만 명대로 떨어졌다. 하루 동안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이 2만 명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영화발전기금 한시 감면, 영화 제작·개봉 지원 및 관람 활성화 지원 등 영화산업 피해 긴급지원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공연산업도 영화 못지않게 심각한 상황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연극, 음악, 무용 등 각종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의 긴급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1~4월 사이 취소·연기된 현장 예술행사는 2,500여 건으로 피해금액은 약 600억 원에 이르고 그리고 예술인 10명 중 9명은 전년대비 수입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대중음악산업도 타격을 받고 있으며, 특히 음악 라이브 공연이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규모가 작고 현금 유동성이 부족한 중소 음악 레이블은 더욱 피해가 크다. 뮤지션들이 음원 판매 수익보다는 소규모 공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에 따르면 2월부터 4월 17일까지 서울 홍대 근처 소극장에서는 무려 80여 개의 음악공연이 연기·취소돼 약 8억 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음악 전체로 보면 이 기간 동안 전국적으로 200여 개의 공연이 연기 혹은 취소되었다. 이에 공연계에서는 관객 없이 공연을 촬영해 유튜브로 생방송·녹화방송을 하는 ‘무관중 온라인 공연’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세종문화회관이나 경기아트센터 등 국공립 대형 극장 위주로 진행되는 실정이다. 촬영과 편집 모두 상당한 비용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아직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소규모 제작사가 온라인 공연에 뛰어들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영화와 공연이 어려움을 겪는 반면, 게임, OTT(온라인 기반 비디오), 웹툰 등 비대면으로 유통·소비되는 콘텐츠산업은 코로나19 이후 호황을 맞고 있다. 특히 게임은 최근 WHO에서 질병으로 분류되는 등 ‘유해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이제는 코로나19 시대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촉진하고, 여가 생활을 돕는 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최근 한 결혼정보회사의 미혼남녀 대상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18.1%가 “코로나19 기간 동안 집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답했다. 특히 남성은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응답(25.5%)이 1위를 차지했다.
제인 맥고니걸은 저서 『누구나 게임을 한다』에서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고대 리디아인들의 ‘놀이를 통한 위기 극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원전 12세기 무렵, 고대 리디아인들은 극심한 기근을 겪었는데, 당시 그들은 식욕을 잊을 만큼 놀이에 몰입하면서 오랜 배고픔과 혼란의 시기를 현명하게 이겨냈다고 한다.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놀이’를 활용했던 것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사람들이 각종 디지털 게임에 열광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바이러스로 오프라인 활동이 어려워진 시대에 우리는 게임으로 여가생활의 대안을 찾고 있다. 특히 온라인으로 연결된 디지털 게임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까지 함께 해결해주고 있다. 최근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이 게임이 코로나19 이전 시대의 삶을 디지털로 재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도 무섭다. 최근 국내 모바일 분석 기업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넷플릭스’의 국내 이용 시간은 누적 1억 5,791만 시간을 기록했다고 한다. 전년 동기대비 186%의 증가율이다. 지상파 계열 서비스인 ‘웨이브’ 역시 같은 기간 동안 1억 4,558만 시간으로 118% 증가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스트리밍 동영상 이용시간이 폭증한 것이다. 이는 오프라인 기반 영화산업의 극심한 침체와 대조되는 부분이다. 특히 이들 서비스는 구독 방식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해 저렴한 비용으로 막대한 양의 콘텐츠를 제공해 코로나19 시대의 경제적인 불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국내 대표적인 비대면 콘텐츠인 웹툰 역시 코로나19 이후 크게 성장하고 있다. 웹툰은 특히 건당 소비액이 작아 경기에 크게 민감하지 않다는 점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 원인으로 분석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콘텐츠의 ‘소비’라는 측면에서는 코로나19 사태를 전후하여 각 분야별로 희비가 엇갈리지만, 콘텐츠의 ‘생산’이라는 측면에서는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콘텐츠가 만들어지려면 어쨌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오프라인에 모여야 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이런 ‘모임’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 공연뿐만 아니라 주로 온라인으로 유통되는 음악(음원)이나 방송콘텐츠 쪽에서도 제작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대중음악산업에서는 가수들의 음원 출시가 잇달아 미뤄지고 있다. 음원의 유통이나 소비는 온라인에서 이뤄지지만 음원의 홍보를 위한 각종 활동은 오프라인에서 이뤄지는 까닭이다. 가수들은 컴백 쇼케이스를 무관중으로 전환하고, 팬 미팅 같은 행사를 연기하는 등 활동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
방송 역시 각종 프로그램의 제작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대규모 청중과 함께 진행되는 음악방송, 코미디쇼 프로그램은 무관중 녹화로 전환하거나 녹화를 무기한 연기하는 상황이다. 일반 프로그램의 경우에도 촬영이나 제작을 하더라도 제작진과 출연자의 안전에 각별한 신경을 쓰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콘텐츠 특성상 해외 촬영이 반드시 필요한 프로그램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해외에서 진행되는 리얼버라이어티쇼는 물론, 해외 기행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러한 콘텐츠산업의 생산 축소는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콘텐츠산업은 몇몇 분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종사자들이 프리랜서 등 특수고용직에 해당한다. 이들은 개별 프로젝트에 따라서 계약을 하고 임금을 지급 받는다. 따라서 프로젝트가 취소되면 사실상 실직 상황에 놓이게 된다. 방송산업의 경우 프로그램 제작이 줄줄이 중단되면서 그 여파가 외주제작사, 독립PD, 방송작가 등 창작자들에게 연쇄적으로 미치고 있다. 방송 편성일이 확정되고 현지 코디네이터와 촬영 스케줄을 모두 조정한 상황에서도 공항에서 입국금지 통보를 받고 돌아왔다는 사례도 들린다. 정부는 지난 4월 22일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특수고용직 종사자,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93만 명을 대상으로 총 1조 5,000억 원을 투입해 1인당 월 50만 원씩 최장 3개월 지급한다는 추가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다.
코로나19가 일상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올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각자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생활 속에서 감염병 위험을 차단하고 예방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콘텐츠업계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 각자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공연업계 및 예술가들이 가장 발 빠른 대응을 보여주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많은 공연들을 온라인 공연으로 전환하면서 비대면 공연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콘텐츠산업에서 온라인과의 결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오프라인 기반의 콘텐츠산업은 유튜브 등 온라인 서비스와 결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기존에 온라인 기반의 산업 역시 5G, 가상현실(VR) 등 차세대 기술을 기반으로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을 디지털 공간에서 구현하고 있다. 결국은 직접대면이 없는 상황에서 사용자에게 얼마나 재미있고 풍부한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