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통권 155호] 정부와 시장을 의식하는 중국 드라마 제작 경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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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기타 | 등록일 | 02.07.15 | ||||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 조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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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선전도구에서 상품으로 전환 1958년 처음으로 드라마가 등장한 후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기 전까지 중국에서 방송된 드라마는 약 180편이며, 원화따거밍(문화대혁명)과 더불어 10년 동안 드라마의 생산은 기본적으로 정지 상태에 놓였다. 수적으로도 빈약한 생산을 보이던 이 시기, 드라마의 주제 또한 선전을 위한 것이었다. 문학과 연극을 정치의 도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주장하던 모택동의 노선이 새로운 매체인 드라마로 옮겨진 것이다. 1980년대에 이르러, 중국에는 대량의 대중성을 지향하는 드라마가 제작되기 시작했으며, 1987년 중국 공산당의 제13차 전국 대표대회가 열려 '사회주의 경제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상품 경제'라는 강령이 채택되면서, 드라마의 상품화 경향도 짙어졌다. 1980년대 말부터 CCTV는 광고 경영과 방송시간대를 임대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는 등, 드라마 경영에 있어 시장의 원리는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1990년도 중국 문화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갈망〕의 출현은 중국의 대중화 드라마가 주류를 이루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중국의 드라마 생산과 유통에는 본격적으로 시장성과 비시장성의 원칙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다. SARFT(중국라디오TV영화총국) 사회관리사의 통계에 따르면, 1998년 중국 내 드라마 생산량은 682편(9,780회)이었으며, 1999년 SARFT의 허가를 받은 중국 TV예술위원회가 편집한 당해 연도의 〔전국 TV 드라마 제작〕을 통해, 총 118개의 드라마 생산 갑종(장기) 허가증과 195개의 드라마 생산 을종(임시) 허가증을 가진 제작사들은 989편(1만 5,812회)의 제작을 신청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 중 실제로 심사 비준을 거쳐 방송을 한 드라마의 수는 371편(6,277회)으로 약 4,670시간 분량이었다. 2000년에 이후의 제작량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중국의 드라마 시장은 아직 성숙기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평가받고 있으나, 드라마는 중국에서 가장 먼저 제작-방송의 분리를 이룩하고 시장에서의 교환을 성사시키고 있는 프로그램 장르가 된 것이다. 드라마를 통해 외부와 교류 또한 이때에 이르러, 외국의 드라마가 중국에 대량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1999년 SARFT를 통하여 비준된 외국 드라마는 216편(1,543회)이었다. 중국의 관련 법률에 따르면, 드라마 수입의 총량은 국산 드라마 총량의 25%를 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각종 외국 드라마는 국내 방송국 혹은 제작사와 합작 제작이라는 방식을 통하여 중국 시장에 진입하였다. 1999년 정부가 비준한 합작 제작 드라마는 총 41편(763회)이었다. 이를 앞에서 언급한 직접 수입량과 더하면, 2,300회를 초과하는 것으로, 매일 6회 이상의 수입 혹은 합작 제작된 드라마가 중국에서 방영됨을 의미한다(재방송 제외).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유럽·미국·라틴 아메리카 등 중국 혹은 동방 문화와 현격한 차이를 가지는 국가의 드라마 수입은 현저하게 감소하고, 홍콩·타이완 및 싱가포르·한국 등 동부 아시아 지역의 드라마가 중국에 다량 진입하게 되었고, 또한 대중에게 보편적인 환영을 받게 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1990년에서 1995년에 이르기까지 중국에 수입된 타이완 드라마는 90편 전후로, 그 중 〔별은 내 마음을 알 거야〕, 〔어젯밤의 별〕 등은 모두 중국에 문화적 화젯거리로 등장했고, 홍콩의 진용(무협소설가 김용)의 원작을 기초로 한 〔천룡팔부〕, 〔소호강호〕, 〔신조협려〕, 〔녹정기〕 등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이는 공통된 문화와 지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동부 아시아와 지역의 드라마가 두드러진 문화 친화력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드라마 시장의 국제화 추세에 따라 중국의 드라마도 1980년대 말부터는 〔홍루몽〕, 〔서유기〕, 〔포청천〕, 〔무송전〕, 〔제갈량〕 등의 드라마가 홍콩, 동남아, 미국, 프랑스 등의 지역으로 수출되었다. 드라마 교역 관계자는 〔홍루몽〕은 1,500달러의 수준으로 방영권 거래가 이루어졌으며, 일본과 타이완 등지에서는 매회 8,000달러의 가격으로 〔삼국지〕의 방영권을 판매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1997년의 〔수호전〕은 타이완에 매회 1만 6,000달러의 가격으로 판매되어, 국제 드라마 시장의 표준가격에 근접하였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베이징 사람, 뉴욕에 가다〕, 〔마지막 황제〕, 〔옹정 황제〕 등도 적잖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방영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와 대중 사이를 채워 주는 역사 드라마 중국 정부는 일관되게 드라마의 정치적 의의에 주목을 하고 있다. 