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고전극은 수년간 중국 드라마 창작에 있어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아 왔다. 이는 SARFT의 국장 쉬광춘(徐光春) '2002년도 전국 드라마 제재 계획회의에서의 강화'에서 밝힌 구체적인 수치에서도 드러난다. 1999년 전체 드라마 창작량의 10.7%를 차지했던 고전극은 2000년에 이르러서는 21.6%로 상승했고, 2001년에는 24.8%라는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2001년 드라마의 1/4을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방송되는 송출량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중국의 방송 관련 기간지 <중국TV 中國電視>는 상당 기간 TV 화면 대부분의 황금 시간대(18:00∼22:00)를 고전극이 장악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2001년 쓰촨의 TV 프로 교역회와 베이징 TV 주간 교역장 부스의 2/3가 고전극 거래를 위한 것이었다. 심지어는 30여 개의 주요 채널 중 11개 채널의 황금 시간대에서 청나라의 궁중을 중심으로 하는 고전극이 동시에 방영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1999년 국가 건국기념일을 앞두고는 수많은 위성 TV들이 동시에 <녹정기(鹿鼎記)>를 방송한 바가 있었으며, 가장 정점을 이루는 시기에는 십여 개의 방송들이 <황제의 딸(還珠格格)>을 방송하기도 하였다. 당 태종과 당 명황, 주원장과 강희대제, 건륭황제, 옹정황제, 무즉천 등의 황실 인물과 포청천, 유나과 등의 역대 영웅들은 드라마를 통하여 중국 국민들에게 가장 친숙한 인물로 부각되었다.
중국 시청자들의 고전극 선호 현상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복잡한 다원적 사회 구조와 연결시켜 분석하기도 한다. 사회주의 생산방식에 길들여 온 중국인들은 시장경제의 치열한 경쟁에 놓이게 되었고, 믿음과 이상이 파괴되는 전형적인 사회변혁기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부유층이 속출하고 적응력이 부족한 자는 이전보다 더욱더 빈곤감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1980년대부터 시작된 개혁개방의 물결은 1990년대에 이르면서 더욱더 현실화되어, 일반 국민들도 자신들이 경제적·문화적인 면에서 선진국들과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에 중국인들은 휘황찬란한 과거의 역사 속에서 소극적으로는 자신들의 자존심을 보장받고,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자신들의 객관적인 위치와 비전을 확인받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일기 시작하였다. 1995년부터 시작된 고전적 중국학 연구의 열풍은 이러한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고전극의 본격적인 등장은 이러한 조류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에서 중국의 위대함과 역사의 영웅을 찾기를 희망하였으며, 드라마 작가들은 이러한 심리에 부응하여 역사책의 기술과는 거리가 있지만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드라마를 끊임없이 제작하기 시작했다. 역사 속의 영웅들은 시청자를 감동시킬 만한 인간미가 있었으며, 도덕적으로나 문무의 기량에 있어 허점이 없었다.
또한 여기에 중국의 고전극은 대중 드라마의 불문율이라고 할 수 있는 흑백의 논리, 권선징악, 복잡한 사건의 전개, 영웅의 등장으로 인한 대단원의 해피엔딩 등의 원칙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중국의 시청자들은 현실의 불합리에서 떠나 역사 속에서 안위의 대상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 구매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전극은 연령층에 관계없이 시청자로부터 사랑받는 손해보지 않는 구매였으며, 판매자의 입장에서도 거래 성립 가능성이 높은 효자 상품이었다. 제작에 있어서도 이미 갖가지 고전극의 촬영을 위한 대형 촬영장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상황에서 제작비용 역시 별다른 압력을 주지 않았다. 또한 현대인의 현실을 다루는 드라마의 경우 정부의 정책이 변동됨에 따라 제한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반면, 고전극은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민감하지 않은 상품이었다.
또한 고전극은 외국과의 거래에 있어서도 중국적이면서도 특별한 이데올로기 선전이 포함되지 않은 부담없는 아이템으로 여겨졌다. 또한 <옹정황제>의 미국 시장에서의 성과 또한 역사 드라마의 제작을 자극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 중국에서 불고 있는 방송 미디어의 산업화라는 조류와 각 방송국이 이전과는 달리 자신들의 경영비용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과도 맞아떨어졌다. 이처럼 판매자와 구매자가 모두 만족할 만한 역사 드라마가 거래에 있어 환영을 받는 것은 시장의 조절기능에 의한 객관적이고도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고전극 제작에 대한 견제
그러나 이처럼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고전극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2001년 말부터 고전극의 제작량은 급격히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는 중국 SARFT의 정책과도 관련을 맺고 있다. 올해 초 쉬광춘 국장은 드라마의 번영과 발전 과정에 있어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의 변혁을 반영하고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SARFT의 부국장인 후잔판(胡占凡) 역시 2002년 전국 드라마 제재 계획회의에서 2001년의 전국 드라마 제재에 대한 회고를 하고, 일반 고전극의 생산을 억제한 정책이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궁중의 복잡한 인간관계를 다룬 것이나 무협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의 경우는 심사비준의 양을 제한하는 방법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방송계 내부에서도 고전극 과열 현상을 비판하는 입장이 대두되었다.
