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공영 텔레비전 방송사는 지난 9월 2일 2002년 가을부터 2003년 여름까지의 프로그램 편성표를 발표했다. 3개 공영 텔레비전의 이번 편성표는 신임 문화부 장관의 공영방송에 대한 비판에 이어 발표된 것이어서 정계와 방송계 모두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새로 개편된 편성표가 문화부 장관의 비판에 대한 응답용으로 준비된 것은 아니지만, 연간 편성표에는 방송사의 방송 정책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France 2, 시사 프로그램에 주력
금년도 예산안에서 책정된 재정 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내다본 France 2는 2002년 가을부터는 정치 토론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의 양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에 France 2는, 기존 매거진 프로그램 <특파원(Envoy sp cial)>과 <보충조사(Compl ment d'enqu te)>를 통해 주시청 시간대 및 심야 시간대의 시사 토론 프로그램 방영을 고착시키는 한편, 국제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시사 매거진을 주시청 시간대에 신설할 예정이다. 또한 앞으로 일년 동안 다큐멘터리에 보다 많은 재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단, 재원의 인상은 다큐멘터리 방영의 양적 증가보다는 질적 향상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것이 채널의 설명이다. 이러한 채널의 의지는 특별 기획 다큐멘터리 <부서진 꿈(Le R ve bris )>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듯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다룬 총 150분 길이의 2부작 다큐멘터리 <부서진 꿈>은 사안이 가져올 수 있는 파문을 참작, 심야 시간에 방영될 예정이다.
France 2의 새 편성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신설 프로그램은 <빨리빨리(D'art d'art)>이다. 새로 선보이는 예술 매거진인 <빨리빨리>는 채널이 새로 시도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9월 20일부터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40분에 방영될 이 매거진은 1분 30초 길이의 '초스피드' 매거진으로, 매회 미술작품 분석을 통해 창작의 신비와 창작 과정, 그 의미 등을 소개할 예정이다.
전체적 차원에서 France 2는 경쟁 채널로 불리는 사영 채널 TF1과의 차별화에 큰 노력을 기울일 작정이다. 이와 관련, 제1공영 채널은 '비교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 나름대로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맞불 놓기' 식의 프로그램 편성 경쟁에서 벗어나 경쟁 채널의 편성표를 의식하지 않는 편성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France 3, 텔레비전 영화, 다큐멘터리 증대
France 3은 '50세 미만 가정주부'를 공략하는 사영 채널과는 달리 모든 연령층, 다양한 인구 대상의 편성을 구상하고 있다. France 3의 레미 플렘렝(R my Pflimlin) 사장은 "보다 많은 대중에게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할 잣대를 제공하고자 한다."며 France 3의 정책 의지를 피력한다. 제2공영 채널 France 3은 채널의 문화적 의무를 '지역 문화를 숨쉬게 하는 문화 프로그램 편성'으로 정의하며, 대표적 예로 <보물 지도(La carte aux tr sors)>의 지속적 편성을 들고 있다. 프랑스 각지를 돌며 지도에 표시된 보물을 찾는 이 프로그램은 오락적 기능과 문화적 기능을 동시에 소화해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France 3의 새 편성표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픽션물의 비중 확대이다. 지금까지 텔레비전용 영화 방영을 기피해 온 France 3은 오는 10월, 90분짜리 텔레비전용 영화 <뤼 블라스(Ruy Blas)>를 제작, 편성하는가 하면, INA와 함께 <첫번째 무기(Premi res armes)>를 기획, 다섯 명의 신인 감독의 처녀작 방영을 계획하고 있다. 시리즈인 <귀신 친구(Cher Fant me)>나 <소송(Action justice)>도 France 3이 신설한 픽션물이다. 라디오 기자, 여성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들 시리즈물은 평범한 시민의 용감하고 정당한 삶을 그리게 된다.
