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미디어 산업계를 뒤흔든 미디어 재벌 키르히 그룹의 붕괴는 주식 매각과 관련하여 새로운 갈등 국면들을 낳고 있다. 독일 프로축구 중계권자인 ProSiebenSTA.1 TV를 비롯해 미디어·오락 분야의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KirchMedia는 65억 유로에 이르는 부채에 시달려 오다 지난 4월 8일 파산을 신청했고, 독일의 미디어 업계는 물론 정치계에 일파만파의 영향을 미쳐 왔다. 그 이후 키르히 그룹은 채권은행에 대한 부채상환을 위해 주식을 매각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이전부터 불거져 오던 미디어 재벌 Axel Springer사와의 갈등이 점차 정치적 입지를 둘러싼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여기에는 키르히가 가지고 있던 주식의 판매가격과 구매대상의 문제뿐 아니라 정치적 입지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이전의 키르히와 Springer의 양자 대결구도는 독일 서부 지역의 언론재벌인 WAZ의 개입에 따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키르히와 Springer의 대결
키르히 투자회사는 나 등 신문잡지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Axel Springer사에 40%의 지분 참여를 하고 있다. 8월 28일자에 따르면, 키르히 그룹은 이 Springer 지분의 판매가를 두고 격돌하고 있다. 파산한 미디어 재벌 레오 키르히(Leo Kirch)는 이 지분을 독자적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매각 방법을 찾아 전전긍긍해 왔다. 9월 10일까지 매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키르히의 채권 은행인 Deutsche Bank는 이 지분에 대한 압류를 실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키르히의 주식배당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기업은 엣센에서 주요 지역 일간지를 발간하고 있고 RTL에 일부 투자하고 있는 WAZ 그룹이다. 하지만, 문제는 Springer 그룹은 이 WAZ 그룹을 협력자나 동반자로서 간주하지 않고 있고 키르히에게 주식 배당에 관한 의무만을 지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키르히 그룹과 WAZ가 모색하는 협정에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키르히 그룹이 선차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Springer사에 투자한 키르히의 지분 40%를 WAZ 그룹에 양도하는 임의처분 방식이다. 그러나 재정 법률가들은 이 방법이 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Springer는 신중을 기하기 위해 이 '회피 상황(Umgehungstatbestand)'에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Springer가 판단하는 것은 키르히가 주식을 직접적인 매각이 아니라 그가 보유하고 있던 PrintBeteiligungs GmbH를 양도하는 임의적인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 보도에 따르면, 진행 중인 키르히 그룹과 WAZ 그룹간의 심리는 판매가를 둘러싸고 이루어지고 있다. 키르히 그룹의 관심사는 7억 2,000만 유로의 가격에 팔고 그 수익금을 우선 상위 채권 은행인 Deutsche Bank에 지불하는 것이다.
키르히의 슈프링어 지분 인수를 둘러싼 정치적 목적
하지만 묘한 양상은 WAZ 그룹이 키르히가 소유하고 있던 Springer 그룹의 지분을 원함에도 불구하고, 유력한 Springer 그룹의 계승자인 악셀 슈펜 슈프링어(Axel Sven Springer)는 WAZ 그룹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발견된다. 이에 따라 WAZ는 Springer의 미디어 경영 방식에 대해 비난하기 시작했고, WAZ의 공동책임자 4인 중 한 사람인 루츠 글란트(Lutz Glandt)는 독일 와의 인터뷰에서 "(Springer의) 간부들이 기업의 경제적 효과를 향상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거부하는 것은 경솔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9월 2일자 <남독일신문(S ddeutsche Zeitung, SZ)>에 따르면, 이 갈등의 원인은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발견된다. SPD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는 WAZ 그룹의 정치적 목적은 악셀 슈프링어가 소유하고 있는 일간지 와 의 정치적 효과에 개입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즉, 파산 신청을 한 미디어 재벌 레오 키르히의 Springer 지분 40%를 인수하려는 WAZ의 정치적 목적은 미디어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해명하고자 WAZ의 책임자인 글란트는 Springer 그룹의 모든 편집장을 초대하였고, "미디어의 책임과 경제적 책임을 분리하는 모델에 입각해서 작업한다."는 입장을 설파하였다. 물론 미디어의 책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지만, WAZ 그룹은 능력 있는 법률 전문가를 고용하여 카르텔 권리의 문제를 평가함으로써 새로운 지배적인 시장이 형성될지를 가늠하고 있다.
