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의 대 이라크 전쟁 방침은 세계적인 정치·경제적인 불안을 가져오고 있는 한편, 반전 운동을 점화시키고 있다. 독일과 미국의 지식인들은 행동결의문에 연대 서명운동을 벌이며 평화 촉구 결의대회도 개최하는 등 협력 작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절박함에 비해 방송을 비롯한 대중매체의 외면에 대한 비판과 매체 활용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기서는 부시 정부의 대 이라크 전쟁 방침을 둘러싸고 최근 나타났던 독일과 미국의 연대 운동과 방송 등의 미디어에 요구되는 역할에 대한 논의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독일의 지식인들, 반전.평화를 요구
독일의 저명한 학자, 예술가 그리고 지식인 120명은 아프가니스탄 폭격 이후 1년이 지난 2002년 10월 6일, 부시 정부의 보복성 반테러전에 대해 강력히 경고를 가하는 행동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행동 결의를 모으는 서명 작업에 미국의 지식인들을 비롯하여 영화배우, 감독, 작가들까지 동참함으로써 연대의지를 표명하였고, 17일에는 <뉴욕타임즈>에 부시 정부의 반테러 전쟁을 규탄하는 전면광고를 실어 단호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였다는 점이다.
우선 슈피겔 온라인 2002년 10월 4일/6일자에 따르면, 이 행동 결의문은 '우리의 이름에는 없다(Nicht in unserem Namen)'라는 표제와 함께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행동(Aktion f r mehr Demokratie)'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이 결의문의 서명작업에는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G nter Grass)를 비롯하여 저명한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 rgen Habermas), 작가 페터 륌코프(Peter R hmkorf), 발터 옌스(Walter Jens), 카롤라 슈테른(Carola Stern), 프리드리히 쇼얼렘머(Friedrich Schorlemmer) 목사, 학자로서는 한스 몸젠(Hans Mommsen), 칼 오토 콘라디(Carl Otto Conrady) 등이 참여했고, 그 밖에도 독일의 유명한 영화배우, 영화감독, 가수, 예술가 등이 동참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선언이 나오기 사흘 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통독 12주년을 맞아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 "미국은 통일 독일의 자유 수호라는 공동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 독일 국민들과 함께 확고하게 서 있다."고 밝히면서, 공산주의 종식과 베를린 장벽 붕괴는 두 나라에 큰 성공이었고 전후 양국 국민간에 이루어진 긴밀한 우의는 향후 새 도전에 맞설 튼튼한 기반이라고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정부의 대 테러 전쟁에 대한 비판과 탄핵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결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테러는 엄청난 범죄이자 인류에 대한 천벌이다. 또한 테러와의 전쟁에는 권리뿐 아니라 국가와 시민 공동체의 의무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시인하는바, 전쟁은 세계적인 테러주의를 창출하는 잘못된 수단"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즉, 전쟁은 국제적인 권리 조문과 정신에 반하는 것이고, 특히 미 대통령이 공공연하게 꾀하고 있는 '대 이라크 예방전쟁의 선포'는 왜곡된 도덕 관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 서명에 참여한 독일 지식인들은 "우리는 미국의 동료들과 연대할 것"이라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 이러한 의견의 근거는 미국의 지식인, 예술가들 역시 '현재 미국의 헌법정신에 반하는 혐의와 불관용의 상황을 제어하려 하고 있고, 대통령이 반테러 전쟁을 일으키도록 허락하거나 행동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전쟁 반대자들 또한 화답
이에 대해 미국의 각계 인사들 역시 이라크전에 대한 반대 입장을 약속했다. 10월 20일자 슈피겔 온라인에 따르면, 미국의 영화배우 수잔 서랜든, 올리버 스톤 감독, 마틴 루터 킹 3세 그리고 고어 비달 등은 부시 정부의 전쟁 전략에 반대 입장을 선언하였다. 그들은 <뉴욕 타임즈>의 전면 광고에 '신제국주의 정치'와 '억압의 장막'이라는 문구를 실어 부시 정부의 대 테러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였고, 4,000여 명의 미국 시민들은 독일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행동한 결의문의 '우리의 이름에는 없다'는 표제 아래 서명을 하였다.
여기에는 위의 인사들 외에도 저명한 직업적 비평가인 노암 촘스키, 텔리 길리암 감독과 데니 글로버 감독, 작가 커트 보네것, 음악가 모스 데프, 그리고 로리 앤더스,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를 비롯하여 잘 알려진 화가, 무용가, 연극 관계자들이 참여하였다.
"이것은 세대를 불문한 광범위한 연대"라고 이 운동의 주창자인 클라크 키신저는 강조했다. 16일자 <뉴욕타임즈> 15면에 비판광고가 실리기 시작하면서 주류 언론에서도 이례적으로 부시 대통령을 공격하는 강도 높은 글들이 실렸다.
예컨대 "서명자들은 2001년 9월 11일 이래 진행된 정치적 경향에 반대하기 위해 미합중국의 시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라는 입장 전달 기사와 함께 '미국의 가장 높은 지도자들'이 '복수의 정신'을 확산시키고 있고, '새롭게 열린 제국주의 정치'를 세계적으로 추구하면서 미국 시민의 두려움을 '조작하고 있다'고 비판한 논조는 9·11 테러 직후 언론이 보여준 모습과는 많이 대비된다.