정부의 관리들은 드라마는 현대화된 TV 미디어의 선전도구로, 영향 범위가 넓고, 수용자의 반응이 빠르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기타 선전도구보다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드라마는 '사회주의의 주도 사상'을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경제적인 효율만을 강조하고 사회적인 공익을 경시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 최근 들어 적잖은 드라마들이 대중 사회에서의 '혁명 노력'을 반영하지 못하고, 남녀관계에서 발생하는 '혼외정사', '삼각관계' 등에 주력하여, 대중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사상을 전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부의 이와 같은 드라마에 대한 중시는 각종 방법을 통한 규제를 낳고 있다. 중앙과 성급 TV 방송국은 황금시간대에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중국 국내산 드라마를 방영하도록 하고 있으며, 오락성 무협 드라마 등의 통속 드라마의 방송을 제한하고 있다. 또한 이 시간대에는 외국 드라마의 방영도 금지되고 있다. 이러한 오락물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지속되어, 1990년대 말에는 전국의 시청자를 석권하면서 '자오웨이(드라마의 여주인공) 신드롬'까지 만들어 내었던 〔황제의 딸〕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부의 입장과 시장의 원칙이 충돌한 끝에 탄생한 것 중의 하나가 대량의 역사 드라마이다. 이들 역사 드라마는 지금의 각종 민감한 현실 문제 혹은 권력간의 충돌을 피해서, 풍부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주제의 하나로, 정부와 시장, 지식인들의 요구를 동시에 반영할 수 있는 주제였던 것이다. 각종 역사극 중에서도 '혁명 주제 역사극'은 중국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표현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중국 근현대사에 있어 중국 공산당의 건립과 관계를 지을 수 있는 역사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이 드라마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또한 고대 인물과 역사 중에서도 현대 역사와 맥을 이을 수 있는 경우는, 모두 드라마화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들 역사극은 그 문헌성과 스토리 전개성, 사실성과 허구성, 역사관과 생명관, 역사 사건과 인물의 개성 등에 대한 특수한 이해와 처리를 통하여 중국적 특색을 가진 드라마의 유형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표적인 것들로는 〔사마천〕, 〔공자〕, 〔임측서〕, 〔태평천국〕 등이 있었다. 중국 고전 소설을 기초로 한 드라마도 대량으로 제작이 되었다. 동명의 원작을 기초로 한 드라마 〔홍루몽〕은 1987년 홍콩과 중국 본토에서 동시에 방영되어 70%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하였으며, 〔삼국지(1994)〕, 〔수호전(1998)〕, 〔서유기(2000)〕 등도 드라마로제작이 되었다. 중국 정부는 이들 드라마를 중국 고전 문화의 정수로 삼고 서방 문화에 대항할 수 있는 주요한 무기로 삼고 있으며, 문화의 공통성이라는 것을 통하여 민족의 응집력을 제고시키고자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드라마는 정부의 자금과 정책 두 방향의 적극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완성이 되곤 했다. 한편, 기존의 훌륭한 문학작품에 그다지 손상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 신중한 개작을 가함으로써 중국 대중들에게도 환영을 받았다. 결과, 84회분의 대형 드라마 〔삼국지〕의 경우는 중국 본토에서뿐만이 아니라, 일본·한국·말레이시아·태국·싱가포르 등의 국가와 홍콩, 타이완 등지에서도 방영이 되었으며, 지역에 따라서는 '삼국 문화열'까지 불러일으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고전 소설을 드라마화하는 과정에서 제작진이 보인 '보수성'으로 인하여 〔삼국지〕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현대 의식과 TV만이 가지는 매력을 극대화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1990년대 말기에 제작된 43회분의 〔수호지〕는 재창조와 TV 드라마화라는 두 방면에 있어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 드라마의 편집자는 제작 전략에 대하여 논하면서, 원래의 소설과는 다르게 이 드라마는 "강호 사나이들의 개인에서 전체에 이르기까지, 처음의 영웅 기개에서부터 최후의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충성과 의리의 모순 대립을 초점으로 하여 인물을 조직하고 스토리를 전개했으며, 영웅들의 성격을 단순한 단계에서 복잡한 단계까지 세부적으로 묘사하였다. 또한 통쾌한 기개가 비장하고 서글픈 분위기를 대신하였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3년 8개월이라는 시간을 통하여 제작된 이 드라마는 송나라 문화가 가지는 매력과 호방한 강호의 정신, 또한 사실적이며 웅대한 전투 장면 등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주제가인 '좋은 사내의 노래'는 당시 가장 유행하던 노래 중 하나가 될 정도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드라마가 지나치게 '보는 재미'를 강조한 나머지, 혈투 장면 등의 잔인한 묘사를 그대로 드러내었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중앙 정부의 심의를 통과하여 방영된 만큼, 더 이상의 문제는 없었다. 이러한 고전 소설의 드라마화 성공에 힘입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중국에는 〔봉신방〕, 〔요재지이〕, 〔동주열국지〕 등의 고전 소설이 꾸준히 개작되고 있으며, 일정한 정도에서 대중의 환영을 받고 있다. 