공영 채널은 <9월 11일, 뉴욕(New York, 11 septembre)>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의 방영 또한 대폭 늘일 예정이다. 특히, France 3은 인종차별 등 사회적 차별에 대항하는 시각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신설을 기획하고 있다. 한달에 한 번, 목요일 저녁에 방영될 시리즈 <프랑스, 우리집(Chez moi, la France)>과 벤기기(Benguigui)의 역작 <이민 이야기(M moires d'immigr s)>는 바로 이런 의미로 편성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격주로 편성될 문화 프로그램 <문화 충격(Le choc des cultures)>과 <문화와 종속(Culture et d pendance)>은 이질적 문화의 배경을 분석함으로써 '차이'와 '차별'을 구분할 예정이다. 사회 차별에 저항하는 정신의 이 두 프로그램은 새로운 차원의 문화 프로그램으로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밖에, France 3은 채널의 대표 장르인 어린이 프로그램에서도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개학과 함께 신설될 프로그램으로는, 8∼12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10분 길이의 어린이 뉴스 <내 오리(Mon Kanar)>와 유아용 3D 동물 앨범인 <재미난 작은 동물들(Dr les de petites b tes)> 등이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후 5시 35분에 방영되는 <내 오리>는 주요 시사 안건의 풀이, 인물 탐구, 어린이 시청자 의견 코너로 구성된다.
France 5, 기존 편성 지속
채널의 특성 상 '문화적', '교육적'이 될 수밖에 없는 France 5는 따라서 이번 문화부 장관의 비판 대상에서 유일하게 제외된 공영 채널이다. 따라서, France 5는 교육/교양 매거진, 다큐멘터리 장르를 주축으로 한 지금까지의 편성 정책을 99% 유지할 예정이다. 물론, 교육, 교양 채널인 France 5 역시 일관된 정책 아래 몇몇 신설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기는 하다. 가장 귀추가 주목되는 신설 프로그램으로는 회사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원들의 인간관계, 개개인의 처신을 묘사할 일일 프로그램이다(제목 미정).
장기적 안목의 일관적 편성 추구
"공영방송이 공공 서비스 의무를 존중하느냐고요? 물론입니다." 새 편성표를 발표한 France 2의 사장 크리스토퍼 발델리(Christopher Baldelli)는 '공영방송이 공익 사업체로서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화부 장관의 지적을 상기하듯 이렇게 말했다. France 3의 사장 레미 플렘렝 역시 "공공 서비스 정신은 늘 편성표의 근간이 되어 왔다."며, 공익 추구야말로 공영 텔레비전 방송의 주요 목표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France 5의 꼬떼(Cottet) 사장은 "세상에는 두 종류의 텔레비전이 있다. 하나는 머리를 비워 주는 것이고 하나는 채워 주는 것이다."라며, "공영 텔레비전은 교육, 사회적 결속, 생명 존중 및 보호, 부모의 역할 등 다양한 가치를 위해 존재하는 고유한 체계이다."라고 공영방송 채널로서의 위상을 정리했다.
공영 텔레비전의 편성 정책에서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장기적 편성'이다. 이는, 신설 프로그램 몇 회분을 방영해 보고 시청률이 예상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바로 편성표에서 제외시키고 마는 '하루살이' 편성이 아니라, 각 프로그램마다 정착 기간을 넉넉히 보장하는 편성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에 신설된 문학 매거진 <캠퍼스(Campus)>는 그 대표적 예로, 저조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자리를 지켜온 이 프로그램은 방영 일년이 지난 지금에야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공익 정신을 둘러싸고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진 가운데서 공영 텔레비전 방송 측은 '예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새 편성표를 내보였다. "늘 공익 정신을 추구해 왔으니까 갑작스럽게 변화를 줄 일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프랑수아 티롱(Fran ois Tiron) 프로그램 편성 국장은 이번 편성표의 제1원칙을 '일관성'으로 설명한다. 이제까지 펼쳐온 편성 정책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다소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2002∼2003년 프랑스 공영 텔레비전의 편성 정책인 셈이다
ㅇ참조 : Le Monde 2002. 9. 2., T l rama n 2747, 2002. 9. 7∼13.
ㅇ작성 : 오소영(프랑스 통신원, soyouoh@a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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