쉬광춘 국장은 일부에서 고전극의 창작과 생산을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직접적으로 지적했고, 후잔판 부국장 역시 역사 드라마 현상을 지적하면서, 고전극 과열의 부당성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되어 왔으나, 그 근본에 놓여 있는 금전적인 이해관계로 인하여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화라는 엄중한 현실에 직면해서도, 방송 미디어의 공익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비록 전체는 아니라 할지라도 많은 수의 역사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마취제 혹은 단순 오락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드라마 제재 선택의 변화의 일부는 상부로부터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던 만큼, 문화의 흐름에 정부가 개입을 하는 강제성에 대한 불만도 표출되었다. 특정 역사 시기의 문화 형성은 자연스러운 배경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보통사람' 드라마의 부각
최근 10년간 고전극과 더불어 주류를 차지하던 것이 현대 소재의 혁명 열사 혹은 부유층의 삶을 다룬 것이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그린 드라마들이 점차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 들어 베이징 TV와 광둥 TV 주장 채널 등에서 방영됐던 <아빠, 앞으로 전진!>이 그 한 예이다. 이 드라마는 도시에 사는 평범한 중년 남자가 주인공으로, 현대 중국 도시인의 복잡한 생활모습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사랑과 우정, 가족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관심을 모았던 것은 주인공의 딸에 대한 사랑이었다.
딸에 대한 사랑은 극 전체의 흩어져 있는 편린들을 묶어내는 핵심체로 작용하였다. 미디어 조사기관인 MediaFriend.com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드라마는 베이징 TV에서 방영되던 첫날 8.33%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였으며, 이후에도 7% 이상의 시청률을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같은 시간 방영되는 모든 드라마의 시청률을 넘어선 것이었다. 이 드라마는 허베이, 충칭 등 지역에서도 방송되었으며, 역시 두드러진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보통사람을 그린 드라마들은 가장 소박하고 가장 직접적인 감정의 묘사를 통하여 이웃들의 작은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다. 예를 들면 <외지 사람 아내와 본토박이 남편>, <빈 거울>, <형>과 같은 드라마들이다.
CCTV 제5채널에 축구팬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던 월드컵 기간에 드라마 채널인 CCTV 제6채널에서는 택시 운전사의 삶을 그린 <형>이 적잖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드라마는 특별히 굴곡이 심한 스토리나 화려한 배경무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가족과 이웃간의 갈등이라는 가까운 소재로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하였다.
광둥 지역을 중심으로 방영되었던 <외지 사람 아내와 본토박이 남편>은 단편 시리즈물로, 2000년에 방영을 시작한 이래 최고 40%라는 놀라운 시청률 기록을 세웠다. 이는 당시에 함께 방영되던 모든 홍콩 드라마를 넘어선 기록으로, 광둥 TV에서는 일종의 기적으로 받아들일 정도였다. 현재 이미 300회 방영을 넘어선 이 드라마는 광둥 사람들의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화젯거리로까지 등장하였다.
웃음과 폭소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색정이나 폭력, 청춘의 우상, 무협 액션, 호화스러운 배경 등 기존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하여 사용되었던 이러한 일련의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한때 중국을 풍미했던 한국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현상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당시 중국인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한 가정 속의 성원 하나하나가 진지하고도 독특한 삶을 사는 것과 또 그러한 모습을 과장되지 않게 그린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이전의 중국 드라마에서는 자연스럽지 못한 스토리와 대사 등이 많이 나타났으며, 시청자들에게 어설픈 흥분과 눈물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에서 방송되고 있는 대부분의 한류 드라마를 비롯한 청춘 드라마와 달리 이러한 보통사람들의 드라마가 갖는 특징은 시청자의 연령층과 계층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공통분모, 특히 현재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고민을 보여 주고 일종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이들 드라마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중국 사람들의 국산품 사랑하기 정서도 녹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에 있어 비교적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절대 다수의 중국인들은 자국의 드라마에서 편한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랑이 뭐길래>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가치관이 자신들에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방송국의 경제구조 개혁에 따라 예전과 달리 시청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중국의 드라마 시장은 새로운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전의 혁명 드라마에서 개방 이후 사회 속에서 성공하는 영웅과 복잡한 애정관계를 그린 드라마로, 역사 소재의 드라마로 조류가 흘러왔으며 이제는 다시 보통사람들의 드라마로 그 힘이 이동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드라마 시장은 한마디로 묶어 이야기할 수 없는 복잡한 구성체이며, 사회 문화의 코드를 빠르게 반영하는 문화의 산물이다. 여기에 중국적인 특색을 가진 정부의 정책 방향이라는 요소까지 더해짐으로써, 드라마 제작의 조류는 부단히 변화하고 있다.
ㅇ참조 : 中國電視 1992. 8., 2002. 3., 4., 7. 中國廣播電視學刊 2002. 10.
ㅇ작성 : 이재민(중국 통신원, ljm0219@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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