8월 28일자 에 따르면, SPD는 독일 수상선거에서 결과된 참담한 선거패배의 원인을 단편적인 오류에서가 아니라 독일의 최대 구독 일간지 의 선거 캠페인에서 찾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SPD의 계획, 즉 독일 언론의 일부를 정당계보로 견인하려는 계획은 뮌헨의 키르히 그룹이 파산할 때 불거졌던 Springer 기업의 지분을 WAZ에 매각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와 지에 따르면, WAZ 기업은 독일에서 좌파적 성향으로 파악되며, 주요한 현안은 Springer 기업을 합병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 주장하는바, 그것은 무의미하다. WAZ 기업은 두 가족의 일원이다. 한편으로 뼛속까지 보수적인 가족의 일원이라면, 다른 한편으로는 SPD에 가까웠던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콜 전 수상에 대한 기부금 사건으로 사장이 이 정당에서 축출된 과거를 지니고 있기도 한두 가지 뿌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두 뿌리의 이질적 성격을 하나로 합칠 수 있게 하는 것은 높은 이윤을 향한 욕망이다.
머독과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반대 기류
한편, Springer 그룹의 경영협의회는 WAZ 그룹이나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의 주식 인수를 거부하였다. 베를린에서의 공개 서한 발표에서 Springer 전체기업경영협의회(Gesamt-und Konzernbetriebsrat)는 미디어 주식에 대해 호소하였다. WAZ나 머독을 통해 키르히 그룹의 40% 지분이 매각될 때, 그것은 '적대적인 인수'일 뿐이며 합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대적 인수를 거부하지 않는 한, 미디어의 고유한 특성은 게임으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WAZ나 머독이 그 지분을 차지하게 될 경우 '일자리 소멸 기계(Arbeitsplatz-Vernichtungsmaschine)'가 작동함으로써 사회적 원칙에 공백이 생기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기본 입장을 띠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점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고 악셀 슈펜 슈프링어는 상업 신문에 대한 WAZ의 지분참여에 대해 비난했다.
이미 지난 3월 26일자 가 보도했듯이 머독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간에 키르히 그룹의 파산에 대한 구제방안이 협의되었지만, 증자에 대한 대가로 채무삭감을 요구했던 협상이 무산된 후 키르히 그룹은 파산선고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외국의 미디어 독점 자본의 유입을 반대하는 사회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키르히 그룹의 파산으로 인한 파장을 줄여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독일의 시사 주간지 역시 Axel Springer, Heinrich Bauer, 그리고 HypoVereinsbank와 더불어 파산한 키르히 미디어의 지분 참여에 관심을 보인 바 있다. 지난 7월 26일 <슈피겔>의 대변인인 한스 울리히 슈톨트(Hans-Ulrich Stoldt)는 "우리는 텔레비전 방송 분야에 매우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슈피겔 방송'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르히 미디어 그룹의 주식 매각과 관련한 문제는 현재까지도 쉽게 해결의 실마리가 나지 않고 있고, 이것은 실업문제로까지 확산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적으로 독일의 신용개혁협회는 올해 말까지 4만 개의 기업이 파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대량의 실업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기업 파산으로 이미 31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올해 말까지 6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키르히 그룹의 파산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신속한 대응책이 요구된다.
ㅇ참조 : epd medien 2002. 8. 28., 9. 7./
S ddeutsche Zeitung 2002. 9. 2., 9. 6./
taz 2002. 8. 28./
Die Zeit 2002. 8. 28./
ㅇ작성 : 강진숙(독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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