한편 1999년에서 2001년 사이에는 〔경찰서풍운〕, 〔죄의 증거〕, 〔여자 특수경찰대〕 등의 수사극도 인기를 끌었다. 이는 통속극과 중국 정부에서 추구하는 선전성이 결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역사 재구성 드라마 인기 이처럼 역사를 정면으로 또한 비교적 엄숙하게 반영하고 있는 드라마와 더불어, 1990년대 말부터는 '역사를 재미있게 보여 주는' 형식의 드라마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 첫발을 뗀 것은 1998년의 〔재미있는 건륭 황제 이야기〕였으며, 그 뒤를 이은 〔황제의 딸(원제 환주 공주)〕은 한때 상하이 등 지역에서 42%라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한국으로도 수출되어 인기를 끈 드라마였다. 〔황제의 딸〕 상·하 60회분이 방송되고 난 뒤, 극중 주인공 샤오옌즈(자오웨이 분)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인물이 되었으며, 다양한 캐릭터 상품들도 등장하였다. 중국 내에서 이 작품은 1회분 가격이 수십만 위엔(1위엔=160원)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적잖은 방송국들이 앞다투어 방송하면서 드라마의 중간 광고를 두세 차례 삽입하였고, 심지어 일부 방송국에서는 광고시간이 드라마 방영시간보다 길어지는 기현상을 빚어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반응은 역사를 재미있게 재구성하는 드라마가 중국에서 확실한 시장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 드라마는 다른 한편 지식인들에게 일정 정도의 사상 표현 공간을 제공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옹정 황제(1998)〕에서 〔동으로 만든 입과 철로 된 이를 가진 지샤오깡(2001)〕은 통속적인 스토리를 가지는 일반 드라마의 서사 구조를 지니고 있고, 심지어는 희극적인 방법을 도입하기도 하였지만, 이들 드라마는 특정 역사 인물과 역사 환경의 묘사를 통하여 작금의 현실을 재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베이징 통따오 문화발전 유한공사가 제작한 44회분 드라마 〔옹정황제〕는 100여 명의 주요 등장인물과 600여 개의 장소를 통하여 청대의 강희 황제에서 옹정 황제에 이르기까지의 정치권력 투쟁을 묘사하였고, 이는 중국의 현실 권력구조와 사회현실에 깊은 관계를 가졌다고 평가된 것이다. 당시 중국의 메인 뉴스인 저녁 7시 뉴스 직후 방영되었던 이 드라마는 중국인, 특히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관중들을 대량으로 불러모았다. 또한 이처럼 '역사를 빌려 현실을 이야기한다.'라는 방식은 중국이 고대로부터 가지고 있는 전통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어, 중국 대중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중국은 일본 드라마의 영향을 받아 1998∼1999년 사이에 청춘 우상 드라마의 고조기가 도래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러한 바람은 한국 드라마의 대량 수입과도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진정으로 가장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드라마의 유형은 역시 신무협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진용의 무협소설을 개작한 드라마들은 중국 각 방송국 드라마의 핵심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99년 음력설 당시, 심지어는 10여 개의 성급 위성TV들이 동시에 〔천룡팔부〕를 방영하는 현상이 빚어지기도 하였다. 또한 방영시간대도 저녁의 황금시간대로, 그 영향력은 전설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1990년대 초의 〔갈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중앙 핵심 국영 제작사인 중국 TV 드라마 제작센터도 자금을 아끼지 않고, 〔소호강호〕를 제작하였다. 비록 홍콩에서 무협 드라마가 수입되기 시작한 지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무협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이제 일시적인 관심의 수준을 넘어, 일종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CC TV와 소프리가 1999년 산둥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산둥 위성TV와 치루TV가 방송한 무협 드라마들은 각각 〔백미대협〕 19.9%, 〔의천도룡기〕 16.2%, 〔신 신조협려〕 37.4%, 〔천지요녀〕 29.9% 등의 시청률을 기록하였으며, 〔연자이삼〕은 41.3%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또한 시청자층도 중국 전역에 걸쳐, 남녀노소를 가지지 않고 넓게 퍼져 있어,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한국 등 지역의 청춘 드라마와는 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다. 한때 중국에는 '홍콩 무협열'이라는 것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더 이상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미 '무협'은 중국인들의 TV 시청에 있어 빠질 수 없는 기본 요소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에 불어닥치고 있는 한류의 열풍으로 인하여, 지난 6월 초 상하이 TV 페스티벌에서는 '한국관'이 화제의 대상이 되었고, 우리 드라마 계약액이 잠정 집계 150만 달러라는 쾌거를 거두었다. 이제 우리가 기대할 것은 '한류'라는 용어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우리 방송이 중국에 녹아들게 되는 그때가 아닐까. ㅇ참조 : 文藝硏究 2001. 6. / 現代傳媒 2002. 2. ㅇ작성 : 이재민(중국 통신원, ljm0219@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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