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방송의 영향력은 지난 22일 실시된 독일 제15대 총선 과정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각 방송사들은 투표 마감 직후 실시한 출구조사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각 방송사별로 독특한 방송 유머들을 남기며 선거보도문화를 조성하기도 하였다. 이중에서도 각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하고 논평을 낼 정도로 화제가 된 것은 총선투표 이전에 두 차례에 걸쳐 개최된 민영방송과 공영방송의 TV 토론 대결이었다.
일요일 밤 1,500만 명 이상의 시청자들을 불러모았던 이들 TV 토론은 지지율이 높았던 막강한 도전자였던 기독사회연합(CSU)의 바이에른 주 총리 에드문트 슈토이버(Edmund Stoiber)를 근소한 차로 누르고 사민당(SPD)의 게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oeder)가 재임에 성공할 수 있게 한 일등공신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여기서는 이러한 일련의 토론방송과 관련한 언론보도와 논평 그리고 인터뷰 내용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TV 토론의 승자 : ARD와 ZDF, 그리고 슈뢰더
이번 총선의 TV 토론은 두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제1회 TV 토론은 8월 25일 민영방송인 RTL과 Sat1이 실시했고, 제2회 TV 토론은 2주 후인 9월 8일 독일의 제1공영방송인 ARD와 제2공영방송인 ZDF가 공동으로 개최하였다.
9월 7일자 <타게스차이퉁(Die Tageszeitung)>에 따르면, 첫번째로 실시되었던 RTL과 Sat1의 TV 토론은 쟁점 없이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시청자들은 별반 새로운 것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진부한 비난이 진열되었기 때문이다. 그 토론에는 너무 많은 공격, 빈약한 사실 정보, 과거 지향적인 비판, 그리고 협소한 비전만이 있었을 뿐이다.
한편, ARD와 ZDF가 공동 개최한 두 번째 TV 토론은 앞서 2주 전에 방송되었던 TV 토론과 달리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9월 9일 에 따르면, 두 번째 'TV 결투'는 '다시 자신의 힘을 완전히 소유한' 총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동안 잃어버린 듯이 보였던 신랄하고 매력적이면서 승리의 확신을 보여주었던 모습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의 중간평가는 이러한 TV 토론의 배경에서 이루어졌고 성공을 거두었다.
이번 토론의 쟁점은 두 가지 이슈로 압축된다. 하나가 독일의 실업률 증가 문제라면, 다른 하나는 미국의 이라크 공습에 관한 것이다. 첫번째 이슈는 선거전에서 계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문제로서 초반에는 주로 400만 명을 넘어서는 고실업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그러나 이번 토론에서 실업률을 크게 낮추겠다는 집권 당시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슈토이버의 신랄한 공격에 맞서 슈뢰더 총리는 고실업이 국내 문제가 아니라 주식공황, 수출저하 등을 가져온 세계적인 경제불황과 9·11테러 등에 원인이 있다고 반박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그가 총리로서 할 만큼 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하였다.
물론 미국의 대이라크전에 관한 입장에서는 두 후보 모두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뢰더는 UN의 결정에 상관없이 미국의 이라크 군사 공격에 동참하지 않을 것임을 밝혀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아왔고, 이 토론에서도 이러한 입장을 견지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참고로 최근 여론조사기관인 NFO의 9월 여론조사에서 독일 국민의 33%를 제외한 65%가 이라크 군사 공격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은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유추할 수 있게 만든다.
반면, 슈토이버는 이라크 군사 공격에 있어서 군대 파병이 아니라 무기 감시자들이 이라크를 한번 칠 수 있도록 하는 '위협무대'를 허용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슈토이버의 반론에는 핵심이 없었다고 평가된다. 그가 주장하는바, 모든 저명한 슈뢰더의 전임 총리들은 미국 대통령과 '오랫동안 전화 통화로' 거침없이 자신의 견해를 솔직히 전달했다고 지적하면서 '대화 부족'에 초점을 맞춘 채 테마의 무게를 과소평가하였다고 지적된다.
결과적으로 볼 때, 두 번째 TV 토론에서 '슈토이버는 좋았고, 슈뢰더는 그보다 더 나았다'는 평가가 도출되었다. 이번에 미디어 총리로 지칭되었던 슈뢰더는 자신의 도전자를 폄하하지 않고서도 자신에 대한 대국민적 신뢰를 지켜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토론은 독일 총선에 많은 유권자들이 참여하도록 선거풍토를 조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지지자들은 그의 팬이 되었고, 부동층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나머지 슈토이버 지지자들은 적수의 선거전에 가슴 졸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TV 토론의 영향력은 토론방송이 나간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반영이 되었다. 9월 8일자 이 보도하는 바에 의하면, 첫번째 TV 토론 후 연구조사기관인 Wahlen이 행한 여론조사에서 1,036명의 시청자 중 49%가 슈뢰더를 지지한 반면, 슈토이버는 26%에 그쳤고, 24%는 아직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편, 두 번째 TV 토론 이후 실시한 같은 조사기관의 여론조사에서는 두 후보에 대한 호감도를 바탕으로 한 슈뢰더의 지지율이 12%나 증가한 61%에 이른 반면, 슈토이버는 19%로 7% 하락한 지지율을 보였다.