이러한 서명운동에 대한 주요 언론의 의외적인 논조 속에서, 대 이라크전 계획에 대한 풍자와 지원 사격도 이루어졌다. 가령, "미 정부가 특별명령권, 살인 그리고 폭격을 자행하기 위한 백지수표를 받고 그것을 허락하도록 하는 이곳은 어떠한 세계인가?" 하는 등의 날카로운 비판이 단적인 예이다.
결국 독일-미국 지식인 및 예술가들의 연대 행동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이러한 '백지수표'를 회수, 폐기처분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그들이 주장하는바, 테러주의에 효과적으로 싸우려 한다면 국제연합이 강해져야 하고, '무력으로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연합의 감시 아래 국제적인 폭력의 독점 경향을 제어하도록 해야 한다 것이다.
저널리스트들의 외면
그러나 이러한 열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전쟁 방침에 반대하는 어떤 비판적 소리도 허용하지 않았다. 2002년 10월 12일자 Spiegel Online에 따르면, 오히려 미국에는 반전기조를 지키고 있는 유럽적 사고에 반대하는 입장이 개선 행렬을 이루기도 했다. 반면, 반전의 요구와 입장은 인터넷에서만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뉴욕의 지식인들도 포럼에서 그 주제를 다루는 정도에 그쳤다.
10월 6일 일요일 1만 5,000명이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를 위해 뉴욕 센트럴 파크에 결집했을 때, 신문사와 세계적 개방성을 점차 다중기술적인 진행자들의 선정에만 제한시키고 있는 TV 방송사들은 옵저버로서의 기사는 고사하고 이 시위에 대해서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미국의 반(反)공공성 ― 닷컴 혁명의 불변하는 승리 ― 은 인터넷에서 Exxon, Enron 그리고 Cheney에 대해 광고하는 '행운의 편지들' 속에서 조직되었다. 그 동안 독일 수상은 미 정부의 대 이라크 전쟁 방침에 반대입장을 표해 왔다.
센트럴 파크에서 개최된 시위에서 슈뢰더(Schr der)는 칭송되었지만, 세계에 대한 미국의 단순화 방식은 장난으로 동료나 적을 격파시킬 수 있다고 평가되었다. 2002년 10월 9일자 에 따르면, 당시의 한 시위 참여자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였다. "왜 텔레비전 방송에서 볼 수 없는가, 내가 미국 시민으로서 조지 부시의 대 이라크 계획에 저항하는 것을 말이다. 미국에서 반 공공성이 형성되었고, 그것은 전쟁 반대자들의 대대적인 결집을 지배한 것이다. 그러나 거대 TV방송들과 일간지들을 통해서 우리의 의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미국 정부의 전쟁계획이 모든 방송 채널에서 압도적인 주제로 다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언론사의 무관심은 반전의 의지를 무색하게 한다. 아직까지 미국인들의 다수가 전쟁방침을 지지한다고 할지라도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는 전쟁 반대자의 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10월 7일 CNN과 의 여론조사 결과 단지 미국인의 53%만이 이라크 공격에 찬성하는 답변을 내놓았다. 6월 조사결과가 61%인 것에 비해 감소한 것이다.
한편, 미국에서 이라크 전쟁에 대해 논의될 경우, 두 부류의 미국인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나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전쟁을 '언제'와 '어떻게'라는 물음으로 논의한다. 언론보도에서 미국의 기본 가치인 자유와 민주주의가 주장되지만, 아주 미약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전쟁 반대자들이다. 전쟁이란 '우리의 이름에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서명, 결의작업까지 했지만 언론보도에서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독일의 언론 역시 뉴욕에서 이 결의대회가 개최될 당시 참여자들의 참여 의도를 전달, 평가하기보다는 "독일이 한번 옳은 일을 했다."를 보도하는 데 머물렀다. 미국의 공공성을 위한 한 나라의 반전운동이 독일과는 먼 것처럼 평가된 것이다.
토크쇼의 참여 등을 통한 미국 국민과의 직접적인 대화 필요
이에 대해 2002년 10월 14일자 Spiegel Online에서 인터뷰를 행한 미국의 사회학자 리차드 세네트(Richard Sennett)는 미국 사회의 붕괴에 대해 대통령의 무력함을 비판함과 동시에 독일 정부를 비롯한 유럽인들의 연대를 다음과 같이 적극 요구하고 있다.
"평균적으로 미국인들은 지금까지 유럽에서 미국의 정치에 대해 얼마나 반대 입장을 지니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항상 부시나 럼스펠드(Rumsfeld)만을 본다. 내가 볼 때 슈뢰더와 피셔는 매우 올바로 나아가고 있다. 나의 지인들은 이에 동의하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독일의 주장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인들은 미국 정부와 대화하기보다는 미국의 국민들과 대화했으면 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유럽인들은 대중매체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토크쇼에 참여하거나 주요 신문의 사설에 그러한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 부시 정부와 대화하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정부는 스스로 미국 국민임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ㅇ참조 : Spiegel Online 2002. 10. 4., 10. 6., 10. 12., 10. 14., 10. 20. taz 2002. 10. 9.
ㅇ작성 : 강진숙(독일 통신원, schaffen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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