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3일, FCC는 케이블 사업자와 그와 수직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프로그램 제작자들 사이에 위성 중계 케이블, 혹은 위성 중계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 공급에 대한 배타적 계약을 금하는 조항, 소위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program access rule)이라고 불리는 조항을 앞으로 5년간 연장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1992년 만들어진 이 조항은 올해 10월 5일로 10년간의 유예기간이 끝나면 그 시효가 만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FCC는 이러한 금지조항이 영상 프로그램 공급 시장에서 경쟁과 다양성을 보호하는 데 아직도 필수불가결하다고 보고 이의 연장을 결정하였다.
이 결정은 FCC 의원들 사이에 찬성 3명, 반대 1명의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하였다. 유일하게 반대를 한 캐슬린 애버네이티(Kathleen Abernathy)는 최근 영상 프로그램 시장 변화를 바라볼 때 이미 이 금지조항은 그 당위성을 잃었다고 주장하였다. 공화당 계열인 애버네이티 의원은 경쟁과 프로그램 다양성의 극적인 팽창 등으로 대표되는 일반적 경쟁환경의 변화, 다채널 뉴미디어 영상 프로그램 공급업자들에 대한 기존 매체(특히 케이블)로부터의 차별적 조치를 막을 수 있는 다른 법률 조항들의 신설 등 1992년 이후로 의미있는 법적·사회적 변화가 있어 왔다고 역설하였다. 따라서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과 같은 금지조항은 이제 폐지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찬성한 의원들 중에도 케빈 마틴(Kevin Martin) 같은 이는 여러 가지 조건을 달고 있다. 그는 케이블 사업자와 그 계열 프로그램 공급자들 사이의 배타적 계약 금지 조항이 단순히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경쟁에 '도움'이 되거나 '유용'한 정도가 아니라, 필수불가결하다는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가 있는 상태에서만 그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그는 "FCC는 배타적 계약 금지 조항이 영상 프로그램물 판매 시장에서의 다양성과 경쟁을 유지, 보호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증거 - FCC의 전문가적 식견 정도를 넘어서는 - 가 있지 않다면 바로 그것을 폐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 조항이 계속적으로 필수불가결한 조항이 될 것이냐 아니냐 하는 이슈는 현재 여러 가지 변수들에 의해 충분히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점을 고려해 볼 때 아직까지는 그 규정이 가지는 필수적 요소가 남아 있다고 판단, 찬성의 표를 던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의 실시 배경
원래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 조항은 1992년에 제정된 Cable Televi- sion Consumer Protection and Competition Act[줄여서 '케이블법(Cable Act)'] 내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미 의회는 다채널 영상 프로그램 시장을 케이블 사업자들이 독점하고 있다시피 한 현실과, 케이블 사업자들과 그들과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프로그램 공급자들 사이에 배타적 프로그램 공급 계약을 맺도록 허용할 경우 케이블 시장에서 실질적 의미의 경쟁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래서 기존의 케이블 사업자들이 갖고 있는 시장에서의 독점적 권력을 견제하면서 당시로서는 아직 어린아이 수준에 미치지 못하던 위성방송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준다는 실질적 목표를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영상 프로그램 시장 변화를 고려하여 이 조항에는 10년간의 유효기간이 주어졌다. 10년 후에는 FCC가 존속 필요 여부를 가리도록 하게 했는데, 바로 올해가 그 시점이 된 것이다.
이 금지조항을 5년 연장하면서, FCC는 케이블 사업자들과 그 제휴 프로그램 공급자들 사이의 배타적 관계에 대한 금지조항을 없애 버리게 되면, 케이블 사업자들의 계열사인 프로그램 공급자들은 자신의 모기업을 타 케이블 사업자들이나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영상매체 사업자들보다 우선시하게 되는 폐해가 예상되며, 이러한 폐해는 곧바로 케이블 산업 내에 경쟁과 다양성의 기조를 없애는 근본적 원인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다시 말해, 경쟁과 다양성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금지조항이 계속해서 유효하다는 것이다.
영상 프로그램 시장의 변화와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
이러한 FCC의 결정에는 지난 10년간 미국 케이블 시장 변화에 대한 FCC의 견해가 담겨 있다. 지난 10년간 DBS와 케이블간에 경쟁이 꾸준히 심화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이 시작된 1992년 당시 DBS 가입자들은 매우 미약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FCC 보고서에 의하면 1,600만 명 가구가 DBS에 가입해 있는 것으로 나타나 6,900만 가입 가구를 갖고 있는 케이블을 맹추격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DBS는 2001년 1.9%의 성장률을 보인 케이블보다 2.5배나 높은 가입자 증가율을 보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DBS의 경쟁 기반이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을 폐지할 만큼 튼튼하지는 못하다는 것이 FCC의 견해이다.
뿐만 아니라, FCC는 케이블과 지상파 방송과의 경쟁 역시 1992년 케이블법이 도입될 당시 예상되었던 것에 미치지 못 해왔다고 보고 있다. FCC는 케이블 사업자들과 연계되어 있는 제작자들의 프로그램들이 케이블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들로 자리잡아 왔기 때문에 그 프로그램들에게 대한 접근권이 제약될 경우, DBS 혹은 지상파 방송 등 케이블 경쟁 매체들이 공정한 경쟁을 벌이기 힘들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FCC는 지역에 바탕을 둔 프로그램, 특히 지역 스포츠 프로그램이 경쟁력 있는 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과,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발달되어 온 케이블 시스템의 지역화 추세가 어떤 상호작용을 일으킬지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화 추세가 케이블 사업자들의 계열사들인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타 경쟁 매체에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는 개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적 변화에 대한 인식이 복합적으로 FCC가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의 존속 당위성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요인들로 작용하였다.