이러한 여론조사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앞서 보았듯이 독일의 공영방송인 ARD와 ZDF의 성공적인 TV 토론의 개최와 슈뢰더의 일관된 정책적 입장의 견지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언론에서 공통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은 두 공영방송의 진행자들의 토론 진행 능력에 대한 것이다.
정치적인 대화 능력과 힘있는 질문의 진행이 TV 토론 성공의 원동력
두 번째 실시된 공영방송의 TV 토론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인공은 ARD와 ZDF의 진행자인 사비네 크리스티안젠(Sabine Christiansen)과 마이브릿 일너(Maybrit Illner)이다. 그들은 민영방송인 RTL과 SAT.1의 TV토론 때보다 더 자주 슈뢰더와 슈토이버 간의 직접적인 논쟁을 가능케 하였다. 앞서 보았듯이 두 번째 TV 토론에서 이루어졌던 두 후보간의 극명한 입장 차이는 후보자의 자질에 기반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쟁점적인 토론을 가능케 하는 TV 토론의 진행 방식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9월 9일자 <남독일신문(Sueddeutsche Zeitung)>도 유사한 평을 내고 있다. 이 평에 따르면, 이번 TV 토론의 승자는 두 공영방송 ARD와 ZDF이다. 특히 위의 두 진행자 마이브릿 일너와 사비네 크리스티안젠은 RTL과 Sat1의 진행자들보다 더 집요하고 풍부한 인식을 바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슈뢰더와 슈토이버에게 보다 명료한 답변을 요구했고, 그러한 입장을 이끌어 내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두 적수로부터 선거 후 앙금이 남을 수도 있는 최소한의 개인적인 결정까지도 유인해 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신문은 다음과 같이 TV 토론의 결과에 대해 논평하고 있다.
"투표결정의 척도가 이러한 진행자들이 이끈 TV 토론이라면 슈토이버는 이번에 점수를 얻지 못한다. 진행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대해 놀라운 효과나 자기변호의 연출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가 공격적이 될 때에야 더 나아질 것이다. 슈뢰더는 첫번째 TV 토론 때보다 덜 엉클어졌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TV 스튜디오에서는 슈뢰더에게 이로운 기운이 돌았다."
9월 9일자 은 위의 두 TV 토론을 대상으로 'TV 토론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라는 주제 아래 Adolf Grimme 연구소의 소장이자 미디어 학자인 베른트 개블러(Bernd Gaebler)와 인터뷰를 하였다. 개블러에 따르면, TV 토론은 선거전의 첨단이고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관심사를 고무시키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첫번째 TV 토론에서는 이 기회가 제시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민영방송에서 행한 TV 토론보다 공영방송에서 행한 것이 더 나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개블러는 "두 번째 TV 토론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한다. 하지만, 그 원인은 방송사 자체가 아니라 두 언론인들의 개인적인 측면에 있다. 크리스티안젠과 일너는 정치적인 대화 능력을 가졌고, 특히 일너는 더 원기왕성하게 질문을 던졌다. 14일 전의 첫번째 TV 토론에서 그들이 배운 것 같다. 첫회에서는 토론 형식이 내용을 억눌렀다면, 이번에는 형식을 넘어서서 토론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두 후보간의 차이가 더 명확해질 수 있었다." 뒤를 이어 기자가 질문한바, 이번 토론에 1,500만 명 이상이 시청하였고 방송사들은 이 지분에 눈길을 던지고 있다.
TV 토론은 이미 거대한 관심사로 자리잡혔는가? 이에 대해 개블러는 신중한 답변을 내놓았다. "확실히 자리잡혔지만 모든 선거전에서 토론이 행해지게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헷센(Hessen) 주의 국무총리인 코흐(Koch)는 이미 총선을 위한 TV 토론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독일 총선에서 총리는 토론의 도전자를 세울 각오를 해야 한다."
어떤 총리가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 압력은 물론 더 커질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TV 토론은 앞으로도 선거전의 궁극적 도달점일 수 있다. 때문에 선거전은 확실한 승부사를 찾게 되고 깊이를 갖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더 많은 텔레비전 방송이 나올 것이다." 이에 덧붙여서 개블러는 미디어를 불신하는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TV 토론에서 정치적인 견해 형성을 위한 기회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정당들과 방송사들에게 이러한 기회를 넘겨서는 안 된다. 내가 바라는 바, 이러한 토론 후에 새로운 것에 대한 자극이 사라지고 후보자 결정 과정에서 더 간소한 절차를 밟는 것이 아니라 더 강력하게 내용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과정을 텔레비전 방송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을 찾을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ㅇ참조 : Die Tageszeitung, 2002. 9. 7. Spiegel Online, 2002. 9. 8., 9. 9. Sueddeutsche Zeitung, 2002. 9. 9.
ㅇ작성 : 강진숙(독일 통신원, schaffen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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