FCC는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의 부분적인 완화, 가령 케이블에 대해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춘 DBS와 관련된 부분만을 완화시키거나, 그러한 금지 조치를 특정 프로그램에만 국한시킨다든지 아니면 특정 지역에만 국한시킨다든지 하는 것도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보고 있다. 이와 반대로 FCC는 금지 규정을 지상파 중계 프로그램이라든지, 수직 통합 프로그램 외의 프로그램에까지 확대 적용시키는 것 역시 FCC의 재량권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케이블 사업자들의 반대에 대한 FCC의 반응
물론 이러한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은 케이블 사업자들로부터 계속적인 공격의 대상이 되어 왔다. 예를 들어 1994년 12월에 The Nat- ional Cable and Telecommunications Association(NCTA)는 FCC에 당시 케이블법의 76.1002 (c) (1) 조항을 개정할 것을 요청했었다. 이러한 개정 요청은 케이블 서비스가 못 미치는 지역 내에서, 타 케이블 사업자와 수직 통합되어 있는 위성 중계 케이블 프로그램 판매자들과 DBS 사업자 사이의 배타적 프로그램 공급 계약 조항을 없애려는 데 주목적이 있었다. 당시 United States Satellite Broadcasting, Inc., Warner Entertainment Company, L. P., Viacom International, Inc., Discovery Communications, Inc., Liberty Media Corporation 등은 이러한 개정 요청에 반대하였다.
당시 FCC는 케이블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지역에서 비케이블 프로그램 공급자들이 맺는 배타적 계약을 금지하는 것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기술들 사이의 경쟁 장려라는 1992년 케이블법의 기본 정신에 벗어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또한 케이블 업계가 주장하듯이 그러한 배타적 계약 관계가 케이블 산업 내의 경쟁 관계를 약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도 근거가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오히려 DBS 공급자들에게 배타적인 프로그램 수급권을 부여하는 것은 DBS가 케이블에 대한 실질적인 경쟁 매체로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이는 나아가 소비자들에게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 선택권을 부여하는 길이 된다고 보았다. 또한 FCC는 타 케이블 사업자와 수직 통합되어 있는 위성 중계 케이블 프로그램 제작자들과 DBS 공급자 사이의 배타적 프로그램 공급 관계 때문에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불공정 행위에 대한 불만은 케이블법상에 이미 존재하는 불공정 행위에 대한 제소 조항을 통해서 충분히 처리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번 FCC의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 연장 조치에 대해서 NCTA는 물론 매우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NCTA의 법률과 정책 담당 수석 부사장인 댄 브레너(Dan Brenner)는 "오늘날 거의 모든 소비자들은 몇 개 이상의 다양한 영상 프로그램 배급자들 사이에서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가입비를 내고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는 사람들 중의 4분의 1이 케이블 대신 위성방송에 가입해 있는 실정이다. 엄청난 정도의 경쟁 환경 속에서 다매체 다채널 프로그램 공급자들은 소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프로그램을 쌓아 놓고 있다. 케이블 프로그램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충분한 경쟁 체제 속에서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Cable System Corp.과 NCTA는 FCC가 이번 6월 내린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 조항의 5년 연장 결정에 대해 재심 요청을 포기하였다. 재심 청구 마감일인 8월 29일을 그냥 지나친 것이다. 물론 NCTA를 비롯해 케이블 회사들이 FCC의 결정에 대해 연방법원에 제소할 수 가능성이 아직 있기는 하다. 이것도 앞으로 한달 이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움직임으로 보아 케이블 회사들이 연방법원에까지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소규모 독립 케이블 사업자들의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에 대한 입장
당연히 위성업자들과 소비자 단체들은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 조항의 유지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여 왔다. 사실 소규모 케이블 사업자들 역시 이번에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을 유지하기로 한 FCC의 결정을 반기고 있다. The American Cable Association(ACA)은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의 폐지는 중요한 프로그램들을 시청할 기회를 소비자들로부터 박탈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규모의 독립 케이블 사업자들이 거인과 같은 주요 케이블 사업자들, 그리고 계속해서 번성하고 있는 DBS 사업자들과 경쟁할 수 없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ACA에 의하면 케이블 사업자와 케이블 프로그램 제작자들에 의해 소유된 프로그램은 독립 케이블 사업자들의 프로그램 편성의 40%를 차지한다. 그들 편에서 생각해 보면, 프로그램 액세스 규정이야말로 이 40%의 중요한 프로그램에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패막이 되고 있는 것이다.
ㅇ참조 : FCC, Commission affirms program access rule on exclu- sive contracts for satellite programming, 1994. 12. 15. / FCC, Report and Order, 2002. 6. 28. /
Multichannel News 2002. 8. 29., 9. 9./
Martin, K., Separate statement of commissioner Kevin J. Martin approving in part, concurring in part, 2000. 6. 13.
ㅇ작성 : 김용찬(미국 통신원, yongchan@usc.ed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